예수의 겸손을 나타내는 고귀한 행동
예수 그리스도의 뛰어난 특성 중의 하나는 겸손이다. 그분은 기꺼이 하늘에서의 높은 지위를 포기하고, “조금 천사보다 못”한 인간이 되셨다. (히브리 2:7, 난외주; 빌립보 2:5-7) 당시 지상에 계셨을 때에도, 그분은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겸손하게 다른 사람들을 섬기셨다. (마태 20:28) 또 장차 그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훌륭하게 겸손을 나타내는 고귀한 행동을 보이실 것이다. (계시 19:16) 이 사실이 고린도 전서 15:24에 다음 같이 언급되어 있다. “그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여기에 내포된 점들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여호와께서 자기의 아들이 왕으로서 다스리도록 목적하신 이유를 고려해 보지 않으면 안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첫 인간,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일치 연합한 가운데 머물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완전한 순종을 통하여 자기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때에만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 가능하도록 그들을 창조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써, 그들 스스로가 창조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고, 생명을 계속 누리는 데 필요한 영적 관계를 잃게 되었다. 완전성을 훼손한 ‘아담’은 또한 완전한 자손을 낳을 능력을 상실하였다. 성서는,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알려 준다. (로마 5:12) 죄란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순종의 과녁을 빗나가는 것을 의미하므로, 전 인류는 이리하여 그들의 창조주와 불화한 상태에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가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이 사실은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의 통치에 관하여 고린도 전서 15:25, 26에 기록한 바로 볼 때 분명하다. “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사망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약점과 불완전한 점들이 제거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성서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사망의 쏘는 것은 죄”이기 때문이다. (고린도 전 15:56) 계시록 20:4에 의하면, 인류로부터 사 들인 연합 통치자들인 몸 반열과 함께 한 그리스도를 위하여 “천년”이 예비되어 있는데, 인류를 완전성으로 회복시킴으로써 사망을 멸망시키기 위해서이다.
죄와 사망의 노예 상태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한 마련이 계시록 22:1, 2에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거기에서 사도 ‘요한’은 한 천사가 환상 가운데 그에게 계시한 내용을 묘사하였다.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성서는 죄의 얼룩이 예수의 희생을 근거로 해서만 제거될 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사도 ‘요한’은 영감받아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하였다. (요한 1서 1:7) 그러므로 강 좌우에 나무들이 있는 “생명수의 강”은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을 의미하며, 그분의 아들의 희생에 의한 속죄 은혜를 포함한다. “생명수”와 나무들이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을 상징하므로, 그 마련에 참여하는 것은 예수의 피에 의한 속죄 은혜에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수반됨이 분명하다.—계시 22:17.
이러한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성서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야고보 2:26)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합 통치자들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왕국의 지시에 순종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각자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동안 왕국의 다스림에 충성스럽게 복종하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 그분의 속죄 은혜를 적용시킴에 따라, 그들은 완전을 향해 자라갈 것이다.
인류를 완전성으로 향상시키는 일이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임이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에 대한 상징적 묘사에 암시되어 있다. “생명수의 강” 좌우의 나무들은 달마다 그 실과를 맺는다. 만일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마련에 참여하는 것이 단 한번에 될 수 있다면 그렇게 정규적으로 끊임없이 생명을 소성시키는 실과를 공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인류를 돕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연합 통치자들은 지적 대표자들을 사용할 것이다. 이들은 올바른 것에 대한 뛰어난 전념과 다른 사람들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가진 남자들일 것이다. 그들 중에는 예수의 지적 가계에 속하는 충성스러운 남자들도 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생명으로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시 45:16.
그렇다면,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메시야 왕국이 필요하게 된 것은 오로지 인류가 죄와 사망에 빠졌기 때문임이 명백하다. 죄의 모든 흔적을 제거함과 동시에, 이런 관점에서 더는 메시야 왕국이 다스릴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폭력적인 종말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즉, 그 왕국은 “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 훌륭한 일의 결실은 영원히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니엘 7:14) 성서가 그리스도의 통치를 “무궁”한 것으로 말하는 것은 이러한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이사야 9:7; 누가 1:33; 계시 11:15.
그분의 천년 통치의 마지막 즈음에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완전성으로 이끄는 임명된 업무를 완수할 것이다. 진정한 겸손에서 그분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인류 위에 행사했던 권위를 그 때에 아버지께 양도할 것이다. 고린도 전서 15:28의 말씀은 그리하여 성취될 것이다. “만물을 저[아들]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그분의 본을 따라, 그분의 연합 통치자들과 왕국의 지적 대표자들 역시 기쁨으로 겸손히 그들의 지위를 양도할 것이다. 그 때에 모든 인간들은 약점과 불완전으로부터 자유케 되어 하나님 앞에 동등한 입장으로 서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식이 심지어 지금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어야 하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인 회중 안에서의 지위들이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각자에게 맡겨진 책임이나 권위가 아니라, 그가 한 개인으로 어떠한 사람인가 그리고 하나님과의 그의 승인받은 관계는 어떠한가 이다. 그리스도인 회중에는 “대인들”이란 없다. 심지어 장로나 감독자들이라도 그들은 단지 다른 형제들의 종 혹은 노예일 뿐이다. (마태 20:25-27) 더우기, 장로 혹은 감독자의 마련이 현재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중 단지 임시적일 것이며, 인류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완전성을 달성할 그 때까지만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진실로 이러한 이해는 강조되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여호와 하나님의 최고 주권을.
그러므로 우리의 창조주와의 승인받은 관계가 영속적인 재산임을 첫째로 생각함으로써, 그분 앞에 겸손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자. (잠언 22:4)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예수의 겸손을 나타내는 고귀한 행동, 즉 왕국을 그분의 하나님 아버지께 양도하는 일을 목격할 자들 가운데 끼는 특권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