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워치타워
온라인 라이브러리
한국어
  • 성경
  • 출판물
  • 집회
  • 파78 10월호 42-43면
  • 산상수훈—간음과 이혼을 막는 길

관련 동영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동영상을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 산상수훈—간음과 이혼을 막는 길
  •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 비슷한 자료
  • 이혼
    성경 통찰, 제2권
  • “간음하지 말찌니라”
    깨어라!—1971
  • 결혼의 의무와 이혼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57
  •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혼을 미워하신다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81
더 보기
파수대—여호와의 왕국 선포 1978
파78 10월호 42-43면

산상수훈—간음과 이혼을 막는 길

예수께서는 계속 노하는 것이 치명적임을 논하신 후에 자기의 주의를 십계명 중의 일곱번째 계명에 돌리셨다.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느니라].”—마태 5:27; 출애굽 20:14; 신명 5:18.

하나님의 율법하에서는 간음에 대한 벌이 엄하였다.—범죄한 쌍방이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은 자기 약혼자가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진 약혼한 여자에게도 적용되었다.—신명 22:22-24.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간음을 금지하는 것 이상이었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계속] 보고 음욕을 품는 자[즉 결혼한 모든 남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 5:28, 신세 참조) 다른 경우에도 예수께서는 간음을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부도덕한 욕망과 연관시키셨다. 그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 간음[이니라].” (마가 7:21, 22) 이 점은 다른 사람의 아내를 보고 자극을 받아 간음을 범한 ‘다윗’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사무엘 하 11:2-4.

여기서 예수께서는 불시에 생겼다가 곧 사라지는 부도덕한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신 것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여자를 “[계속] 보”고 그에 대한 음탕한 욕망을 기르는 상황을 논하고 계셨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간음을 범하기를 몹시 원하는 결혼한 남자는 기회만 있으면 그렇게 할 것을 아신다. (사무엘 상 16:7)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행위를 “마음” 즉 애정과 욕망과 동기의 바탕에서 이미 간음한 것으로 보신다.

각자는 어떻게 간음을 피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는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게헨나]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게헨나]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태 5:29, 30, 새번역 참조.

성경은 의로운 행로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창세 5:22; 6:9) “오른 눈”(여기서는 사람의 시각적인 집중력을 상징함)이나 “오른 손”(사람이 손 등으로 하는 행위를 의미함)이 사람을 “실족” 즉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에서 벗어나게 한다면 어떠한가? 그러한 경우에 그 사람은 눈을 빼거나 손을 절단하는 것과 비슷한 조처를 취해야 한다. 어떻게 그런가?

눈은 정신의 중요한 통신 수단으로서 감정과 행동에 강력한 영향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 눈이 부당한 광경을 집중해서 보지 않도록 제한하여야 한다. (잠언 4:25; 누가 11:34) ‘욥’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합당한 견해를 나타낸 것이다.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욥 31:1.

마찬가지로 사람이 손이나 다른 신체 기관으로 하는 일이 성서의 도덕 표준을 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라].”—골로새 3:5.

자기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문자적으로 사지를 기꺼이 절단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부도덕한 생각이나 행동을 피하기 위하여 상징적으로 눈이나 손을 ‘없애 버리는 것’은 훨씬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더러운 것들을 태우기 위하여 밤낮 불타고 있었던 ‘예루살렘’ 근처의 “쓰레기 더미” 즉 ‘게헨나’로 상징된 영원한 멸망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마태 5:29, 30, ‘J. B. 필립스’

예수께서는 계속하여 “또 일렀으되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태 5:31) ‘모세’를 통한 하나님의 율법은 어떤 남자가 자기 아내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와 이혼하는 것을 허용하였다. (신명 24:1-4) “수치되는 일”은 분명히 간음이 아닌 어떤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 하면 위에 언급된 바와 같이 그러한 범죄를 하면 ‘모세’ 율법하에서는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혼하는 것[을] ··· 미워하”시기 때문에 이혼할 수 있는 근거는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심하게 불경한 태도를 나타낸다거나 가정에 수치를 가져오는 등 심각한 것이었음에 틀림없다.—말라기 2:16.

그렇지만 그러한 심각한 경우에도 성경은 이혼을 명령하거나 권장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결혼을 성급하게 해소시키는 데 대한 억제책으로서 아내와 이혼하는 남편은 “이혼 증서”를 주어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이렇게 하는 데는 준비와 법적인 처리를 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그 점에는 먼저 화해시키도록 노력하는 합당한 권위를 가진 사람들과 논의하는 것도 포함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유대’인 남편들은 각종 사소한 일을 근거로 이혼함으로써 아내들에게 ‘궤사를 행하’기 시작하였다. (말라기 2:13-16) 예수 당시에 만연해 있던 ‘랍비’의 견해에 의하면 아내가 “남편을 위한 요리를 망쳐도” 이혼할 수 있었다. ‘스트랙’과 ‘빌러벡’에 의한 독일어 성서 주석에 의하면 고대의 ‘유대’인 기록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진술은 “‘미쉬나’기[예수의 시대도 포함함]의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이혼 증서를 교부함으로써 온전히 법적으로 당장 이혼할 수 없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아내와 이혼할 수 있는지 물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마태 19:3.

이혼에 대한 예수의 견해는 어떠한가? 그분은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 (마태 5:32) 메시야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전한 권세를 가지신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성경적으로 언급된 “수치되는 일”로 자기 아내와 이혼하는 것도 기뻐하시지 않는다. (마태 19:8 비교) 성적 부도덕이 아닌 이유로 자기 아내와 이혼한 사람은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와 성적 관계를 가진다면 자기 아내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 결혼이 계속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버린 여자” 즉 성적 부도덕이 아닌 근거로 이혼당한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고 부언하셨다.

예수의 이 말은 참으로 유익하다. 그분이 성적 부도덕을 이혼의 유일한 근거로 확정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부부들은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이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분이 간음으로 인도하는 부도덕한 생각을 정죄하신 것은 결혼의 해소를 더욱 감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산상수훈은 그 교훈에 유의하는 사람들이 간음과 이혼을 방지할 수 있도록 강력한 도움을 준다.

    한국어 워치 타워 출판물 (1952-2026)
    로그아웃
    로그인
    • 한국어
    • 공유
    • 설정
    • Copyright © 2026 Watch Tower Bible and Tract Society of Pennsylvania
    • 이용 약관
    • 개인 정보 보호 정책
    • 개인 정보 설정
    • JW.ORG
    • 로그인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