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진화론은 또다시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상치 않던 방법으로 진전되고 있다.
어떻게 되고 있는가? 진화론은 수년전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규모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과학에 근거를 둔 그러한 공격의 힘과 질은 과학이 인간의 기원에 관한 문제를 오래 전에 해결하였다고 생각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안겨다 주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생겨났든지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 좀 생각해 보자. 당신은 학생인가? 그렇다면 당신도 ‘예외없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울 것이다. 이 진화의 가르침은 문학, 의학, 역사, 철학, 심지어 종교—그리고 여타의 모든 문제에 심오한 영향을 미쳐왔다. 만일 진화론이 그릇되다면, 당신이 배우는 교훈의 상당 부분은 그릇된 가정 즉 거짓위에 구축되어 있는 셈이다.
당신이 선생이라면, 틀림없이 당신은 학생들에 대해 일종의 책임감을 느낄 것이다. 당신은 그들이 참을 배우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이 참이 아니라면 어떠하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실제로 오늘날 만연하는 도덕의 몰락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당신이 부모라면, 가족이 복된 미래를 갖는 데 관심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화론은 무엇을 제공하는가? 만일 폭력적인 세상에서의 몇해가 당신의 자녀들이 즐길 생의 전부라면, 그들은 왜 거짓말, 도적질, 음행 및 사기 등을 하면 안되는가하고 생각할 것이다. ‘적자(適者)는 생존’하고 ‘약자는 없어진다’는 것이 바로 그런 사고 방식이 아닌가? 그러므로 당신도 진화의 가르침에 관한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종교인이라면, 진화론과 성서를 함께 믿을 수는 없다. 성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별되게 창조하셨다고 알려주고, 진화론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어느 한쪽이 틀린 것은 분명하다.
만일 당신이 진화론에 고착한다면, 그것은 당신 개인에게 어떠한 장래를 제공하는가? 사망뿐이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께서 우리 시대 안에 전체 악한 사물의 제도를 멸하시고 평화로운 새 질서를 실현시키실 것을 약속한다. (시 37:11, 29) 그 새 질서에는 슬픔, 아픔, 고통 혹은 죽음이 더는 없을 것임을 성서는 알려준다. (계시 21:4) 철저한 조사를 해보지 않고 진화론을 고집함으로써 그러한 전망을 배척하는 것이 이치적인 일인가?
따라서, 진화론이 직면한 도전은 과학적인 것일 뿐만아니라 도덕적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면 그리고 곧 행동을 취하신다면, 진화론과 그것의 신봉자들은 그와 정면 충돌을 하게 될 것이다.
자, 그러면 오늘날 진화론을 둘러싼 어떠한 논쟁이 일고있는가? 최신 과학적 증거들은 그것에 관하여 무엇을 밝혀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