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피이피이’호가 ‘온두라스’를 황폐시키다
‘온두라스’ 주재 「깨어라!」 통신원 기
“제발, 우리를 도와 주십시오! 이곳의 실정은 끔찍합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할 정도입니다!”
이 호소의 목소리는 ‘온두라스’ 북방에 살고 있는 한 ‘아마튜어’ 무선사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그의 말은 올바른 것이었다. 과장된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 철저한 재난에 대한 어떠한 묘사도 그 잔혹한 현실 앞에서는 무색해진다. ‘온두라스’ 정부는 그 나라가 “국가적 재난 상태”에 처하였다고 선언하였다.
이것은 ‘온두라스’ 역사상 최악의 재난이었다. 당국은 8,000 내지 10,000명이 사망하였다고 추계하였다. 약 100,000명이 집을 잃었으며, 50만명의 다른 사람들도 손실을 입었다. 농장, 가축 및 경제적으로 중요한 농작물의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공로(公路), 철로, 교량 등이 파괴되어 교통을 마비시켰다.
한 남자는 한때 수백채의 가옥들 중에 자기 집이 서 있던 장소를 지적하였다. 그 지역은 이제 넓은 강으로 변모하였으며, 집들이 있었다는 증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메마른 하상(河床)이 수백 ‘미터’ 넓이의 맹렬한 분류(奔流)로 급변하였다. 폭풍우가 지나가자, 시체들이 자기 집으로부터 9‘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까지 발견되었다. 자동차들이 1‘미터’ 진흙 속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쓰러지지 않고 남아있는 집들이 모래와 진흙으로 채워져 있는 일도 희귀한 광경이 아니었다.
그러면 무슨 힘이 그러한 파멸을 일으켰는가?
폭풍우가 형성되다
9월 17일 화요일 오후, 민간 항공국 방송이 최초로 태풍 ‘피이피이’호가 ‘온두라스’의 ‘카리브’ 해안에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 방송을 하였다. 그러나 특별한 경보는 없었다. 9월은 태풍이 많은 달이며 사람들은 태풍으로 인해 홍수가 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러한 홍수는 대체로 심하지 않으며 비옥한 토양 층을 만들어 농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18일 수요일 오후 4시경 ‘온두라스’ 북부의 여러 도시에서는 ‘피이피이’호의 맹위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북부 해안을 지나 ‘구아테말라’로 즉시 이동한 것이 아니라, 태평양 연안에 형성되어 있던 저기압으로 말미암아 ‘피이피이’호의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 결과 태평양 연안에 많은 비가 내리고 홍수가 일어났다. 그러나 진짜 피해 지역은 ‘온두라스’ 북부 지방이었다.
마침내, 목요일 태풍은 ‘구아테말라’로 이동했다가, 결국 금요일 ‘멕시코’에서 소멸되었다. 그동안, ‘온두라스’ 북부의 일부 지역에서는 50‘센티미터’의 비가 내렸다.
폭풍우는 또한 바다위로 휘몰아쳐서 해수면을 높였다. 그 때문에 빗물에 불은 강물이 배수되지 않아, 도시들 속으로 넘쳐들었고 황폐와 파괴를 일으켰다.
산지에 쏟아진 비는 더 큰 피해를 주었다. 홍수는 마치 거대한 갈구리처럼, 산기슭에서 막대한 양의 진흙, 모래, 초목 및 표석을 아래의 평지로 긁어내렸다. 이러한 부스러기들이 강을 메워서 물길을 막았다. 이제 그러한 장애물이 터지거나, 새로운 분출구가 생기면, 그 물은 수백만 ‘톤’의 바위, 진흙, 초목을 운반하면서 터져나와 새로운 홍수를 이루었다. 이러한 파괴의 강은 종종 수백 ‘미터’의 넓이를 이루었으며, 그 물길에 촌락이나 가옥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단순히 물에 잠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씻겨버렸다.
갑작스럽게 휘몰아치다
터져나온 홍수는 종종 ‘태풍’이 동반한 맹렬한 바람과 억수로 쏟아진 비보다도 더욱 큰 피해를 주었다. 금요일 이른 새벽, 표석, 나무 둥치, 흙 등과 물이 뒤섞인 사태가 주위의 언덕으로부터 휩쓸려내려와 ‘촐로마’ 읍을 황폐시켰다. “우리가 깨어보니 물이 이미 허리에까지 차올랐더군요” 하고 한 젊은 여자는 말하였다. “우리는 지붕 위로 올라갔지만, 결국 지붕이 내려 앉아버려서 제 여동생 셋이 물에 휩쓸리고 말았읍니다.” 다른 수천명도 그러한 변고를 당하였다. 한 추계에 따르면, ‘촐로마’에서만도 2,800명이 사망하였다.
‘촐로마’ 남방으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인구가 약 150,000명 되는 ‘온두라스’에서 두번째 큰 도시 ‘산페드로술라’가 있다. 그곳의 한 목격자는 이렇게 보고하였다. “아침 해뜰 무렵 ‘피이피이’호의 중심부가 우리의 북쪽 약 56‘킬로’ 지점을 통과하였다. 홍수는 광범하였다. 주변 수‘킬로’의 지역이 근처의 산에 이르기까지 온통 물바다였다. 사람들은 당황하여, 고지대에 자리잡은 근처의 마을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거대한 산사태로 참사를 당하였거나 노도같은 물에 익사하고 말았다.”
‘라세이바’는 그 태풍이, ‘온두라스’ 연안에 몰려올 때 그 맹위를 최초로 느낀 도시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참으로 무시무시하였으며,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그러하였다. 다음은 8세된 한 어린 소녀의 경험이다. 그 소녀의 어머니는 그를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으로 정기적으로 데리고 다녔던 것이다.
“태풍이 닥쳐왔을 때 아버지는 다른 지방에 가 계셨으며, 우리는 전에 태풍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서웠읍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태풍은 기상 상태로 발생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어머니가 2층이 더 안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로 올라갔읍니다. 그러나 그곳까지도 물이 차올라 거의 우리에게 도달할 지경이었읍니다. 그래서 언니와 나는 「위대하신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음」 책을 가져다가 어머니도 들으실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성서 이야기들을 읽기로 하였읍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바다를 진정시키셨는지가 설명되어 있는 14장을 골랐읍니다. 우리는 배를 탄 제자들이 폭풍에 무서워 떨고 있을 때 그들을 도와 주기 위하여 다가오시면서 물 위를 걸으신 그분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을 유심히 보았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우리의 기분을 달래 주었읍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여호와와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날 밤, 태풍이 아직도 휘몰아쳤으며, 그래서 우리는 동일한 일을 하였읍니다. 우리는 이번에는 기도에 관한 장을 연구하였읍니다. 우리는 어머니께 우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해달라고 했으며 우리는 그날 저녁 기도를 많이 하였읍니다. 어머니는 우리도 어머니께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여호와를 신뢰하는 모습은 어머니를 행복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운이 좋지는 못하였다. 모든 것을 상실한 사람들은 난민 보호소로 운집하였다. 구호 단체들에 따르면 7세 이하의 아이들이 난민들의 75‘퍼센트’를 차지하였다. 때때로 절망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그 중에는 자기 자매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소년들이 있었다. 자녀를 잃은 부모들, 그리고 부모를 잃은 자녀들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마음 속의 절망감이 반영되어 있었다. ‘온두라스’의 북동부 전역이 그 ‘태풍’의 영향으로 황폐되었다.
놀랍게 모면하다
어떤 지역에서는 살아남은 사람이 있다는 것만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예로서, ‘오모아’에서는, 관리들의 추산에 따르면, 전 시가의 80‘퍼센트’가 파괴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피신하고 있던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도 1.3‘미터’ 가량 모래와 물에 잠겼다. 그러나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서까래 위로 올라가 살아남았는데, 그곳까지는 물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도시의 한 여호와의 증인 전 시간 전도인은 이렇게 보고하였다.
“그 날 밤, 사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머리에 첫째로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동료 증인들을 도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읍니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읍니다.
“나는 물이 바로 내 앞에서 급류로 변해가는 것을 볼 수 있었읍니다. 더 가는 것은 불가능하였지만, 아직도 물 위에 솟아있는 한 담장 위로 기어올라 갔읍니다. 어둡고 또 쏟아지는 빗속이라 앞을 볼 수 없었읍니다. 그리고 급류에 떠내려 가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온갖 쓰레기를 가득담고 돌진하는 무시무시한 물소리와 뒤범벅이 되었읍니다.
“피신하여 온 사람들로 가득찼던 시청도 곧 시내의 대다수의 가옥들처럼 떠내려가고 말았읍니다. 이제 나는 누구를 도와줄 형편이 못된다는 것과 내 자신도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읍니다.
“내가 처해있는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지를 안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웠읍니다. 노도같은 물속으로 뛰어내려 안전한 곳을 찾아 헤엄쳐갈 것인가? 아니면 담위에 있다가 급류에 휩쓸릴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도대체 물은 얼마나 차오를 것인가?
“그 맹렬한 분류는 온갖 종류의 나무, 바위, 쓰레기 등을 휩쓸고 내려가면서, 세찬 망치처럼, 내가 올라가 피신해 있는 담장을 결사적으로 때려부수려는듯 그 담을 향하여 부딪쳐 왔읍니다. 담이 받는 충격을 느낄 때마다 내 심장은 고동쳤고 나는 이러한 상태에서 이 담이 얼마나 지탱할 것인가 염려되었읍니다.—특히, 다른 담장들이 급류 속에 흘러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였읍니다. 이것이 마지막 충격인가? 도대체 이 담장은 얼마나 더 이런 충격을 견딜 것인가?
“아주 갑자기 나는 한 거대한 물체가 나를 향하여 오는 것을 보았읍니다. 처음에는 어둠 속이라 형체가 분명치 않더니, 가까이 옴에 따라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읍니다.—집채가 내가 올라와 있는 담장을 향하여 오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남으리라는 희망을 거의 갖지 못한채, 나는 담장의 맨 가장자리로 기어가서 힘과 도움을 주실 것을 여호와께 간구하였읍니다. 나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결심이었읍니다. 놀랍고도 다행스럽게도 그 집채는 옆으로 벗어났으며, 겨우 담벼락만을 스치고 지나갔읍니다.
“이제 어느 때보다도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끼며, 아직도 담장에 매달려 나의 생존에 대하여 여호와께 감사드리고 있을 때 날이 밝아 왔읍니다. 그러나 목숨을 잃은 모든 불운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슬픔이 밀려 왔읍니다. 내가 밤을 새웠던 그 담장 주위 일대에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읍니다. 모든 것이 파괴된 것입니다.
“이 전 시내에서 아직 살아있는 증인은 나 혼자뿐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슬픔은 깊어만 갔읍니다. 그러나 가까스로 왕국회관에 이르러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모두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 두 눈에서 흘러내린 기쁨의 눈물을 여러분은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홍수가 어떤 지역들을 모조리 파멸시켰을 때 놀랍게도 재난을 모면한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였다. 예를 들면, ‘산페드로술라’에서는 왕국회관으로부터 불과 다섯 구역 떨어져 있는 곳의 가옥 30채가 떠내려갔다. 다른 경우로, 그 부근의 한 작은 촌락이 훼파되어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한 소년이 근처의 나무에서 살아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파괴적인 홍수가 자기네 피신처로 다가오자, ‘산페드로술라’의 여호와의 증인 네 가족은 한대의 대형 ‘디젤’용 ‘덤프 트럭’과 두대의 ‘픽업’ 자동차를 타고 계곡을 벗어나 근처의 마을인 ‘사포탈’로 도피하려고 준비하였다. 그러나, 귀중품을 모으던 한 이웃 사람이 그 증인들의 길을 막아서 그들은 10분 가량 지체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그들이 향하던 도로는 통나무와 표석들을 떠내려보내는 분류로 변하고 말았다. 만일 그들이 미리 떠났더라면, 거의 틀림없이 죽음을 당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지체된 결과로 살아남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염려
‘촐로마’같은 여러 도시의 끔직스러운 홍수의 와중에서, 사람들은 흔히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지면에서 4‘피이트’쯤 되는 축대 위의 집에서 살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 한 사람은 이렇게 술회하였다.
“옆집 사람과 그의 자녀들의 위험성을 깨닫고 그 여인을 불러서 더 안전한 우리 집으로 오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거기에 그냥 머무르려는 결심인 것 같았읍니다. 그래서 나는 밧줄로 내 몸을 묶고 반대 쪽 끝은 집에다가 안전하게 묶은 다음 가시 철사 울타리를 지나, 물을 헤치며 그 여인의 집으로 갔읍니다. 그 가족의 동의를 얻은 후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무사히 돌아 왔읍니다. 후에, 그 가족은 다시 생각해본 다음 나머지 사람들도 우리 집으로 건너오기로 하였읍니다. 그들은 이전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하여 호의를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 그들은 마음을 변경하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네를 구하려고 한 것을 결코 상상치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약 200명이 우리 집으로 피신하였읍니다. 나는 현관에 서서 온갖 종류의 물건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바라 보았읍니다. 그러나 가장 소름이 끼치는 광경은 시체들이었읍니다. 나는 그 시체들이 현관이나 집안으로 들어와서 물 길을 막아 범람하게 만든다면, 위험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장대를 가지고 현관가에 서서 시체들을 떠밀어내곤 하였읍니다.
“나는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성서 진리—즉 죽은 자는 의식이 없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고초를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가졌읍니다. (전도 9:5, 10) 나는 또한 죽은 자의 부활에 관한 성서가 제시하는 희망에 대하여, 그리고 죽은 자들은 하나님의 새 제도에서 사랑하는 자들과 다시 연합할 전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였읍니다.—사도 24:15; 베드로 후 3:13.”
한 여호와의 증인 전 시간 전도인 역시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고 노력한 바 있는데, 그는 그러는 동안 가슴아픈 경험들을 하였다. 그는 이렇게 술회하였다.
“우리는 밤 10시경에 ‘라디오’로 경고를 들었지만, ‘태풍’이 이렇게 깊숙한 내륙에까지 많은 피해를 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새벽 3시경 굉장한 속도와 힘을 지니고 홍수가 닥쳐왔기 때문에 강에서 가까운 지역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잠자리에서 휩쓸려 갔으며, 어떤 사람들은 아직 집안에 있는 채 떠내려 갔읍니다.
“내가 잠에서 깼을 무렵 물은 이미 90‘센티미터’나 차올랐고, 1시간에 30‘센티미터’씩 불어났읍니다. 이미 우리 집 앞의 울타리가 물살에 부서지고 말았읍니다. 나는 두 자녀를 양팔에 끼고 더 높은 지대로 옮겼읍니다. 그러나 건강이 좋지 않던 아내는 그 급류를 헤쳐나가기에 너무 연약하였읍니다. 아내는 되돌아가기 시작하였지만, 넘어지고 말았읍니다. 근처에서 보고 있던 한 남자가 아내의 곤경을 보고는 구출하기 위하여 달려왔읍니다. 그러나, 그도 비록 아내가 가라앉지 않도록 할 수는 있었지만, 힘이 부족하였읍니다. 그래서 내가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고 돌아 와서 그들 둘을 도와서 자녀들이 있는 곳까지 나오게 하였읍니다.
“그 다음, 우리가 있는 곳도 오랫 동안 안전하지는 않을 것임을 알고 다른 곳으로 걷기 시작하였읍니다. 날이 밝아왔지만 아직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읍니다. 우리는 넘어지고, 하수도에 빠지고, 물이 목까지 차는 곳으로 빨려들어가곤 하면서 마침내 우리는 한 다리에 이르렀는데, 그 다리는 물에 덮혀 있었고 군데 군데가 부서져 나갔지만 그래도 지나갈 수는 있었읍니다. 모두가 안전하게 건넌 다음 나는 다른 증인들을 살펴보기 위하여 갔읍니다.
“길에는 물이 1‘미터’나 차올랐기 때문에 나는 철도를 따라 걸어갔읍니다. 잠시 후에 비명을 듣고 바라보니 한 가족이 자기 지붕 위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었읍니다. 나는 그들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없어서 도와 주려고 다가갔읍니다. 나는 철도를 벗어나 물속으로 들어갔읍니다. 그러나 물살이 세었기 때문에, 떠밀려서 그 집 문을 지나 가시 철사 울타리에 걸렸읍니다. 그 울타리에 걸려서 바지를 심히 찢겼읍니다. 상의도 가시 철사에 걸려서 온통 엉겨 붙고 말았읍니다.
“마침내 나는 상의를 벗어버렸으며 물살에 밀려 한 나무에 정면 충돌하였읍니다. 나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두 팔로 나무를 끼어안고 매달렸읍니다. 한숨을 돌리고 나자, 누군가가 밧줄을 던져 주어서 그것을 두 그루의 나무에 묶었읍니다. 그 가족은 일곱 식구였는데, 할머니만 제외하고 모두가 지붕 위에 있었읍니다. 그 집은 매우 위험스럽게 기울어져 있었고 곧 함몰될 것 같이 보였읍니다. 나는 아이들을 밧줄을 매어놓은 곳으로 옮겨 왔으며 그들은 한 나무 위로 기어올라 갔읍니다. 그 집의 할머니를 구하는 일은 좀 더 어려웠지만, 마침내 나는 그 노인을 구출하였읍니다. 마지막 사람이 그 집을 빠져나와 나무에 오르자, 그 집이 내려 앉았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나무들 위에서도 별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하였읍니다. 왜냐하면, 우리와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높은 안전 장소로 피한 다른 동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독사들이었읍니다. 나는 후에 나무 위로 피신하여 올라갔던 한 남자가 뱀에 목을 물려서 죽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읍니다. 다행히도, 우리는 그러한 일을 당하지 않았읍니다.
“마침내 두어시간 후에 물이 삐기 시작하였읍니다. 우리는 서로 도와 가며 나무에서 내려왔고 나는 동료 증인들이 어떠한지 보기 위하여 계속 더 가 보았읍니다. 감사하게도, 그 부근의 증인은 모두 무사하였읍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구아야발’이라고 하는 지역의 증인들을 살펴보러 갔읍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심한 충격을 받았읍니다.—우리가 본 것이라고는 거대한 강과 그 위에서 떠내려가는 통나무들과 부스러기들과 가옥들 뿐이었읍니다. 나는 그곳에 살던 형제들에 대하여 참으로 우려하였읍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갔읍니다.
“우리는 온종일 여러 사람들을 보살펴 준 다음, 그 다음 날 오후 2시에 집회를 마련하였읍니다. 집회가 시작되어도 얼마의 사람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반쯤 지나자, 하나 둘,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집회가 마칠 무렵에는 모든 사람이 무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그곳에 참석해 있었읍니다. 서로 만난 우리의 기쁨은 어떠하였겠읍니까!
“가장 타격이 심한 지역에도 형제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생존해 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놀랍고 감사하였읍니다. 아무도 잃어버린 집이나 소유물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았읍니다. 우리는 단지 살아서 함께 있게 된 것을 기뻐하였을 뿐입니다. 감정이 너무나 벅차올랐기 때문에 우리는 마지막 노래를 가까스로 마쳤읍니다. 모두가 울었읍니다. 우리는 기도로 마음 속으로부터 여호와께 감사를 드렸읍니다. 우리는 여호와께 의지하고 그분의 보호를 신뢰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참으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태풍 피해 지역에는 약 1,600명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들 중 사망한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증인들이 ‘촐로마’, ‘오모아’, ‘산페드로술라’ 및 그 부근 지역 같이 피해가 매우 심한 지역에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무사하였던 것이다.
구호 대책
‘온두라스’는 전세계 35개국으로부터 식량, 의복, 의약품, 천막, 담요, 돈 및 기타의 형태로 원조 물자를 접수하였다. ‘태풍’ 피해자들을 위해 문자 그대로 수백 ‘톤’의 구호 물자가 선박과 비행기로 들어 와서 정부 기관을 통하여 분배하였다.
여호와의 증인들 역시 구호품을 공급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아직 폭풍우가 그치기 전인 9월 19일 목요일에 이미 ‘테구시갈파’의 ‘왙취 타워 협회’ 지부에서 3명의 대표자가 사태를 조사하기 위하여 ‘산페드로술라’로 갔다. 그 동일한 날 ‘테구시갈파’의 증인들은 심한 타격을 받은 지역의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식량, 의복, 의약품, 가정용품, 침구 및 돈을 헌납하기 시작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증인들의 구호 계획을 듣고 헌납하였다. 토요일 아침 지부 사무실은 북부의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분배해 주기 위한 공급품들을 분류하고, 포장하고, ‘트럭’에 적재하느라고 분주하였다. 또한 이재민이 더 적은 태평양 연안으로도 얼마의 의복을 보냈다.
첫날 현지에서 기부한 물품 거의 6‘톤’을 발송하였으며, 후에 가외로 더 보내었다. 그러한 공급품이 도착하기 전에 피해가 심한 그곳의 증인들은 각 형제 자매의 형편을 조사하고 그들을 보살펴 주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자기들과 성서를 연구하는 사람들까지도 찾아내어 도왔다. 어떤 지역에서는 모든 증인의 소재(所在)를 밝히고 형편을 조사하는 데 5일이 걸렸다.
목요일에, ‘촐로마’에서 최악의 상태가 채 끝나기도 전에, ‘산페드로술라’에서부터 16명의 증인들은 식량 및 의복 꾸러미를 어깨에 메고 그곳으로 걸어서 출발하였다. 그 행로의 대부분을 그들은 뱀들과 시체들을 피해가며, 때때로 허리에까지 차오르는 물을 헤쳐 통과하였다. 후에 ‘산페드로술라’로부터 40명의 증인으로 된 청소 부대가 출발하였다. 그들은 집들과 왕국회관에 쌓여있는 진흙을 파내기 위하여 각자 삽과 청소 도구를 가지고 갔다. 어떤 사람들은 바로 ‘산페드로술라’에서, 다른 사람들은 ‘촐로마’와 인근 읍에서 일하였다.
다른 여러 나라의 여호와의 증인들도 도움을 주었다. 중앙 ‘아메리카’의 모든 나라의 증인들이 ‘온두라스’ 형제들의 필요에 대한 문의를 하고 공급품들을 보내기 위한 가장 실용적인 마련이 이루어졌다. 태풍이 휩쓸고 간지 불과 5일만에 ‘벨리즈’로부터 10여 ‘톤’의 식량과 의복을 실은 배가 도착하였다. 그것은 ‘푸에르토코르테스’의 부두에서 증인들에 의하여 하륙(下陸)되었다. 더 많은 물자를 실은 다른 배들과 비행기들이 ‘마이아미’와 ‘뉴우오올리언즈’로부터 급파되었다. ‘뉴우요오크’의 ‘왙취 타워 협회’ 본부 직원들도 개별적으로 약 9,000‘파운드’의 의복과 침구를 헌물하였다. 또한, 지상의 여러 곳에서 증인들이 자진적인 헌금을 하였으며, 본부에서는 그 돈을 지부로 보내어 공급품들을 구입하는 데 그리고 폭풍우로 말미암아 손실을 입은 사람들을 위하여 가옥들을 재건하도록 돕는 데 사용하게 마련하였다.
왕국회관들이 공급품들을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분배하는 중심지들로 사용되었다. 증인들은, 더 나아가서, 이렇게 풍성하게 공급받은 식량 및 의복 헌물을 친척, 이웃 및 친지들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랑과 관대함을 실증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고려를 나타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본받을 수 있었다.—마태 5:45.
태풍 ‘피이피이’호는 인간이 자연의 힘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를 다시 한번 실증하였다. 그러나 ‘피이피이’호는 다른 것—즉 마음 속에 사랑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걸고서라도 동료 인간들을 돕는다는 사실을 실증하는데 기여하였다.
[8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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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우 만
멕시코우
태평양
카리브 해
벨리즈
구아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산페드로술라
테구시갈파
니카라구아
코스타리카
파나마
[지도]
푸에르토코르테스
오모아
라세이바
촐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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