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된 사람들의 침례
“그러므로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들 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십시오. 보십시오! 내가 이 사물의 제도의 결말까지 항상 여러분과 함께 있겠읍니다.”—마태 28:19, 20, 신세.
1, 2. 물과 관련하여 볼 때, 어떻게 피조물이 창조주보다 더 숭배를 받아왔읍니까?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것은 위대하신 창조주께서 사람에게 주신 생명을 위한 여러 가지 축복중의 하나입니다. 유식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강(江)들의 창조주시며, 생명과 모든 좋은 선물의 수여자이신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고대 여러 민족들은 자기 창조주를 모르고 그들의 숭배를 물에다 바쳤읍니다. 그러한 예를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종교에서 볼 수 있읍니다. 그들은 ‘나일’ 강을 숭배하였읍니다. 그들이 ‘나일’ 강에 바쳤던 다음과 같은 찬송가가 있읍니다. “이 땅에 와서 ‘이집트’에 생명을 주는 그대에게 건강이 있을지라. ··· 그대가 사람들의 기도를 친절히 들어주실 때에 ··· 모든 선한 것들의 창조자, 종자(種子)들의 주여 ··· 곡간이 넘치며 창고가 가득하고 가난한 자들의 살림이 늘어나도다.”
2 그 백성들의 ‘나일’ 강 숭배는 오래 전에 중지되었지만, 강 숭배는 우리 시대에까지 계속되고 있읍니다. 인도와 그 이웃 나라에는 “거룩한 강들”과 “강의 신들”이 많이 있어서 그 사람들의 생활에 중요한 영향을 주고 있읍니다. “거룩한 강들” 중 유명한 강은 거대한 ‘간지스’ 강이며, 어떤 사람들은 그 강물이 ‘힌두’교 삼위일체의 일신인 ‘시바’의 머리카락으로부터 흘러내린다고 믿고 있읍니다. 독실한 ‘힌두’교인들은 ‘간지스’ 강물에 목욕하면 영적 힘과 덕성을 받는다고 열렬히 믿고 있읍니다. 죽어가는 사람의 혀나 눈 꺼풀에 “거룩한 물” 한 방울만 떨어뜨리면, 그의 죄가 씻어진다고 믿기까지 합니다.
3. 그리스도교국과 비그리스도교에서 물을 의식으로 사용하는 데에 유사한 점을 설명하십시오.
3 아마 당신에게는 강 숭배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것입니다. 물을 숭배하는 것은 합리적인 종교적 요구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물이 사람에게 축복은 되지만 축복을 주는 근원은 아니라고 당신은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영적 힘과 덕성을 얻기 위하여 ‘간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같은 식으로 물의 사용을 특이하게 본다는 것을 당신은 아십니까? 목욕 행위에 대하여, 또는 다른 종교에서는 물을 뿌리거나 물을 붓거나 물에 잠기는 것 즉 침례를 받는 행위에 공로를 부여하는 점에서, 그 유사점을 볼 수 있읍니다.
4. 종교적으로, 의식적으로 물을 사용하는 것이 어떻게 인정되고 있읍니까?
4 죄라는 것은 어느 면으로 보아 수용성(水溶性)이며, 따라서 물을 여러 가지 종교 의식에서 사용함으로써 영적 공로 즉 은총을 받는다는 견해는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가지 교회가 그러한 의식을 “성사”(聖事)로 인정하는 점에서 볼 수 있읍니다. 희랍 ‘가톨릭’과 ‘로마 가톨릭’에서는 침례 즉 영세를 7대 성사 중의 첫째로 보며,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 교파에서는 2대 성사 중의 첫째로 봅니다. 하지만 성서에는 “성사”라는 것이 없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이나 비그리스도교계에서 믿고 있는 점, 즉 종교 의식에서 물에 잠긴 자나 물 뿌림을 받은 자나 심지어 물 부음을 받은 자에게 영예나 거룩함이나 영적 은혜가 내린다고 하는 생각은 성서적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5. 그리스도교 의식에서 물을 사용하는 것으로써 성서의 승인을 받고 있는 것이 있읍니까?
5 그리스도교 의식에서 물을 사용하는 것으로써 성서의 승인을 받고 있는 것이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이 기사 서두에 인용되어 있는 성귀에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요 인도자인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서 침례를 주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또한 그의 명령에 일치하게 침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자”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밝히 설명하셨읍니다.
6. 성경적 물 침례에 대하여 충분히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왜 그다지도 중요합니까?
6 성서에서는 물 침례를 순종의 첫 단계라고 가르치며,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각 사람이 그 단계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읍니다. 사실이 그러니만큼,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자 하며, 그의 진정한 의의를 알고자 합니다. 먼저 성서에 설명되어 있는 그리스도인 침례가 무엇이 아닌가를 알아 보도록 하겠읍니다. 침례가 하나의 성사라는 거짓 교리는 인간에게 끼쳐온 커다란 종교적 오류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러한 교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침례가 침례받은 자에게 공로가 되며 은총과 은혜를 가져다 준다고 믿게 하기 때문이며, 또한 그러한 주장은 물에 잠기거나 적시는 것이 그렇게 물에 잠긴 자, 또는 물 뿌림을 받은 자, 혹은 물 부음을 받은 자에게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 준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성사(聖事)라는 주장에 대하여
7. ‘가톨릭’ 종파에서는 어떠한 식으로 성사라는 주장을 합니까?
7 다음에 「가톨릭 백과 사전」 제2권에서 인용하여 ‘가톨릭’ 교파에서 침례 의식에 대하여 주장하는 바를 보겠읍니다. “교황 ‘에우제니오’ 4세의 ‘신의 환희’라는 교서(教書)중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위한 교령’ ··· ‘성세(聖洗)라는 것은 성사(聖事) 중 첫째가는 것이니 이는 그것이 영적 생명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이에 의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며 교회에 연합된다. ··· 이 성사를 받으면, 원죄(原罪)와 본죄(本罪)를 막론하고 모든 죄를 사면받고 마찬가지로 죄로 인한 모든 형벌을 면하게 된다.’”
8. 다음 문제에 대한 성서 진리와 그리스도교국의 주장을 대조 설명하십시오. (ㄱ) 죄 사함, (ㄴ) 죄와 사망으로부터의 자유, (ㄷ) 고의적 죄로 인한 형벌, (ㄹ) 영적 회중의 성원이 되는 것.
8 이 교리는 물에 잠긴 자 또는 물 부음을 받은 자가 하늘의 생명을 받으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 하면, ‘가톨릭’에서 주장하기를 “원죄 때문에 인류가 노력없이 얻은 승천권(昇天權)을 상실하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교리는 물 침례가 원죄를 용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며, 그러므로 성사라는 주장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들어 있는 여러 가지 진리를 흐리게 합니다. 죄사함받는 것은 어떤 사람이 물에 젖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원죄나 후에 지은 죄나 마찬가지입니다. 죄 사함은 그리스도 예수의 희생인 여호와의 마련을 통하여서만 오는 것입니다. 요한 1:29; 고린도 후 5:21; 히브리 9:24-26; 요한 1서 2:1, 2에 명시된 바와 같이 완전한 예수의 인간 생명의 희생이 인류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케 합니다. 또한 요한 15:19; 갈라디아 1:3, 4; 계시록 18:3-8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물에 적시는 것이 이 타락한 세상에 사는 사람을 고의적인 죄로 인한 형벌로부터 구원하지도 못합니다. 물에 잠기는 것은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 영적 회중의 구성원이 되게 하지도 못합니다.—데살로니가 후 2:13; 요한 17:6; 로마 8:30.
9-11. 종교 의식으로서 씻는 것이 성사라고 하는 주장은 비그리스도교적임이 어떻게 더욱 확증됩니까?
9 「가톨릭 백과 사전」은 물 침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계속 설명합니다. “내적 정화(淨化)를 표시하기 위하여 외부를 씻는 상징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적절한가는 이교에서도 그러한 의식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알 수 있다. 부정(不淨)을 씻는 물의 사용은 ‘바빌로니아’인, ‘아시리아’인, ‘이집트’인, 희랍인, ‘로마’인, ‘힌두’인 및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이교에서도 물로 씻는 것이나 물에 잠기는 것을 큰 공로를 가져다 주는 성사로 인정한다고 하는 이 「가톨릭 백과 사전」의 말은 정확합니다. 비‘가톨릭’ 교계에서도 사실이 그렇다는 점에 대하여 ‘가톨릭’ 권위자들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물 침례가 하나의 성사라고 하는 비그리스도교적인 교리가 악귀 곧 마귀적 기원을 가지고 있음을 양편의 권위자들이 합동으로 증명하고 있읍니다.
10 이에 대하여 ‘히슬롭’ 저서 「두 개의 바벨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읍니다. “침례 재생(再生)이라는 이 교리는 기본적으로 ‘바벨론’적이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재생의 관념이 이교 세계에도 완전히 퍼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도에만 가보더라도, 오늘날, 기독교의 가르침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용어와 사상을 잘 알고 있음을 볼 것이다. ··· 고대 필자로서 이(‘바벨론’적) 침례와 그 의미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분들이 많이 있다. ··· ‘터툴리안’이 분명하게 말한 바와 같이 그렇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재생과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는 약속을 받았다. 이교를 신봉하던 우리의 조상들 곧 ‘오딘’의 숭배자들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침례 의식을 수행하였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다. 이로 보건데, 그것은 본래 적어도 그들이 선천적 죄와 신생아의 결함이, 출생 직후 그들에게 물을 뿌림으로써, 또는 호수나 강에 그들을 잠금으로써 씻어진다고 믿었음을 알 수 있다. 대서양을 건너 ‘멕시코’에서도, ‘코르테즈’와 그의 병졸들이 그곳에 상륙하였을 때에 그 동일한 침례 재생의 교리가 철저히 신봉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었다. ··· 독자들은 이제 ‘로마’에서 침례에 관한 이교의 미신적 액막이 사상을 얼마나 철저히 모방하였는가를 보았다. 그 외에도 소금, 침, 성유(聖油)의 사용, 기름부음, 이마에 십자 상을 긋는 것 등 ‘로마’식 침례에 관련된 모든 의식들도 역시 이교에 기원을 두고 있다.”
11 오늘날 그리스도교국의 여러 교회에서 수행하는 침례 의식에는, 대부모(代父母), 귀신을 몰아내기 위하여 지원자의 얼굴에 숨을 불어 주는 것, 십자 상을 긋는 것, 안수, 지원자의 입에 “축복된” 소금을 넣는 것, 사제의 침을 귀와 콧등에 바르는 것, 기름부음, 세차례의 목욕 재계, 흰 ‘베일’, 촛불 기타 성서에 없는 숭배 의식 등이 포함되어 있읍니다. 「가톨릭 백과 사전」에서나 다른 권위있는 서적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악귀 숭배에 수반되던 의식임을 밝히고 있으며, 따라서 비그리스도교적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침례의 책으로
12, 13. (ㄱ) 이 문제에 대하여 지침이 있읍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ㄴ) 마태 28:19, 20에 있는 예수의 명령은 언제 적용됩니까? (ㄷ) 그 명령은 왜 지금 특별한 효력을 가지고 있읍니까?
12 그리스도인 침례가 실제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아 보기 위하여 우리는 이교나 전통을 살펴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종교 지침서인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성서를 보아야 합니다. (마태 15:1-9; 마가 7:1-8), 마태 28:19, 20에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침례에 대하여 유명한 말씀이 있읍니다.
13 예수께서는 침례에 관한 교훈이 들어 있는 이 말씀(마태 28:19, 20)을 기원 33년 그가 죽은 자로부터 부활된 후 40일째 되는 날 하늘로 올라가시기 얼마 전에 하셨읍니다. 그 말씀은 그가 말씀을 하신 직후부터 사물의 제도의 결말에 이르기까지 수 천년 동안 효력을 발생하는 일반 명령입니다. 사물의 제도의 결말이라고 하는 시기는 기원 1914년 이래 인류가 살고 있는 시기를 말합니다. 따라서 현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리스도인 전도 봉사에 의하여 제자의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있는 한 그러한 사람들이 침례를 받는 것은 합당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에 순응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마태 28:19, 20의 이 명령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마지막 때”에 더 큰 힘과 효과를 나타내고 있읍니다. 왜냐하면, 가르치고 전도하는 이 사업이 여호와의 충실한 증인들에 의하여 “모든 나라의 백성들”에게 파급되고 있으며 지상의 모든 나라로부터 제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어 실로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세계적으로 작년에 120,905명이 침례를 받았읍니다.—마가 13:10.
14. (ㄱ) 초기 그리스도인 조직에서 예수의 명령에 순종한 증거를 드십시오. (ㄴ) 현재는 그 일에 어떠한 나라들이 포함되고 있읍니까?
14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침례를 주라는 명령을 하신 조금 후, 즉 그가 승천하신지 열흘 후, 오순절이라는 축제일에, 약 삼천명의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개종을 하였읍니다. 그때 거기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응하여 이 사업을 시작하였읍니다. 곧 이들 수 천명의 할례받은 신자들에게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에서 침례를 주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2:1-41, 신세) 그 후에, 사도 10:1-48의 기록에 나타난 바와 같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과 ‘이스라엘’의 율법 언약 마련 가운데 들지 않은 사람들도 마찬 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명하신 이 침례 활동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시초부터 수행되었고 그 후 오랫 동안 계속되어 왔으며, “사물의 제도의 결말”인 현시대에는 모든 나라에서 나온 제자들을 포함할만큼 실로 확장되었읍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 종교 의식과 관련된 물의 사용 즉 물에 넣는 것, 잠기는 것 곧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의 교훈을 계속 따라야 합니다.
모두가 자격을 가진 것은 아니다
15. 그리스도인 침례를 받을 자격을 갖춘 자는 누구입니까?
15 “제자를 삼고 ··· 침례를 주”라는 예수의 말씀으로 보아 침례를 받기에 자격있는 자가 누구인가는 분명합니다. (마태 28:19, 신세) 제자들이란 배우는 자들, 지식을 습득하고 그들이 배운 것을 판단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 경우에 지식이란, 예수 그리스도와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인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호와와 가지는 관계 등에 관한 지식입니다. 아마 당신은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어린 아이, 유아들이 어떻게 침례를 받을 수 있는가? 그들도 예수께서 명하신 그리스도인 침례를 받을 수 있는가?”
16, 17. (ㄱ) 왜 유아 침례는 마태 28:19에 어긋납니까? (ㄴ) 왜 그것은 사도들로부터 기원한 것이 아닙니까?
16 어린 아이들이 회개하고, 지식을 얻고, 믿음을 실천하고, 자신을 여호와 하나님께 바칠 수 있읍니까? 아이들은 그렇게 할 수 없읍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제자들이 될 수 없읍니다. 또한 침례는 성사가 아니므로 침례는 그 자체가 침례받은 자에게 아무런 공로도 부여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유아 침례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아무런 근거도 없으려니와 아무런 가치도 없읍니다. ‘고넬료’의 개종에 관하여 사도 10:44-48을 읽어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렸으며, 그 사람들은 침례를 받을 자격이 있었고 그들은 침례를 받았읍니다. 유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하며, 자기에게 영향을 미쳐서 그리스도인 침례를 받을 가격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는 없읍니다.
17 초기 사도 시대 이후 그리스도인 회중에 관한 저명한 역사가로서 ‘네안더’가 있읍니다. 그는 유아 침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믿음과 침례는 언제나 상호 연관되어 있었다. 따라서 틀림없이 침례는 이 두 가지가 연관될 수 있는 경우에만 수행되었으며, 유아 침례 의식은 이 시기에는 알려지지 않았음이 거의 확실하다.” “그러나 ‘이레니어스’ 때에 와서야 (적어도 분명히 그 이전은 아님) 유아 침례의 흔적이 나타나며, 더구나 3세기에야 처음으로 그것이 사도적 기원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게 된 사실은 그것이 사도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지하는게 아니라 반대하는 증거가 된다.”—「그리스도 교회의 설립과 교육」.
18. 어떠한 성인들이 자격을 갖추게 됩니까?
18 그리스도인 침례를 받기에 합당한 지원자가 되려면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요구 조건은, 유아가 자격이 없음을 규정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심지어 성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모르거나 거기에 순응하지 않으면 자격이 없음을 규정합니다. 예수의 명령을 보면 인정할 만한 침례 지원자는 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물론, “내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모든 것들을 그들이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하는 점도 강조하고 있읍니다. (마태 28:20, 신세) 그들이 예수의 계명들을 지키도록 가르침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러한 계명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듣거나 통지를 받더라도 거기에 순응하지 않을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을 가르침 받았다면, 그것은 그가 거기에 순응하는 점에 나타나게 됩니다.
19. 자격을 갖추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응과 그로 인한 훌륭한 결과를 설명하십시오.
19 그러므로 사도 2:41(신세)에는 “그의 말을 진정으로 터득한 사람들은 침례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읍니다.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다른 사람들은 “‘빌립’이 ···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그러한 믿은 사람들은 “남녀가 다 [침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사도 8:12) 제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것은, 인류 가운데서 생명을 얻을 사람들 모두가 따라야 할 행로를 그가 따르는가를 보아 알 수 있읍니다. 그 행로는 가장 고귀하고 고상한 인류의 야망이자 열망입니다. (요한 17:2, 3; 시 119:1, 2) 그것은 바로 인간을 그의 창조주와 올바른 관계로 이끄는 것입니다. 그것 만이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숭배입니다. 그것이 없이는 오늘날 사람들로부터의 실제적인 하나님 숭배가 없으며, 더군다나 그것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행로입니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께 드리는 개인적 헌신입니다.
헌신이 먼저
20. 그리스도인 헌신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20 헌신(dedication)이라는 말에는 선언하다, 확증하다, 엄숙하게 진술하다, 바치다 등의 뜻이 있읍니다. 그것은 특정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구별해 두는 행위 혹은 바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어떤 길, 행로 혹은 용도에 처음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뜻을 그리스도 예수의 제자들에게 적용시키면, 우리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헌신이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의 전적 몸바침과 그리고 하나님의 봉사나 숭배에 대하여 그렇게 해야 함을 뜻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개인적인 일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남김없이 무조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결심하는 행위입니다. (잠언 14:27) 헌신은 그가 여호와를 전적으로 의뢰하며 확신함을 나타내며, 그 사람은 여호와가 하나님이며, 하나님은 옳으며, 하나님의 목적이 승리할 것이며, 헌신한 사람의 마음과 정신에는 아무런 의심도 없으며, 자신은 여호와의 편에 서는 것이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에베소 4:22-24)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추종자들이며 그렇게 됨으로써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고 따라서 그를 섬기고 그에게 몸을 바쳐 헌신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섬깁니다.—사도 11:26.
21. 누가 현재 여호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읍니까?
21 예수의 명령 가운데는 헌신이 제자들을 여호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읍니다. 현재 지구상에 수십만명의 여호와의 충실한 헌신한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있읍니다. 그들은 이 헌신의 단계를 취하였으며, 물에 잠기는 일 곧 침례로써 헌신을 상징하였고, 여호와를 충실히 섬기며, 하나님의 찬양과 동료 인간들의 축복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있읍니다.
22. 순종하는 제자들은 왜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까?
22 그러한 사람들은 물 침례로 그들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잠기는 일은 바로 거기에 필요합니다. 예수께서는 “가서 모든 나라의 백성으로 제자를 삼고, ··· 그들에게 침례를 주고 ··· 가르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28:19, 20, 신세) 제자들이 성서의 요구 조건에 순종하려면 반드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침례란, 공공연하고, 공개적이고 형식을 갖춘 의식으로서, 본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겠다고 결심을 하였음을 표시하는 의식입니다. 다른 증인들이 보는 가운데서 이렇게 침례를 받는 것은 헌신한 사람들에게 요구되어 있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헌신을 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볼 수 있는 증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왜냐 하면, 그러한 헌신은 그 사람의 생활에 커다란 전환점이 되며,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부터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를 알 수 있도록 그가 헌신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23. (ㄱ) 왜 여호와의 증인들이 수행하는 상징이 적절한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그 상징은 무엇입니까? (ㄴ) 예수의 경우에 있어서 그의 침례는 무엇의 증거였읍니까? (ㄷ) 기원 36년까지 그의 ‘유대’인 제자들에게는 무엇의 증거였으며, (ㄹ) 그 후에는 어떠하였읍니까?
23 우리는 헌신을 상징하기에 적절한 다른 상징을 연구할 필요가 없읍니다. 성서에서 그러한 상징으로서 물에 잠기는 일을 명시하고 있을 뿐더러, 그보다 더 적절하고 알맞는 상징이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추종자들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있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베드로 전 2:21) 이 지도자 그리스도께서는 헌신한 ‘유대’ 민족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기 위하여 침례자 ‘요한’에 의해 물에 잠기셨읍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서 ‘요단’ 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려 하신대 ···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 오실쌔 ···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태 3:13-17; 시 40:7, 8; 히브리 10:7) 이 기록을 보면, 예수께서 자신을 제공하고 그것을 상징한 일을 그의 하늘의 아버지 여호와께서 승인하셨음을 분명히 볼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 세우신 본을 따라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성원들은 침례를 받았읍니다. (사도 10:48; 8:12, 36, 38, 39) “유대”인들의 경우에 있어서는 기원 36년까지는 그들의 잠기는 일은 역시 헌신한 민족의 성원으로서 자신을 제공하는 것을 상징하였읍니다. 그 후에는 ‘유대’인이거나 비‘유대’인이거나 그리스도인의 침례는 그들의 헌신의 상징이었읍니다. 율법 언약을 통한 여호와와 ‘유대’인들과의 관계는 기원 33년 예수께서 죽으신 후,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비‘유대’인들에게 전하기 직전에 ‘이스라엘’에 대한 특별한 은총 기간이 끝났을 때 종결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 와서는, 육적 ‘유대’인이거나 육적 비‘유대’인이거나를 막론하고 모든 인종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동일한 신분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헌신을 하고 그렇게 한 후에 물에 잠김으로써 이를 상징하라는 의무를 수행할 동일한 기회를 가지고 있읍니다.
[372면 삽화]
‘힌두’교인들은 자기네 거룩한 강인 ‘간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것을 성사라고 믿으며, 그것은 공로가 되고 죄를 씻는 일이라고 믿는다
[373면 삽화]
아이들은 제자가 될 수 없으므로 그들의 침례는 전혀 무의미하다
[375면 삽화]
침례는 그 제자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로 헌신했음을 표시하는 공개적 의식이다. 작년에 120,905명의 제자들이 침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