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한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합니다.”—요한 4:22, 신세.
1. (ㄱ) 사람들은 모두 무엇을 숭배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는 예외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사실상 어떠한 사람입니까? (ㄴ) 숭배에 관하여 우리는 어떻게 자문해보는 것이 현명합니까?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를 숭배하려는 경향이 있읍니다. 그러므로 심지어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 경우도 있읍니다. “나는 누구도 또는 아무 것도 숭배하지 않는다!”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사람은 사실상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인간 신으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지나친 자기 본위 때문에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지나치게 주제넘어서 자기는 산 것이나 무생물이나 아무 것도 숭배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태도는 그에게 아무런 이익도 되지 않습니다. 그의 자유가 더 커지지도 않으며 그의 책임이 가벼워지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해가 되며, 아마 영원한 멸망이 될지도 모릅니다. 영속하는 이익을 가져다 주는 숭배를 하기 위하여 자기가 숭배하는 것을 아는 것 즉 자기가 아는 것을 숭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현명하게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읍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숭배하는가? 혹은 나나 나의 종교적 혹은 비종교적 친구들은 “당신들[사람들]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인가? 다시 말하면 당신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숭배한다는 말입니다.
2. (ㄱ)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종교 건물 밖에서는 무엇에 관하여 매우 과민합니까? (ㄴ) 이 ‘사마리아’ 여인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떠한 반응을 나타냄으로써 유익을 얻었읍니까?
2 이 종교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우 과민하게 생각하는 제목입니다. 과격분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국의 교회 성원들까지도 교회 건물 밖에서는 매우 종교적이라는 평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과 종교 문제를 토론하게 되면 “나도 나의 종교를 가지고 있다!”고 무뚝뚝하게 말하므로써 토론을 막아버립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은 종교적 논증을 제시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나서는 “당신의 종교는 당신에게 진리이고 나의 종교는 나에게 진리이다. 그러므로 내가 종교를 바꿀 필요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 각자는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즉 나는 만일 자기가 말하는 것의 뜻을 아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당신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라고 한다면 나는 화를 낼 것인가? 다른 종교를 가진 어떤 사람이 한 여인에게 처음에 이런 말을 했을 때 이런 말을 들은 그 여인은 화를 내지 않았읍니다. 그 여인은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읍니다. 그 여인은 기회를 놓지지 않고 더 많은 질문을 하였읍니다. 질문을 통하여 그 여인은 그 사람이 자기에게 왜 그러한 말을 하였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읍니다.
3. 이 ‘사마리아’ 여인은 언제 어디에서 자기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을 만났읍니까?
3 이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알려진 한 시골 여자인 중동 여자였읍니다. 이 여인은 어느날 정오에 ‘수가’ 시 근처에 있는 한 깊은 우물 곁에 앉아 있는 이 박식한 사람에게로 왔읍니다. 때는 통용 기원 30년, ‘사마리아’ 사람들이 한 때 ‘사마리아’ 성전이 서 있던 ‘그리심’ 산 근처에서 그들의 유월절을 축하한 얼마 후였읍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심’ 산에는 조그만 ‘사마리아’ 사람의 식민지가 있으며, 그들의 신전에는 「‘모세’ 오경」(예언자 ‘모세’에 의하여 기록된 성서의 처음 다섯 책)의 고대 사본이 있읍니다. 그들은 이 사본이 현존하는 사본들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 근처에는 이 ‘사마리아’ 여인이 이 사람을 만난 바로 그 우물이라는 깊은 우물이 있읍니다. 이 우물 왼편에는 창살 간막이가 있는데 거기에는 ‘테트라그라마톤’ 즉 ‘모세’의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혹은 야훼라는 네개의 ‘히브리’ 자모가 있읍니다. 지금 이 모든 것들은 보호 건물 안에 들어 있으며, 관광객들은 그곳을 방문합니다.
4, 5. (ㄱ) 이 우물가에서 대화가 시작된 것이 왜 놀라운 일이었읍니까? (ㄴ) 그 사람의 말은 그 여인으로 어떠한 종교 문제를 끌어내게 하였읍니까?
4 이 사람은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던 인종에 속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을 걸었읍니다. 그래서 그 여인은 이상하게 생각하였읍니다. 인종 편견이 없는 것에 감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적절하게도 이 사람은 ‘모세’의 고조부인 족장 ‘야곱’이 팠다고 알려져 있는 이 우물에서 사람이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다는 “산 물”에 관하여 그 여인에게 이야기하였읍니다. 이 사람은 이 여인의 매우 사적인 생활상을 들어 냈읍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그에게 그 당시 종교 문제에 관하여 묻게 되었읍니다.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5 “주님, 제가 보니 당신은 예언자이십니다. 우리 조상은 이 산 위에서 예배[숭배]를 드렸는데 당신들은 예배[숭배]드릴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요한 4:1-20, 새번역.
6. 이 사람은 그 여인의 동족의 숭배와 자기의 동족의 숭배 그리고 장래의 숭배에 관하여 그 여인에게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6 이 사람은 그 여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였읍니다. “여인이여, 나를 믿으시오. 이 산에서도 아니오 ‘예루살렘’에서도 아닌 곳에서 당신들이 아버지를 숭배할 시간이 오고 있읍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합니다.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참 숭배자들이 아버지를 영과 진리로 숭배할 시간이 오는데 그때는 지금입니다. 실로 아버지께서는 자기를 그렇게 숭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숭배하는 이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하여야 합니다.”—요한 4:21-24, 신세.
7, 8. (ㄱ) 우물 가에 앉았던 이 사람은 누구였으며, 그 여인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읍니까? (ㄴ) ‘수가’ 사람들은 이 사람 예수에 관하여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으며, 왜 그것은 맞는 결론이었읍니까?
7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와 같이 권위있게 말한 이 사람은 누구였읍니까? 이 여인은 희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야를 믿고 있음을 나타냈으며, 이 메시야 혹은 그리스도가 숭배에 관한 모든 질문을 마침내 해결할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 여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저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야가 오실 줄 압니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숭배 장소와 방법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는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미 다 알려 주셨읍니다. 왜냐 하면 그 사람이 그 여인에게 “당신과 말하고 있는 내가 그이입니다” 하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여인이 3년 동안 더 살았었다면 그는 이 사람이 참으로 메시야 즉 오랫 동안 약속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증거하는 더 많은 사실들과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상에서 가졌던 이 사람의 이름은 예수였읍니다. 이 이름은 “여호와의 구원”이라는 뜻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웠읍니다.—요한 4:25, 26, 새번역.
8 이것은 참으로 굉장한 소식이었읍니다. 이 사람이 열 두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게 되자 이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우물에 버려두고 ‘수가’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와 보시오, 내가 행한 일을 모두 알아 맞히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그리스도가 아닐는지요?” ‘사마리아’ 사람들이 보고 들으려고 나왔읍니다. 그들은 이 사람을 그들과 함께 이틀 동안 머무르게 하였읍니다. 그들은 어떠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읍니까? 이 사람은 그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던 ‘유대’ 사람의 구주 메시야가 되실 뿐만 아님을 알았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여인에게 “우리가 믿는 것이 이제는 그대의 말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그분의 말을 듣고 그분이야말로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요”라고 말하였읍니다. (요한 4:28-30, 39-42, 새번역) 3년 후에 역사적 사실은 이들 ‘사마리아’ 사람들의 말이 맞았음이 증명되었읍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는 온 인류의 구주이십니다. 그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사실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나는 아는가?”가 문제이다
9. 만일 예수께서 오늘날 지상에 계신다면 그는 우리를 알고 숭배하는 자들과 알지 못하고 숭배하는 자들 중 누구에게 포함시키실 것이며, 이 질문에 대하여 결정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9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날 친히 지상에 계셔서 어떤 종교 단체에게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고,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분이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한다고 말씀하신 “우리” 가운데 우리도 포함시킬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는 종교 집단에 포함시키실 것입니까? 누구를 혹은 무엇을 숭배할 것인가에 대한 지성적 결정을 내리도록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오늘날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완고한 교만심과 자부심을 가지고 “나는 아무도 숭배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도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고 자기를 기만할 수 있읍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여러 가지 사실을 관찰하여 그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숭배하는가? 쉽게 알 수 있읍니다.
1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주장하며, 그들은 성서의 하나님이 누구라고 주장합니까?
10 많은 사람들은 주장하기를 자기들은 부처도 숭배하지 않고, ‘힌두’교의 330,000,000의 신들 중의 하나나 ‘마호메트’의 ‘알라’ 또는 현대 ‘유대’인들의 하나님도 숭배하지 않지만, 다른 종류의 하나님 곧 인종적 국가적 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이름없는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말합니다. 인종적, 국가적 배경에 구애됨 없이 누구나 그분을 섬길 수 있다고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이름 없는 하나님이 바로 성서에서 알려 주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합니다.
11, 12. (ㄱ) 예수와 같이 숭배하는 사람들은 왜 그들이 아는 것을 숭배한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사마리아’ 사람들은 왜 그들이 숭배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으며, 구원은 어떻게 ‘유대’인에게서 나옵니까?
11 그러므로 각자는, 나는 19세기 전 ‘사마리아’ 사람들과 같이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메시야와 같이 내가 아는 것을 숭배하는가? 하고 분명히 자문해 보아야 하겠읍니다. 만일 우리가 메시야께서 지상에 계실 때 아셨던 것을 숭배한다면 우리에게는 구원이 있을 것입니다. 메시야께서 친히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알고 계셨읍니다. 그 증거로서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마태 11:27)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노라].”—요한 10:15.
12 예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시던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숭배하던 민족은 예언자 ‘모세’인 중보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맺은 엄숙한 계약 즉 언약하에 있었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가 기록한 다섯 권의 책 곧 「‘모세’ 오경」을 믿는다고 주장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과 민족적 언약 관계를 가지시지는 않았읍니다. 그들이 영감받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배척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올바른 산에서 숭배하지 않았고 모든 영감받은 문헌을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올바로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정당하게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자기의 동족에 대하여는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합니다.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고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다. (요한 4:22, 신세)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계시던 동안에는 할례받은 ‘유대’인이셨기 때문에, 이 말이 참되었읍니다. ‘수가’의 ‘사마리아’ 사람들까지도 그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 분이야말로 참으로 세상의 구주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요.”—요한 4:42, 새번역.
13. 인종적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에 어떠한 반응을 보일 것이며, 그들은 어떠한 질문을 할 것입니까?
13 오늘날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오”게 되었다는 예수의 말씀을 못마땅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질문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참 하나님을 숭배하려면 ‘유대’교를 받아들이고, 할례를 받고, ‘유대’인들의 회당에 참석하고, ‘예루살렘’에 순례를 해야 한단 말인가?’
14.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예수의 어떠한 말씀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됩니까?
14 그러면, 메시야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자세히 들어봅시다. “여인이여, 나를 믿으시오. 이 산[‘그리심’]에서도 아니요, ‘예루살렘’에서도 아닌데서 당신들이 아버지를 숭배할 시간이 오고 있읍니다. ··· 그렇지만 참 숭배자들이 아버지를 영과 진리로 숭배할 시간이 오는데 그때는 지금입니다. 실로 아버지께서는 자기를 그렇게 숭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를 숭배하는 이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하여야 합니다.”—요한 4:21-24, 신세.
15. (ㄱ) 예수의 말씀은 어떠한 일이 곧 일어나게 되어 있음을 시사하였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떠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ㄴ) 그러면 참 숭배자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15 이 말씀은 근본적인 변화가 곧 일어나게 되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그로부터 40년 후에 ‘예루살렘’ 도시는 ‘티투스’ 장군이 지휘하는 ‘로마’ 군대의 손에 멸망되었읍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던 그 성전은 오늘날까지 재건되지 않았읍니다. 그 다음 세기에 이교 ‘로마’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였는데, 그 도시가 후에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이 순례를 행한 소위 “그리스도교” 도시가 되었읍니다. 그러다가 그 도시는 ‘마호메트’교의 도시가 되어 이전 ‘유대’인들의 성전 자리에 사원을 건축하고 거기서 회교도들이 숭배를 하였읍니다. 오늘날도 그 사원은 그 자리에 서 있으며, 오늘날 ‘예루살렘’ 도시는 전부 ‘이스라엘 공화국’을 구성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장악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사람들이 “참 숭배자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참 숭배자들”은 지상의 ‘예루살렘’이나 기타 여러 종교인들이 거룩하다고 하는 다른 특정한 도시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티칸’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상의 어느 특정한 장소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그들이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영과 진리로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숭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영이십니다. 영이시기 때문에 지상의 어떤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16. 예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무엇으로 숭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그것이 왜 필요합니까?
16 그러므로 영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숭배하는 것은 신체적이고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숭배자들은 눈에 보이는 물건에 좌우되거나 지리적 위치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거나 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실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장소나 물건에 관계없이 참 숭배에 대한 의향과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숭배에 있어서 성실하고 전념을 다해야 할 뿐 아니라,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서 진리를 구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그리스도교국과 다른 종교 제도의 수백 가지 교파에서 가르치는 상호 모순되는 교리나 전통이 아니라, 진리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진리가 없다면 누구나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숭배하는 것에 대하여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겠읍니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은 사람에 따라서 수백만 가지가 될 수도 있읍니다.
17. (ㄱ) 진리로 하나님을 숭배하려면 진리에 관하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ㄴ) 예수의 동족들은 그들이 예수께서 아시는 것을 숭배하는 일에 그와 함께 하지 않았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7 하나님에 관한 진리는 발전적입니다. 따라서 참 숭배자들은 그 발전과 보조를 맞춤으로써 진리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계셨을 때에 그의 동족은 어떠하였읍니까? 예수께서 그 민족에 대하여 계속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한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까? 어떻게 그렇게 말씀할 수 있었겠읍니까? 약 3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다!”는 그의 전파를 듣고 나서도 대부분의 백성들을 지도하던 그 민족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예수와 달랐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영감받은 성경으로부터 지적하신 생각보다는 종교 전통이나 인간의 개념을 더 좋아하는 태도를 보였읍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모독한다고 비난하였고 폭력으로 그를 죽이려 하였읍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의 최고 재판소는 그를 하나님을 모독한 자로서 사형을 선고하였읍니다. 그들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까지도 예수는 그들의 율법에 따라 신성모독죄로 죽어야 된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리나 ‘예루살렘’의 ‘로마’ 총독을 충동하여 그의 권세로 예수를 죽이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예수가 정치적 음모를 꾸몄다고 고발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사형 기둥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읍니다. 그들은 아는 것을 숭배하는 일에 예수와 함께 하지 않았읍니다!
18. 예수와 ‘유대’ 민족 중 누가 하나님께 배척당하였으며, 그것이 어떻게 나타났읍니까?
18 우리는 이러한 행동을 취한 이 고대 민족과 동조할 수 있읍니까?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숭배하신 하나님, 예수께서 아셨던 하나님을 숭배하고자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없읍니다. 그 민족의 후예들은 오늘날까지도 그들의 조상들이 메시야 예수에게 대하여 취하던 입장을 버리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예수의 소식과 그가 오랫 동안 기다리던 메시야라는 증거를 배척하였지만, “거룩한 도시”인 ‘예루살렘’과 그 웅장한 성전이 파괴되어 다시는 유대인들의 손으로 재건되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의 예언의 성취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예수의 말씀이 사실로 입증되어, 그 “세대” 내 곧 기원 70년에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었읍니다. (마태 24:1-34) 비록 ‘유대’인들이 그렇게 되지 않게 하려고 광적으로 노력하였지만, ‘예루살렘’은 유일하시고 살아계신 참 하나님을 숭배하는 장소가 되지 못하였읍니다. 오늘날 그 도시에는 ‘유대’교 성전이 하나도 서 있지 않습니다. 이 알려진 하나님께 대한 연합된 숭배를 그 장소에서 드려야 한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가 없읍니다. 그러나 예수가 이 알려진 하나님의 메시야 예언자임이 틀림없다는 사실은 확실한 역사적 사실로 증명되었읍니다. 그러므로 이 알려진 하나님으로부터 배척을 당한 편은 예수가 아니라 예수를 배척한 그 민족이었읍니다.
19. (ㄱ) 만일 ‘유대’ 민족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 당시 누구의 행로에 가담해야 합니까? (ㄴ) 어떠한 통로를 통하여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왔으며, 언제 왔읍니까?
19 그러므로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나온다는 예수의 말씀은 영원한 구원이 오늘날 그 민족을 통하여 온다거나 우리가 할례받은 개종자가 되어 그 ‘유대’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메시야를 배척한 그 민족에게 가담할 것이 아니라, 기원 33년에 메시야 예수를 받아들인 자들, 그의 충실한 추종자들이 된 수천명의 ‘유대’인 “남은 자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로마 11:1-7) 예수께서 죽은 자로부터 부활되신 후,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믿는 ‘유대’인 남은 자들의 첫 성원들을 함께 모으셨읍니다. 오순절 날(기원 33년 ‘시완’월 6일)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유대’인 “남은 자들”의 첫 성원들에게 하늘로부터 성령을 부어 주셨읍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숭배하되, 참 숭배의 “영”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도움으로 또한 이 성령을 통해 밝혀진 “진리”로 숭배할 수 있었읍니다. (사도 2:1-47) 그 후 기원 36년에 이들 ‘유대’인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이방인들 곧 비‘유대’인들에게 전해 주었읍니다. (사도 10:1-11:18) 그러므로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전해 준 통로였읍니다.
20. (ㄱ)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위급한 때가 도래하자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였으며, 이것은 그들이 이 잘 아는 하나님을 숭배할 장소를 빼앗겼음을 의미하였읍니까? (ㄴ)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을 바란다면 누구의 편에 서야 합니까?
20 그 후, 예수께서 예언하신 대로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위급한 때가 도래하자, 그 ‘유대’인 남은 자들은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거나 거기에 머물러 있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오히려, 참 예언자인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신 바에 따라 ‘예루살렘’과 ‘유대’ 땅을 피하여 도망하였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기원 70년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멸망될 때에 함께 멸망되지 않았읍니다. (마태 24:15-22; 누가 21:20-24)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그들이 잘 아는 하나님을 숭배할 장소를 빼앗긴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하나님의 참 성전에서 하나님을 숭배하였읍니다. 그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파괴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히브리 8:1,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 곧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합니다.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에도 계속 적용시키실 수 있는 사람들은 이 ‘유대’인 “남은 자들”입니다. (요한 4:22, 신세) 만일 우리가 오늘날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메시야 예수를 통하여 오는 구원을 바란다면 우리는 배척당한 민족이 아니라, ‘유대’인 “남은 자들” 편에, 마치 그들이 오늘날까지 살아있는 것처럼, 그들 편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을 아는 방법
21. (ㄱ)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어느 정도로 알아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 면에 있어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어떠한 잘못이 있었읍니까?
21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뜻입니다. 그 분은 어떤 상상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상상적인 하나님을 숭배한다면,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들은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참 하나님에 대한 것이라도 부분적인 사실만 받아들이고, 그 후에는 그에 관해 온전히 밝혀진 진리를 거절한다면 어떠하겠읍니까?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불충분한 이해를 가질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상 우리는 하나님에 관하여 의곡된 사상을 갖게 되고,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사실상 참 하나님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는 것이고,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어떤 것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제 1세기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바로 그러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언자 ‘모세’가 기록한 영감받은 「‘모세’ 오경」은 인정하였읍니다. 그러나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 34권에 들어 있는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는 완고하게도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불완전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을 뿐 아니라 부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숭배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가는 것을 거절하였고 ‘그리심’ 산에서 숭배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활동과 진리에 관한 새로 나온 역사적 기록을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22. 예수의 동족들도 어떻게 이와 같은 잘못이 있었읍니까?
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출생하신 그의 동족도 바로 그렇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그 당시까지 나온 모든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 곧 ‘율법’과 ‘예언자’들과 ‘시편’을 다 믿는다고 주장하였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지적하신 대로 그들은 전통과 영감받지 않은 인간의 가르침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헛것으로 만들었읍니다. (마태 15:1-9; 누가 24:44, 45)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들은 영감받은 성경의 예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취될 때에 이들의 성취를 알아보고 인정하려 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를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계속하여 오순절에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믿는 ‘유대’인 “남은 자들”과 연합하지 않았읍니다. 또한 그들은 메시야 예수의 충실한 사도들과 제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의 마지막 부분, 곧 메시야 예수의 충실한 사도들과 제자들에 의하여 희랍어로 기록된 영감받은 성경을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이들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말라기」와 「역대 상하」를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영감이나 진리의 계시가 끊쳤으며, 따라서 그들에게는 「마태복음」으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의 책들은 「히브리어 성경」에 부가된 영감받은 책들이 아닙니다.
23, 24. 그들의 행로의 결과로서, 그들은 더 잘 알려진 하나님이 아닌 어떤 하나님을 숭배하게 되었읍니까?
23 이것은 기원 70년에 ‘예루살렘’ 도시와 그 성전이 멸망되었고 제사직까지 끝나게 된 이 나라에게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읍니까? 그것은 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초래하였읍니다. 그들은 지금까지도 자기의 약속과 예언을 지키지 않은 하나님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약속한 메시야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으로 보내지 않은 하나님을 숭배합니다. (마태 1:1) 그들은 그의 메시야를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시거나 하늘의 그의 오른 편에 “주와 그리스도”로 앉히지 않은 하나님을 숭배합니다. (사도 2:22-36) 그들은, 새로운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이스라엘’” 즉 ‘모세’보다 더 크신 중보 메시야 예수를 통하여 된 영적 나라와 “새 언약”을 맺지 않은 하나님을 숭배합니다.—예레미야 31:31-34; 신명 18:15-18; 사도 3:20-24; 히브리 8:7-13; 디모데 전 2:5, 6.
24 그러므로 그들은 끝없는 평화와 의의 정부로써 온 땅을 다스려 전 인류를 축복할 메시야 왕국을 설립하기 위하여 그의 메시야를 이제 두번째로 보내지도 않는 하나님을 숭배합니다. (사무엘 하 7:4-17; 이사야 9:6, 7; 다니엘 2:44; 7:13, 14) 따라서 충실한 ‘유대’인 조상들은 참 하나님을 숭배하였지만, 현재 ‘유대’인들은 참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25.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대한 자기 동족의 열심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들은 또한 오늘날 무엇을 숭배합니까?
25 그 ‘유대’인들에 대하여, 과거에 ‘유대’인 그리스도인 “남은 자들”을 박해한 바 있던 그리스도의 사도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메시야]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로마 10:1-4; 디모데 전 1:12-16; 갈라디아 1:13, 14) 그러면, 과거에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았다가 다음에 메시야의 하나님을 배척한 민족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그들의 열심은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며 그들 역시 모르는 것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감받은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의 하나님과 동일한 「희랍어 성경」의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26, 27. “삼위일체론자”들인 그리스도교국은 그가 아는 것을 숭배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이에 대한 정답을 결정할 수 있읍니까?
26 그러면, 소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하는 그리스도교국의 사람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숭배합니까? 아니면, 그들이 모르는 것을 숭배합니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과 영감받은 「희랍어 성경」을 살펴보면 알 수 있읍니다. 이 한벌의 성경이 합하여 하나의 영감받은 책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27 이 성서 어느 부분을 살펴보아도 “삼신” 혹은 “삼위일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신 하나님, 합하여 “삼위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논거도 성서에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하셨읍니다.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여호와]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여호와]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여호와]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예수께서는 이 대답에서 「‘모세’ 오경」 중의 한 책인 신명기 6:4, 5에서 인용하셨읍니다. (마가 12:28-30) 그러나 그리스도교국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그 유일한 하나님을 숭배하라는 “첫째” 계명을 순종하지 않고 있읍니다.
28. 하나님에 관한 그리스도교국의 생각은 얼마나 다르며, 구원이 그리스도교국을 통하여 옵니까?
28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교국이 올바로 숭배한다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자기네들은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겠지만, 그들은 이교 사상에 근거한 하나님 곧 삼신을 숭배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교국의 사상은 가지가지여서 거기에 속한 수백 종파가 제각기 다릅니다. 그리스도교국이 모르는 것을 숭배한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읍니까? 그들을 통해서는 구원이 없읍니다!
29.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어떠한 지식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에 의하여 우리가 아는 것을 숭배하도록 인도를 받습니까?
29 행복한 가운데 누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은, 예수와 그의 참 추종자들이 참 하나님이라고 알았던 하나님을 숭배함으로써만 옵니다. 그러한 참 추종자들 중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하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 보시기에 훌륭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그의 뜻은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진리의 정확한 지식에 이르는 것이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보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이시다. 그가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상응하는 대속물로 주셨[다].” (디모데 전 2:3-6, 신세) “중보는 한편만 위한 자가 아니니 오직 하나님은 하나이시니라.” (갈라디아 3: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새 언약”에 있어서 하나님이 한 편이 되시고, 새 언약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른 편 곧 그 언약 마련의 다른 편이 됩니다. 그렇게 언약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한 중보를 통하여 진리의 정확한 지식을 얻게 됩니다. 그 중보는 과거에 완전한 사람으로서 지상에 계셨으며 죄가 없으시고 완전하셨기 때문에 자신을 “모든 사람을 위한 상응하는 대속물”로 주실 수 있었읍니다. 그 중보가 메시야 예수 곧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그는 자기가 아는 하나님을 위하여 중보가 되셨으므로 그는 또한 우리를 “우리가 아는 것” 곧 하나님을 숭배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127면 삽화]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의 한 우물가에서 한 여인에게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당신이 알지 못하는 것을 숭배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참으로 당신이 아는 것을 숭배하는가?
[131면 삽화]
사람들이 하나님을 삼위일체로 숭배하면서 그것이 “오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그들이 아는 것을 숭배’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