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하나님의 선의를 구함
“대저 [지혜]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선의, 신세]을 얻을 것임이니라.”—잠언 8:35.
1, 2. (ㄱ) 왜 수많은 사람들은 건강과 생명을 추구했으나 실패하였읍니까? (ㄴ) 선을 갈망하는 사람은 무슨 질문을 고려해야 합니까?
당신은 무엇을 구합니까? 건강, 행복, 만족, 안전 및 오랜 생명을 가져다 줄 어떤 것을 구합니까? 지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축복들을 열렬히 갈망하지만 그러한 것들을 발견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러한 것들을 그릇된 근원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재물과 재정적 성공을 구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재물이 안전성이 없으며, 돈으로는 건강과 생명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쾌락과 쾌감을 추구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러다가 자기들의 도덕감과 긍지를 상실한 예가 너무나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력과 영향력을 얻으려고 노력하였으며, 어떤 사람들은 정의와 평등을 추구하였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위 사정들을 보고 깊이 환멸을 느낀 나머지 반항과 폭력으로 개혁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과도한 음주와 혼미케 하는 마약으로 정신을 흐리게 하여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합니다.
2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참된 행복과 생명의 근원이 됩니까? 인류를 괴롭히고 분열시킨 현 시대의 미해결 문제들이 장래에 대한 희망의 서광을 비쳐 주고 있읍니까? 날이 가면 갈수록 복잡해 가고 더욱 혼란해 가는 미해결 문제들 그리고 남자, 여자들을 서로 싸우고 다투게 하며, 서로 증오하고 죽이게 하는 문제들—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을 가져다 주겠다는 보장을 해 줍니까? 탐욕과 증오심이 증가하고, 범죄, 폭력, 부도덕, 마약 상용, 각종 범죄와 악행이 불길처럼 일어나고 있는 세상—그러한 세상이 당신이 열렬히 갈구하는 좋은 것들을 획득할 전망을 제시해 줍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잠언」에 있는 다음과 같은 지혜의 말을 고려하고자 할 것입니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선의]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잠언 11:27) 만일 당신이 선을 구하고 있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당신의 장래에 아니, 전 인류의 장래에 커다란 영향을 줄 질문 곧 당신은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고려하십시오.
3. 왜 지금은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기 적절한 때입니까?
3 왜 이 질문이 그렇게 중요합니까? 왜 특히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는 점에 관하여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됩니까? 왜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들어 있는 착오가 없는 증거를 통해 볼 때에, 우리가 성경에서 인간 역사상 “마지막 날”, “여호와의 은혜[선의]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할 때라고 하는 시대에 도달하였기 때문입니다.—디모데 후 3:1-5, 신세; 이사야 61:2.
4.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선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자신의 염원을 어떻게 표현하셨읍니까?
4 하나님께 믿음을 나타낸 사람들에게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과분하신 친절에 감사를 나타낸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언제나 선의를 보이셨읍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은총을 진정으로 구하는 인류를 한번도 배척하지 않으셨읍니다. 여러 세기에 걸쳐 믿음이 강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추구하였으며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잠언」에서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말한 바와 같이 후회한 일이 없었읍니다. (잠언 10:22) 여호와께서는 사랑의 친절과 선의를 바라는 인류에게 그것을 주시기 위해 솔선적인 행동을 취하셨읍니다. 지금까지 인류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찬 관심의 가장 큰 증거는 아들 예수를 지상에 보내신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받아들이는 지상의 거민들에게 축복과 생명을 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찬 염원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 3:16; 요한 1서 4:9, 10.
5, 6. (ㄱ) 하나님의 선의가 인류에게 나타나 있음을 성서 예언들은 어떻게 알려 줍니까? (ㄴ) 예언의 성취로 그 왕은 언제 나타났읍니까?
5 여러 세기 동안 「‘히브리’어 성경」의 영감받은 예언들 가운데, 지구와 지구상의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이 많이 표현되어 있읍니다. 그 예언들은 첫 인간 부부인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하여 타락한 직후 ‘에덴’ 동산으로까지 소급합니다. 그 첫 예언에 보면, 하나님의 우두머리 원수 ‘사단’ 곧 “뱀”을 미워할 “씨”가 예언되어 있읍니다. 그 씨는 결국 “뱀”의 머리를 치명적으로 “상하게” 하여 인류를 죄와 사망에 이르게 한 그 장본인 곧 인류의 최고 원수를 없애버릴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그 후의 예언들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다윗’보다 더 큰 하나의 왕 곧 ‘아브라함’의 씨를 약속하셨읍니다. 그분은 온 인류를 의와 평화로 다스릴 정의의 정부로 인류를 축복할 것이며, 지혜와 명철로 인류를 다스릴 것이며, 그분의 통치권은 영원히 계속할 것이고, 모든 백성이 그분에게서 공의와 평화를 구할 것입니다. 그 왕국은 서로 싸우는 정치적 왕국들과 정부들을 없애고 영원히 의롭게 설 것입니다.—창세 3:15; 22:17, 18; 이사야 2:2-4; 11:1-5; 다니엘 2:44; 7:13, 14.
6 이제 합당한 인류에게 축복과 선의를 내려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다음 단계에 들어섰읍니다. 기원전 2세기 ‘유대’라는 ‘로마’ 행정 구역 내에서 발생한 기적적인 사건으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찬 관심이 극적으로 잘 표현되었읍니다. 여러 세기 전에 예언자 ‘이사야’에 의하여 예언된 약속된 메시야 왕, 평화와 의의 왕이 도래할 때가 되었읍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6, 7.
7, 8. (ㄱ) 어떤 환경에서 천사의 통보가 있었으며, 그 통보 내용에는 무슨 약속이 포함되어 있었읍니까? (ㄴ) 목자들은 어떻게 그 약속에 대한 관심과 하나님의 선의에 대한 감사를 나타냈읍니까?
7 여러 세기 전에 약속되었던 그 메시야 왕의 탄생은 확실히 하나님의 선의를 갈망하고 평화와 의를 갈구하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환호성을 올릴 만한 사건이었으며, 좋은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천사들까지도 ‘베들레헴’ 시의 그 기적적인 탄생을 기쁘게 선언하였읍니다. ‘유다’ 언덕에서 자기 양을 치고 있던 목자들은 천사들이 선언하는 외경감을 불러일으키는 그 광경을 목격하는 특권을 받았읍니다.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는 자들을 위하여 성서 필자 ‘누가’는 그 사실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리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선의자들, 신세]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누가 2:8-14.
8 그 겸손한 목자들은 하나님의 선의에 관심을 나타냈읍니다. 그들은 즉시 ‘베들레헴’으로 가서 그 아기를 보았읍니다. 그 아기의 탄생은 천사들까지도 감동시켜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하고 외치도록 하였으며, 그의 탄생은 또한 ‘땅에서는 선의자들 가운데 평화’를 약속하는 그러한 사건이었읍니다. 그들이 인류 역사상 극히 중요하고 특이한 이 사건을 특별히 통보받은 것은 실로 하나님의 커다란 은총이라 아니할 수 없었읍니다. 그들이 통보를 받은 것은 후대에 인간이 고안한 ‘라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복잡한 전자 통신 수단을 통해 받은 것이 아니고 지구 밖의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영 아들들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은 것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선의를 나타내심으로써 인류를 위해 약속된 메시야 곧 주 그리스도를 보내신 일에 증인이 되도록 하셨읍니다. 그 메시야는 ‘다윗’ 왕의 후손이기도 하였읍니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나타내 주신 선의에 감사하였으며,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읍니다.—누가 2:20.
9. 하나님의 “선의자들”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9 충실한 ‘유대’ 목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에 잘 나타난 바와 같이 하나님의 평화를 받은 하나님의 “선의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과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 성서 번역자들도 예수의 탄생시에 천군들이 한 말을 그러한 뜻으로 번역하였읍니다. 「미국 표준역」은 누가 2:14을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이다”라고 번역하였고, 「모팻역」은, “높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들에 대하여 평화이다”고 하였고, 「신 영어 성서」는 “가장 높은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그의 은총이 머무는 자들에게 그의 평화이다”고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화의 축복은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10. (ㄱ)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의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알리셨읍니까? (ㄴ) 모든 사람들이 다 여호와로부터 선의를 받은 것이 아님은 무엇으로 보아 분명하였읍니까?
10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 봉사하던 기간에 하나님의 선의를 원하는 ‘유대’인들은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셨읍니다. 그분이 그들 사이에 계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특히 그들을 위해 선의를 베푸신다는 증거였읍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선의를 받아들인다면 영원히 유익을 받을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가 30세 되던 때까지 목수 일을 하신 도시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받아서 그 책 61장 1절과 2절의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으셨읍니다. “주 여호와의 신[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선의, 신세]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는 이 예언을 읽으신 다음 청중을 향하여 “이 성경 말씀이 오늘 너희에게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읍니다. (누가 4:17-21, 새번역) 그러므로 예수께서 제시하는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자들 앞에는 놀라운 축복이 놓여 있었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과 “선의의 해”의 의미가 서로 크게 대조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정 반대의 운명이 놓여 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의가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만일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라면 “신원의 날”은 필요 없을 것입니다.
우리 시대를 위한 본
11.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왜 여호와의 “선의의 해”를 누렸는지 설명하십시오.
11 제1세기 ‘예루살렘’에서 “선의의 해”와 그에 뒤따르는 파괴적인 “신원의 날”에 대한 약속은 연속적인 사건들에 의하여 모형적 성취를 보았읍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예수께서 시작하신 “선의의 해”를 선포하는 일은 오순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충실한 제자들이 이어받았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메시야가 다스릴 약속된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이 그 특징이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으신 사람들의 전도 활동을 통해 공개적으로 전파되었읍니다. 예언자들이 기록한 약속에 믿음을 두었던 그들의 조상들이 여러 세기 동안 고대하였던 그 축복이 ‘유대’ 지방에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전파되었읍니다. 구원과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수석 대행자가 그들 중에 계셨읍니다. 실로 그 당시는 “여호와의 선의의 해”였읍니다.
12. 왜 그들의 “선의의 해”는 무한정 계속되지 않았읍니까?
12 그러나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었읍니까? 이 “선의의 해”와 그에 수반되는 축복의 전망은 ‘유대’ 민족이 언제나 자기들 원하는 때에 그곳에 향하면 항상 유익을 받을 수 있는 그러한 것이었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후에 진전된 상태를 보면 그렇지 않았읍니다. 한 해에 분명한 시작과 끝이 있듯이 “선의의 해”도 무한정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의를 참으로 갈망하고 그의 유익과 축복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기간이 끝나기 전에,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급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13. 예수께서는 기원 제1세기 “선의의 해”의 끝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읍니까?
13 하나님의 선의를 배척한 자들에게 어떠한 일이 이를 것인가에 관한 예수의 예언에는 기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경고가 들어 있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기원 70년의 ‘예루살렘’ 멸망에 이르는 연속적인 사건들을 설명하셨읍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하나님의 선의를 받고자 성실히 바라는 ‘유대’ 땅의 ‘유대’인들은 이러한 경고를 염두에 두고 그 다음에 계속되는 교훈에 심심한 관심을 표하였읍니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그리고 나서 그 “선의의 해”가 그 나라에 대해서 얼마나 짧을 것인가를 지적하시면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중대한 경고를 하셨읍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누가 21:20-22, 32.
14. (ㄱ) ‘유대’ 민족은 하나님의 선의를 받아들였읍니까? (ㄴ) 그들은 무엇을 억지로 받아들였으며, 어떻게 그렇게 하였읍니까?
14 예수께서 예언하신 꼭 그대로, 37년후, 그 세대 내에, “여호와의 선의의 해”가 끝나고 즉시 파괴적인 “신원의 날”이 뒤따랐읍니다. 그 기간이 ‘유대’ 백성에게, 특히 ‘예루살렘’ 위에 극렬히 임하였읍니다. 기원 66년에 예수께서 경고하신 대로 ‘로마’ 군대가 이르러 그 도시를 포위하였읍니다. ‘로마’ 군대가 잠시 동안 철수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는 자들은 아직도 ‘산으로 도망하라’는 예수의 경고를 따를 시간 여유가 있었읍니다. 그들은 그렇게 하였읍니다. 그것도 급히 하였읍니다. 그러나 기원 70년에 ‘로마’ 장군 ‘티투스’는 군대를 이끌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백성들과 도시를 무시무시하게 쳐부수어 ‘유대’인 1,100,000명을 살해하고 97,000명을 비참한 노예로 잡아 가서 ‘로마’ 제국 전역에 흩어지게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원전 607년에 경건치 않은 ‘바벨론’ 통치자 ‘느부갓네살’의 군대를 사용하여 자기를 배척한 민족을 벌하신 것 같이 기원 70년에는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었읍니다. 그렇게 하여 파괴적인 “신원의 날”이 하나님의 “선의의 해”를 배척한 나라에게 극렬하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임하였읍니다. 예수와 그의 충실한 추종자들을 박해하고 죽였던 그들, 임박한 재난으로부터 자신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도망하라는 예수의 경고와 순종적인 제자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그들은 하나님의 “신원의 날”의 고통스러운 결과를 느끼고, 피할 수 없는 체험을 하였읍니다.
15. 믿는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선의를 받아들여 어떤 유익을 받았읍니까?
15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과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그 전 민족에게 하나님의 선의를 제시하셨읍니다. 그러나 소수만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믿음을 가지고 순종하였읍니다. 소수만이 하나님의 선의자들의 평화를 얻으려고 하였으며, 그렇게 한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예수의 추종자가 되겠다는 그들의 결의를 침례로 표시하였읍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 “선의자들”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피하였고, 비참한 생존자들이 사로잡혀갈 때에도 거기서 피할 수 있었읍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의 경고를 듣고 행동을 취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오늘날을 위한 교훈
16, 17. (ㄱ) 그 ‘유대’ 민족이 당한 상황은 누구에게 교훈이 됩니까? (ㄴ) “선의의 해”의 몇 가지 유익한 점들은 무엇입니까? (ㄷ) 왜 하나님의 선의를 구할 시간 여유가 아직 있읍니까?
16 이 모든 사실은 오늘날 지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한 교훈이 됩니다. 지상의 모든 민족과 족속을 휩쓸고 있는 위급한 상태를 보면, 우리 시대가 “마지막 날”, “사물의 제도의 결말”의 때라고 한 기간임에 틀림없읍니다. (디모데 후 3:1-5; 마태 24:3, 신세) 이 한정된 성경적 기간은, 비록 증가 일로에 있는 세계적 재앙과 인류 세상에 대한 혼난으로 가득 차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때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안식일에 ‘이사야’의 예언을 읽으시면서,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 이르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영적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읍니다. 이러한 축복 가운데는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 상한 자를 고치고,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는 일 등이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이 모든 것은 여호와의 선의의 해를 선포하는 일과 함께 이루어질 것입니다.
17 이것은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의 선의를 받을 수 있는 때, 곧 하나님의 선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에게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 이르기 전에 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 “신원의 날”은 다가오는 큰 환난에서 크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큰 환난은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 곧 “아마겟돈” 전쟁으로 절정을 이룰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선의를 배척하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왕국과 그의 의를 대항한 사람들에게 신원하실 것입니다.—이사야 61:1, 2; 계시 16:14, 16.
18. 오늘날 인간은 무엇을 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18 그러므로 우리 앞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놓여 있읍니다. 우리는 지금 지혜롭게 하나님의 선의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아들이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도록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제1세기에 ‘예루살렘’에 살던 믿음이 없는 자들과 같이, 어리석게도 경고를 비웃고, 교훈을 배척하고, 그리하여 영원한 멸망을 당하고, 최종적인 “신원의 날”에 희생되도록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19. 예수의 예언이 다시 한번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들을 몇 가지 설명하십시오.
19 성서 예언에 나타난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르면 기원 1914년은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때”의 시작이 됩니다. 그 때 이래 인간사는 계속 악화되었으며, 양차 세계 대전을 겪었으며 또한 십여회의 소규모적인 전쟁을 겪었읍니다. 어떤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어느 때든지 또 다른 전쟁이 돌발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읍니다. 이기심, 증오, 범죄, 부도덕, 경건치 못한 갖가지 행동 등등은 모두 인류 대다수가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지 않았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의를 보일 만한 행동도 하지 않았음을 나타내 주고 있읍니다. 우리 시대에 인간 관계가 타락할 것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마태 24장의 예수의 예언이 ‘유대’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나라에서 성취되고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또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날 것과, 식량 부족, ‘처처에 지진’, 고통, 그리고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에 대한 박해가 있을 것을 예언하셨읍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태 24:7-13)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 시대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이러한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20. (ㄱ) 현재 하나님의 “선의의 해”는 누구에게 열려 있읍니까? (ㄴ) 그것은 무슨 선포를 특징으로 합니까? (ㄷ) 왕국 선포는 특히 누구에게 “좋은 소식”입니까?
20 실로 이 시대는 하나님의 선의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때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여호와의 선의의 해”는 육적 ‘유대’인 사회에만 열려 있는 것이 아니고 지상의 모든 족속에게 열려 있읍니다. 어떻게 하여 그렇습니까? 예수께서는 우리 시대를 위한 예언에서 한 귀절 다음에 이렇게 설명하셨읍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면 끝이 올 것입니다.” (마태 24:14, 신세)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 계셔서 지상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전세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 단체가 그 명령에 순종하여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세계에 전파하고 있읍니다. 기원 1914년에 그 왕국이 탄생한 후부터 그 일을 하고 있으며, 그 활동이 증가하고 있읍니다. 지상에 완전하고 평화로운 정부를 바라는 모든 의의 애호자들에게 그들은 충실하게 선포하고 있읍니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드높은 아들 그리스도 예수께서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는 정부로서 오랫 동안 기도하고 간구하였던 왕국입니다. 그것은 1914년에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받았읍니다. 이 선포는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좋은 소식”입니다. 그 소식에는 하나님의 은총과 선의를 받아 완전한 정부 하에서 영원한 축복과 은혜를 받을 전망이 수반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의자들”에게 “좋은 소식”입니다. 왜냐 하면, 즉위 하신 하나님의 왕께서 얼마 안가서 지상에 결정적인 관심을 돌려서 세계를 진동하는 변화를 일으키시고 지구를 하나님께서 본래 목적하신 즐겁고 평화로운 상태로 회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다니엘 2:44; 스바냐 3:8; 시 37:10, 11.
21. 어떤 길을 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1 앞으로 남아 있는 “여호와의 선의의 해”에 관한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지금이 실로 웅장한 기회입니다. 자기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까? 믿음직하고 확실한 근원으로부터 미래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이 아닙니까? 성서 「잠언」에서 지혜가 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선의, 신세]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러나 나를 잃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해하는 자라. 무릇 나를 미워하는 자는 사망을 사랑하느니라.” (잠언 8:35, 36)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이 실용적 지혜가 아닙니까? 자신의 미래를 대비하고 그 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까? 경건한 지혜를 배척하고 불법의 길을 택한 사람들은 “사망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22, 23. (ㄱ) 하나님 앞에 은총을 얻을 사람들 앞에 놓인 선택 문제를 어떤 고대의 예가 설명해 줍니까? (ㄴ)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는 길을 지체하지 않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22 오늘날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길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 강을 건너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손한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모압’ 광야에서 양자 택일을 해야 하였던 상황과 비슷합니다. 그 때에 ‘모세’는 모여 군중에게 연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읍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신명 30:19, 20.
23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도 양자 택일을 합니다. 만일 우리가 생명을 바란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은총을 확보하는 단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선한 것을 바란다면, 잠언 11:27에서 권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선의를 받은 방향으로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다행하게도 우리는 아직도 “여호와의 선의의 해”에 살고 있읍니다. 아직도 하나님의 영원한 은혜와 선의를 찾고 또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읍니다. 기다리거나 지체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이야 말로 결정을 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선의를 구할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행동을 취하여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지금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의자들 중의 평화’를 지상에서 영원토록 즐기시십오.
[415면 삽화]
예수의 탄생시에 천사들은 겸손한 목자들에게 ‘땅에서는 “선의자들” 가운데 평화’라고 선포하였다. 당신은 이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선의를 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