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식의 결혼식?
여러 나라에서 들어오는 ‘뉴스’ 보도를 보면 결혼식이 여러 가지 형태로 거행되는 것을 알게 된다. 독일의 두 곡예사는 도시 광장 위 높이 매달린 그네 위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어느 한쌍의 ‘스카이 다이버’들은 낙하산을 타고 지상에 내려오고 그 다음에 사제가 내려온 다음 그들이 낙하한 지점에서 결혼식을 가졌다.
이러한 일은 드물고 또한 선전 효과를 노리고 한 것이지만, 결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 중 특이한 방법으로 자기들의 개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러한 “개인주의자”들은 인습적인 결혼식이 극도로 형식적이고 비용이 많이 들며, 오로지 벗들과 친척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예절만을 강조하고 한없이 세밀하고, 습관에 얽매인 의식이라고 말한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그러한 전시 위주의 의식은 흔히 결혼식의 참된 의미와 기쁨을 박탈해 버린다.
그러한 것에 반대하여 이른바 “새로운 결혼식”이라는 것이 60년대에 시작되었다. 그 결혼식에서는 부부가 흔히 전통적인 습관이나 보수적인 선배들의 견해를 무시해버린다. 그들은 교회나 판사실에서가 아니라, 산기슭에서, 해변 혹은 동굴에서 결혼식을 가진다. “새로운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전통적인 결혼 선서문을 복창하는 것이 아니라, (최근 어느 영화에서 행한 결혼식을 모방하여) 시 한수를 읽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근처에서 거행한 한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다음과 같은 말을 복창하였다.
“나는 내 일 하고 너는 네 일 한다. 나는 네 희망대로 살려고 이 세상에 있는 것 아니다. 그리고 너는 내 희망대로 살려고 이 세상에 있는 것 아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우리가 우연히 서로를 발견하면 그것은 아름답다.”
틀림없이 독자들은 두 가지의 극단이 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온갖 자세한 점을 다 시행하여 “예법”의 노예가 될 필요는 없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무시하고 또 결혼식의 성질과 위엄을 무시하는 “멋대로” 하는 곡예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양 극단 사이에서 어느 것이 이치적인 방법인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결혼식을 계획할 때에, 무엇이 실제 필요하며, 무엇이 온당하고 위엄있는 결혼식인가를 깊이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결혼식에 참석하고 나서 그들이 본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성서의 강조
여호와의 증인의 왕국회관은 기본적으로 회중이 성서를 연구하기 위하여 모이는 장소이지만, 때때로 거기서 결혼식을 거행하기도 한다.a 성서에서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임을 알려 주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적절한 것이다.—창세 2:24.
왕국회관에서 열리는 의식답게, 결혼의 의미에 대하여, 그리고 남편과 아내의 특권과 책임에 대하여 성경적 연설을 행한다. 그리고 격려적인 연설의 끝에 가서 그 나라 법의 규정에 따라 선서를 할 수도 있다.
‘엘살바도르’와 기타 어떤 다른 나라에서는 종교 건물 내에서는 결혼을 할 수 없다. 결혼은 반드시 자격있는 공무원에 의하여, 시청의 ‘홀’과 같은 곳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나라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은 흔히 그러한 법률상의 결혼식을 가진 다음에 왕국회관에서 성경 연설을 행한다. 이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단계이다. 자신이 결혼하는 날은 즐거운 때이기도 하지만 결혼의 창시자의 현명한 충고를 기억해야 할 적절한 때이기도 하다.—시 119:1.
결혼 선서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어떤 나라에서는 신랑과 신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인 선언 즉 선서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법을 준수한다. 그러나 법으로 요구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도 신랑 신부가 결혼 선서를 복창하거나 거기에 동의하는 습관이 흔히 있다.
앞서 인용한 “새로운 결혼식”의 예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결혼 선서에서도 “자기 원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다. 때로는 신랑 신부가 자기들의 선서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다른 경우에는 교직자가 작성하기도 한다. 어느 교회 목사는 두 명의 여자 동성애자의 “결혼” 주례를 하면서 “서로 사랑할 때까지” 살라고 하였고, 어떤 교직자는 나체 신랑 신부의 결혼을 주례하면서, “사랑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에 불명예를 돌리는 그러한 풍조와는 대조적으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1969년 7월 1일호 「파수대」에서 권고한 대로 다음과 같은 선서를 한다.
신랑: “나——는 당신——을 결혼한 아내로 맞아들여 우리가 하나님의 결혼 마련에 따라 지상에 함께 사는 동안 그리스도인 남편에 대해 성경에 규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당신을 사랑하고 아끼겠읍니다.”
신부: “나——는 당신——을 결혼한 남편으로 맞아들여, 우리가 하나님의 결혼 마련에 따라 지상에 함께 사는 동안 성경에 그리스도인 아내에 대해 규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당신을 사랑하고 아끼고 깊이 존경하겠읍니다.”
그러나 관청에서 결혼식을 하게 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그러한 선서가 필요치 않다. 그들은 국가에 결혼 신고를 하였을 때 결혼한 것이다. 결혼한 부부가 원한다면 왕국회관에서 어떤 장로에 의하여 훌륭한 연설을 갖는 것은 적절한 일이다. 그러나 서약의 교환없이 그렇게 한다. 그러나 왕국회관 결혼식에는 그 외에도 또 고려할 점이 있는가?
행복하고 위엄있고 개성적임
“미국 사람들의 결혼식은 우리의 주된 관심사 곧 사랑과 돈, 그리고 짙은 낭만주의와 신분 추구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어느 신문 기자는 보도하였다. 다른 나라에서도 그러한 예가 허다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어느 나라에 살든지 결혼의 성서적, 영적 부면을 강조한다. 이것은 그들이 절도 있고 균형잡히게 하고, ‘그들의 이치적임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빌립보 4:5.
그러면 왕국회관에서의 결혼은 전부 동일해야 한다거나 혹은 침울하거나, ‘스파르타’식 이어야 한다는 말인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러한 결혼은 성서 시대의 결혼과 같이 위엄이 있으면서도 즐거운 때이다. (시 45:13-15; 이사야 62:5; 계시 19:7, 8) 흔히 특별한 장식을 하고 꽃이 있으며, 왕국회관에서 사용하는 노래책에서 발췌한 즐겁고 성경에 기초한 노래가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은 그 기회에 축제적인 기분을 띠게 한다.
그리고 각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양성도 있다. 성서 시대에 신부는 각종 장식품과 화려한 옷으로 단장하였다. (이사야 49:18; 61:10; 계시 21:2) 마찬가지로 왕국회관 결혼식에서도 그러한 점에 다양성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신부는 특별한 신부 ‘드레스’를 입기도 하고 혹은 자기가 원한다면, 후에 축제의 기회에 입을 수 있는 어떤 옷을 입을 수도 있다.
결혼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도 다양성이 있다. ‘레바논’에서는 보통 신부와 신랑의 친한 벗이 들러리를 선다. (마태 25:1; 요한 3:29) 보통 이 행복한 기회에 매우 가까운 동료는 영적 형제 자매들 곧 여호와를 영원히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을 택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결혼 ‘파티’에 부모가 참석하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면, 신랑 신부가 자신의 취미에 따라 이러한 마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신랑 신부는 다른 문제에 있어서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획할 수 있다. 그들이 선물을 교환할 것인지, 어떤 특정한 방법으로 입장할 것인지, 결혼식 후에 다른 장소에서 다과를 나눌 것인지 등등은 그들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들이 지방 습관을 알고는 있지만, 전통에 예속된 것처럼 얽매일 필요는 없다.b 중요한 것은 참석한 모두가 즐거움을 얻고 영적으로 격려를 받을, 행복하고 위엄있는 결혼식을 갖는 것이다.
누가 회관을 사용할 수 있는가?
여호와의 증인들이 어느 가정이나 혹은 세속적인 결혼식을 행하는 어떤 장소에서 결혼식을 가져도 물론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왕국회관에서 결혼식을 갖고자 한다면, 그러한 문제를 처리하는 세명의 회중 위원회를 만나 보아야 한다.
이들 봉사자들은, 결혼하려는 쌍방이 성경적으로 결혼할 자유가 있으며, 회중에서 좋은 신분을 가지고 있는가를 확인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당사자들로부터 그들이 어떤 형태의 결혼식을 계획하고 있는지를 알아 볼 것이다. 위원회는 개개인의 취향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들의 취미를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계획된 것 중에 어떤 사람을 실족하게 하거나 회중의 평화와 연합을 해칠 만한 것이 있지 않나 확인할 것이다.—고린도 전 1:10; 14:33.
‘주 안에서만 결혼하라’는 분명한 성서의 충고와 일치하게, 여호와의 증인들은 어느 그리스도인을 아직 침례받지 않고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어떤 사람과 결혼하도록 결코 격려하지 않는다. (고린도 전 7:39) 만일 어떤 사람이 성서의 이 조언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는 여러 가지 문제거리와 슬픔을 당할 가능성이 많다.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이 점을 증명한다. (느헤미야 13:25-27) 그러나 그러한 결혼식을 왕국회관에서 갖도록 허락할 수 있는가?
감독자들의 위원회가 그 점을 결정할 것이다. 어떤 경우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리를 배우기 전에 약혼하였던 사람과 결혼할 계획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또 어떤 경우는 입장이 전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각 경우를 개별적으로 검토할 것이다. 이들 봉사자들은 제반 사실을 알고 있으며, 지방에 어떤 영향이 미칠 것인지를 알고 있으므로 어떻게 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유익이 되겠는가를 결정할 수 있다.
어떤 경우는 아직도 여호와의 증인과 성서를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이 왕국회관에서 결혼을 하였다. 예를 들면, ‘덴마크’에 사는 어느 신랑 신부는 자기 고향인 ‘스페인’으로 가기 전에 신부의 집 근처에 있는 왕국회관에서 결혼식을 갖고자 하였다. 회중을 돌보고 있는 봉사자들은 허락을 하였다. 그들은 신랑 신부가 그리스도인이 될 방향으로 잘 발전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결혼 당사자들과 그의 벗들 및 친척들이 결혼 주례사에서 주어지는 성서의 충고로부터 유익을 얻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신도 왕국회관에서 행해지는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다면, 그 결혼식이 즐겁고 위엄 있고, 행복하고, 영적으로 유익한 기회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 지방 습관을 반영하는 어떤 점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점들은 신랑과 신부의 개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또한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에 기초한 유익하고 격려적인 결혼에 관한 연설도 들을 것이다.
[각주]
a 결혼식과 결혼식 준비는 회관에서 열리는 정상적인 집회 시간 외에 행해진다.
b 결혼 습관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파수대」 1969년 5월 15일호 235-238면에 나와 있다. 피로연에 관하여는 1969년 8월 15일호 364-367면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