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비길 데 없는 돕는 분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 2.
1. 최대의 돕는 분은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최대의 돕는 분은 창조주 여호와 하느님이십니다. 지상의 모든 생물들은 창조주께서 오래 전에 존재케 하신 생명을 위하여 필수적인 천연 순환으로부터 끊임없이 혜택을 받고 있읍니다. 인간의 탐욕과 천연 자원의 남용만 없었다면 이 지구는 훨씬 더 많은 인구를 편안히 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동물이나 식물에 피해가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감받은 「시편」 필자가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 것도 당연한 일입니다.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시 145:16.
2. 여호와께서는 보통 인식이 없는 인간들을 어떻게 다루어 오셨읍니까?
2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역행하는 자들에게 햇빛을 비취지 않게 하시고 비를 내리지 못하도록 능력을 사용하신 경우가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읍니다. (출애굽 10:21; 아모스 4:7) 일반적으로, 인식이 없는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풍부하신 마련으로부터 혜택을 받아 왔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 사실에 주의를 환기시키셨읍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태 5:45.
3. 여호와께서 일반적으로 인류를 다루신 방법으로부터 하나님의 종들은 어떠한 격려를 받을 수 있읍니까?
3 만약 전능하신 분께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러한 친절을 보이신다면 그분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실 것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읍니다! 그분은 “정의와 공의를 사랑”하는 분입니다. (시 33:5) 그러므로 그분은 백성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결코 무시하는 일이 없으시며, 도움을 요청하는 그들의 소리에 대답하시지 않는 일이 결코 없읍니다. 하나님의 충실한 종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시 145:18, 19.
무쌍의 돕는 힘
4. 시편 148:2-6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여호와의 능력은 얼마나 큽니까?
4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도우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읍니다. 그분은 모든 환경 아래서 도움을 베푸실 능력이 있읍니다. 그분의 능력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이 우주를 영원히 존재하게 하실 수 있읍니다. 이것은 시편 148:2-6을 보면 분명합니다. 거기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해와 달과 별들을 “영영히 세우”셨음을 알려 줍니다.
5. 여호와께서는 자연의 힘에 대하여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까?
5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거대한 자연의 힘을 조절하시며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러한 것들을 사용하실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종 ‘욥’에게 이 점을 이렇게 지적하셨읍니다. “네가 눈 곳간에 들어 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내가 환난 때와 전쟁과 격투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저축하였노라.” (욥 38:22, 23) 여호와께서는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계실 때 영의 작용을 통하여 지진을 일으키고 벼락을 내리시고 바다나 강물을 마르게 하실 수도 있읍니다.—사무엘 상 14:15; 사무엘 하 22:15; 시 66:6; 74:15.
6. 참 그리스도인들이 곤경에 처할 때 하나님의 영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읍니까?
6 성령 즉 활동력은 언제나 여호와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강력한 도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서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되는 사람이 있으면, 전능자께서는 성령을 사용하여 그에게 성경 원칙을 생각나게 하고 그 원칙이 그의 경우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이해하게 도울 수 있읍니다. (요한 14:26) 이렇게 해서 그는 인내하도록 힘을 얻게 되고 선한 행실을 유지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성령을 사용해서 종들의 마음과 정신을 감동시켜 동료 신자들의 필요에 응하게 하여 도움을 베풀게 할 수 있읍니다. (마가 10:29, 30) 여호와께서는 때때로 성령으로 통치자들까지 움직여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게 하실 수도 있읍니다. 잠언 21:1의 내용과 같습니다.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7. 시편 34:7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돕기 위하여 누구를 사용하실 수 있읍니까?
7 지존자께서는 또한 수백 수천만의 능한 천사들을 원하는 대로 부리실 수 있읍니다. (다니엘 7:10) 지상의 종들을 돕기 위하여 이들을 사용하신다는 것이 시편 34:7에 나타나 있읍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저희를 건지시는도다.”
감동적인 기록
8. 여호와께서 구원하신 행동에 관한 성서 기록이 우리에게 어떠한 효과가 있을 수 있읍니까?
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들에게 돕는 분으로서의 비할 데 없는 능력에 대한 믿음의 확실한 근거를 갖게 하시기 위하여 그분이 구원하신 많은 행동의 믿을 만한 기록을 마련해 주셨읍니다. 성서에 들어 있는 그 기록은 하나의 기적의 환상이 ‘히브리’ 예언자 ‘엘리사’의 사환에게 있었던 바와 같은 효과가 우리에게도 있게 할 수 있읍니다. 그때 이러한 일이 있었읍니다. ‘시리아’ 즉 ‘아람’의 강한 군대가 ‘이스라엘’의 도시 ‘도단’을 포위하고 예언자 ‘엘리사’를 사로 잡으려고 하였읍니다. ‘엘리사’의 사환은 공포에 질려서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고 외쳤읍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 ‘엘리사’의 대답이었읍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리고 나서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열왕 하 6:15-17) 이 기적의 환상은 망상이 아니었읍니다. 과연 여호와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아람’ 군대를 잠시 눈멀게 해서 ‘엘리사’를 사로 잡으려는 계획을 좌절케 하셨읍니다.—열왕 하 6:18-23.
9. 여호와께서는 ‘바락’ 시대에 ‘이스라엘’을 구출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자연의 힘을 사용하셨읍니까?
9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을 구출하신 기록들은 참으로 믿음을 강화시켜주고 감동적입니다. 자연의 힘을 사용하신 한 가지 특기할 만한 구출이 ‘가나안’의 ‘야빈’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압제할 때에 일어났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구출하시기 위하여 ‘바락’을 일으키셨읍니다. ‘바락’은 만명의 군사를 모아서 ‘다볼’ 산에 진을 치게 하였읍니다. 훌륭한 장비를 갖추고 훨씬 더 많은 군사와 900승의 병거를 이끈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즉시 ‘기손’ 강이 흐르는 평야에 진쳤읍니다.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바락’과 그의 군대를 구출하러 임하셨읍니다. 광풍과 함께 일어난 홍수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는 ‘시스라’의 군대를 이동할 수 없게 하신 것 같습니다. 범람한 강물은 땅을 수렁으로 변하게 하였읍니다. 말과 병거들은 진흙 속에 빠졌읍니다. ‘시스라’의 군대들은 ‘바락’의 군사 앞에서 몹시 놀라 도망하였읍니다.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지류의 물이 합류하여 범람하게 된 ‘기손’ 강물은 시체를 모두 떠내려 보냈읍니다. 군대 장관 ‘시스라’는 도보로 도망하였다가 수치스럽게도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에게 죽임을 당하였읍니다.—사사 4:12-21; 5:20, 21.
10. 우리는 여호와께서 고대 ‘이스라엘’을 구하시기 위하여 천사들을 사용하신 어떠한 예들을 성경에서 볼 수 있읍니까?
10 전능하신 분이 행하시는 큰 일에 천사들이 두각을 나타낸 때가 있읍니다. ‘바로’가 노예화한 ‘이스라엘’ 자손을 해방시키기를 거절하였을 때 “천사의 대표자”들(신세)은 ‘애굽’에게 파멸적인 재앙을 가져오는 일에 가담하였읍니다. (시 78:43-51) 여러 세기 후에 ‘산헤립’의 휘하에 있는 ‘앗수르’ 군대가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을 위협하였읍니다. 충실한 왕 ‘히스기야’가 왕위에 있던 때였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읍니다. 하룻밤에 여호와의 천사는 ‘앗수르’ 군사 185,000명 곧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장관들을 멸”하였읍니다. (열왕 하 19:35; 역대 하 32:21) 자기의 군대의 가장 요긴한 부분을 잃은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포위할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11. 천사들은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들에 대하여 어떠한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까?
11 여호와의 강력한 천사들은 아직도 지상에 있는 여호와의 백성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열심히 섬기고 있읍니까? 분명히 그러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다른 사람들을 실족시키는 심각성을 깨우치시기 위하여 그 문제에 천사가 관련되는 점을 강조하셨읍니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태 18:10) 예수의 말씀을 헌신한 그리스도인 각자에게는 그에게 임명된 특별한 보호의 천사가 있는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읍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전체적으로 참 그리스도인의 영적 복지를 위하여 보살피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이 사실은 히브리 1:14에 있는 질문 형태의 내용으로 분명합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우리에게는 천사를 통한 참으로 훌륭한 도움이 있는 것입니다!
12.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하나님의 영을 통하여 놀라운 도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려줍니까?
12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는 여호와께서 자기의 영을 통하여 참으로 훌륭한 도움을 베푸신다는 좋은 예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참으로 거대한 책임이 놓여져 있었읍니다. 그분은 자기 아버지께서 자기를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계시며, 자기가 흠없이 충실성을 지킬 것임을 예언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아셨읍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자유 선택의 기능을 사용해야 하였읍니다. 그분이 조금이라도 실패한다는 것은 그에게 영원한 사망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아버지의 참되심에 대하여 의문을 일으키고 불완전한 인간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벗어날 기회를 상실하는 것을 의미하였을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에게는 힘을 주는 아버지의 영의 능력이 필요하였읍니다. 자기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아셨기 때문에 성서는 그리스도께서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다고 알려줍니다. (히브리 5:7) 예수께서 죽으시기까지 자기의 완전성을 유지하셨다는 사실은 그분의 아버지께서 도움을 구하는 그분의 부르짖음에 대답하셨음을 증명해 줍니다. 그분은 영으로써 아들에게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13.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3 시련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그와 같은 도움을 받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야고보 1:2-5) 그러나 예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개인적인 선택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은 아무에게도 특정한 길을 가도록 강요하지 않습니다. 각자는 진정으로 영의 도움을 원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시험을 저항하도록 도움을 간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 그의 머리에 떠오르게 하는 성경의 원칙을 잘 듣고 기꺼이 그 원칙과 일치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14. 동료 신자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데 있어서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관련이 있읍니까?
14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도움을 동료 신자들을 통하여 받을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역시 하나님의 영이 관련됩니다. 그 영이 참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그들이 그리스도인 형제들 중 누가 신체적으로나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들의 정신과 마음에 작용하는 하나님의 영은 그들에게 이러한 도움을 베풀어야 하겠다는 느낌을 갖게 하고 그것에 따라 신속히 행동하게 합니다.
15, 16. (ㄱ) 동료 신자들을 돕는 일에 있어서 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 보다 더 반응이 좋습니까? (ㄴ) 동료 신자들은 왜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가치있는 통로이며, 그렇지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서는 안됩니까?
15 물론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처지에 있는 사람이 실제로 응할 것이냐의 여부는 하나님의 영의 권고에 대한 감수성에 달려 있읍니다. 때때로 영의 촉구력을 저항하게 하는 자기 중심적인 이유 때문에 도움을 베푸는 일에 응하지 않는 일이 있을 수 있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지어 제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도 형제들을 돕는 일에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 보다 훨씬 더 자진적이고 열심히 그렇게 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인들에게 보낸 편지에 주의를 돌려 보십시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빌립보 4:14-18.
16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들은 영적 발전의 정도가 다양하고 개성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가 ‘빌립보’인들처럼 똑같은 정도의 관대한 정신을 기대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많은 성원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에 매우 예리하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제자들에게 시련과 고난의 때에 도움이 될 믿음직한 통로임을 보증합니다.
17. 하나님의 영은 믿지 않는 자들까지도 움직여서 참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행동하게 하는 어떠한 기능에 영향을 미치게 할 수 있읍니까?
17 격려가 되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영이 여호와의 숭배자들이 아닌 사람들까지도 하나님의 종들을 돕도록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합니까? 그 점은 이러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읍니다. (창세 1:28) 이것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얼마의 경건한 특성들 즉 동물의 것들보다 우월한 공의, 지혜, 사랑 및 능력을 소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에게는 또한 옳고 그름에 대한 내적 감각인 양심 기능이 있읍니다. (로마 2:14, 15) 그러므로 성령은 여호와의 종들이 아닌 사람들의 정신에 그들의 양심을 움직이게 하는 일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18, 19. ‘모르드개’와 ‘에스더’ 시대에 있었던 어떠한 사건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믿지 않는 자를 사용하실 수 있다는 예입니까?
18 ‘모르드개’와 ‘에스더’ 시대의 ‘아하수에로’ 왕(‘크세르크세스’ 1세)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다. 이 왕은 재상 중의 하나인 ‘하만’에게 모든 ‘유대’인들을 멸절시키라는 조서를 포고할 권위를 부여하였읍니다. 왕도 모르게 이 조서에는 ‘유대’인임이 알려져 있지 않던 왕후 ‘에스더’와 그의 사촌 ‘모르드개’가 포함되어 있었읍니다. ‘하만’이 ‘유대’인을 멸절시킬 것을 추천할 때에 이들에 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후 어느날 밤 ‘아하수에로’ 왕은 잠을 이룰 수 없어서 어떤 이유로서인가 일지를 읽게 하였읍니다. 읽는 중에 왕은 한번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모르드개’가 발견해서 보고한 일이 있음을 알게 되었읍니다. ‘모르드개’에게 아무런 상을 내리지 않았음을 알게 된 ‘아하수에로’ 왕은 공의감에 못이겨 ‘모르드개’에게 상을 주어야 하겠다는 결심을 갖게 되었읍니다.—에스더 3:1-15; 6:1-3.
19 다음날 아침 일찌기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 허락을 받기 위하여 도착하였을 때에 사태는 역전되었읍니다. ‘하만’은 자기의 신청을 내지도 못하고 도리어 대중 앞에서 ‘모르드개’를 영예롭게 하는 일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에스더 6:4-11) 이것이 마침내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항할 수 있게 하는 조서를 내리게 한 연쇄적 조치의 첫 단계였읍니다. 이 일에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적시에 그분의 영은 ‘아하수에로’에게 일지를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였고 그 후에 일을 바로잡게 한 것이 분명합니다.
20. ‘에스라’는 ‘아닥사스다’ 왕과 다른 관리들과 어떠한 경험을 하였읍니까?
20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활동력이 권위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에 작용한 결과를 비슷하게 목격하였읍니다. 제사장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아름답게 하는 데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롱기마누스)의 지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읍니다. “우리의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찌로다. 그가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 또 나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도다.” (에스라 7:27, 28) 하나님의 영은 또한 분명히 왕의 고문들과 고위 방백들이 ‘에스라’의 하는 일에 호의를 갖도록 움직였음이 분명합니다.
21. 하나님께서 과거에 구원을 베푸신 일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증해 줍니까?
21 여호와께서 과거에 자기의 헌신한 종들을 도우신 기록은 참으로 격려적인 것입니다! 이 기록들은 필요한 도움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온다는 것을 인식하게 합니다. 도움이 한 가지 방법으로 오지 않으면 다른 방법으로 반드시 옵니다.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신다고 선언하였읍니다. (시 94:14) ‘모르드개’는 그의 동족이 멸절의 조서에 직면하였을 때에 그렇게 느꼈읍니다. 자기의 사촌인 ‘에스더’에게 동족을 위하여 탄원하라고 권고할 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리라].”—에스더 4:14.
22. 사람의 견지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상태 같이 보일 때에도 여호와의 도움을 베푸실 능력을 왜 확신해야 합니까?
22 사람의 견지로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것 같이 보일 때가 있읍니다. 해결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 어떤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것이 성취되는 것을 아무 것도 막을 수 없읍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고기에 대하여 불평하였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분명히 하셨읍니다. 모세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대답은 이러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 일개월 간을 먹게 하시리[라].” ‘모세’는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읍니다.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일개월간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떼와 소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여호와의 대답은 이러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여호와의 손은 결코 짧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바람을 일으켜 ‘이스라엘’ 진영으로 풍부한 메추리기를 몰아오게 하셨읍니다.—민수 11:18-23, 31.
23. 우리는 여호와께서 죽음 혹은 심한 박해에서 기적으로 우리를 구출하실 것을 기대해야 합니까?
2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백성을 위하여 틀림 없이 기적을 행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음이나 폭력적인 박해로부터 기적의 구출을 보증하실 것을 기대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종들 중 얼마가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와 같이 충실하게 죽는 것이나 잔인한 고통을 당하는 것을 허락하심으로 여호와의 목적을 이루는 수가 있읍니다. 충실하게 인내함으로써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숭배가 이기적인 생각에 기인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특권을 가집니다. 이렇게 해서 ‘욥’과 관련해서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 올” 것이라는 ‘사단’의 도전이 거짓임을 그들은 증명합니다.—욥 2:4.
24. ‘사드락’과 ‘메삭’ 및 ‘아벳느고’는 여호와의 종들을 도울 수 있는 여호와의 능력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어떻게 표명하였읍니까?
24 ‘느부갓네살’ 왕 통치 때에 ‘바벨론’에 사로 잡혀 있던 세 ‘히브리’인들—‘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도움을 베푸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표명하였읍니다. 그들이 계속 ‘느브갓네살’이 세운 형상에 경배하는 것을 거절한다면 불풀무에서 사형을 당한다는 선고를 받자, 그들은 담대하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7, 18.
25. 짧은 기간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5 이 제도에서 짧은 기간 어떤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이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승인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 점에 주의를 이끄셨읍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요한 12:25) 비명의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창조주와 그분의 아들과의 선한 관계를 희생하는 사람은 그의 영혼 곧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자격을 영원히 상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한편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러운 제자로서 죽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진 부활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26. 어떻게 함으로 우리는 항상 여호와로부터 도움을 기대할 수 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6 우리 중의 얼마는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흔들리지 않는 헌신의 증거로 사람의 손에 죽임을 당할지 모르지만 우리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시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그분은 우리를 그분의 승인받은 종의 신분을 유지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섬기려고 노력하는 한 그분과의 우리의 관계는 안전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 8:38, 39) 그러므로 우리가 장차 어떠한 일을 당하게 되든지 우리는 여호와와의 승인된 관계를 보존하도록 우리를 도울 여호와의 능력을 항상 의지하도록 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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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의 사환의 눈이 열려 여호와께서 비길 데 없는 돕는 분이심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