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이 제명당하였을 경우 ···
1, 2. (ㄱ) 가족적인 종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고라’ 당시에 일부 가족 성원들은 어떠한 결정을 해야 하였읍니까?
‘아담’이 얼마 동안 독처한 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라.]” 그런 다음에 그분은 ‘하와’를 창조하시고 인간 결혼을 창시하셨읍니다. (창세 2:18, 21, 22) 그 때부터 땅의 인구는 증가하였읍니다. 이렇게 하여 사람마다 많은 친척들을 갖기에 이르렀읍니다. 일부 가족 성원들, 예를 들어 자녀들이 가까이에 살지 않는 경우에도 방문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읍니다.—창세 1:28; 욥 1:1-5.
2 하나님께서는 종교적인 신앙 때문에 아무런 분열도 생기지 않도록 가족들을 참 숭배 가운데 연합시킬 것을 목적하셨읍니다. 그러나 종교가 가정의 쟁점이 된 사건들이 발생하였읍니다. 그 한 예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반역하였을 때 일어났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들 종교적인 반역자들이 아니라 ‘모세’와 ‘아론’을 통하여 다루고 계셨음을 확증하셨읍니다. 그 때 ‘모세’는 백성들에게 반역자들의 장막에서 떠나라고 말하였읍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자녀들과 그 집안 사람들은 어떻게 하려고 했읍니까? 그들은 가족에 대한 충성을 여호와와 그분의 회중에 대한 충성보다 앞세울 것이었읍니까? 반역자들의 가까운 친척들 대부분은 가족을 하나님보다 앞세웠읍니다. 여호와께서는 반역자들과 함께 이들 친척들을 처형하셨읍니다.—민수 16:16-33.
3. ‘고라’의 일부 가족 성원들은 어떠한 현명한 결정을 하였읍니까?
3 하지만 ‘고라’의 일부 아들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에 대한 충성을 고수하였읍니다. 그들은 ‘고라’의 나머지 집안 사람들과 ‘다단’과 ‘아비람’의 가족들과 함께 처형당하지 않았읍니다. (민수 26:9-11) 사실상 ‘고라’의 이 아들들의 후손들은 나중에 축복을 받아 성전에서 특별한 봉사를 하게 되었으며 성서에 영예롭게 언급되어 있읍니다.—역대 하 20:14-19; 시 42, 44-49, 84, 85, 87편.
4. ‘이스라엘’에서 가족에 대한 충성이 어떻게 또 다른 방법으로 시험이 될 수 있었읍니까?
4 어떤 ‘이스라엘’인이 배교자가 되었을 때 가족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두고 동일한 결정을 해야 하였읍니다. 이 배교자의 가족은 인간적인 감정이나 혈연 관계에 움직여서 끊어짐을 당하는 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할 것입니까? 아니면 심지어 그의 형제나 아들 딸까지도 하나님과 회중에 대한 충성이 옳은 일이며 현명한 길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입니까? (신명 13:6-11 참조) 오늘날 그리스도인 마련에 있어서는 범죄자가 형벌로 끊어짐을 당하는 일은 없읍니다. 그러나 친척이 징계를 받을 때 그리스도인들에게 시험이 될 수 있읍니다.
친척들이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다
5, 6. (ㄱ) 어떻게 종교 때문에 가족 분열이 발생할 수 있읍니까? (ㄴ)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왜 타협해서는 안 됩니까? (시 109:2-5)
5 가족 관계와 그 애정은 매우 강할 수 있읍니다. 이것은 자연적이며 하나님의 마련과 일치합니다. (요한 16:21) 그러나 이 강력한 유대가 또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려운 시험이 될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오는 한 가지 결과가 친척들의 반대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이렇게 설명하셨읍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 생각하지 말라.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려고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맞서게 하고 딸이 그 어머니와 맞서게 하고 며느리가 그 시어머니와 맞서게 하려고 왔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일 것이다. 나보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4-38, 새번역.
6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원수 관계가 존재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의 깨끗하고 도덕적이고 정직한 종들이 된 데 대해 친척들이 반대하거나 미워할 아무런 이유도 없읍니다. 그러나 참 그리스도인들은 가족을 하나님보다 앞세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충실한 길을 계속 걷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의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때가 되어 그들은 자기 친척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걷도록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로마 9:1-3; 고린도 전 7:12-16.
7, 8. 제명으로 야기될 수 있는 가족 문제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읍니까? (신명 32:4)
7 친척들은 또한 다른 면에서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고통의 원인이 될 수 있읍니다. 이런 일은 친척이 제명되었을 때 발전될 수 있읍니다. 앞의 여러 기사에서 토론한 바와 같이, 회중에 있는 어떤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심각한 죄를 습관적으로 범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제명시킬 것을 요구하십니다. (고린도 전 5:11-13) 범죄자는 그 행실로 여호와와의 관계를 변경시켰으며, 그리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인 가족 성원들과의 관계도 그러합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데 대해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표준은 의롭고 바르기 때문입니다. (욥 34:10, 12) 또한 그 책임이 충실한 그리스도인 친척들에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친척들에게 문제를 야기시킨 것은 마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경우처럼 제명된 사람 자신입니다.
8 우리는 상이한 두가지 상황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도인이 제명되었거나 이탈한 가족 성원과 한집안에서 사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는 그러한 친척이 직접 한 집안에서 살지 않는 경우입니다.
한 집안 사람
9. 배우자가 그리스도인이 아니거나 제명되었을 때 어떠한 가족 책임이 수반됩니까?
9 어떤 사람은 자기 집안에서 아무도 믿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혼자 그리스도인이 될 수도 있읍니다. 예로서, 아내는 여호와를 섬기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남편과 “한 몸”이며 남편을 사랑하고 존경할 의무를 가지고 있읍니다. (창세 2:24; 베드로 전 3:1-6) 또는 헌신한 그리스도인인 남자와 결혼했지만 그 남편이 나중에 회중으로부터 추방된 경우일 수도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혼의 띠를 끊는 것이 아니며, 단지 사망이나 성경적인 이혼만이 결혼의 띠를 끊어지게 합니다.—고린도 전 7:39; 마태 19:9.
10, 11. 제명은 가정 내의 영적 띠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10 마찬가지로, 부모나 아들 딸과 같은 친족이 제명되거나 이탈하였을 때도 혈연 관계와 가족의 띠는 그대로 남아 있읍니다. 그러면, 이것은 한 집안에서 어떤 성원이 제명되었을 때 모든 일이 예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1 제명된 사람은 영적으로 회중으로부터 끊어짐을 당하였읍니다. 이전의 영적 유대는 완전히 절단되었읍니다. 이것은 한 집안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친족들에게도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가족 성원들은—가족의 띠를 인정하지만—그와 더는 영적 교제를 갖지 않을 것입니다.—사무엘 상 28:6; 잠언 15:8, 9.
12. 가족 성원이 제명되었을 때 영적 교제에 어떠한 변화가 있을 수 있읍니까?
12 그것은 가정 내에 존재해온 영적 교제에 변화를 의미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제명되었다면 아내와 자녀들은 그가 가족 성서 연구를 사회하거나 성서 낭독과 기도를 인도하는 일로 편안감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그가 식사 때와 같은 경우 기도하겠다고 말한다면 그는 자기 집에서 그렇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나 식구들은 하나님께 조용히 자기 자신의 기도를 드릴 수 있읍니다. (잠언 28:9; 시 119:145, 146) 가족이 성서를 함께 읽거나 성서 연구를 갖는 경우 가정 내의 제명된 사람이 참석하기를 원한다면 어떠합니까? 만일 그가 식구들을 가르치려고 하거나 자기의 종교적 생각을 전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식구들은 그가 참석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 부모는 가정 내의 제명된 자녀를 어떻게 다룰 것입니까?
13 미성년 자녀가 제명되었을 때는 부모가 여전히 그의 신체적 필요를 돌볼 것이며, 도덕적인 교훈과 징계를 베풀 것입니다. 부모는 그 자녀가 대답에 참여하는 성서 연구를 그와 직접 사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녀가 가족 연구에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 자녀에게 필요한 충고가 들어 있는 성서의 부분이나 그리스도교 서적에 주의를 이끌어 줄 수 있읍니다. (잠언 1:8-19; 6:20-22; 29:17; 에베소 6:4) 부모는 그 자녀가 성서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기를 바라면서 그를 그리스도인 집회에 동반하여 함께 앉을 수 있읍니다.
14, 15. 부모 중 제명된 분이 집으로 돌아오는 일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4 그러나 한 집안에 살지 않는 아들이나 부모 중 한분과 같은 가까운 친족이 제명된 다음에 집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면 어떠합니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상황에 따라 그 가족이 결정할 수 있읍니다.a
15 예를 들어, 부모 중 제명된 분이 병으로 인해서 또는 경제적으로 신체적으로 더는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일이 있을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인 자녀들은 성경적으로, 도덕적으로 도울 책임을 가지고 있읍니다. (디모데 전 5:8) 아마 그분은 일시적으로 혹은 영구적으로 집에서 모셔야 할 필요가 있을지 모릅니다. 또는 의료진이 있는 곳에서 돌봐지도록 마련하고 그분을 방문하는 것이 바람직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그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 그의 태도 및 가족의 영적 복지에 대해 그 가장이 가지고 있는 관심과 같은 요인에 달려 있읍니다.
16, 17. (ㄱ) 제명된 자녀가 집으로 돌아오는 가능성에 대하여 부모는 어떠한 반응을 나타낼 수 있읍니까? (ㄴ) 이 점에 대해 탕자의 비유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16 이것은 또한 집을 떠나 있는 자녀가 이제 제명되었거나 이탈한 경우에도 참될 수 있읍니다. 어떤 때는 제명된 자녀가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병이 들어 그리스도인 부모가 그를 한 동안 집으로 받아들였읍니다. 그러나 각자의 경우 부모들은 그 개개 환경을 신중히 고려할 수 있읍니다. 제명된 자녀가 자력으로 살아 왔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보다 편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그가 돌아오고자 하는가? 그의 도덕적인 생활과 태도는 어떠한가? 그가 집안으로 “누룩”을 가지고 들어올 것인가?—갈라디아 5:9.
17 예수의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달려 나가 만나서 그를 받아들였읍니다. 아들의 불쌍한 상태를 보고 아버지는 자연스런 부정(父情)을 나타냈읍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아들이 창녀를 집에 데리고 돌아 왔거나 아버지의 집에서 죄많은 생활을 계속할 의향을 가지고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에 유의할 수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진정으로 회개를 나타냈으며, 깨끗한 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돌아온 것이 분명합니다.—누가 15:11-32.
같은 집에서 살지 않는 제명된 친척의 경우
18, 19. (ㄱ) 한집안에 살지 않는 제명된 친척들과 교제하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ㄴ) 그렇게 대하는 것이 왜 적절합니까? (디모데 후 2:19)
18 우리가 고려해야 할 두번째 상황은 한집안 혹은 한 가정에서 살지 않는 제명되었거나 이탈한 친척의 경우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여전히 혈연이나 인척 관계에 있기 때문에 필요한 가족 문제의 일부 제한된 일을 돌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는 같은 집에 살기 때문에 접촉과 대화가 불가피한 경우와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영감받은 성서의 교훈을 뚜렷이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 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고린도 전 5:11.
19 그러므로 같은 집에 살지 않는 제명된 사람과 친척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불필요한 교제를 피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며, 사업 거래도 최저 한도로 제한하려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치적임이, ‘그가 제명되었지만 우리는 친척이기 때문에 예나 다름없이 대할 수 있다’는 잘못된 견해를 취했을 때 발생한 보고들로부터 명백합니다. 한 지역으로부터의 보고는 이러합니다.
“제명된 한 사람의 친척들이 회중의 약 삼분의 일이나 되었읍니다. 그의 모든 친척들은 그와 계속 교제하였읍니다.”
그리고 높이 존경받는 한 장로는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읍니다.
“이 지방에서는 큰 가족을 가진 얼마의 제명된 자들이 왕국회관 현관에 들어서면 (어느 제명된 자는 여전히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음이 알려져 있음에도) 등을 툭툭치며 악수를 하는 등의 환영을 받는 일이 있읍니다. 나는 제명된 자들이 그들의 행동이 여호와와 그분의 백성의 증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며 그들이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야 할 필요성을 느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의 행실을 알고 있는 그들의 많은 가족 성원들이 계속 인사를 한다면 어떻게 제명된 자들이 변화를 하도록 도움이 될 수 있겠읍니까?”
20, 21. 친척 가운데 제명된 자가 있을 때 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까? (디모데 후 2:22)
20 제1세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친척 관계에 있는 회중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제명되었을 때 모든 친척들이 제명된 자와 성경적인 일을 논하지 않는 한 보통으로 지내는 일은 상관없었읍니까? 아니었읍니다. 만일 그랬었더라면 회중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는 명령을 실제로 적용하지 않는 것이었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5:13.
21 크게 조심해야 할 점은 제명된 범죄자로서의 그의 상황을 결코 등한히 하거나 경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고라’의 아들들이 잘 보여준 바와 같이 우리의 첫째가는 충성은 여호와와 그분의 신권적 마련에 바쳐져야 합니다.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표준을 옹호하고, 범죄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조직된 백성과의 교제를 추구할 때 그분의 보호와 축복이 우리와 함께할 것이라는 점입니다.—시 84:10-12.
사교적인 모임과 제명된 친척들
22. 제명된 친척들 때문에 가족적인 모임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읍니까?
22 보통, 친척들은 식사나 ‘피크닉’ 때, 혹은 가족끼리 모일 때, 또는 기타 사교적인 모임에 종종 함께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회개하지 않고 죄의 길을 계속 걸어서 제명되기에 이르렀다면, 그의 그리스도인 친척들이 이렇게 함께 모일 때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읍니다. 그들은 그가 여전히 친척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추방된 범죄자와 “사귀지 말라”는 ‘바울’의 충고를 무시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23. 그리스도인 결혼식에 제명된 친척이 참석한다면 그 상황은 어떠할 것입니까?
23 제명된 친척이 참석할지도 모르는 모임에 가족 성원들이 참석할 것인가에 관하여 어떤 규칙을 찾으려고 할 필요는 없읍니다. 이것은 관련된 자들이 ‘바울’의 교훈과 일치하게 결정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고린도 전 5:11) 그러나 제명된 자가 참석하려는 곳에 친척이 아닌 ‘증인’들이 초대될 때 그 사람들이 상당히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쌍의 그리스도인들이 왕국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합시다. 제명된 사람이 결혼식 때 왕국회관에 나온다면 그는 분명히 신부 들러리나 신부를 “넘겨주는” 사람이 될 수 없읍니다. 그런데 결혼 피로연이 있다면 어떠합니까? 이 기회는 예수께서 참석하신 ‘가나’에서와 같이 행복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기회입니다. (요한 2:1, 2) 그러나 제명된 친척이 참석하도록 허용되거나 심지어 초대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까? 만일 그가 참석할 예정이라면 친척이건 아니건 간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 전서 5:11에 있는 ‘바울’의 교훈을 생각하고 그와 함께 먹고 사귀는 그 장소에 가서는 안되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다.
24.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교제를 최대로 즐길 수 있읍니까? (잠언 18:24)
24 그러므로 때로는 그리스도인들이 보통 가족 성원들이 함께 모이는 곳에 제명되었거나 이탈한 친척을 참석시킬 수 없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을 염두에 두고 회중의 충성스러운 성원들과의 교제를 즐길 수 있읍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가 3:35.
25, 26. 제명된 친척이 사망할 때, 장례식과 관련된 상황은 어떠할 것입니까?
25 사실, 그리스도인이 죄에 굴복하여 제명 처분을 받을 때 그는 많은 것, 즉 하나님에게 승인받은 신분, 행복한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원, 그리고 그리스도인 친척들과 가졌던 많은 교제를 포함한 형제들과의 유쾌한 교제 등을 상실합니다. (베드로 전 2:17) 그가 초래한 고통은 심지어 그의 사후까지도 계속될 수 있읍니다.
26 제명된 상태에 있을 때 그가 사망한다면 장례식 마련에 문제가 있을 수 있읍니다. 그의 그리스도인 친척들은, 그것이 지방 관습일 때, 왕국회관에서 장례사를 해주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회중으로부터 추방된 사람에게 그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죄짓는 일을 중단하고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하는 등 회개의 증거를 나타내 왔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자 하였다면, 집이나 장지에서 성서 연설을 하는 것을 일부 형제들의 양심은 허락할지 모릅니다. 죽은 자의 상태에 관한 그러한 성서 연설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증거가 되고 친척들에게 위안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제명된 자가 여전히 거짓 가르침을 옹호하고 있었고 경건치 않은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그러한 연설까지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입니다.—요한 2서 9-11.
우리 모두를 위한 교훈
27.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27 우리 모두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잠언 29:26) 이것은 가증히 여겨야 할 행실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을 하나님께서 몹시 싫어하신다고 성서가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잠언 6:16-19) 그러나 이것은 또한 우리 개개인을 심판하시는 점에 있어서도 참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육체의 일”을 계속 행하는 “불의한 자”들은 그분의 왕국을 상속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읍니다. (고린도 전 6:9, 10; 갈라디아 5:19-21) 그러한 자들은 하늘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없으며, 왕국의 지상 영역에도 합당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깨끗한 회중 안에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표준에 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저 “누룩”을 자기의 거룩한 백성 가운데 남겨 두어 부패케 하는 영향을 미치게 버려 두시지 않을 것입니다.—고린도 전 5:6-13.
28. 제명 처분 문제가 어떻게 우리의 충성에 대한 시험이 될 수 있읍니까?
28 가까운 친척이 제명될 때 인간의 감정 때문에 우리에게 큰 시험이 될 수 있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감정과 가족의 띠는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에 강합니다. 그리고 결혼 배우자가 제명되었을 때 역시 강력히 작용합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심사숙고해 볼 때 우리의 감정 때문에 하나님의 현명한 교훈과 지도를 무시하게 된다면 아무에게도 유익이 되지 않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도 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하지 않는 범죄자를 제명시키는 하나님의 마련을 포함하여 그분의 완전히 의로운 가르침에 우리의 온전한 확신을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회중에 대하여 충성을 고수한다면 죄를 범한 자도 언젠가는 회개하고 회중으로 복귀될 수 있읍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떠하든 우리는 ‘다윗’이 만년에 말한 다음과 같은 말로부터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모든 규례를 내 앞에 두[었음이로다.]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대로, 그 목전에 내 깨끗한대로 내게 갚으셨도다. 자비한[충성스러운, 신세] 자에게는 주의 [충성스러우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 주께서 곤고한[겸손한, 신세] 백성은 구원하시[리이다.]”—사무엘 하 22:23-28.
[각주]
a 장로와 봉사의 종들의 입장에 관한 설명이 「파수대」 1978년 12월 호 “독자로부터의 질문”란에 나와 있다.
[20면 삽화]
그리스도인 자녀들의 집에서 제명된 아버지를 돌볼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21면 삽화]
탕자는 죄많은 생활을 계속하려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회개하였으며, 아버지는 그를 받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