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재난이 임박했으므로—‘예수를 생각하라’
“거룩한 형제들아, ··· 우리의 믿는 도리의[우리가 고백하는, 새번역]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 3:1.
1, 2. 우리는 ‘로마’에 기념물이 있는 고대의 한 재난으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까?
우리는 ‘로마’에서 재난 곧 우리의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한 재난에 관한 생생한 증언을 발견할 수 있읍니다. 고대 ‘로마’ 광장에는 ‘티투스’ 장군이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멸망시킨 일을 기념하는 ‘티투스’ 개선문이 세워져 있읍니다. 우리는 이 개선문의 부조(浮彫)에서 사슬에 묶인 유대인들이 그들의 성으로부터 탈취된 전리품을 강제로 운반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읍니다.
2 그리스도인들인 우리는 그 멸망이 있기 약 9년 전에 기록된 것으로 생각되는 시기 적절한 성서의 교훈을 고려해 봄으로써 그 재난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 교훈이 바로 「히브리서」에 들어있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과 ‘유대’에 있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써 보낸 것입니다.
3.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왜 어려운 상황하에 있었읍니까?
3 그 당시 우리의 형제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었읍니다. ‘유대’ 지방은 ‘로마’의 지배하에 안정되어 있는 것같이 보였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반역적이었읍니다. (사도 5:36, 37) 예수의 추종자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유대’인 편에 서서 ‘로마’를 대적하지 않았으며, 그로 인하여 그들이 당한 ‘유대’인들의 혹심한 압력을 상상해 보십시오. (요한 17:16)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당한 또 다른 이유는 ‘유대’인들의 우월감이었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율법 언약 안으로 들어왔고 ‘레위’ 제사장과 제물을 포함한 하나의 숭배 방식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4. (ㄱ) 예수께서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나타나셨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그 종결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예언하셨읍니까?
4 그러나 ‘메시야’의 희생적 죽음 직후에 ‘유대’인의 시대는 성전 제물, 제사장, 절기 및 안식일의 마련과 함께 종말을 고하고 말았읍니다. (갈라디아 3:24, 25; 골로새 2:13-17) 그리하여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이 한 인간으로서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단번에” 나타나셨다고 편지할 수 있었읍니다. (히브리 9:26, 신세; 1:2) 그 종결은 성전의 멸망과 더불어 조만간 부인할 여지없는 명백한 사실이 될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 그 멸망을 예언하셨을 때, 제자들은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는가를 물었읍니다. (마태 23:37-24:3) 예수께서는 끝이 오기 전에 전쟁, 식량 부족, 지진, 질병 및 왕국 전파 사업이 확장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대답하셨읍니다. (마태 24:4-14; 누가 21:10, 11) 이러한 말씀들은 예수께서 그 예언을 하셨을 때부터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던 당시까지의 세대 안에 성취를 보았읍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없었던 큰 환난”을 예언하셨읍니다. (마태 24:21)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에 임한 그 파괴적인 환난은 그 도시에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환난이었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단지 소규모적인 성취에 불과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모든 인류 세상에 대한 “큰 환난”은 먼 장래에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5. 아직도 더 큰 규모의 “큰 환난”이 어떻게 있게 될 것입니까?
5 사실들은 예수의 예언적 말씀이 그분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때에 보다 더 큰 규모로 중요한 성취를 보게 된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마태 24:3, 신세) ‘예루살렘’에 환난이 있은 지 수십년이 지나서 기록된 계시록 제 6장에도 역시 전쟁, 기근 및 질병이 예언되어 있읍니다. 이것은 ‘유대’ 지역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지역을 망라하게 될 것이었읍니다. 왜냐하면 「계시록」에서는 그 전쟁이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릴 것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계시 6:4) 1914년부터 1918년까지 계속되었던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상태는 우리가 “큰 환난”에서 절정을 이루게 될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이 환난은 지구상에서 악을 일소하고 하나님의 왕국 통치 아래 있는 낙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6. 「히브리서」가 우리 시대를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6 「히브리서」는 또한 우리 시대를 지적하고 있읍니다. 거기에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그때 “자기 원수들로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하늘에서 “기다리”고 계셨다고 기술하였읍니다. (히브리 10:13) 「히브리서」는 또한 “[하나님께서]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관해 말하고 있읍니다.a (히브리 1:6) 지금이 바로 그 때입니다! 증거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왕권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원수들에 대하여 행동을 취하셨음을 알려 줍니다. (계시 12:7-12)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주의를 사람이 거하는 지상으로 돌리심으로 보이지 않게 임재(臨在)하셨읍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조만간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들을 이 지상에서 철저히 일소하는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 「히브리서」에는 우리를 위한 어떠한 교훈이 들어있읍니까?
‘예수를 생각하라’
7, 8. 「히브리서」가 예수에게 주의를 환기시킨 것은 왜 적절한 일이었읍니까?
7 ‘바울’은 특히 예수에게 주의를 환기시켰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브리 8:1) 이 말이 특히, 한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적절한 교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8 예수에 대한 왜곡된 견해가 오랫동안 존재해 왔읍니다. 제 1세기의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모세’를 통해 받은 종교를 신봉하고 ‘아론’계 제사장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였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읍니다. ‘이 ‘나사렛’ 사람 예수는 다만 ‘갈릴리’ 목수의 아들에 불과하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을 귀신들린 ‘사마리아’인이라고 비난하기까지 하였읍니다. (요한 7:52; 8:39-41, 48; 9:24, 28, 2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를 생각하라’고 격려하신 것은 현명한 일이었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잡힌 견해 및 그분과의 관계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충실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읍니다.
9. ‘예수를 생각하라’는 충고가 오늘날 적절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위험을 경계할 필요가 있읍니까?
9 「히브리서」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교훈은 또한 우리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그릇된 혹은 왜곡된 견해가 아직도 많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 반대자들과 같이 예수를 격하시키기보다는 그분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하고 있읍니다. 그들의 교회들은 예수께서 삼위일체 신의 일원이며 ‘아버지’, ‘아들’, 및 ‘성령’은 동일하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에게 가장 많은 주의를 환기시킵니까? 예수입니다. 예수를 표면에 드러내고 ‘아버지’는 그늘 속으로 밀어냅니다. 이것은 참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전이 됩니다. 요한 복음 14:28에서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께서 더 크시다고 말씀하셨으며, 시편 83:18은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라고 진술하고 있읍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예수에 대한 왜곡된 견해에 과잉 반응을 보인 나머지 무의식적이나마 그분의 참다운 지위를 과소 평가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예수에 대해 균형잡힌 올바른 견해를 갖는 것이 미래를 직면하게 될 우리에게 크게 유익할 것입니다.
10. 「히브리서」는 예수의 지위에 대해 무엇이라고 알려 줍니까?
10 「히브리서」는 그리스도의 탁월한 지위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로 그 서두가 시작됩니다. 그분은 이제 영화롭게 되신 영자이시며 “[하나님의] 본체의 완전한 표현”이십니다. 이 말은 ‘아버지’와 ‘아들’이 한 위 또는 한 신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히브리서 1:3(새번역)은 예수께서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분(“하나님”, 오늘날의 영어 역본)의 오른편에 앉으셨”다고 부언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2:10 및 5:5, 8과 같은 성귀들은 또한 여호와께서 아들보다 우월하시다고 알려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지금 “[천사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이름[지위 혹은 명성]을 지니고 계십니다.”—히브리 1:4, 새번역.
11. (ㄱ) 하나님의 천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대합니까? (ㄴ) 히브리서 1:6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11 충실한 천사들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높여진 지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시편 97:7(희랍어 칠십인역)을 인용하면서 히브리서 1:6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의를 표하도록 하라.” 다른 번역판들의 번역처럼, 천사들은 ‘아들’ “앞에서 엎드리”며, “그 앞에 절”하고, “존경을 나타내야” 합니다.b 문맥을 보면, 이 말은 심지어 천사들까지도 하나님의 수석 대표자이며 높여진 아들로서 예수께 존경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읍니다. 그들은 그분이 임하시기 위해 “영광과 존귀로 관쓰”셨으며 사람이 거하는 땅에 대한 권세를 받으셨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읍니다.—히브리 2:5, 9.
12. 우리가 예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12 이것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합니까? ‘바울’은 천사들에 대한 예수의 우월성을 설명한 후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들은 일들에 대하여 보통 이상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다. 그러면 우리가 결코 떠내려가지 않을 것입니다.” (히브리 2:1, 신세)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었던 바와 같이, ‘유대’인들은 오랫동안 ‘모세’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에 주의를 기울여 왔읍니다. 우리는 예수를 통해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인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13.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어떻게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오.
13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예루살렘’이 진을 친 군대들에게 에워싸일 때 도망하는 일에 관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누가 19:43, 44; 21:20-24) ‘로마’인들은 기원 66년에 반역적인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으나 알 수 없는 이유로 퇴각하였으며 그 틈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성에서 도피해 나왔읍니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기원 70년에 ‘로마’인들이 돌아와 재난을 가져왔을 때 그들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었읍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교훈을 얻도록 합시다. 바로 목전에 임박한 세계 재난과 관련하여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예수의 말씀에 예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 예를 들어, 내가 오락에 바치는 시간의 양과 나의 직장이나 사업에 대한 나의 태도, 혹은 세속 교육에 대한 나의 견해는 내가 누가 복음 12:16-31에 있는 예수의 말씀에 주의해 왔음을 증명하는가?’
14. (ㄱ) 예수께서는 어떠한 면으로 ‘구원의 수석 대행자’가 되십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떤 의미에서 “완전하게 되”셨읍니까?
14 히브리서 2:10(신세)에서는 예수를 ‘구원의 수석 대행자’라고 부릅니다. 이 말씀은 우선 그분의 “형제”들인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적용됩니다. (히브리 2:11-17) 그러나 지상 낙원에서의 생명을 바라는 모든 사람들 역시 구원을 위해 그분에게 의존해 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완전하게, 신세]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 대제사장이라 [특별히, 신세]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히브리 5:8-10) 물론, 예수께서는 완전한 영이셨으며 지상에 계실 때에도 그분은 신체적으로 완전하셨읍니다. 그러나 우리의 제사장으로서의 그분의 역할을 고려할 때, 예수는 아직도 또 다른 의미에서 완전해지실 필요가 있었읍니다. 지상에 계신 동안, 그분은 훈련 즉 교육, 징계 및 심지어 죽기까지 순종에 대한 시험을 감수하심으로써 자비롭고 동정심 많은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하게 되셨읍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을 신뢰함
15. 「히브리서」에서 제사장에 관해 그토록 많이 언급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히브리서」를 읽어보면, 제사장들에 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이것은 “우리가 고백하는 ··· 대제사장이신 예수”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인식을 증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히브리 3:1, 새번역) ‘바울’은 “대제사장마다 사람 가운데서 취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과 속제하는 제사를 드리게” 한다고 설명합니다. (히브리 5:1; 8:3) 율법 언약 가운데 많은 부분이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이끌고 있읍니다. 그런 이유로 제사장들은 그들을 위해 제물을 바쳤으며 제사장들 역시 자기들 자신의 죄를 속하기 위해 제물을 드렸읍니다. 하지만 재삼재사 반복된 동물 희생으로는 죄를 극복하거나 혹은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완전해지게 하지 못하였읍니다. (히브리 7:11, 19, 27; 10:1-4, 11) 이것은 새로운 제물 및 새로운 대제사장과 더불어 새 언약이 필요하게 되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예레미야 31:31-34.
16.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는 어떻게 ‘이스라엘’ 제사장들보다 월등하십니까?
16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그러한 점들을 보게 됩니다. 성서에 족보가 나와 있지 않은 ‘멜기세덱’으로 전영되신 예수께서는 ‘레위’나 ‘아론’의 육적 자손을 통해 나온 제사장이 아니었읍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그분을 임명하셨읍니다. (히브리 7:1-3, 15-17; 5:5, 6)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승인하신다면, 우리도 그분께 온전한 확신을 두어야 하지 않겠읍니까? 더우기 그분은 율법하의 제사장들의 경우와 같이, 이윽고 죽어서 대치되는 일이 필요치 않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최종적인 희생 제물로 바치실 수 있었읍니다. 그 제물은 완전하였으며, 결코 반복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생명의 피의 가치를 가지고 하늘로 가서 그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셨읍니다. 그분은 지금도 그곳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제사장으로 봉사하고 계십니다.—히브리 9:24-28; 10:12-18.
17.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심으로써 우리는 어떤 면으로 도움을 받습니까?
17 우리는 임박한 세계 재난을 직면하면서 우리의 대제사장에게 확신을 둘 수 있읍니다. 율법하의 희생과는 달리,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 제물은 우리의 죄를 온전히 덮어줄 수 있읍니다. 그 이상으로 그것은 “[우리의] 양심으로 죽은 행실[악한 행실 및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정당화하려는 어떠한 개인적인 시도]에서 깨끗케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할 수 있읍니다. (히브리 9:14; 10:1-4) 우리는 어려운 상황이나 압력하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의 깨끗한 양심이 매우 큰 가치가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틀림없이 동의할 것입니다. (히브리 10:19-22) 또한 다른 면으로도 우리는 예수께서 하늘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계신 것에 대해 즐거워할 수 있읍니다.
18. 우리의 대제사장이 동정심 많은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왜 유익하였으며, 지금도 유익합니까?
18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동정심 많은 제사장이심을 확신시켜 줍니다. 우리는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집과 친척 및 직장을 떠나 도피할 준비를 하고 있을 당시에 애국적인 환경에서 그들이 직면했던 결정과 문제들을 상상해 볼 수 있읍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제들은 전적으로 그들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었읍니다. ‘바울’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시지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죄가 없으면서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셨읍니다.” 이 말은 그들에게 참으로 위로가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처럼 동정심 많은 대제사장을 가진 “우리는 자비함을 받고 은혜를 얻어 때를 따라 주시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다. (히브리 4:15, 16, 새번역) 시련이 어떠한 것이든지 “그는 ··· 시험을 당하는 자들을 도울 수 있읍니다.”—히브리 2:17, 18, 새번역.
우리의 믿음의 완성자
19, 20. 예수께서는 어떻게 “우리의 믿음의 완성자”이십니까?
19 우리가 ‘예수를 생각’하는 데는 특별히 우리의 믿음이 관련되어 있읍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인 믿음의 결핍에 관해 언급한 후에, ‘바울’은 ‘우리 믿음의 수석 대행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를 열렬히 바라보는 일’에 관해 말하고 있읍니다. (히브리 12:1, 2, 신세) 현 사물의 제도의 종결 기간에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성서는 창세기 3:15에 나오는 그 최초의 예언에서부터 그리스도를 지적하고 있읍니다. 그분은 성서에 나오는 수많은 예언과 전영의 초점이 되십니다. 「히브리서」에 언급된 ‘모세’ 율법의 많은 특징들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였읍니다. (히브리 9:23; 10:1) 그러나 “그 실체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읍니다.” (골로새 2:17, 신세) 그렇습니다, 예수의 탄생, 지상 봉사, 희생적 죽음, 부활 및 하늘에서의 제사장 봉사는 이러한 것들에 관한 모든 예언들과 전영 및 모형을 성취 즉 완성시켰읍니다.
21. 무슨 부가적인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오늘날 ‘우리의 믿음의 완성자’가 되십니까?
21 ‘바울’이 그리스도를 “우리의 믿음의 완성자”로 시인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부가적인 이유가 있읍니다. 우리는 ‘그분의 임재와 사물의 제도의 종결의 징조’에 관한 예수의 말씀이 대대적으로 성취되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있읍니다. (마태 24:3, 신세) 따라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한 기초를 가지고 있읍니다. “장차 오는 세상”의 구원은 또한 ‘바울’의 시대보다 훨씬 더 가까와졌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확신하면서, 우리의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를 계속 바라보도록 합시다. (히브리 2:5; 11:6) 다음 기사에서 알려 주는 바와 같이, 「히브리서」는 우리가 놀라운 보상을 받기 위해 필요한 믿음과 그리스도인 견해를 유지하도록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각주]
a 독자로부터의 질문 24면 참조.
b ‘바울’은 희랍어 단어 ‘프로스쿠네오’를 사용하였는데, 「신약 희-영 사전」(Bauer, Arndt, Gingrich)은 이 단어가 “어떤 사람 앞에 꿇어 엎드려 발이나 옷단, 땅바닥에 입맞추는 관습을 지칭하는 데 사용하곤 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사무엘 상 24:8; 열왕 하 2:15) 이 단어는 또한 “숭배”를 의미할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일부 성서는 히브리서 1:6을 그렇게 번역하기도 하였다. 만일 이것이 그 단어의 정확한 의미라면, 그것은 상대적인 숭배 즉 여호와 하나님의 영화롭게 되신 아들을 통해 그분께 드리는 숭배를 뜻하는 것임이 분명하다.—계시 14:7; 파수대(영문) 1970년 11월 15일호 702-704 비교.
당신은 설명할 수 있는가?
◻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은 「히브리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상황과 어떻게 비슷한가?
◻ 우리는 왜 예수에 대해 균형잡힌 견해를 가져야 하며 그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가?
◻ 「히브리서」에 희생 제물과 제사장에 관해 많이 언급된 이유는 무엇인가?
◻ 당신은 예수를 대제사장과 믿음의 완성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10면 네모]
경의 혹은 숭배
히브리서 1:6에 나오는 희랍어 단어 ‘프로스쿠네오’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여호와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하시고 영화롭게 하신 예수에게 ‘절’하듯이 경의를 나타내는 것
2. 여호와 하나님의 수석 대표자 곧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를 통하여 혹은 그로 말미암아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
[11면 삽화]
예수께서는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바쳤던 것보다 더욱 지속적인 가치가 있는 제물을 바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