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종교는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 전 14:33, 새번역) 그러므로 서로 상충되는 교리들을 가진 많은 종교들이 모두 하나님의 승인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참 숭배에 대한 그분의 요구 조건에 달하는 종교는 하나밖에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그 하나의 종교를 우리는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틀림없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은 건초더미에서 바늘 하나를 찾는 것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을 일일이 가려내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일 것이다! 그러나 간단한 방법, 곧 강력한 자석을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쇠바늘을 끌어당겨 짚에서 분리해 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서를 자석처럼 사용해서 잘못된 것으로부터 진리를 분리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성서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하는가? 하나님 보시기에 가납될 만한 숭배를 명확히 밝힘으로써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편지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디모데 후 3:16, 17) 우리에게 편하고 우리 마음에 드는 종교 생활만 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서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에 더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숭배하는 이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해야 합니다.” (요한 4:24, 신세) 우리는 어떻게 “영과 진리로 숭배”할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 영감을 통해 자신의 말씀인 성서에 마련해 놓으신 올바른 지침들을 따름으로써 그렇게 할 수 있다.
참 숭배자들은 사랑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참 숭배에 관해 무엇을 기대하게 되는가? 우리는 두 마디로 된 다음과 같은 직접적인 실마리를 갖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한 1서 4:16)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숭배는 순수한 사랑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실제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교는 동료 인간들을 증오하도록 가르치거나 그렇게 하도록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서는 간단 명료하게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마태 22:39) 그것은 이 세상의 증오, 편견, 분쟁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더 이상 전쟁을 연습하지 않고 평화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이사야 2:2-4.
그 점을 예를 들어 설명해 보자. 단지 자기 나라가 선전 포고를 했다고 해서, “‘프랑스’인” 사도 ‘바울’이 “독일인” 사도 ‘베드로’를 죽이러 나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국의 전쟁에 매우 깊이 관여하여 군목을 내보내기까지 하였다! 동시에 양편에 속한 “그리스도인” 교직자들은 같은 하나님에게 승리를 기원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양분된 입장을 취하시는가? ‘알버어트 아인시타인’ 교수가 국가주의의 “유아기적 병,” “인간성의 홍역”이라고 묘사한 것에 그분이 끌려 들어가실 수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을 참으로 기쁘시게 하는 숭배자들은 중립을 유지하고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요한 13:34, 35; 17:16) 그들은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한다.—비교 고린도 후 10:3, 4.
참 숭배는 하나님의 이름을 드높인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교의 또 다른 표를 지적하면서, 신과 주라고 불림을 받는 자들이 많이 있지만 참 숭배자들 사이에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만이 계시다고 말하였다. (고린도 전 8:5, 6) 그러므로 분명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을 알고 사용할 것이다.
성서에는, 원어로 볼 때, 하나님의 이름이 7,000번 이상이나 특별히 언급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시편 83:18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 그러면 수많은 종교 신자들이 이름 없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이 자기들의 성서 번역판에서 그분의 이름을 빼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예수께서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함을 받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기 때문이다.—마태 6:9, 신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교
우리가 방금 논한, 참 숭배의 두 가지 기본적인 요구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세계적인 종교 집단이 과연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사랑을 참으로 실천하는 종교가 있는가? 그리고 그 동일한 숭배자들은 현 20세기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영광스럽게 하고, 그분의 이름에 영예를 돌리는가?
‘여호와의 증인’이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다. 그런 이유로 그들은 집단 수용소와 형무소에서 고통을 받아왔다. 그들은 성서에 기초한 원칙들을 타협하느니보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걸은 순교의 길을 택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의 동기로 이러한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한 사랑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숭배의 한 가지 표이다.
‘여호와의 증인’이 이 점에 있어서 훌륭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를 들어, 몇년 전에 남‘아메리카’의 한 신문 발행인은 이렇게 말했다. ‘‘여호와의 증인’은 어린이들까지도 만 18세가 되면 그들이 중립 때문에 교도소에서 장기 복역을 해야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그 처벌을 종교적 믿음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온순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교에 요구되는 또 다른 조건에 관해서는 어떠한가? 사실상, 누가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에 영예를 돌리고 있는가? ‘여호와의 증인’만이 그들의 전파 활동과 행실로 이 일을 전세계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로마 10:13-15.
‘여호와의 증인’에 관해 좀더 잘 알아보는 것이 어떠한가? 함께 게재되어 있는 도표에는 그들의 믿음 몇 가지가 열거되어 있으며, 그와 함께 그것들에 대한 성경적 이유가 나와 있다. ‘증인’의 숭배 방식을 시험해 보는 이러한 간단한 질문을 해보라. 그것은 성서에 규정되어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표준에 달하는가? 그것은 참 숭배의 일부를 이루어야 하는 평화로운 사랑의 열매를 맺고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영예를 돌리는가? 모든 경우에 다 그러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당신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교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6면 네모]
‘여호와의 증인’의 믿음
믿음 성서적 근거
여호와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출애굽 6:3; 시 83:18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 17:17;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마태 3:16, 17; 요한 14:28
사람은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 창세 1:27; 2:7
인간의 죽음은 ‘아담’의 죄에 기인한 것이다 로마 5:12
영혼은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도 9:5, 10; 에스겔 18:4
죽은 자의 희망은 부활이다 요한 5:28, 29; 11:25;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여호와께만 드려야 한다 마태 6:9; 요한 14:6, 13, 14
도덕에 관한 성서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 고린도 전 6:9, 10
숭배에서 형상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출애굽 20:4-6; 고린도 전 10:14
영매술을 피해야 한다 신명 18:10-12;
갈라디아 5:19-21, 신세 참조
피를 몸에 주입해서는 안 된다 창세 9:3, 4; 사도 15:28, 29
종교적인 칭호는 합당하지 않다 욥 32:21, 22, 신세 참조;
우리는 지금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 다니엘 12:4; 마태 24:3-14;
‘사단’은 세상의 보이지 않는 통치자이다 요한 12:31; 요한 1서 5:19
[5면 삽화]
건초더미에서 어떻게 바늘 하나를 찾아낼 것인가?
참 종교를 어떻게 발견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