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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아야 하나?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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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장
꼭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아야 하나?
학교 식당에서 친구 둘하고 점심을 먹고 있는데 못 보던 남학생이 들어옵니다.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있잖아, 브렛이 너 정말 좋아하나 봐. 아까부터 너만 뚫어지게 쳐다보더라. 아주 너한테서 눈을 떼질 못한다니까!”
다른 한 친구가 귀에다 대고 이렇게 속삭입니다. “근데 말야 아직 여자 친구가 없대!”
이미 다 눈치 채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브렛이 자기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한 적이 있었는데, 물론 거절하긴 했지만 파티에 갔으면 어땠을지 은근히 궁금해집니다.
한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먼저 말을 꺼냈던 친구가 불쑥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쉽네, 난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라서. 아니면 당장 브렛하고 사귀어 볼 텐데.”
그러더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봅니다. 그 순간 무슨 말이 나올지 감이 옵니다.
“야, 근데 넌 왜 여태까지 남자 친구가 없냐?” 그 친구가 묻습니다.
그 질문만은 안 해 줬으면 했는데!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결혼할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는 말을 누누이 들어서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항상 마음 한구석에 걸리는 것이 ···
“종교 때문이지, 맞지?” 다른 친구가 말합니다.
그 순간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넌 맨날 성경 책밖에 모르냐? 가끔 놀기도 하고 좀 그래라” 하고 그 애가 핀잔을 줍니다.
성서의 표준에 따라 살아가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놀림을 당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뭔가 손해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한때 그렇게 생각했던 데버러라는 청소년은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성서의 표준을 따르려면 못하는 게 너무 많은 거 같았어요. 자유롭게 살아가는 학교 친구들이 정말 부러웠죠.”
현실은 어떠한가?
직접 경험해 보면서 배우는 것이 항상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시편 필자인 아삽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은 성경의 취지와도 일치하는 지혜로운 일입니다. 한동안 그는 하느님의 표준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길을 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고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아삽은 그들이 “미끄러운 땅”에 서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시 73:18.
아래에 나오는 여러 청소년들의 말을 들어 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한동안 성서 표준을 따르지 않았으며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 관계를 갖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준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데버러: “학교에 가면 다들 이성 친구와 함께 다니는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어요. 그런 애들하고 어울리면서 그 애들이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는 것을 보면 괜히 부럽기도 하고 외로운 느낌도 들었지요. 종종 제가 좋아하던 어떤 남자 애에 대해 이 생각 저 생각 하면서 여러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히 그 애와 함께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어요.”
마이크: “성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책과 텔레비전 프로를 봤어요. 친구들과 성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호기심이 강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어떤 여자 애하고 단둘이 있게 되었는데, 서로 신체 접촉을 즐기면서도 성 관계만은 갖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고 과신했던 거죠.”
앤드루: “인터넷에서 음란물을 자주 봤어요. 술도 많이 마시기 시작했고요. 또 성서의 도덕 표준을 따르지 않는 애들하고 파티에도 종종 갔지요.”
트레이시: “결혼하기 전에 성 관계를 갖는 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건 알았지만 그게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더라고요. 결혼 전에 성 관계를 가질 생각은 없었지만 감정이 이성을 압도해 버렸어요. 한동안은 양심의 가책도 느껴지지 않았지요.”
● 하고 싶은 대로 해서 행복했습니까?
데버러: “처음에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어요. 마침내 친구들하고 하나가 된 것 같아 정말 행복했지요.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어요. 언제부터인가 순수성을 잃었다는 생각에 자신이 더럽고 추하게 느껴지고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 허전했어요. 순결을 너무 쉽게 내던져 버린 것 같아 정말 후회스러웠지요.”
앤드루: “나쁜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점점 더 쉬워졌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책감과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마음이 괴로웠지요.”
트레이시: “성적 쾌락에 빠져 청소년기를 망치고 말았어요. 남자 친구와 함께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결국 서로에게 고통과 불행을 안겨 주고 마음에 상처만 남긴 채 헤어지고 말았지요. 밤마다,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걸 후회하며 침대에서 흐느껴 울었어요.”
마이크: “비참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어요. 내 행동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떤 영향을 받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 봤지만 그게 잘 안 되더라고요. 나 하나 즐겁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지요.”
● 성서의 도덕 표준이 자유를 너무 제한한다고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습니까?
트레이시: “여호와의 표준에 따라 사세요.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울리세요. 그러면 더 행복해질 거예요.”
데버러: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그걸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리고 하느님의 조언을 무시하면 자신도 고통을 겪게 되죠.”
앤드루: “경험이 없을 때는 친구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재밌어 보일 거예요. 그런 친구들이 나타내는 태도에 영향도 받게 되고요. 그래서 친구를 지혜롭게 선택해야 되죠. 여호와를 신뢰하면 후회할 일을 하지 않게 될 거예요.”
마이크: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소중한 것들 중에는 존엄성과 순결도 포함됩니다.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그러한 선물을 내던지는 것은 자신을 싼값에 팔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부모님이나 다른 존경하는 분들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해 보세요. 실수를 하게 되면 얼른 솔직히 털어놓고 상황을 바로잡아야 하고요. 여호와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정말 마음이 평온해지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성서의 표준—족쇄인가, 안전벨트인가?
여호와는 “행복하신 하느님”이며 우리도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 첫째 1:11; 전도 11:9) 성서에 기록되어 있는 그분의 표준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그분의 표준이 자유를 제한하는 족쇄와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도덕규범은 당신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안전벨트에 더 가깝습니다.
우리는 확실히 성서를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표준에 따라 살아가기로 결정한다면, 여호와께서 기뻐하실 것이며 우리 역시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다.—이사야 48:17.
당신은 하느님과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주요 성구
‘나 여호와는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는 이이다.’—이사야 48:17.
조언 한마디
성서의 표준이 지혜로운 것임을 동생에게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자신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믿음이 마음속에 확고히 자리 잡게 하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알고 있습니까?
여호와와의 관계를 손상시키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것을 회복하는 데는 여러 해가 걸릴 수 있습니다.
나의 계획!
성서의 표준이 지혜로운 것임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렇게 하겠다. ․․․․․
세상의 표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 시작하면 이렇게 하겠다. ․․․․․
이 문제에 대해 부모님께 여쭤 보고 싶은 점 ․․․․․
어떻게 생각합니까?
● 하느님의 법을 지키지 않을 때 어떤 결과를 겪게 되는지를 실제로 경험해 보고 나서야 깨닫는 것이 현명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데버러, 마이크, 앤드루, 트레이시의 말로부터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 사람들이 성서의 표준을 족쇄처럼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지만 그러한 견해가 근시안적인 생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285면 삽입]
“잘못에 대해 벌을 받는 것도 가슴이 아프지만 잘못을 숨기려고 하면 더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도나
[288면 삽화]
성서의 표준은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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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느님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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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장
어떻게 하느님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제러미는 가슴 아픈 일을 겪고 나서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열두 살이었을 때,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떠나셨어요. 어느 날 밤, 저는 잠자기 전에 기도하면서 아버지가 돌아오게 해 달라고 여호와께 간청했습니다.”
절망감에 휩싸인 제러미는 성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시편 10:14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구절은 여호와에 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불행한 사람, 아버지 없는 소년이 자신을 당신에게 맡기니, 당신은 도와주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제러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치 여호와께서 제게 말씀하시면서 그분이 저를 도와주시는 분이자 아버지라는 걸 알려 주시는 거 같았죠. 그분보다 더 훌륭한 아버지가 어디 있겠어요?”
당신이 처한 환경이 제러미와 비슷하든 그렇지 않든 성서는 여호와께서 당신과 벗이 되길 원하신다고 알려 줍니다. 성서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야고보 4:8)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으시고 어떤 면에서도 당신과 비슷한 입장이 아니시지만 당신에게 친구가 되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과 친구가 되려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보면, 실내에서 키우는 화초는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화초가 잘 자라려면 자주 물을 주고 성장에 적합한 환경에 두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친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과 친구로서 더 가까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서 연구의 중요성
친구와 가까워지려면 친구의 말을 잘 들어 줄 뿐만 아니라 친구에게 말도 하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해야 합니다. 하느님과 친구로서 가까워지려면 바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서를 읽고 연구함으로 그분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잘 들을 수 있습니다.—시 1:2, 3.
물론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많은 청소년들은 공부보다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그냥 친구들과 돌아다니기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친구로서 가까워지는 데는 요령이 없습니다. 그분의 말씀을 연구함으로 잘 들어야 합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성서 연구가 꼭 따분한 것만은 아닙니다. 공부하는 타입이 아니더라도 성서 연구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성서 연구를 할 시간을 정해 놓아야 합니다. 라이스라는 소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계획을 세웠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성서를 한 장(章)씩 읽죠.” 열다섯 살인 마리아는 그와는 다른 일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성서를 조금씩 읽고 있어요”라고 마리아는 말합니다.
자기만의 계획에 따라 성서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292면에 나오는 네모 안의 내용을 살펴보십시오. 그런 다음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위해 30분 정도를 낼 수 있는 때가 언제인지 아래에 적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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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계획은 시작일 뿐입니다. 실제로 연구를 시작해 보면 성서를 읽는 것이 항상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마 열한 살인 제즈리엘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는 솔직히 이렇게 말합니다. “성서의 어떤 부분은 내용이 딱딱하고 별로 재미가 없죠.”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성서 연구를 하는 시간을 항상 당신의 친구인 여호와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으로 여기십시오. 성서 연구가 얼마나 흥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인지는 결국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기도를 꼭 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선물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밤이든 낮이든 언제나 여호와 하느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당신의 말을 들어 주십니다. 단지 들어 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듣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성서는 이렇게 강력히 권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와 더불어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청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빌립보 4:6.
이 성구가 지적하듯이 당신은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여호와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이 겪고 있는 문제나 걱정거리에 대해 말씀드릴 수도 있고 감사할 만한 일에 대해 말씀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친구가 당신을 위해 뭔가 좋은 일을 해 준다면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께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당신을 위해 어떤 친구가 해 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시 106:1.
당신이 여호와께 감사하고 있는 일들을 아래에 적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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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당신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는 두려움과 걱정거리가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시편 55:22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너의 무거운 짐을 여호와 그분에게 내맡겨라. 그러면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니, 그분은 결코 의로운 자가 흔들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
기도에 포함시키고 싶은 염려거리가 있다면 적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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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경험
하느님과 친구로서 가까워질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또 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시편 필자 다윗은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고 썼습니다. (시 34:8) 다윗은 두려운 경험을 한 직후에 시편 34편을 지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이것 자체가 매우 비참한 시련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의 적인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피신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제 꼼짝없이 죽었구나 하는 순간 그는 기지를 발휘하여 제정신이 아닌 체했으며 그리하여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사무엘 첫째 21:10-15.
다윗은 가까스로 위험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호와께 영예를 돌렸습니다. 위에 언급한 시편의 앞부분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여쭈었더니 그분이 내게 대답하시고, 나의 모든 무서움에서 나를 구출하셨구나.” (시 34:4) 따라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라는 다윗의 강력한 권고는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a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것을 직접 느껴 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래에 적어 보십시오. 잘 떠오르지 않습니까? 꼭 거창한 경험일 필요는 없습니다. 매일 누리고 있는 단순한 축복들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중에는 당연하게 여기기 쉬운 것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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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신은 부모로부터 성서에 관해 배웠을지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느님과 친구로서 가까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아직 그렇게 하지 못했다면, 이 장의 내용을 적용해서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노력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성서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계속 청하십시오. 그러면 주어질 것입니다. 계속 찾으십시오. 그러면 발견할 것입니다.”—마태 7:7.
다른 사람들에게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까? 자신의 믿음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바랍니다.
[각주]
a 일부 성서에서는 ‘맛보아 알다’라는 말을 ‘스스로 발견하다’, ‘스스로 깨닫다’, ‘경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로 번역한다.—현대 영어 역본, 오늘의 영어 역본, 기본 영어 성서.
주요 성구
“자기의 영적 필요를 의식하는 사람들은 행복합니다.”—마태 5:3.
조언 한마디
성서를 매일 다섯 페이지씩만 읽으면 약 1년 만에 통독할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까?
당신이 이 책을 읽고 있고 성서에 근거한 이 책의 조언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개인적으로 관심을 갖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요한 6:44.
나의 계획!
개인 성서 연구로부터 더 많은 유익을 얻기 위해 이렇게 하겠다. ․․․․․
더 정기적으로 기도를 하기 위해 이렇게 하겠다. ․․․․․
이 문제에 대해 부모님께 여쭤 보고 싶은 점 ․․․․․
어떻게 생각합니까?
● 어떻게 하면 더 즐겁게 개인 성서 연구를 할 수 있습니까?
● 여호와께서 불완전한 인간의 기도를 듣고 싶어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어떻게 기도의 질을 높일 수 있습니까?
[291면 삽입]
“어렸을 땐 매번 하는 기도가 거의 비슷비슷했어요. 하지만 이젠 그날그날 있었던 좋은 일과 나쁜 일에 대해 기도하려고 노력하죠. 그렇게 하니까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게 돼요. 완전히 똑같은 날은 없으니까요.”—이브
[292면 네모와 삽화]
깊이 있는 성서 읽기
1. 성서에서 읽고 싶은 부분을 선택하십시오.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2. 주의 깊이 읽으십시오. 서두를 필요 없습니다. 읽으면서 내용을 상상해 보십시오. 등장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을 눈으로 보고, 말을 하면 그 목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그리고 어떤 냄새가 날 듯한 상황에서는 실제로 그 냄새를 맡아 보고, 음식이 나오면 그 맛을 느껴 보는 등 가능한 모든 감각을 동원하십시오. 읽는 내용이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해 보십시오!
3. 읽은 내용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보면 도움이 됩니다.
● 여호와께서 이 내용을 자신의 말씀에 포함시키신 이유는 뭘까?
● 본받을 만한 사람은 누구이고 경고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 이 내용으로부터 어떤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 이 내용으로부터 여호와와 그분의 일 처리 방식에 관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4. 여호와께 간단하게 기도하십시오. 성서 연구를 통해 무엇을 배웠으며 배운 점을 어떻게 생활에 적용하려고 하는지 그분께 이야기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주신 선물 즉 그분의 말씀인 성서에 대해 항상 그분께 감사하십시오!
[삽화]
“당신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입니다.”—시 119:105.
[294면 네모와 삽화]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
너무 바빠서 기도할 틈이 없습니까? 성서 연구를 할 시간도 없습니까? 그러한 문제는 대개 당신이 정한 우선순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러한 실험을 해 보십시오. 먼저 양동이에 커다란 돌 몇 개를 넣습니다. 그런 다음 모래를 가득 채웁니다. 이렇게 하면 양동이에 돌뿐만 아니라 모래도 넣을 수 있습니다.
이제 양동이를 비웁니다. 그리고 순서를 바꿔서 모래를 가득 채운 다음 돌을 넣어 봅니다. 돌이 들어갑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양동이에 모래를 먼저 넣었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무엇입니까? 성서는 “더 중요한 것들을 확인”하라고 권합니다. (빌립보 1:10) 오락과 같이 중요하지 않은 일을 앞자리에 두면 삶에서 영적인 일과 같이 중요한 것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서의 권고를 따르면 왕국 활동을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락도 어느 정도 즐길 여유를 갖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양동이에 무엇을 먼저 넣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290면 삽화]
하느님과 친구로서 가까워지려면 화초를 가꾸는 것처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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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을까?청소년은 묻는다—질문과 효과있는 대답,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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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장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을까?
학교 친구에게 자신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성서 지식이 부족해서
□ 놀림을 당할까 봐 두려워서
□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자신의 믿음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쉽다고 생각합니까?
□ 일대일로 이야기하는 것
□ 반 전체에게 이야기하는 것
□ 글로 쓰는 것
재치 있는 말로 이야기를 꺼내기만 하면 성서에 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은 학교 친구의 이름을 적어 보십시오. ․․․․․
학교 친구들은 아마 하느님에 관해 대화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얘기만 아니면 스포츠, 옷, 이성 문제 등 어떤 주제로 얘기해도 대부분 활발한 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하느님 얘기만 꺼내면 금방 어색한 침묵이 흐를지 모릅니다.
학교 친구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사실 많은 청소년들이 하느님의 존재를 믿습니다. 하지만 어떤 청소년들은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거북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이야기가 별로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이 학교 친구들에게 하느님에 관해 이야기하기를 주저한다고 해도 그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따돌림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놀림당하는 것은 그보다 더 싫을 것입니다! 당신의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면 따돌림이나 놀림을 당할 수 있습니까?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예기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학교 친구들 중에는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세상이 고난으로 가득 찬 이유는 무엇인가?’와 같은 점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아마 어른들보다는 자기 또래와 이런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도 막상 학교 친구들에게 종교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면 말이 잘 안 나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광신자라는 인상을 줄 필요도 없고 이야기를 아주 잘해야 한다고 부담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자신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악기를 연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연습을 하면 점점 더 쉬워지며 노력한 만큼 보람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할 것입니까?
대부분의 경우 말을 꺼내기가 편한 주제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친구들과 시사 문제에 관해 대화를 나눌 때 성경에 근거한 당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어느 한 친구에게 말을 걸어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은 그보다 훨씬 더 쉬운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냥 성서 출판물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친구들이 관심을 갖는지 지켜보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관심을 갖는 사람이 있으며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집니다!
당신의 경우에는 위에 나오는 방법들 가운데 어떤 것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친구에게 당신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아래에 적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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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수업 시간에 당신의 믿음에 대해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화론에 관해 토의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창조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어떻게 변호할 수 있습니까?
창조를 어떻게 변호할 것인가?
라이언이라는 청소년은 이렇게 말합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게 되면서 그동안 내가 가르침받아 온 모든 것에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진화론이 사실인 것처럼 얘기하니까 심리적으로 위축되더군요.” 라켈이라는 소녀도 그와 비슷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 선생님이 다음 시간에는 진화에 대해 배울 거라고 말씀하시자 당황이 되었어요. 논란이 되고 있는 이 문제에 대해 내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수업 시간에 설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수업 시간에 진화론에 관해 배우게 되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당신은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믿고 있고 주위에 지적 설계의 증거가 널려 있는 것이 보이지만, 교과서에는 생물이 진화되었다고 나오고 교사 역시 그렇다고 말합니다. (계시 4:11)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에 학생인 내가 이의를 제기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들지 모릅니다.
진화론에 대해 당신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므로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실, 상당수의 과학자들도 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사와 학생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창조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변호하기 위해 성서가 이 문제에 대해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성서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에 대해 논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학 교과서에는 지구와 태양계가 수십억 년 동안 존재해 왔다고 나온다. 성서는 지구를 비롯한 우주가 창조의 첫째 날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따라서 지구와 태양계는 수십억 년 전부터 존재해 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창세 1:1.
선생님은 지구가 단지 6일 만에 창조되었을 리가 없다고 말씀하신다. 성서는 6일 동안의 창조의 날이 문자적인 24시간으로 이루어진 기간이라고 알려 주지 않습니다.
수업 시간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동물과 인간이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보여 주는 여러 가지 예를 배웠다. 성서는 하느님께서 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고 알려 줍니다. (창세 1:20, 21) 성서는 무생물이 변해서 생물이 되었다거나 하느님께서 단세포로부터 진화 과정이 시작되게 하셨다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종류”는 매우 다양해질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서는 각 “종류”의 범위 내에서는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 장에서 다룬 내용을 고려해 볼 때, 교사나 학교 친구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이야.”
“나는 하느님의 존재를 믿지 않아.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믿냐?”
자신의 믿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라!
부모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단지 창조가 맞다고 배워 왔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당신도 이제 어느 정도 나이가 들었으므로 믿음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갖고 “이지력으로” 하느님을 숭배하고 싶을 것입니다. (로마 12:1) 그렇다면 ‘내가 창조주가 존재한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고 자문해 보십시오. 열네 살인 샘은 사람의 몸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의 몸은 정말 세밀하고 복잡해요. 그리고 모든 부분이 아주 협동을 잘하죠. 사람의 몸이 진화되었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열여섯 살인 홀리도 샘의 말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후로, 사람의 몸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위장 뒤에 있는 작은 기관인 췌장이 어떻게 피와 다른 장기들이 제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그처럼 큰일을 해낼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에요.”
당신이 창조주가 존재한다고 확신하게 된 세 가지 이유를 아래에 적어 보십시오.
1. ․․․․․
2. ․․․․․
3. ․․․․․
하느님의 존재와 창조를 믿는다고 해서 난처해하거나 창피해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증거를 검토해 볼 때, 인간이 지적 설계의 산물이라고 믿는 것이 지극히 논리적입니다.
결국, 맹목적인 믿음이 필요한 쪽은 창조가 아니라 진화입니다. 진화를 믿는 것은 사실상 기적을 일으킬 능력자도 없이 기적이 일어났다고 믿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지력을 사용해서 이 문제를 철저하게 고려해 보고 나니,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을 좀 더 자신감 있게 변호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
또래들이 하나 둘 침례를 받습니다. 그러면 당신도 그 단계를 밟을 준비가 된 것입니까?
주요 성구
“나는 좋은 소식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은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 구원을 주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로마 1:16.
조언 한마디
자신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할 때는 말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자신감이 없어 보이면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 친구들이 그들의 생각을 말할 때처럼 자신감 있게 이야기하면 그만큼 존중받게 될 가능성이 더 커집니다.
알고 있습니까?
때때로 교사들에게 진화론을 증명해 보라고 하면 그들은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단지 자신이 진화론을 배웠기 때문에 그 이론을 받아들이게 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의 계획!
학교 친구와 성서에 관한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 이렇게 하겠다. ․․․․․
누군가가 나에게 창조주의 존재를 믿는 이유가 뭔지 물어보면 이렇게 말하겠다. ․․․․․
이 문제에 대해 부모님께 여쭤 보고 싶은 점 ․․․․․
어떻게 생각합니까?
● 자신의 믿음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 학교에서 창조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방법들이 있습니까?
●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에게 어떻게 감사를 표현할 수 있습니까?—사도 17:26, 27.
[299면 삽입]
“학교는 우리만 봉사할 수 있는 구역이에요.”—이라이다
[298면 삽화]
자신의 믿음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악기를 연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연습을 하면 능숙해질 것입니다
[300, 301면 삽화]
믿음을 변호할 때 느끼게 되는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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