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씨”의 인간 후손 계열의 경로를 살펴봄
1. ‘아벨’과 ‘에녹’과 ‘노아’의 경우는 왜 ‘사단’ 마귀로 하여금 약속된 “씨”를 파멸시키려는 목표로 더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하였읍니까?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여자”가 낳을 “씨”입니다. ‘사단’과 하나님 사이에 ‘에덴’ 동산에서 시작된 시합은 이 신비의 “씨”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읍니다. 그것이 당연하였읍니다. 왜냐 하면, 그 “씨”는 정해진 때에 태어나서 큰 뱀의 머리를 상하게 되어 있었으며, ‘사단’ 마귀는 그 “머리”가 자기의 머리임음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 3:15) ‘사단’은 장차 임할 “씨”의 성실성을 깨뜨려 그로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치 않게 하려고 결심하였읍니다. ‘사단’과 하나님 사이의 시합의 제1회전은 대홍수시에 ‘사단’의 패배로 끝났읍니다. 그는 성실을 깨뜨리려고 시도했던 첫 남녀의 후손 중 적어도 세명의 성실을 꺾는 데 실패하였읍니다. ‘아벨’과 ‘에녹’과 ‘노아’는 ‘사단’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약화시켰으며, 그로 하여금 “씨”를 파멸시키려는 목표로 더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게 하였읍니다.
2. 오늘날 인류는 ‘노아’가 대홍수 후에 인류에게 어떠한 삶을 출발시킨 것에 대하여 감사해야 합니까? 어떻게 그러합니까?
2 대홍수가 끝난 후 다음 6백 58년 동안에 하나님의 “여자”의 “씨”에 대한 세부점이 많이 밝혀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대홍수 이후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온 인류는 대홍수로 견딘 방주의 건축자 ‘노아’로부터의 후손의 경로를 살필 수 있읍니다. 이제 인류 세계는 의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노아’는 참 “하나님과 동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 6:9) 그는 유전에 의하여 불완전한 사람이었지만 도덕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흠없고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었읍니다. 그의 후손인 우리는 그 점에 대하여 크게 감사해야 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떠나 ‘아라랏’ 산에 발을 디딘 직후 인류를 보존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숭배에서 인류를 인도하였읍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 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세 8:20-22; 또한 이사야 54:9.
3. ‘노아’가 출생할 때의 ‘라멕’의 예언은 어떻게 적중하였으며, 무지개는 무엇의 상징이 되었읍니까?
3 ‘노아’의 아버지 ‘라멕’이 ‘노아’의 출생시에 그에게 선언한 예언은 옳았읍니다. (창세 5:29) ‘아담’이 범법한 후 ‘에덴’ 동산 밖에서 땅에 내린 하나님의 저주는 거두어졌으며, ‘노아’(그의 이름은 “휴식”을 의미한다)는 그의 번제에서 휴식을 주는 향기가 하나님께 올라가게 하였고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인류에게 저주받은 땅을 경작하는 수고에서 쉬라고 선언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물 덮개가 제거되었기 때문에 땅에 직접 비치는 태양 광선에 의하여 기록에 나타난 첫 무지개가 보이게 하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무지개를 보증의 표시로 지적하시면서 “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찌라”고 약속하셨읍니다. 다시는 대홍수가 없을 것입니다.—창세 9:8-15.
4. ‘노아’의 세 아들과 그들의 아내가 ‘노와’와 함께 대홍수를 생존하였으므로 약속된 “씨”에 대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4 ‘노아’의 세 아들들 ‘셈’과 ‘함’과 ‘야벳’과 그들의 아내들은 ‘노아’와 그의 아내와 함께 생존하였읍니다. 이제 이 세 아들 중 어느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여자의 씨”가 지상에 출현할 때까지 후손 계열이 이어질 것입니까? 그 선택에 따라 세명의 족장인 ‘셈’과 ‘함’과 ‘야벳’으로부터 내려올 세 종족에게 다르게 영향이 미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영감을 주시어 어느 중요한 기회에 그의 세 아들에게 선언하게 하신 예언은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읍니다. 그 근거는 무엇이었읍니까?
5. 무슨 일 때문에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선언하였읍니까?
5 땅에 번성하라는 ‘노아’의 아들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셈’은 대홍수가 시작된지 2년 후에 ‘아르박삿’을 낳았읍니다. (창세 11:10) 얼마 후에 ‘함’도 ‘가나안’을 낳았읍니다. (창세 9:18; 10:6) ‘가나안’이 출생한지 얼마 후에 밝혀지지 않은 어떤 이유로 ‘노아’가 자기 포도원에서 난 포도주에 취한 일이 있었읍니다. ‘함’은 ‘노아’의 장막에 들어가 ‘노아’가 옷을 벗은 채 누워 있는 것을 보았지만 그의 아버지의 알몸을 덮으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는 ‘셈’과 ‘야벳’에게 가서 자기가 본 것을 퍼뜨렸읍니다. ‘셈’과 ‘야벳’은 아버지에 대한 합당한 존경심을 가지고 ‘노아’의 알몸을 보려고 하지 않고 뒷걸음으로 들어가서 아버지의 몸을 덮었읍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벌거벗었음을 이용하려고 하지 않고 그를 그들의 아버지로 그리고 여호와의 예언자로 게속 높이 존경하였읍니다.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세 9:20-27.
6. ‘노아’의 예언에 의하면 어느 아들을 통하여 메시야에 이르는 후손 계열이 이어지게 되어 있었읍니까?
6 ‘노아’가 그러한 선언을 할 때에 그의 정신은 맑았었읍니다. 그는 ‘함’의 존경심이, 특히 하나님의 예언자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하였다고 하여 ‘함’에게서 나올 민족 전체를 저주하지는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함’의 단지 한 아들 즉 ‘가나안’만 저주하였는데, 그의 후손은 ‘팔레스티나’ ‘가나안’ 땅에 거주하게 되었읍니다. ‘가나안’인들은 과연 하나님께서 ‘히브리’인 ‘아브라함’에게 하신 그의 약속대로 ‘이스라엘’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을 때 ‘셈’의 후손들의 종이 되었읍니다. ‘셈’은 대홍수가 시작된 후 502년을 살았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애는 ‘아브라함’의 생애와 150년간 겹쳤었읍니다. (창세 11:10, 11) ‘노아’는 여호와를 ‘셈’의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였읍니다. 여호와는 축복받으실 분이었읍니다. 왜냐 하면 ‘셈’에게 하나님의 예언자 ‘노아’에 대하여 합당한 존경을 나타내도록 움직인 것은 그분께 대한 두려움이었기 때문입니다. ‘야벳’은 ‘가나안’과 같은 노예로가 아니라 ‘셈’의 장막의 손님으로 다루어지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셈’은 그의 형제 ‘야벳’의 주인이 되므로 예언에서 그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었읍니다. 이와 일치하게 ‘셈’의 후손 계열이 메시야로 인도할 것이었읍니다.
‘바벨론’의 설립
7. ‘함’의 어느 손자가 최초의 ‘바벨론’ 제국을 설립하였으며, 어떻게 설립하였읍니까?
7 좋지 않게 된 또 다른 ‘함’의 후손은 그의 손자 ‘니므롯’이었읍니다. ‘노아’는 대홍수가 시작한 후에도 350년을 더 살았으므로 자기의 이 증손자의 세력 상승과 그의 몰락을 보았을 것입니다. (창세 9:28, 29) ‘니므롯’은 큰 뱀 ‘사단’ 마귀의 보이는 “씨”의 일부와 같이 행동한 조직을 세웠읍니다. 창세기 10:8-12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반대하는, 신세]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반대하는, 신세]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 그의 나라는 ‘시날’ 땅의 ‘바벨’과 ‘에렉’과 ‘악갓’과 ‘갈레’에서 시작되었으며 그가 그 땅에서 ‘앗수르’로 나아가 ‘니느웨’와 ‘르호보딜’과 ‘갈라’와 및 ‘니느웨’와 ‘갈라’ 사이의 ‘레센’(이는 큰 성이라)을 건축하였[느니라].” 이 내용에 의하면 ‘니므롯’이 최초의 ‘바벨론’ 제국을 설립하였읍니다.
8, 9. (ㄱ) 여호와께서는 왜 ‘바벨’을 자기의 이름을 둘 도시로 택하지 않으셨읍니까? (ㄴ) ‘바벨’에서 누구의 언어는 변하지 않았읍니까?
8 인류의 언어에 혼란이 일어난 곳은 바로 ‘바벨’(희랍어를 말하는 ‘유대’인들은 ‘바벨론’이라고 부름)이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도시와 그 곳에 거짓 종교 탑을 세우는 것을 승인하지 않으심을 나타내셨을 때 그러한 일이 일어났읍니다. 이 건축자들의 목적은 자기들의 이름을 내고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려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오늘날 도시들이 겪는 부패상을 예견하지 못하였읍니다. (창세 11:1-9) 이 ‘니므롯’의 ‘바벨론’ 제국은 지상에 존재한 최초의 제국이었지만 성서 기록상 첫째 세계 강국이 되지는 못하였읍니다. 첫째 세계 강국은 고대 ‘애굽’이었읍니다. ‘바벨’의 정치 세력은 약화되었읍니다. 왜냐 하면 여러 가지 언어로 분열된 그 도시 건축자들은 여호와에 의하여 온 땅으로 흩어졌기 때문입니다.
9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자기의 이름을 둘 도시로 택하지 않으셨읍니다. ‘노아’와 그의 축복받은 아들 ‘셈’은 ‘바벨’과 거짓 종교의 탑을 건축하는 데 가담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언어는 혼잡되지 않았읍니다.
10, 11. (ㄱ) ‘셈’의 시대에 약속된 “씨”의 후손 계열은 그의 어느 후손으로 좁혀졌읍니까? (ㄴ) 이것은 누구에게 한 무슨 발표로 지적되었읍니까?
10 ‘노아’가 기원전 2020년에 사망한지 2년 후에 ‘아브라함’이 ‘셈’의 계열에서 태어났는데 이 때에 ‘셈’은 아직 살아 있었읍니다. 이 후손은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숭배하였읍니다. ‘셈’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알리신 감동적인 발표를 듣고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아담’과 ‘하와’가 범법한 후에 ‘에덴’ 동산에서 세우신 그의 “영원한 목적”에 고착하고 계심을 증명하는 것이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여자”의 “씨”가 ‘셈’의 모든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의 계열에서 나올 것으로 좁혀진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 ‘아브람’이라고 불리웠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발표하셨읍니까?
11 이 발표가 있을 때 ‘아브람’(‘아브라함’)은 ‘메소포타미아’ 즉 ‘바벨론’(‘바벨’)에서 멀지 않은 ‘갈대아’의 ‘우르’ 시에 있었읍니다. 창세기 12:1-3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12. 그 발표는 누구를 위한 좋은 소식이었으며, 그 발표와 함께 무슨 시대가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12 “땅의 모든 족속”—그 가운데는 현 이십 세기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 가족도 포함됩니다! 우리 가족은 이 고대 ‘아브람’(‘아브라함’)을 인하여 축복을 얻을 수 있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통용 기원전 20세기 당시의 홍수 후 인류 세상에 분명해졌읍니다. 후에 의미가 이러한 영감받은 말로 해설되었읍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라디아 3:7, 8) 이에 비추어 볼 때 ‘좋은 소식의 시대’(어떤 사람들은 복음시대라고 부르기를 원할지 모른다)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직전인 그 당시에 시작하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13. (ㄱ) 하나님의 명령이 ‘아브함’에게 발하여 졌을 때 ‘아브라함’의 육체의 상태는 어떠하였으며, 그러므로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읍니까? (ㄴ) ‘아브라함’은 언제 ‘유브라데’ 강을 건넜읍니까?
13 또한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은 모든 족속과 민족을 축복할 통로로 선택하였을 때 그는 육체의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와 그의 집의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은 적어도 24년 후까지, 그의 아들 ‘이삭’이 출생한 해까지 발하여지지 않았읍니다. (기원전 1918년) 하나님께 중요한 것이 ‘아브라함’의 육적 상태가 아니라면 무엇이었읍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아셨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고향을 떠나라고 명령하신 것은 헛되지 않았읍니다. ‘아브라함’은 즉시 떠나 그의 가족과 함께 북서쪽으로 ‘하란’으로 이동하였으며 그 곳에서 그의 아버지 ‘테라’가 사망한 후에 그는 ‘유브라데’ 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실 땅을 향하여 이동하였읍니다. 그는 기원전 1943년 봄 ‘니산’월 14일에 ‘유브라데’ 강을 건넜는데, 그 때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애굽’에서 첫 유월절을 기념하기 430년 전이었읍니다.—출애굽 12:40-42, 신세; 갈라디아 3:17.
14. 여호와께서는 ‘가나안’ 땅에서 ‘아브라함’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으며 그 후에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14 예언자 ‘모세’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았더라].”—창세 12:4-7; 사도 7:4, 5.
15.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씨”에 관한 약속은 왜 기적을 요하였으며, 이보다 더 큰 어떠한 기적이 관련되어 있읍니까?
15 그러므로 그 당시 75세인 ‘아브라함’이 65세인 그의 아내 ‘사래’에게서 낳은 자식이 없었지만,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씨 혹은 후손이 있을 것이며 그 후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읍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읍니다. 사실 그 때 당시의 여자의 생식력에 의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적을 약속하신 것과 다름 없었읍니다. 24년 후에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웃으며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창세 17:17; 18:12-14) 만일 그것이 ‘놀랍’다면 창세기 3:15에 있는 하나님의 예언을 성취할 기적은 더욱 놀라울 것입니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여자”는 천적 여자이지만 그 “씨”는 ‘아브라함’의 지적 후손 계열과 관련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여자”의 이 “씨”는 “‘아브라함’의 씨”,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16.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서 열국과 열왕이 나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씨”에 관한 어떠한 의문을 일으켰읍니까?
16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그가 그의 아내 ‘사라’에게서 ‘이삭’이라는 이름을 가질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 내가 그[‘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창세 17:6, 16) 그러므로 이제 그 “열국” 중 어느 나라가 여호와의 은총받은 나라가 될 것입니까? 그 나라는 왕을 가질 것입니까? 하나님의 “여자의 씨”가 그 왕이 될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멜기세덱’
17. ‘아브라함’이 ‘가나안’ 왕들과 접촉한 가장 탁월한 경험은 무엇이었으며, 왜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분의 일을 바쳤읍니까?
17 이보다 앞서 ‘아브라함’은 지상의 여러 왕들과 접촉하였읍니다. 그러한 접촉 중 가장 중요한 사건은 ‘가나안’ 땅의 유명한 왕과 만난 일이었읍니다. ‘가나안’ 땅을 침공해서 그곳의 다섯 왕들을 패배시키고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포함해서 포로로 잡아가는 네 왕의 손에서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아브라함’이 약탈자들인 그 네 왕에게 고통스러운 패배를 안겨 주고 돌아올 때, 그는 사해 서쪽 산악 지대에 있는 ‘살렘’ 성에 가까이 이르렀읍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의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창세 14:18-20)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말한 바와 같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압제자들을 그의 손에 붙이셨으므로 ‘아브라함’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준 것은 참으로 적절한 일이었읍니다.
18.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말은 왜 헛된 것이 아니었으며, ‘다윗’은 어떻게 그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중요함을 지적하였읍니까?
18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을 축복한 말은 헛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 축복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으며, ‘아브라함’이 땅의 모든 족속에게 축복이 될 것이라는, 즉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하여 축복을 얻을 것이라는 여호와의 약속과 일치한 것이었읍니다. (창세 12:3) 이 신비의 왕겸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은 역사에 그처럼 간단히 언급되어 있지만 그는 망각되지 않았읍니다. 9백년 후에 지존하신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살렘’의 왕인 ‘예루살렘’의 ‘다윗’ 왕에게 영감을 주어 ‘멜기세덱’이 지존하신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예언하고 알리게 하셨읍니다. 이에 의하면 ‘멜기세덱’은 더 큰 왕, ‘다윗’보다도 더 큰 왕, ‘다윗’도 “내 주”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는 왕을 예표하고 있었읍니다. 이 예표된 왕은 메시야 곧 하나님의 “여자”의 씨 외에 다른 분일 수 없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의 힘에 의하여 ‘다윗’은 시편 110:1-4에서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홀을 내어 보내시리니 주는 원수 중에서 다스리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19. ‘시온’ 산에서 권능의 홀을 사용하리라고 예언된 분은 누구의 후손이어야 하였으며, ‘다윗’은 ‘솔로몬’에서 ‘시드기야’에 이르는 왕들에 대하여 예언한 것이 왜 아니었읍니까?
19 그 영감받은 말씀이 의미하는 바에 유의하십시오. ‘다윗’ 왕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권능의 홀을 보내실 것이라고 말한 사실은 왕이 ‘다윗’의 육적 후손일 것임을 시사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한 왕국을 위하여 ‘다윗’과 맺으신 언약에 의하면 ‘다윗’의 육적 후손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왕으로서 ‘시온’ 산에 앉아서 권능의 홀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있었읍니다. (사무엘 하 7:8-16) 그러므로 ‘시온’으로부터 권능의 지팡이를 받을 이분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리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다윗’은, ‘시온’ 산에 앉아 그의 백성의 열 두 지파 전부를 통치한 ‘솔로몬’ 왕 즉 ‘다윗’의 계열의 가장 영화로운 왕을 예언적으로 지적한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을 “내 주”라고 부른 일이 결코 없었으며, ‘솔로몬’의 뒤를 이어 ‘시드기야’ 왕까지 이르는 다른 어떠한 ‘시온’의 왕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읍니다. 또한 ‘솔로몬’을 계승한 ‘시온’ 산의 어떠한 왕도 ‘멜기세덱’과 같은 왕겸 제사장이 아니었읍니다.—역대 하 26:16-23.
20. 이 예언된 분은 ‘다윗’의 후손이지만 어떻게 ‘다윗’의 “주”가 될 것입니까?
20 그러나 이 약속된 통치자는 ‘다윗’ 왕의 “후손”이어야 하였는 데 왜 ‘다윗’은 그를 “내 주”라고 불렀읍니까? 이것은 ‘다윗’의 이 탁월한 “후손”이 ‘다윗’보다 훨씬 높은 왕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땅의 ‘시온’ 산에서 “여호와의 보좌”에 앉았었지만 그는 결코, 사망시에도, 하늘에 올라가서 여호와의 “우편”에 앉지 못했읍니다. 그러나 ‘다윗’의 “주”가 될 분은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하늘의 여호와의 우편에 있는 그의 왕위는 땅의 ‘시온’ 산으로 상징되었기 때문에 하늘의 ‘시온’ 산이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땅의 ‘시온’ 산은 과거에는 ‘예루살렘’ 성벽 안에 둘러 싸여 있었으나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친히 시편 89:27에서 메시야에 관하여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리로다].”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는 고대 ‘살렘’ 왕 ‘멜기세덱’과 같이 ‘다윗’보다 높은 주와 왕이 될 뿐 아니라 영원히 지존하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될 것입니다.—시 76:2; 110:4.
21. 그러면 왜 ‘아브라함’의 이름이 크게 될 것입니까?
21 기원전 20세기 당시에 족장 ‘아브라함’은 자기와 자기의 아내 ‘사라’의 후손인 “열왕” 가운데 ‘아브라함’이 그의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바친 ‘멜기세덱’에 의하여 전영된 메시야 왕이 포함될 것임을 알지 못하였읍니다. 그러한 왕 겸 제사장과의 관련 때문에 ‘아브라함’의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멜기세덱’과 같은 이 왕겸 제사장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축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은 당연합니다.—창세 12:3.
하나님의 “벗”
22. 하나님께서는 그의 선민이 ‘아브라함’의 육적 아들 및 후사를 통하여 나올 것을 어떠한 예로 설명하셨읍니까?
22 침공해 온 네 명의 왕에게 ‘아브라함’이 승리를 거둔 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보호를 약속하셨고 또한 그의 친아들이 그의 “후사”가 될 것을 약속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선민이 이 아들 곧 후사를 통하여 나올 것을 이러한 예로 보증하셨읍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니라].”—창세 15:1-6.
23. 무엇을 근거로 ‘아브라함’은 의로 여겨졌으며, 그는 무엇에 합당하였읍니까?
23 이 때에 ‘아브라함’은 아직도 할례받지 않은 ‘히브리’인이었음을 잊지 맙시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육체의 할례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질 수 없었읍니다. ‘아브라함’이 의로 여겨진 것은 그에게 자기의 목적의 일부를 계시하신 여호와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서 의로 간주되었으며, 따라서 그는 여호와 하나님과 우정을 누리기에 합당하였읍니다. 여러 세기 후에 ‘예루살렘’의 ‘여호사밧’ 왕은 ‘아브라함’을 여호와의 친구 혹은 “벗”이라고 불렀읍니다. 그 후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이사야’를 통하여 그를 “나의 벗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셨읍니다. (역대 하 20:7; 이사야 41:8) 이것은 “씨”와 관련하여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실제로 얼마나 가치있고 얼마나 중요한가를 증명합니다.
24. ‘아브라함’은 어떻게 ‘이스마엘’의 아버지가 되었으며, 다음에 어떻게 ‘이삭’의 아버지가 되었읍니까?
24 ‘아브라함’은 기원전 1932년에 그의 잉태치 못하는 노년의 아내 ‘사라’의 제안에 따라 ‘애굽’인 여종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으며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불렀읍니다. (창세 16:1-16) 그로부터 13년후 기원전 1919년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 참다운 “씨”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그의 참 아내 ‘사라’를 통한 아들이 선택된 “씨”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 “씨”는 자유한 여자의 아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듬해에 ‘사라’가 90세였을 때 ‘이삭’이 출생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이삭’은 8일째 되는 날 그의 아버지가 그 전해에 할례를 받은 것과 같이 할례를 받았읍니다.—창세 21:1-5.
25. 기록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의 모든 서자를 포함시켜 하나의 민족이 나오게 하셨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25 하나님께서 이제 그의 두 아들 곧 큰 아들 ‘이스마엘’과 ‘이삭’에게서 하나의 민족, 곧 두 지파로 된 민족이 나오게 하시지 않은 점은 흥미있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고 5년 후에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의 독촉으로 ‘하갈’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 보내 그들이 원하는 곳에 가서 살게 하였읍니다. (창세 21:8-21) 또한 그 후, 기원전 1881년에 ‘사라’가 사망한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이삭’과 ‘아브라함’의 후처 ‘그두라’를 통하여 낳은 다른 아들들로부터 한 민족, 일곱 지파로 된 한 민족이 나오게 하시지 않았읍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창세 25:1-6.
26. ‘아브라함’은 믿음을 어떻게 놀랍게 나타냈기 때문에 ‘모리아’ 땅에서 특별한 축복을 받았으며, 그 내용은 무엇이었읍니까?
26 ‘아브라함’은 믿음을 매우 놀랍게 나타냈기 때문에 이 여호와의 “벗”은 큰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 축복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날카로운 시험을 받고 지존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순종한 후에 있었읍니다. 하나님의 승인의 축복은 ‘모리아’ 땅의 산꼭대기에서 선언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 곳이 ‘솔로몬’ 왕이 여러 세기 후에 여호와의 웅장한 성전을 건축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역대 하 3:1) 여호와께서 지정하신 그 곳에서 새로 만든 돌 제단에 펴 놓은 나무 위에 성장기의 한 소년이 누워 있었읍니다. 그는 ‘이삭’이었읍니다. 제단 옆에는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손에 도살용 칼을 들고 서 있었읍니다. 그는 지금 막 ‘이삭’을 희생하여 그 소년을 기적으로 주신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하려는 참이었읍니다. 바로 그때였읍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함아’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창세 22:1-18.
27. 하나님의 이러한 진술은 “씨”의 선택에 대하여 그리고 그 “씨”를 통하여 축복을 얻는 일에 관하여 무엇을 알려 주었읍니까?
27 이것은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통로가 될 약속된 “씨”가 ‘이삭’의 후손 계열에서 나올 것을 의미하였읍니다. 그리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후손 계열을 선택하고 계셨으며 ‘이삭’의 모든 이복 형제들은 그 “씨”를 마련하는 데 참여하지 않을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의 이복 형제들로부터 내려온 민족들은 그 “씨”를 통하여 축복을 얻을 수 있었읍니다. 오늘날 모든 민족, 즉 오늘날 모든 나라 사람들은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축복을 얻을 수 있읍니다.
28. ‘셈’은 장수하였기 때문에 그의 후손 계열과 관련하여 어떠한 일들을 살아서 보았읍니까?
28 세계적 홍수를 생존한 족장 ‘셈’은 그러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브라함’에게 선언될 때 살아 있었으며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읍니다. 사실 ‘셈’은 ‘이삭’이 ‘메소포타미아’ ‘하란’ 출신인 아름다운 ‘리브가’와 결혼하는 것까지 보았읍니다. ‘셈’은 그 결혼이 있은지 10년 후인 기원전 1868년까지 살았지만 그 결혼으로 말미암은 후손을 보지는 못하였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보았읍니다.—창세 11:11;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