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유산을 열렬히 바라보는가?
“그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태 25:34.
1-3. (ㄱ)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유산은 왜 돈이나 재산보다 더 중요합니까? (ㄴ)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 앞에는 어떤 유산들이 있다고 성서는 설명합니까?
당신은 바라볼 만한 유산이 있어서 그것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압니까? 말썽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돈의 유산이 아닙니다. 친척들을 흔히 원수로 만드는 그러한 종류의 유산이 아닙니다. 이 유산은 그것을 받을 사람들이 모두 서로 그것을 온전히 받도록 돕는 유산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이 하나님의 아들의 영적 형제들 앞에 놓인 이 유산 곧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있게 될 유산에 대하여 자주 말하였읍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에 참여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유산에는 썩지 않고 죽지 않는 선물이 포함됩니다.—고린도 전 6:9, 10; 15:50; 에베소 1:14; 베드로 전 1:4.
3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 앞에 놓인 유산도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한가지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자기의 영적 형제들 곧 천적 후사들에게 사랑의 친절을 보일 자들에 대해 말씀하셨읍니다. 그는 이 친절한 자들에게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의미할 것이라고 그는 말씀하셨읍니다. 이 유산은 천적 후사들의 유산과는 다르며,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기간에 그리스도의 왕국에 의해 다스림을 받을 지적 영역에서 받을 유산입니다.—마태 25:34, 46; 계시 20:4, 6.
4, 5. 성서에서 “상속”이라고 번역된 희랍어 단어의 뜻은 무엇입니까?
4 성서에 사용된 “상속하다”라는 희랍어 단어는 ‘클레로노메오’입니다. 위에서 말한 유산 또는 상속이라는 말은,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유산을 받듯이 혈연 관계 때문에 받게 되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상으로서 반는 어떤 것,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여호와의 마련에 대한 믿음으로 어떤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받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근거로 하여 여호와 하나님께 나아가 헌신한 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러한 유산을 받을 입장에 있읍니다. 기대할 만한 실로 훌륭한 전망입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이버지로부터 받는 어떠한 유산과도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유산입니다.
여러 세기 전에 바라보았던 사람들
6-8. (ㄱ) 고대 충실한 사람들은 유산을 어떻게 보았는지 설명하십시오. (ㄴ) 이 사람들은 어디서 언제 그 유산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였읍니까?
6 그 유산 곧 영원한 생명의 보상을 받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겪어야 합니까? 사도 ‘바울’은 유산을 받기 여러 세기전에 살았던 고대의 충실한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보았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읍니다. ‘아브라함’에 대해 그는 이렇게 썼읍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왕국]을 바랐음이니라.” “[그는]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느니라]”—히브리 11:8-10, 17.
7 신성한 유산을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히 여겼던 또 다른 사람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으니] ···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히브리 11:23-26.
8 이 사람들과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열심을 내었읍니다. 그러나 이 사물의 제도에서 받을 지상의 유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유산을 위해서 열심을 내었읍니다. ‘바울’은 말하였읍니다. “이 사람들은 다 ···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왕국]을 예비하셨느니라.”—히브리 11:13-16.
9. 현재 여호와의 증인들이 고대 충신자들보다 보상을 받을 날이 가깝다고 하여 그들이 그것을 받는다고 더 자신합니까?
9 여호와의 증인들은 앞으로 훌륭한 유산 곧 보상이 있다는 것을 알며 모두 그것을 받고자 열망합니다. 사실상 우리는 앞으로 많이 기다릴 필요가 없읍니다. 이제 그 문턱에 다가왔읍니다. 그러나 그 유산을 무시하고 경히 여겨 상실할 위험성이 있읍니까? 있읍니다. 그 유산에 대한 사랑을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정신에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도 들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가 자신을 검토하기 위해서, 유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성서 기록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야곱’과 ‘에서’ 쌍둥이 형제에 대한 기록이 그러한 내용입니다.
10. ‘이삭’은 대단히 가치 있는 무슨 유산을 소유하고 있었읍니까?
10 그 두 아들이 성장하던 때부터 그 기록을 살펴보겠읍니다. 그들은 다 함께 자기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 밑에서 성장하면서 지상의 모든 족속을 축복할 약속의 “씨”에 관하여 배웠읍니다. (창세 3:15) 그들은 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계통에서 ‘이삭’을 통하여 그 “씨”가 나올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들의 아버지 ‘이삭’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읍니다. (창세 21:12; 22:15-18; 25:11; 26:24)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유산이었읍니다. ‘이삭’은 또한 물질면으로도 부유한 사람이었읍니다. 이 재산을 그 아들들은 상속받을 것이었으며, 장자는 두 몫을 받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러나 어느 아들이 유산, 특히 가계를 통해서 나올 “씨”의 약속을 받을 자격을 갖출 것입니까? 장자인 ‘에서’가 인간적인 견지에서는 유리한 입장이었읍니다.—창세 25:25, 26.
11, 12. ‘야곱’과 ‘에서’가 성장하던 때 그들의 태도에 대해 말하십시오.
11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군인고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종용한 사람인고로 장막에 거하니[라.]”—창세 25:27.
12 이 말은 두 아들의 태도에 대해 어떤 점을 알려줍니까? 이 말은 그들 각자의 마음이 어떠하였는가를 알려줍니다. ‘에서’는 사냥에 능숙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사냥 기술을 배우면서 들에서 시간을 보냈읍니다. 반면에 ‘야곱’은 가정에 관심이 있었읍니다. 여기에 “종용한”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건전한”, “순진한”, “전부의”를 의미합니다. ‘야곱’은 ‘에서’처럼 자기 힘이나 능력을 과시하지는 않았지만 허약한 사람은 아니었읍니다. 후에 여호와께서는 그를 강력한 사람이라고 하셨읍니다. (호세아 12:3) ‘야곱’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약속을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시하였고 자기 아버지로부터 약속에 대해 배우는 일에 전념하였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상속자로 지정한 그 가족의 유익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읍니다. 그는 ‘에서’가 장자였기 때문에 그를 자기보다 앞선 사람으로 인정은 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자들과 밀접하게 있기를 원하였읍니다.
13. 두 청년은 후에 유산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어떻게 매우 강력히 나타냈읍니까?
13 후에 그 두 청년은 자기 태도에 대한 더 강력한 증거를 나타냈읍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부터 돌아와서 심히 곤비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곤비하니 그 붉은 것을 나로 먹게 하라 한지라. ··· ‘야곱’이 가로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에서’가 가로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야곱’이 가로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가니라.]”—창세 25:29-34.
인식의 문제
14, 15. ‘야곱’이 장자권을 산 것은 ‘에서’를 이기적으로 속인 것입니까? 이 거래로써 여호와의 판단이 어떻게 입증되었읍니까?
14 ‘야곱’은 이기적이었으며 ‘에서’를 악하게 이용하였읍니까? 그렇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생각해봅시다. ‘에서’는 자기의 장자권이 의미하는 놀라운 것을 참으로 인식하였읍니까? 그는 자기 말처럼 실제 죽을 지경이 된 것은 아니었읍니다. 이것은 그가 먹은 다음에 일어나서 자기 갈 길을 간 점으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성서를 보면 “심히 곤비”하였다고 하였읍니다. ‘에서’는 왜 그러한 일을 하였읍니까? 성서 기록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었다고 하였읍니다. 사도 ‘바울’은 이 기록을 설명하여 말하기를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라고 하였읍니다.—창세 25:34; 히브리 12:16.
15 이 모든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 두 아들의 성격을 올바로 보셨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그들의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씀하시기를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읍니다.—창세 25:23; 로마 9:12.
16. 왜 ‘야곱’은 자기 아버지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받을 권리가 있었읍니까? 그러나 왜 그것을 자청해서 요구하지 않은 것 같습니까?
16 이제 ‘야곱’은 두 가지 곧 하나님의 약속과 매입한 권리에 의해서 장자권을 소유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장자에게 주는 ‘이삭’의 축복을 받지 않았읍니다. 그래도 ‘야곱’은 ‘에서’를 앞지르려고 수단을 쓰지 않고 비이기적으로 행동하였읍니다. 틀림없이 그는 여호와께 의지하였읍니다. 그때에 ‘이삭’은 눈이 어두웠으며, 발생된 사건들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읍니다. ‘리브가’는 여호와의 감동을 받아 아이들의 출생시에 자기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야곱’에게 축복을 받도록 지시하였음이 분명합니다.
17, 18. ‘리브가’와 ‘야곱’이 부정직하지 않았음과 ‘야곱’이 축복을 받은 문제에 여호와의 손길이 작용하였다는 사실을 설명하십시오.
17 사태 진전에 대해 어떤 성서 독자들은 ‘리브가’와 ‘야곱’이 속임수를 쓰고 부정직하였다고 그들을 비난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렇게 말할 수 있읍니까? 이 때에 누가 참으로 모든 면에서 장자의 입장에 있었읍니까? 누가 유산에 관심이 있었읍니까? 왜 ‘에서’는 ‘이삭’에게 ‘야곱’이 장자권을 샀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자신이 축복을 받으려고 하였읍니까? ‘이삭’이 ‘야곱’을 ‘에서’로 잘못 알고 축복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후에 그는 ‘야곱’과 ‘리브가’의 행위가 옳다는 것을 인정하였읍니다. 그는 이 문제에 여호와의 손길이 작용한 것을 이해하고, 이번에는 알면서 “씨”에 관한 예언으로 ‘야곱’을 축복하였읍니다. 그 다음 그는 ‘야곱’에게 지시를 하여 분노한 형 ‘에서’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보냈읍니다. 부가적으로 하나님께서도 친히 “씨”가 그의 계통에서 나올 것이라고 ‘야곱’에게 약속하시고 축복하셨읍니다.—창세 27장; 28:1-4.
18 ‘야곱’의 행동이 이기적인 이득을 위한 것이 아님을 더욱 증명하는 것으로 그가 집의 재산을 차지하지 않고 자기 집을 떠난 사실이 있읍니다. 그리고 그가 자기의 두 몫을 요구하였다는 증거가 없읍니다. 자기에게 더욱 가치 있는 것은 앞으로 받을 유산이었읍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이 자기 가족에게 머물러 있기를 바랐읍니다. 그에게는 여호와와 그분의 약속에 대한 인식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욱 중요하였읍니다.
19. (ㄱ) ‘야곱’은 ‘에서’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에 어떻게 생각하였읍니까? (ㄴ) ‘야곱’이 ‘에서’를 만나기 직전 어떠한 매우 특이한 일이 일어났읍니까?
19 인식이 부족한 ‘에서’와는 대조적으로, ‘야곱’이 하나님의 유산을 매우 귀중하게 여겼다는 사실은, ‘야곱’이 20년후에 자기 아버지를 보러 고향에 돌아왔을 때에 있었던 일에서 또 나타났읍니다. ‘야곱’은 ‘에서’가 자기를 해할지도 모른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약간 두려워하고 조심하였읍니다. 그는 자기 가족보다 앞서서 ‘에서’에게 선물을 보냈읍니다. 만일 ‘에서’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그들 사이가 평화롭다는 것을 이미하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이 상봉하기 전에 매우 특이한 사건이 일어났읍니다. 성서 기록은 이러합니다.
“[‘야곱’이]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 쌔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네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야곱’이니이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이기었음이니라. ‘야곱’이 청하여 가로되 당신의 이름을 고하소서 그 사람이 가로되 어찌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창세 32:22-31.
20. 왜 ‘야곱’은 밤새도록 천사와 겨루었읍니까?
20 유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야곱’과 ‘에서’의 큰 차이가 여기에 나타나 있읍니다. ‘에서’는 장자권을 위하여 조그마한 배고픔도 참지 못한 반면, ‘야곱’은 사람으로 화신한 하나님의 천사와 밤중 내내 씨름을 하였읍니다. ‘야곱’은 천사를 통하여 여호와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읍니다. 틀림없이 ‘야곱’은 천사가 나타난 것이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며, 천사들이 과거에는 나타난 때에도 ‘아브라함’의 언약을 확인하는 축복이나 명령을 가져왔다는 것도 알았읍니다. (창세 28:10-15; 31:11-13)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 및 할아버지와 함께 하신 것처럼 자기와도 함께 해주실 것을 매우 갈망하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있는 힘을 다하여 천사와 씨름을 하였고 그 천사에게 매달렸읍니다. 그렇게 하여 ‘야곱’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나타냈읍니다.—창세 28:20-22과 비교.
21.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위골시킨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물론, ‘야곱’이 하나님의 천사를 실제로 이기거나 압도하지는 못하였읍니다. 그 사건은 ‘야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온 마음으로 갈망하는가에 대한 시험이었읍니다. 사실상, 초인간적 힘을 가진 천사는 단번에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되게 하고 그 후에 절름거리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겸손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으며, 그에게 보호책이 되었읍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을 하시고 그를 사용하신 것은 ‘야곱’이 힘이 세거나 그에게 그만한 공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과분하신 친절 때문이라는 사실을 ‘야곱’에게 상기시켜주었읍니다. 고린도 후서 12:6-10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경험과 비교해 보십시오.
22. ‘야곱’이 하나님으로부터의 유산을 매우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야곱’은 그 당시에 어떤 축복을 받았으며, 앞으로 어떤 축복을 받을 것입니까?
22 ‘야곱’과 ‘에서’가 당한 결과는 우리로 하여금 충성을 지키도록, 보상에 대한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하는 강한 자극제가 됩니다. ‘야곱’은 큰 민족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여호와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일에 그 나라를 사용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씨” 곧 메시야는 ‘야곱’의 계통을 통하여 나왔읍니다. 그가 강한 믿음을 가졌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는 ‘야곱’이 ‘살아’있으며, 그가 부활되어 유산을 받고 하니님의 왕국의 지적 영역에 참여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는 틀림없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들의 감독자와 목자로 임명할 “군왕” 중의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누가 20:37, 38; 시 45:16.
당신은 유산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23, 24. 우리는 무엇을 자문해보아야 하며, 우리는 자신에게 유산을 확보해 줄 수 있읍니까?
23 ‘야곱’과 ‘에서’의 생애를 보고 나서 우리 각자는 ‘나는 내 생명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생명에 대한 약속된 유산을 얼마나 인식하는가? 나는 유산을 받기 위해 기꺼이 불편한 입장을 감수하는가? 나는 있는 힘을 다하여 그것에 고착하고자 하는가?’ 하고 자문해 보아야겠읍니다.
24 ‘야곱’이 그렇게 한 바와 같이 우리는 그 유산을 확보할 수 있읍니다. 그의 정신과 마음은 젊었을 적부터 그 약속들에 집중되어 있었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관계하신 점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기 위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열심히 일하였고 여러가지 시련을 인내하였읍니다. 그러나 시종 온유한 정신과 강한 믿음을 유지하였읍니다.
25. 우리가 영적 필요를 인식하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어떠한 것을 자문해 볼 수 있읍니까?
25 여호와께서는 매우 친절하시게도 우리에게 영적 필수품을 공급해 주셨읍니다. 당신은 ‘야곱’처럼 그러한 것을 깊이 인식합니까? 당신은 성서 자체를 정기적으로 읽습니까? 당신은 「파수대」를 읽되 연구 기사만이 아니라 다른 기사들도 읽습니까? 거기에는 당신이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훌륭한 지식들이 많이 들어 있읍니다.
26, 27. ‘야곱’은 어떤 면에서 여호와께 유산을 주실 것을 참을성 있게 기대한 본이 됩니까?
26 당신은 ‘야곱’처럼 참을성 있고 비이기적입니까? 당신은 온 마음을 다하여 기꺼이 봉사하며, 여호와의 축복을 기대합니까? ‘야곱’은 77세에 아무 유산도 받지 않고, 자기 아버지로부터 집을 떠나라는 충고를 받았을 때 섭섭하게 생각지 않았읍니다. 그는 태도 면에 있어서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와는 정반대였읍니다. 그 탕자는 자기 집을 떠나되 자기 유산을 받아 자기 멋대로 탕진해 버렸읍니다. ‘야곱’은 자기 집에 되돌아왔을 때 나이 97세였지만, 지상의 유산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온 것입니다.—창세 31:3.
2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마가 10:29, 30) ‘야곱’은 그렇게 생각하였읍니다.
28, 29. 우리가 변함없이 유산을 열심히 바라보아야 할 것을 ‘야곱’의 본은 어떻게 알려줍니까?
28 그러므로, 시간의 한계를 머리에 두면서 봉사한 것이나, 자신을 위해 물질적 안일이나 편의를 기대하는 것 또는 단지 몇가지 시험을 인내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평생 동안, 항상 유산을 우리 목전에 바라보는 문제입니다.
29 유산에 대해 굳게 고착하며, 우리가 당하는 일을 힘차게, 있는 힘을 다하여, 마치 ‘야곱’이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한 것처럼 일을 해야 합니다. (전도 9:10) 그리고 ‘야곱’은 그가 한 모든 일을 잘 하였으며, 있는 힘을 다하여 하였읍니다. 또한 그는 다른 사람의 이익을 자신의 일보다 앞세웠읍니다. ‘야곱’이 자기의 친척이며 고용주인 ‘라반’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 보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이 이십년에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떼의 수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 가지 아니하고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낮에 도적을 맞았든지 밤에 도적을 맞았든지 내가 외삼촌에게 물어 내었으며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세 31:38-40.
30. 왜 ‘야곱’은 ‘라반’을 위하여 20년 동안이나 열심히 일하였읍니까?
30 그런데 ‘야곱’이 단지 ‘라반’을 돕기 위해서라든가 물질적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세속적인 일을 한 것은 아니었읍니다. ‘야곱’은 때가 되면 자기 가족을 거느리고 고향에 되돌아갈 것을 생각하고 양떼를 늘렸읍니다. 왜 그랬읍니까? 왜냐 하면,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 땅에서 외인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결국에 가서는 그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읍니다. ‘야곱’은 이 약속을 믿었읍니다. 그의 온 영혼은 그 약속에 집중되어 있었읍니다. 그는 자유로운 가정, 온전히 하나님을 심길 수 있는 가정을 갖고 싶어하였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시어 그의 가족, 그의 열 두아들들이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의 기초가 되도록 하셨읍니다.
31.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야곱’의 일과 비슷한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31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온 마음을 기울여 해야 할 일이 있읍니다. 그 일은 왕국의 관심사를 돌보는 일입니다. 좋은 소식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충실함이 요구됩니다. ‘야곱’이 자신의 양무리와 ‘라반’의 양무리를 위하여 나타냈던 바와 동일한 열심과 힘을 들여 양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야곱’이 한 바와 같이 앞에 놓인 유산은 열렬히 바라볼 가치가 있읍니다. 히브리 11:26(신세)에서 ‘열렬히 바라보’았다고 번역된 희랍어 단어는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눈을 돌려서 한가지 목표를 주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32. 유산 곧 상을 열렬히 바라본다는 것은 사실상 무엇을 의미합니까?
32 유산에 대해 그러한 열심을 가지고 있으면 아무 것도 우리를 넘어지게 못할 것입니다. 아무 것도 우리를 이탈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의 경우와 같이 하늘에 있는 유산을 바라보든지, 왕국의 지적 영역에 있는 유산을 바라보든지 우리는 그 웅대한 유산을 틀림없이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지상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들의 대다수는 지상의 희망을 바라보고 있읍니다. 두 집단이 다 “위에서” (하늘의) 부르신 부름의 희망을 가졌던 사도 ‘바울’과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읍니다. 그는 이렇게 기록하였읍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 가노라.” 하나님의 백성 모두는 그와같은 열심을 유지해야 합니다.—빌립보 3:13, 14.
[518면 삽화]
‘야곱’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약속을 귀중하게 여겼으나 ‘에서’는 자기의 유산을 죽 한그릇에 팔았다. 당신은 ‘야곱’과 같이 신성한 것을 깊이 인식하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새 질서에서의 생명의 유산을 열렬히 바라보며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행하는 일로 그 사실을 나타내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