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인가?
1. 현 세대의 자비의 광범한 결핍은 왜 핑계가 되지 않습니까?
편협하고 자기 중심적인 세상에서 자비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참으로 축복의 사람입니다. 참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시 145:8, 9) 그리고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고 권면하셨읍니다. (누가 6:36) 그러니 백성들과 나라들의 수많은 의심, 경쟁심, 증오심으로 인해 유발되는 상호 적대적인 상태는 현세대의 치욕입니다.
2. 하나님의 자비는 어떤 사람들에게만 미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잠언 28:27은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이 점으로 보아서 ‘못본 체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미치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감상주의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언제나 공의, 거룩함 등 하나님의 다른 특성과 의로운 표준에 조화됩니다. (호세아 2:19) 하나님의 자비를 당연히 받을 것으로 전제하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하든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자비를 보여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누구나 쓰라린 실망을 당할 것입니다. 자기의 행동과 생활로 하나님의 의로운 길에 대해 고의로 불경을 나타낸다면 하나님을 노하시게 하는 것이며, 참 하나님께서는 정당하게 ‘노하심으로 그 자비를 막으’실 것입니다.—시 77:9; 로마 2:4-11.
3. 우리 자신의 자비의 특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어떤 질문들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3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의 다음과 같은 말은 건전한 경고가 되며 동시에 위안이 됩니다. “심판은 자비를 행하지 않는 사람에 대하여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 2:13, 새번역) 당신은 얼마나 자비로운 사람입니까? 당신은 자신에게 저지른 다른 사람의 범죄를 용이하게 보아넘길 수 있읍니까? 아니면, 그러한 문제를 머리에서 지워버리기가 어렵습니까? 당신은 주위 사람들의 어려움을 능동적으로 의식하고 있읍니까? 아니면, 그러한 일을 항상 당신에게 일러 주어야만 합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동기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읍니까? 아니면, 진실하고 순진한 것을 인식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읍니까? 당신은 탁월한 사람이나 어느 면으로 특출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더 친절한 경향이 있읍니까? 아니면, 엄격히 영적인 특성에 참다운 기쁨을 느낄 수 있읍니까? 이러한 여러 가지 질문에 비추어 자신을 저울질 해 볼 때 당신은 자비가 부족함이 나타날 것입니까? 결과는 중대합니다. 왜냐 하면, 우리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든지 않든지,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통하여 지적하신 바와 같이 여호와의 심판이 우리 각자에게 임할 것이며, 심판을 받을 때에 자비를 실천한 자들만이 자비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자비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4 자비로운 사람은, 원한을 품지 않는 사람, 상황이 허락하는 때면 언제나 단죄와 형벌을 기꺼이 면해 주는 사람, 물질적으로나 영적으로 주는 일에 관대한 사람, 궁핍한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들에게 적극적인 방법으로 염려를 나타내는 사람, 편애하지 않고 교만과 시기로 혀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 자선 행동을 하며 자랑함이 없이 진심과 겸손으로 자비의 선물을 나누어 주는 사람, 동료들과 관계하는 데 있어서 지나치게 능란하여 다른 사람들이 그에게 있어서 “조직적인 기계”의 한 부분과 같이 되게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자기 소유물의 정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관대하게 주는 사람은 틀림없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분명히 여호와로부터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고 알려 줍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 「잠언」에 부가하여, “자비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를 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읍니다.—잠언 19:17; 마태 5:7, 새번역.
올바른 원칙에 고착하여 은총을 받다
5.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으며, 왜 그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특히 사랑을 받았읍니까?
5 여호와의 자비를 본받은 사람으로서의 탁월한 본은, ‘아브라함’의 증손이며 ‘야곱’ 곧 ‘이스라엘’의 아들인 ‘요셉’을 들 수 있읍니다. ‘요셉’은 ‘시리아’(‘아람’)에서 ‘야곱’의 사랑받던 아내 ‘라헬’을 통한 두 아들 중 맏아들로 태어났읍니다. (창세 30:22-24; 35:24) ‘요셉’을 낳을 때에 ‘야곱’의 나이 91세였으므로, ‘요셉’은 늙어서 얻은 아들이었으며, 그의 형들보다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읍니다. ‘요셉’이 여섯살쯤 되었을 때에, ‘야곱’은 전 가족과 함께 ‘밧단아람’을 떠나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왔읍니다. ‘야곱’은 이전에 자기 동족 중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밧단아람’으로 갔었던 것입니다. (창세 31:17, 18, 41) 그는 ‘숙곳’에서, ‘세겜’에서 그리고 ‘벧엘’에서 잠간씩 살았읍니다. 후에, ‘벧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둘째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읍니다. 그러므로, ‘베냐민’만이 ‘요셉’의 친 형제이었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요셉’의 이복 형제들로서, ‘라헬’의 언니 ‘레아’에게서, ‘레아’와 ‘라헬’의 여종들인 ‘실바’와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이었읍니다.—창세 33:17-19; 35:1, 5, 6, 16-19.
6. (ㄱ) ‘요셉’은 이복 형제들에 관한 무슨 보고를 아버지에게 해 왔으며, 왜 이것은 자비 없는 행동이 아니었읍니까? (ㄴ) 그 이전에 ‘시므온’과 ‘레위’는 동정심이 없음을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6 ‘요셉’은 어려서부터 의로운 원칙에 고착하였지만 그의 열 이복 형제들은 그렇지 않았읍니다. 열 일곱 살 때에 ‘요셉’은 ‘빌하’와 ‘실바’를 통한 ‘야곱’의 아들들과 함께 양을 쳤읍니다. ‘요셉’은 이복 형제들보다 어리면서도 아버지의 일에 더 열심이 있어서 그들의 과실을 아버지께 충실하게 보고하였읍니다. (창세 37:2) ‘요셉’이 그렇게 한 것은 자비가 없는 행동이 아니었읍니다. 왜냐 하면, 그 형제들의 행동은 나쁜 것이었으며, ‘야곱’은 그것을 알아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로운 원칙에 충실하였기 때문에 ‘야곱’이 ‘요셉’을 그만큼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본으로부터 유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시기하는 태도를 나타냈으며, 그들은 난폭한 정신을 보였읍니다. 그러한 정신 때문에, 그들은 ‘시므온’과 ‘레위’의 주동 하에 그들과 우호 관계를 이룩하려는 ‘세겜’ 사람들이 무방비 상태에 있을 때에 그들을 살륙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겜’ 사람들을 살륙한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였지만,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공격을 주동하였던 ‘시므온’과 ‘레위’에 대하여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에게] ···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하였으며, 여러 해 후에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의 분노에 대하여 ‘그 노염이 혹독하고 분기가 맹렬’하므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읍니다. (창세 34:1-31; 49:7) 그들은 동정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요셉’을 다른 형제들보다 더 사랑하고, 길고 줄무늬 있는 옷(아마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입었던 옷과 비슷하였을 것임)을 지어주었을 때 그에게 평온한 말을 할 수 없었읍니다.—창세 37:3, 4.
7. ‘요셉’은 무슨 꿈을 꾸었으며, 아버지와 이복 형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7 그때 ‘요셉’은 한 꿈을 꾸었고, 그것을 형제들에게 이야기하였읍니다. 꿈에 모든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고 있는데, 그의 곡식단이 일어서자 이복 형들의 곡식단들이 자기의 곡식단을 둘러 서서 거기에 절을 하였읍니다. 이 말을 듣자 형들은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하고 말하고 그를 더욱 미워하였읍니다. 계속되는 기록은 이러합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 형들에게 고하여 가로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 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 꿈으로 부형에게 고하매 아비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너의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모와 네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그 형들은 시기하되 그 아비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야곱’은 그 꿈이 의미 깊은 것임을 인정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 대해 우월한 태도를 나타낸 것같이 보였겠지만, 그는 사실상 여호와께서 밝혀 주신 내용을 단지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형제들은 그들의 마음 상태를 더욱 나타내게 되었읍니다.—창세 37:5-11.
시기심이 살인적 증오를 일으키다
8. ‘요셉’은 어떻게 하여 집을 떠나 이복 형들과 함께 있게 되었으며, 그 형들은 그 기회를 어떻게 보았읍니까?
8 이제 이복 형들은 ‘세겜’ 근처로 아버지의 양떼를 치러 갔고 ‘야곱’은 ‘헤브론’에 살고 있었읍니다. ‘야곱’은 그들의 안부가 걱정이 되었읍니다. 아마 그들이 ‘시리아’(‘아람’)에서 나오던 때에, 그 지방 사람들이 자기와 자기 아들들에 대해 적개심을 가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복 형들이 증오심을 품고 있으므로 그것은 분명히 마음 내키지 않는 심부름이었겠지만 ‘요셉’은 ‘야곱’을 위해 형들과 양떼가 다 잘 있는지 가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읍니다. 마침내 그는 ‘도단’ 근처에서 형들을 찾아냈읍니다. 그러나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형들은 멀리서 보고 그를 죽일 모의를 하였읍니다.—창세 37:12-20.
9. ‘르우벤’은 어떻게 하려고 하였으며, 그러나 그의 형들은 결국 ‘요셉’을 어떻게 하였읍니까?
9 ‘야곱’의 맏아들 ‘르우벤’은 장자로서의 ‘요셉’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그를 형제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아버지에게 돌려보내려 하였읍니다. (창세 37:22-30) 마침 ‘이스마엘’ 대상(隊商)이 ‘길르앗’에서 애굽으로 가는 길에 그 곳을 지나게 되었읍니다. 그때 ‘르우벤’은 그 자리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을 죽여 그 피를 은닉할 게 아니라 그 사람들에게 그를 팔자고 ‘유다’가 제의하였읍니다. 형제들은 그 말에 동의하였고, ‘요셉’이 자비를 호소하였지만, 그들은 은 20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읍니다. 그 다음 ‘요셉’에게서 빼앗은 옷을 취하고 수염소를 죽여 옷을 피에 적시었읍니다. 후에 그 옷을 보여 주자 ‘야곱’은 맹수가 그 아들을 삼킨 것으로 확신하였읍니다. 그는 하도 슬퍼서 위로받기를 거절하였읍니다. 이윽고, 상인들은 ‘요셉’을 애굽으로 데려와서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종으로 팔았읍니다.—창세 37:21-36.
10. 이 일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본이 되며, ‘요셉’의 고통은 그에게 어떤 유익이 오게 되어 있었읍니까?
10 ‘요셉’의 이복 형들이 그처럼 횡포하게 나타냈던 이 살인적 증오심과 아버지에 대한 불경의 태도는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영적 형제들에 대해 악의를 품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본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하셨읍니다. (마태 5:22) 그러나 ‘요셉’은 자기 가족에게 커다란 축복이 되도록 준비되고 있었으며, 그가 당한 고통은 이 커다란 책임을 위하여 그를 순화시켰읍니다.
‘요셉’이 계속 여호와의 자비를 받다
11. ‘요셉’은 쓰라린 경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그러나 그 후에도 어떤 시련을 당하였읍니까?
11 ‘요셉’은 쓰라린 경험 때문에 변질되어 참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하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는 더욱 더 여호와의 구원과 보존의 능력에 의지하였읍니다. 이 때문에 그가 하는 모든 일은 축복을 받았읍니다. ‘보디발’을 섬기는 일에 부지런하였기 때문에 얼마 후에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감독의 지위로 올라갔읍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실패하면서도 자주 ‘요셉’을 유혹하려 하였읍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고수하였읍니다. ‘보디발’의 아내는 자기의 노력이 좌절되자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고 하였다고 거짓 고발을 하였읍니다. ‘보디발’은 아내의 말을 믿고, ‘요셉’을 감옥에 가두었읍니다.—창세 39:1-20.
12. (ㄱ) ‘요셉’은 감옥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으며, ‘바로’의 두 종들과 관련하여 어떤 경험을 하였고, 그 일은 어떻게 격려가 되었읍니까? (ㄴ) 어떤 일로 인하여 ‘요셉’은 감옥에서 풀려났읍니까?
12 ‘요셉’은 감옥에서 한 동안 험한 대우를 받았읍니다. (시 105:17, 18) 그러나, 부지런하고 여호와를 의뢰하였기 때문에 그는 다시 책임을 맡게 되었읍니다. 역경에서 본이 되는 행동을 하였으므로 그는 다른 죄수들을 관할하는 지위를 받았읍니다. 죄수들 가운데 ‘바로’의 두 종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끼어 있게 되었읍니다. 후에 그들이 각각 꿈을 꾸었는데, 이튿날 아침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근심하였읍니다. 그들의 필요에 민감하였던 ‘요셉’은 여호와 하나님께 합당한 영예를 돌리면서 꿈을 해석해 주었읍니다. 그가 밝힌 대로 이루어졌읍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3일 내에 ‘바로’의 은총을 다시 받게 되었고 떡 굽는 관원장은 동일한 기간 내에 교수형을 당하게 되었읍니다. 여호와께서 은총을 보여 자기에게 해석을 알려 주신 사실로부터 격려를 받고, 또한 자기 자신의 꿈이 틀림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확신하고,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바로’에게 자기를 위해 말해 줄 것을 간청하였읍니다. 그는 그렇게 하기로 하였읍니다. 그러나 술 맡은 관원장은 감옥에서 나오자 그 일을 잊어버리고 2년 후에 ‘바로’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꿈을 꾼 때까지 그를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애굽의 마술 행하는 모든 제사장들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하자 술 맡은 자는 ‘요셉’에 대한 경험을 회상하고 그 사실을 ‘바로’에게 고하였읍니다. 즉시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도록 감옥으로부터 불리움을 받았읍니다.—창세 39:21-41:14.
13. ‘바로’의 꿈의 해석은 무엇이었으며, 시련 중에 인내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요셉’에게 어떤 보상을 주셨읍니까?
13 이제 ‘요셉’이 쌓은 인내의 기록과, 시련 중에 나타낸 인정깊은 태도는 보상을 받게 되었읍니다. 이번에도 여호와께 영예를 돌린 다음 ‘요셉’은 ‘바로’의 두 꿈을 해석하였읍니다. 그는 7년간 풍년이 들고 다음 7년 동안 흉년이 들 것이라고 설명하였읍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평화의 대답을 주셨다고 말하고, 풍년이 드는 동안에 흉년을 위해 대비할 것을 진언하였읍니다. ‘바로’는 ‘요셉’이 식량 관리관이 될 만한 인물임을 인정하고 그 지위에 임명하고, 그 나라에서 두번째 가는 지위로 높여, 흉년을 대비하여 양곡 비축 업무를 조직할 권위를 주었읍니다. 너무 많은 양을 비축하였기 때문에 나중에는 수량을 계산하는 것마저 포기하였읍니다. ‘요셉’은 또한 ‘온’제사장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얻었고, 그를 통해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았읍니다.—창세 41:15-52.
참된 회개가 자비를 받게 하다
14. ‘요셉’은 높은 지위를 갖게 되어 무슨 기회가 있게 되었으며, 어떻게 하여 그의 자비는 심한 시험을 받게 되었읍니까?
14 이제 ‘요셉’은 참으로 부러운 지위를 차지하였읍니다. ‘보디발’과 그의 아내를 포함하여 모든 애굽 사람들의 생명이 그의 손에 달려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은 위협을 당하지 않았읍니다. ‘요셉’은 이전에도 복수심과 앙심을 품는 사람이 아니라 용서를 잘하고 자비로운 사람임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래도 그의 자비는 심한 시험을 받게 되었읍니다. 이 일은 온 땅에 흉년이 들어 온 땅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러 애굽에 왔을 때 있었읍니다. 하루는 ‘요셉’이 굶주리고 있는 외국인들과 애굽인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열 이복 형들이 그 앞에 나타나 얼굴을 땅에 대고 절을 하는 것이었읍니다. ‘요셉’은 즉시 그들에 관하여 꾼 꿈을 회상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을 알아보았지만, 모르는 척하고 통역자를 통하여만 그들에게 말을 하였읍니다. 그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였읍니까? 20여년이 지난 후에 그들의 심판의 때가 도래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비없게 행동하였기 때문에 자비없는 심판을 받아 마땅하였읍니다. 그리고 ‘요셉’은 여호와의 대표자로서 여호와의 공의를 어길 수 없었읍니다. 그러나, ‘요셉’은 앙심을 품는 사람이 아니었읍니다. 그는 그들에게 취한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 대답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온 지혜로 그는 그들을 시험하였읍니다.—창세 41:53-42:8.
15. (ㄱ) ‘요셉’은 이복 형들을 어떻게 다루었으며,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하였읍니까? (ㄴ) 그의 이복 형들은 이 일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15 거칠게 대하면서 그는 그들을 정탐군들이라고 비난하였읍니다. 그들이 결백함을 주장하면서 자기들은 모두 한 사람의 아들이며 나머지 한 아들은 지금 집에 있다고 말하자 그는 그들 보는 데서 ‘시므온’을 결박하고 그들이 그 동생을 데려올 때까지 그를 가두어 놓겠다고 말하였읍니다. 그의 형들은 마음에 충격을 받고 완전히 회개하는 태도를 나타냈으며, 이 재앙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정당한 응보로 받아들였읍니다. 그들끼리 말하기를, “그[‘요셉’]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들은 깨닫지 못하였지만, ‘요셉’은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깊이 충동을 느껴 한쪽으로 가서 눈물을 흘렸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시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읍니다. 그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였다는 점에는 의심이 없었읍니다. 곡물을 그들의 그릇에 채우고 그들의 돈을 비밀리에 그들의 자루에 도로 넣은 다음 ‘시므온’을 가두어 둔 채로 돌려보냈읍니다.—창세 42:9-28.
16. (ㄱ) 어떻게 하여 결국 ‘베냐민’은 애굽에 내려오게 되었으며, ‘요셉’은 그를 보자 어떤 반응을 나타내었읍니까? (ㄴ) ‘요셉’은 이복 형들을 어떻게 최종적으로 시험하였으며, 그것은 어떻게 진전되었읍니까?
16 드디어, 그들은 양식이 떨어져 다시 애굽으로 갈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동생을 데려오지 않으면 애굽의 식량 관리관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경고를 받았던 것입니다. ‘야곱’은 이미 ‘요셉’을 잃었기 때문에, 사랑하던 아내 ‘라헬’이 낳은 나머지 한 아들을 잃을까 두려워서 보내기를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다른 도리가 없게 되자 허락하였읍니다. ‘유다’가 그의 안전을 약속하였읍니다. 그들이 ‘요셉’ 앞에 나타나자 ‘요셉’은 자기의 친동생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감정을 억제할 수 없었읍니다. 자기 동생에 대하여 깊은 감정이 솟구쳐서 내실로 들어가 눈물을 흘렸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기 이복 형들을 마지막으로 시험하였읍니다. ‘요셉’은 계략을 써서 ‘베냐민’이 귀중한 은 잔을 도둑질 한 것 같이 보이게 한 다음, 다른 사람들은 자기 집과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가되 ‘베냐민’은 남아서 종살이를 해야 한다고 호령하였읍니다. 그들은 사랑 받는 ‘베냐민’을 잃으면 자기들의 아버지의 흰 머리로 무덤에 내려가게 할 것을 알기 때문에 상심하고 슬퍼서 ‘요셉’에게 자기들의 아버지를 위하여 ‘베냐민’을 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읍니다. 결국, ‘유다’가 ‘베냐민’ 대신 자기 몸을 바치겠다고 자원하자 ‘요셉’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면서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혔읍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다음에 ‘요셉’은 ‘바로’의 명령을 받아 그의 아버지 ‘야곱’이 모든 가족과 함께 오도록 마련하였으며, 애굽에서 가장 좋은 땅을 차지하게 하였읍니다.—창세 42:29-47:31.
자비의 기록을 가지고 심판을 받음
17. (ㄱ) 무엇이 ‘요셉’의 자비의 정도와 범위를 두드러지게 합니까? 자비가 ‘요셉’의 성격상의 특징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우리 자신은 ‘요셉’과 예수와 ‘스데반’의 본들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까?
17 ‘요셉’이 나타낸 자비의 정도와 범위는 그가 자비를 나타낸 상황에 의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읍니다. 이복 형들로부터, 잔인한, 아니 살인적인 취급을 받았고,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악의에 찬 거짓 고발을 당하였고, ‘보디발’에 의해 가혹하고 부당하게 투옥당하였고, 자기가 인정깊게 위로해 주었던 술 맡은 관원장으로부터 무관심하고 배은망덕하게 잊어버림을 당하였지만, ‘요셉’은 자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에 똑같이 보복하려는 생각을 갖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그는 인자하게, 깊고 진실한 배려를 나타내어 그들의 필요를 보살폈고, 자기 아버지의 모든 가족과 애굽 나라의 모든 백성에게 인정깊은 관심을 나타냈읍니다. 이 자비의 특성은 ‘요셉’이 탁월하고 권력이 있는 지위를 갖게 된 후에 얻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가 시련을 당할 때에 여호와께서 자비를 나타내어 그를 보존해 주시고 부축해 주시고 위안해 주신 것은 ‘요셉’이 이미 모든 기간에 용서와 자비의 태도를 가졌었음에 틀림없다는 증거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 “자비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를 받을 것이다”고 하신 법칙으로 보아 분명합니다. (마태 5:7, 새번역) 그것은 예수께서 형주에 매달려 죽으시기 전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 나타낸 태도와 비슷하였읍니다. 그리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주[여호와]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외친 태도와도 같습니다. (누가 23:34; 사도 7:60) 이 모든 경우에 그들이 나타낸 자비로운 태도는 여호와로부터 보상을 받았읍니다.
18. 자비를 나타내는 일이 왜 특히 우리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까?
18 그러므로, 자비를 나타내는 데 있어서 우리의 관심사가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분명히 나타나지 않습니까? ‘바울’은 우리가 “각각 자기 자신의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고백할” 것이라고 말하였읍니다. (로마 14:12, 새번역) ‘자비가 심판을 이긴다’는 것을 알 때 얼마나 위안이 됩니까! 현 시대의 어떤 결정적인 때이건, 급속히 다가오고 있는 심판 날(베드로 후 3:7)이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그 분이 임명하신 심판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고백할 때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다른 요인들도 있지만 우리의 자비의 기록에 따라 결정될 것입니다. 사랑하라는 예수의 계명을 모든 상황하에서 꾸준히 따른다면 그 기록을 쌓아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동시에 여호와의 찬양과 회중의 평화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519면 삽화]
‘요셉’이 자비를 간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형들은 그를 은 이십개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
[521면 삽화]
그의 형들은 그를 무자비하게 대하였지만 ‘요셉’은 보복하지 않고 회개한 형들에게 인정을 보였으며 그들의 필요를 보살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