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믿음, 희망 및 담대함을 고무하는 책
10월 중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서 「창세기」의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얼마간 그들의 주간 신권 전도 학교에서는 이 감동적인 기록을 고려하게 될 것이다. 이 기사가 나온 것은 그러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며, 우리는 성서에서 참으로 흥미진진하며 믿음을 세워주는 부분인 「창세기」에 관해 당신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질문들에 대하여 본 기사가 그 대답을 제공해 줄 것임을 믿는 바이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들만을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히 그분을 신뢰할 만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분은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웅대한 약속은 결코 실패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러한 약속의 성취를 기다리는 동안 고난과 시련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호와를 기다리는’ 모든 자들은 그분이 자기를 충실하게 섬기는 자들을 항상 보호하시기 때문에 식지 않는 담대함을 가질 수 있다.—로마 15:13, 공동 번역; 시 31:23, 24; 히브리 11:6.
이 모든 점들이 성서 「창세기」에 잘 설명되어 있다. 기원전 1513년에 ‘시내’ 광야에서 ‘모세’에 의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이 가치있는 부분은 믿음, 희망 및 담대함을 고무해 준다.
이 책의 개요
수십억년 전으로 소급하여, 「창세기」는 이러한 말로 시작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하늘과 땅의 사물들]를 창조하시니라.” 땅은 인간의 거처로 준비되며, 마침내 인간이 완전한 상태로 창조주 앞에 서게 된다. 범죄로 인해 낙원을 상실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뱀의 머리를 상할 “씨”를 예언하심으로 희망을 주신다. 믿음으로, 의로운 ‘아벨’은 하나님께 가납될 만한 제물을 드리지만, 자기 형의 손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최초의 여호와의 증인 순교자가 된다.—창세 1:1-4:26.
‘에녹’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 행동을 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인 불순종한 천사들이 인간 여자들을 아내로 취하여 ‘네피림’을 낳으면서 상태가 악화된다. 그러나 믿음, 희망 및 담대함으로 ‘노아’는 방주를 짓고 임박한 홍수에 대하여 경고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 가족과 함께 홍수로 인한 멸망을 생존한다. 홍수 이전의 세상은 사라지고 인류는 새 시대에 돌입한다. 그러나 얼마 후에, ‘바벨’탑 건축자들이 자기들의 이름을 빛내려고 시도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을 온 땅에 흩으시자 좌절되고 만다.—창세 5:1-11:9.
하나님의 지시대로 믿음으로 행하여, ‘아브라함’은 ‘갈대아’의 ‘우르’를 떠나 여호와께서 자기와 자기의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서 천막 생활을 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조치를 취하셔서 ‘소돔’과 인근 도시들의 악한 거민을 치신다. 얼마 후에, ‘이삭’의 출생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된다. 그러나 여러 해 후에 ‘아브라함’은 여호와께서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지시를 받음으로 크게 시험받게 된다. 천사의 저지로 그 연로한 족장은 그 명령을 시행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러나 이제 그 사건으로 인해 그는 믿음의 사람임이 의심의 여지없이 증명되었으며, 그는 자기 씨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는 보증을 얻게 된다.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죽음으로 슬퍼하게 되지만, 그는 부활에 대한 확고한 희망으로 앞날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다.—창세 11:10-23:20; 히브리 11:8-19.
‘아브라함’은 자기의 종을 통하여 ‘이삭’을 여호와께 믿음을 둔 여자인 ‘리브가’와 결혼하도록 마련한다. 얼마 후에 ‘리브가’는 쌍동이 ‘에서’와 ‘야곱’을 출산한다. ‘에서’는 장자권을 경시하여 그것을 ‘야곱’에게 팔아 넘기며, ‘야곱’은 후에 자기 부친의 축복을 받게 된다. ‘야곱’은 ‘밧단아람’으로 도망하여 그곳에서 ‘레아’ 및 ‘라헬’과 결혼하며 그들의 부친 ‘라반’의 양떼를 돌보게 되는데, 자기 가족과 함께 그곳을 떠나기 전 약 20년 동안이나 그렇게 한다. 나중에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여 축복을 받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게 된다. 확실한 희망을 가진 믿음의 사람인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외국인으로 계속 거주하게 된다.—창세 24:1-37:1.
질투심 때문에 ‘야곱’의 아들들은 동생인 ‘요셉’을 노예로 팔아 넘긴다. ‘애굽’에서 ‘요셉’은 하나님의 높은 도덕 표준에 충실히 담대하게 고착한 결과로 투옥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여호와의 도움으로 그는 감옥에서 풀려나 ‘바로’의 꿈을 해석함으로 7년 동안의 풍년과 그 뒤를 이은 7년 동안의 흉년을 예언하게 된다. 그는 ‘애굽’의 식량 행정관이 된다. ‘요셉’의 형들이 식량을 구하러 ‘애굽’으로 오게 되지만 그를 알아 보지 못한다. ‘요셉’은 먼저 그들을 시험해 본 다음에 마침내 자기의 참 신분을 밝힌다. 충실한 ‘야곱’은 오랫동안 잃었던 자기 아들과 재 연합하며 그 족장의 가족은 비옥한 ‘고센’땅에 정주하게 된다. 임종시에 ‘야곱’은 자기 아들들을 축복하며 예언하도록 감동을 받아 홀과 치리자의 지팡이가 ‘실로’가 오시기까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할 것이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여러 세기 후에 오게 될 큰 축복에 대한 확실한 희망을 제시해 주는 예언이다. ‘야곱’의 유해를 ‘가나안’ 땅으로 운구하여 그곳에 장사하게 된다. ‘요셉’이 110세에 죽자 그의 시체에 향 재료를 넣어 입관하게 되며, 그 뒤 얼마 있다가 그의 유골을 약속의 땅으로 옮기게 된다.—창세 37:2-50:26; 출애굽 13:19.
「창세기」를 주의깊이 읽음으로써, 우리는 믿음과 희망 및 담대함을 고무하는 이 감동적인 기록으로부터 큰 유익을 이끌어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데 있어, 얼마의 질문들이 생길 수 있다. 성서의 이 처음 부분을 면밀히 고찰함으로써 우리는 그 질문들 가운데 일부의 답을 얻을 수 있다.
홍수 전 세상
● 1:26—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는가?
하나님의 형체는 사람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신명 4:15-20) 그러나 인간이 공의, 지혜, 능력, 사랑 등과 같은 하나님의 속성을 갖도록 창조되었다는 점에서 인간이 여호와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신명 32:4; 욥 12:13; 이사야 40:26; 요한 1서 4:8) 이러한 특성들은 또한 말씀이신 하나님의 아들도 소유하셨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적절하게도 그에게 이같이 말씀하셨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요한 1:1-3, 14.
● 4:17—‘가인’은 어디에서 그의 아내를 구하였는가?
‘아담’이 “자녀를 낳았[더라.]” (창세 5:4) 그러므로 ‘가인’은 자기 누이들 중의 하나를 아내로 삼았다. 후에,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율법은 형제 자매간의 근친 결혼을 허락치 않게 되었다.—레위 18:9.
● 6:6—무슨 의미로 여호와께서는 자기가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는가?—신세 참조.
여기에서 “한탄하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태도 혹은 의도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완전하시므로 인간을 만드신 일에서 실수를 범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홍수 이전의 악한 세대에 대한 정신적 태도를 변경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행으로 인한 불쾌감 때문에 인간들의 창조주로서의 태도를 그들을 멸망시키는 자로서의 태도로 바꾸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악행이 생명의 대대적인 멸망을 자초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셨지만, 자신의 의로운 표준을 고수하기 위하여 행동을 취하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분이 얼마의 인간들을 보존하신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그분의 한탄은 말과 행실 면에서 악하게 된 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임을 알 수 있다.—베드로 후 2:5, 9.
인류가 새 시대에 돌입하다
● 8:11—나무들이 홍수로 심히 파손되었을텐데, 비둘기가 어디에서 감람 잎사귀를 물어왔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홍수로 인해 수많은 나무들은 해로운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감람나무는 매우 견고한 나무이기 때문에 홍수 중의 수개월간 어떤 감람나무가 수중에서 산 채로 보존되어 있었을 수 있다. 홍수의 물이 줄어들면서 물속에 잠겼던 어떤 감람나무가 다시 마른 땅에 드러나게 되어 그 잎사귀들이 피어나고 그 잎사귀들 중의 하나를 비둘기가 쉽사리 따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비둘기가 ‘노아’에게 물어간 감람 잎사귀는 홍수의 물이 줄어든 후에 피어난 상당히 어린 새싹에서 따낸 것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 9:24, 25—죄를 범한 사람은 ‘함’인데, ‘노아’는 왜 ‘가나안’을 저주하였는가?
십중 팔구 ‘가나안’은 그의 조부인 ‘노아’의 인격을 손상시키는 모종의 모독 내지는 성도착 행위를 범하였을 것이며, ‘함’은 이것을 목격하고도 저지하지 않았다. 도리어 ‘노아’의 아들 ‘함’은 그 이야기를 퍼뜨린 것 같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그들의 부친을 덮어주는 행동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축복을 받았으나 아마 죄를 범한 ‘가나안’은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을 방관만 하고 있다가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던 ‘함’은 그의 자손에게 돌아온 수치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였다. 성서가 상세한 점을 모두 알려 주고 있지는 않지만, 요점은 여호와께서 ‘노아’로 하여금 예언을 하게 하셨다는 사실과 ‘이스라엘’에게 멸망되지 않은 ‘가나안’ 족속들이 ‘셈’의 후손들을 섬기는 노예가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성취시키셨다는 사실이다.—여호수아 9:23; 열왕 상 9:21.
● 10:25—‘벨렉’ 시대에 어떻게 세상이 “나뉘었”는가?
‘벨렉’은 기원전 2269년부터 2030년까지 산 사람이다. 그의 이름은 “나눔”이라는 의미였으며 그가 그 이름을 출생시에 받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가 살아있던 동안에 발생한 나뉘는 일과 관련된 주목할 만한 사건을 예언적으로 지적한 것일 것이다. “세상[혹은 “세상 인구”]이 나뉘”게 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성서 기록은 여호와께서 ‘바벨’탑의 건축자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어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심으로’ 크게 나뉘게 하신 일이 있었던 것은 바로 “그때[그의 시대, 신세]”였다고 알려 준다.—창세 11:9; 또한 10:1, 6, 8-10; 11:10-17 참조.
한결같은 믿음을 가졌던 족장들
● 15:13—‘아브람’의 자손이 400년간 고난을 당하리라는 예언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이 고난 기간은 기원전 1913년부터 1513년까지 계속되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기원전 1913년에 약 5세의 나이로 젖을 떼었을 때 그의 이복 형제 ‘이스마엘’(그때 약 19세)이 ‘이삭’을 ‘희롱한’ 일이 있었다. ‘아브라함’의 상속자를 희롱한 이 사건의 중요성은 ‘사라’의 반응과 ‘하갈’ 및 그의 아들 ‘이스마엘’을 내보내라는 ‘사라’의 주장을 여호와께서 승인하신 사실로 보아 명백하다. (창세 21:8-14; 갈라디아 4:29) 이 고난의 400년 기간은 기원전 1513년에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의 속박에서 구출됨으로써 끝난다.
● 19:30-38—여호와께서는 ‘롯’이 술취한 일과 그의 두 딸을 통해 아들들을 보게 된 사실을 묵인하셨는가?
여호와께서는 근친상간이나 술취하는 것을 묵인하시지 않는다. (레위 18:6, 7, 29; 고린도 전 6:9, 10) 더우기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은 ‘소돔’ 거민들의 “불법한 행실”을 개탄하였으며 자기가 말려들어간 그릇된 행실 때문에 슬퍼하였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하셨기 때문이다. (베드로 후 2:8) ‘롯’의 딸들이 그를 술취하게 했다는 바로 그 사실은 ‘롯’이 맑은 정신으로는 그들과 성관계를 갖는 일에 동의하지 않을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 땅에서 외국인들로 거주했던 그의 딸들은 이것만이 ‘롯’의 가계가 중단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성서에 실린 것은 외설적인 생각을 고무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압’ 및 ‘암몬’ 족속들과 ‘아브라함’의 후손들인 ‘이스라엘’ 민족과의 관계를 밝히려는 것이다.
● 28:12, 13—“사닥다리”가 관련된 ‘야곱’의 꿈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닥다리”(그것은 높이 세워진 돌계단 모양이었을 것이다)는 하늘과 땅 사이에 의사 소통이 있음을 알려 준다. 그것은 천사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승인을 받고 있는 인간들 사이에서 봉사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요한 1:51 비교.
● 31:19—‘라헬’이 ‘라반’에게서 훔친 ‘드라빔’은 어떠한 것이었는가?
‘드라빔’은 가족 수호신 혹은 우상이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고고학적 발견물들은, 그러한 형상들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누가 그 집안의 상속자가 될 것인가와 관련이 있었음을 알려 준다. 아마 ‘라헬’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그의 부친 ‘라반’이 자기 남편 ‘야곱’과의 관계에서 속임수를 썼기 때문에 자기가 그 ‘드라빔’을 취해도 정당하다고 추리했을 것이다. (창세 31:14-16) 그러나 ‘야곱’이 집안의 상속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드라빔’을 사용하려고 했다는 증거는 없다. 나중에 이 우상들은 ‘야곱’이 자기 집안 사람들이 넘겨준 모든 이방 신상들을 땅에 묻을 때 함께 처분되었다.—창세 35:1-4.
● 44:5—‘요셉’은 실제로 잔을 사용하여 점을 쳤는가?
‘요셉’은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형들을 시험코자 하였다. 그래서 그는 종을 시켜 그들의 자루에 양식을 채우고 각 사람의 돈을 각 자루에 넣고 ‘베냐민’의 자루에는 ‘요셉’의 은잔을 넣게 하였다. 이러한 행동으로, ‘요셉’은 자기가 이교 나라의 행정관임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그 잔과 그 잔에 대한 말은 분명히 하나의 구실이었다. 여호와의 충실한 숭배자인 ‘요셉’이 잔을 사용하여 점을 칠리는 만무하였다. ‘베냐민’이 그것을 훔쳤다고 한 것도 사실이 아니었던 것과 같다.
● 49:10—홀과 치리자의 지팡이 사이에 차이가 있는가?
차이가 있다. 홀은 통치자가 왕권의 상징으로 가지고 다니는 관장을 말한다. 치리자의 지팡이는 명령을 내릴 권세가 있음을 상징하는 일종의 긴 지팡이를 말한다. ‘야곱’이 이 두 가지를 다 언급한 것은 분명히 이 중요한 권위와 권세가 ‘실로’가 오시기까지 ‘유다’ 지파에 머무를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이 ‘유다’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분에게 여호와께서는 하늘의 통치권을 부여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왕권을 잡고 계시며 명령을 내릴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다.—시 2:8, 9; 이사야 55:4; 다니엘 7:13, 14.
믿음과 희망 및 담대함의 기초
「창세기」는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 및 담대함의 기초를 제시해 준다. 그것은 여호와께 대한 믿음과 약속된 축복의 “씨”에 대한 희망을 고무한다. (창세 3:15; 22:18) 이 책은 또한 초기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랬던 바와 같이, 장래를 담대하게 직면하도록 도움을 준다.
이들 하나님의 종들은 “더 나은 본향 ··· 곧 하늘에 있는 것”을 사모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 (히브리 11:15, 16) 그들이 왕국 마련을 미리 바라본 것처럼, 우리도 그것에 확신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우리 역시 진정한 믿음과 희망 및 담대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8면 삽화]
‘야곱’과 ‘에서’
‘요셉’
‘아브라함’과 ‘이삭’
‘가인’과 ‘아벨’
‘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