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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보’족들은 구슬로 말한다깨어라!—1977 |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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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무늬가 형성된다. 그 다음에 토판을 식힌다. 그 후에는 가는 막대기의 주위에 있는 물질이 용광로 안에서 용해될 때 그 막대기가 타 없어져서 생겨난 구멍 속으로 뾰족한 갈고리를 집어 넣어 조그마한 틀에서 구슬을 꺼낸다.
이 단계에서 아름다운 색깔을 띤 구슬을 보려고 한다면 처음에는 약간 실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약간 공을 들이고 나면 달라진다.
처음에는 거칠고 펀펀한 돌을 취하여 조잡한 구슬을 그 위에 놓고 비벼 대부분의 울퉁불퉁한 것과 흠을 제거한다. 그 다음에는 매끄럽고 편편한 돌을 사용하여 그 구슬을 정성스럽게 닦고 광을 낸다. 완성된 구슬은 은은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빛난다. 구슬을 꿰매면 작업은 끝난다.
그 원주민 기술자는 이제 일이 다 마친 것을 보고 마음이 느긋해져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 작품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것이다. 실제 말이 아니라 구슬의 형태로서 그렇게 할 것이다. ‘코로보’족들은 종종 구슬로 의사 표시를 하기 좋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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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눈으로”라는 하나님의 법은 지나치게 가혹한가?깨어라!—1977 |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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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눈은 눈으로”라는 하나님의 법은 지나치게 가혹한가?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게 주신 자신의 율법 가운데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아무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 말함이 있으면 ··· 재판장은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인이 위증인이라 그 형제를 거짓으로 무함한 것이 판명되거든 그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 그리하면 그 남은 자들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후부터는 이런 악을 너희 중에서 다시 행하지 아니하리라. 네 눈이 긍휼히 보지 말라.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신명 19:16-21.
누가 (동태 복수법 혹은 동태 복수 죄형법이라고 불리우는) 이 법이 지나치게 가혹한 것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런 위증한 사람의 심중에 어떠한 적의 혹은 악한 음모가 있었을 것인가? 그 사람이 동료 인간에게 당하게 하려고 한 것과 같은 벌을 내리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며 분명히 법정에서의 거짓 증언을 막는 강력한 억제력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명령은 고대 ‘이스라엘’에게 준 율법에 세번 나온다. 레위 24:17-20을 읽어 보자.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요 ···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찌라. 남에게 손상을 입힌 대로 그에게 그렇게 할 것이[라.]”
여기에서도 가해자에게서 비슷한 태도를 볼 수 있다. 즉 고의적으로 살인하거나 동료 인간을 불구로 만들거나 해친 경우임을 알 수 있다. 어떻게 “고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왜냐 하면 고의적이 아닌 살인의 경우(과실 치사의 경우)는 자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실 치사자를 위해서는 보호처로서 “도피성”이 마련되어 있었다.—민수 35:11-15, 25.
세번째로 그러한 표현이 나오는 곳은 출애굽 21:22-25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아이 밴 여인을 다쳐 ···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찌니라.”
이 경우에도 생명의 신성함이 강조되었다. 두 사람 혹은 아마 그 이상의 생명—여인과 아이 혹은 아이들—이 관련되었다. 남편이 아닌 남자가 그 여자를 심하게 밀거나 때렸다. 이것은 생명을 대단히 가볍게 보는 것이며, 그 남자는 그 여자의 남편을 해치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그 여자를 때렸을지도 모른다. 그 여인이나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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