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매일 직면해야 할 여러 가지 새로운 문제와 위기를 신문에서 읽을 때, 당신은 ‘내가 긴장에서 벗어나 좀 쉴 수만 있다면’ 하고 느끼는가? 우리에게 더 나은 때라면 우리가 현재 직면하는 긴장과 초조감과 좌절감을 제거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렇게 해 주실 것을 그의 말씀인 성서 가운데서 약속하셨다. 그분은 인간의 체질을 알고 계시며, 인간에게 쉼이 필요하다는 것—인간들이 현재의 입장에서 실제 지쳐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시 103:14) 그분은 의로운 정부를 통해 인류를 구출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정부는 오늘날의 모든 무능한 제도들을 대치하고, 지상에 건전하고 평화로운 인류 사회를 조성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바로 그 정부의 다스림인 왕국 통치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치셨다.—마태 6:9, 10.
그 정부의 수반은, 당시에 더 나은 때를 동경하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태 11:28, 29.
그러면 이 왕국 정부를 통해 구출을 받으리라는 그러한 희망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이러한 것이 오늘날의 세계 지도자들의 단순한 약속과 같지 않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령 어떤 사람이 어떤 일을 약속하고 있는데, 그가 과거에 비슷한 일을 실제 행한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가 현재의 그 약속도 이행할 것이라고 믿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일을 하셨음을 알리는 기록을 우리에게 주셨다. 여러 세기 전에 그분은 ‘이스라엘’ 나라에게 하신 일을 통해 더 나은 때를 가져오실 능력이 있으심을 훌륭히 알려 주셨고, 사람들에게 평화와 쉼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알려 주셨다.—이사야 32:17, 18.
더우기,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온 땅에 전세계적인 규모로 그리고 영구적인 방법으로 수행하실 일에 대해 본을 보여 주시기 위해 그러한 일들을 기록시키셨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 몇가지 실례를 살펴 보기로 하자.—고린도 전 10:11; 로마 15:4.
한 나라가 쉼을 얻었던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압박과 염려로부터 쉴 필요가 있음을 인식하시고, 고대 ‘이스라엘’ 나라에게 일곱째 해마다 안식년을 마련하여 주셨다. 그러한 쉼의 마련이 다른 나라에는 없었다. 그러한 마련으로부터 얻은 유익은 무엇이었으며, 이것은 현 상태와 어떻게 비교되는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지정된 안식년을 지켰을 때에는 적들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그 땅은 그 해에 경작되지 않고 생산력을 회복할 수 있었으므로 유익하였다. 그 해에 일거리가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 있었더라도 그러한 사람들도 고통을 받지 않았다. 왜냐 하면 그들은 저절로 자란 곡식과 채소와 과일을 얼마든지, 자유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6년 동안 정상적으로 꾸준히 일한 농지 소유자는 이제 가족을 위하여 일할 가외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왜냐 하면, 농경 사회인지라 그 일을 않으면 상당한 자유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적인 문제, 자녀를 가르치고 훈련하는 일 및 가정 생활의 발전에 더 큰 주의를 돌릴 수 있었고, 그리하여 사랑의 띠를 강화하고 오늘날 허다한 가정을 해치고 있는 그러한 분열과 범죄를 방지할 수 있었다. 또한 경제적인 염려에 억눌리지 않았다. 어떠한 채권자도 그 해에는 빚을 독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레위 25:2-7; 신명 15:1-3.
이에 더하여, 매번 오십번째 해는 “희년”이었다. 희년은 더욱 완전한 쉼 곧 ‘자유의 해’였다. 희년은 제 칠년 안식과 동일한 마련이면서 그보다 광범하였다. 오늘날의 국가들은 희년 율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희년 초에 모든 빚은 탕감되었다. 상속 재산인 토지를 팔았던 사람은 모두 그것을 되찾았다. 그것은 아무 부담없이 본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만일 어떤 사람이 노동으로 빚을 갚기 위하여 자신을 팔았으면, 그는 이 ‘자유의 해’의 첫 날에 이 종살이로부터 영구히 해방되었다.—레위 25:8-22.
이 마련은 사람들에게 참으로 훌륭한 쉼, 참으로 훌륭한 안전을 가져다 주었다! 이 마련으로 그 나라 경제는 완전한 균형을 유지하였다. 그것은 오늘날 일부 나라에서와 같이 빈부의 차이가 극심해지는 것을 방지하였다. ‘인플레이션’이 방지되었다. 토지의 가치는 품삯과 같이 항상 안정되었다.—레위 27:16-19; 25:50.
오늘날의 세계 상태와는 참으로 대조적이었다. 생산비가 상승하면 소비자 가격이 상승하며, 그 결과 노임을 인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것은 일시적으로는 좋아 보일지 모르나 대가를 치르는 날이 있게 된다. 빚은 ‘인플레이션’과 함께 크게 증가한다. 그 결과는? 개인의 파산, 나아가서는 국가의 파산이 초래된다. 국가 자원이 남용되고 고갈된다. 이뿐 아니라 단조로운 일관 작업 때문에 많은 급료를 받는 노동자들도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련 하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이 인정되었다. 사람은 어떤 흥미없는 기계적인 일의 영구적인 노예가 아니었다. 각자는 자기 지성을 자유로이 활용하여 재능과 능력으로 국가의 복지에 기여하였다. 가족은 단합하였다. 모두는 교육을 받았는데, 대개 생업에 대한 교육이었다. 거의 모두가 읽고 쓸줄 알았으며 영적 문제에 대한 교육으로 그 나라의 도덕 수준은 높았다. 하나님의 법에 고착하여 축복을 받았으며 행복한 상태를 이루었다.
온 땅을 위한 쉼
어떤 사람은, 그것이 오늘날 ‘더 나은 때에 대한 우리의 희망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가?’ 하고 질문할지 모른다. 땅을 다스리도록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관계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구조를 받기 위하여 고대 ‘이스라엘’의 생활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거나 현대의 발명품이나 발전이 없는 “미개인” 사회로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고 암시하신 것은 아니다. 과거의 쉼의 마련이 더 크고 더 영구적인 것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안식의 율법이 인간에게 부담을 주는 어떤 단순한 의식이 아니었음을 지적하셨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 다음에 그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하고 말씀하셨던 것이다.—마가 2:27, 28.
더 나은 때를 즐기려면 확실히 건강이 필요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병고치는 기적의 대부분을 ‘유대’의 안식일에 행하심으로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증명하셨음에 유의하라. ‘유대’ 지도자들은 안식의 진정한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이 안식일에 행하신 이러한 자비의 기적을 맹렬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더 큰 쉼 즉 안식의 “날”인 지상에 대한 왕국 통치의 천년간에 있을 일을 전영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병고치는 일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인류를 위한 자신의 희생으로 문자적인 제칠일 안식일과 안식년 및 희년이 폐지될 것을 알고 계셨다. 그러한 것은 장차 올 좋은 일에 대한 예언적 “그림자”였다. (에베소 2:15; 골로새 2:13, 14) 따라서, 그의 병고치는 일과 부활시킨 일들은 단지 임시적이었고, 또한 왕국 안식 중에 이룩될 완전하고 영구적인 성취를 기대하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여러분은 먹는 일이나 마시는 일이나 ··· 안식일 문제로 아무에게도 구애받지 마시오. 이런 것은 장차 올 것들의 그림자요 그 본체는 그리스도에게 있읍니다.”—골로새 2:16, 17, 새번역.
영구적인 건강과 생명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하나님의 왕국 정부가 가져올 더 나은 때에는 심장병과 암과 같은 “죽음의” 병이 제거될 것이라고 이해해야 하는가? 그렇다. 그 왕국 통치 중에는 사람들이 오늘날 의사들을 당황하게 하는 여러 가지 질병에 걸려 고통을 당할까 우려할 필요가 없다.
또한 우리는 인간이 완전한 건강을 영원히 누릴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사실 예수께서는 매우 곤란한 병들을 고치셨으며, 매번 무료로 그렇게 하셨다. 그는 소경과 벙어리를 고치셨다. (마태 9:27-34) 그는 신체 장애자와 중풍병자를 치료하셨다. (누가 5:18-26; 13:11-17) 그는 매우 심하게 귀신들린 사람을 회복시켜 제 정신을 갖게 하셨다. (마태 8:28-34; 누가 8:26-39) 그는 당시 가장 무서운 질병인 문둥병도 치료하셨다. (마가 1:40-45) 그 분은 땅을 다스릴 왕국 통치중에 이 능력을 사용하여 순종하는 모든 사람의 정신과 신체를 완전하게 하실 수 있다.
그러나 죽어있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예수께서는 이것을 무하시지 않으셨다. 친절하시게도 죽은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시고, 한 사람은 실제 무덤에서 나오게까지 하심으로써 장차 있을 부활을 미리 알려 주셨다.—마태 9:18-26; 누가 7:11-17; 요한 11:38-44.
풍부한 생활 필수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위대한 왕국 안식의 주인으로 통치하실 때에 식량이 부족할까 염려할 이유도 없다. 그 왕은, 백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실 것이다. (요한 2:25; 또한 마태 6:7, 8 비교) 예수께서는 능력과 동정심이 있으심을 입증하셨다. ‘갈릴리’ 바다 근처에서 그분은 남자 5,000명 (또 다른 경우에는 4,000명)과 여자들과 아이들로 된 군중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그들 모두에게 식사를 제공하셨다. 이 두 경우에 그분은 불과 몇 개의 떡과 생선 몇 마리를 기적으로 증가시켜 그 일을 하셨던 것이다.—마태 14:14-21; 마가 8:19, 20.
이보다 여러 세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왕국 안식 중에 식량을 풍부히 공급하실 것을 암시하셨다. 어떻게? 안식년과 희년 바로 전 해에, 이년, 심지어는 삼년 동안 쓰기에 족할 만큼 풍작이 되게 하셨다!—레위 25:20-22.
평화와 안전
물론 건강을 포함하여 물질적인 것 자체가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않는다. 평화가 또한 있어야 한다. 국가들 간의 단순한 정치적 평화가 아니라 인종과 배경에 관계없이 땅의 모든 사람들 사이의 평화라야 한다.
당신이 문을 잠그지 않고도 안심하고 외출할 수 있을 때, 얼마나 평안하겠는가! 이웃 사람들이 진정으로 당신의 평화와 안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때 얼마나 즐겁겠는가! 당신이나 자녀가 전쟁이나 범죄나 질병에 희생이 되지 않을 것을 알 때, 얼마나 좋겠는가!
이러한 진정한 평화와 안전의 상태를 역시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예언하셨고 전영하셨다.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즉, 예수 그리스도의 하늘 정부와, 천년 왕국 통치 중의 새로운 지상의 사물의 마련)에 대한 예언에 들어 있다.
하나님의 예언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은 죄로 기원전 607년에 ‘바벨론’에 사로잡혀 가기 전에 그들에게 이 예언을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고향으로 회복시키시겠다고 지적하심으로 그들을 위로하셨다. 그의 말씀은 이러하였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받은 것이리라.”—이사야 65:17, 20.
칠십년간의 포로생활 중에 ‘이스라엘’인들은 우상 숭배의 길에서 돌이켜 다시 진리로 하나님을 섬겼다. (예레미야 29:10) 그들은 돌아온 후 적들에 대한 계속적인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고 안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느부갓네살’이 침입하여 노유를 살육하였을 때에 경험한 불안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애가 2:21) 어린이는 회복된 상태에서 어른으로 자랐고, 어른은 정상적인 수명을 다 살았고, 칼에나, 기근이나 역병의 재난으로 끊어짐을 당하지 않았다.
‘이사야’의 예언은 이렇게 계속한다.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그들의 건축한 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생산한 것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의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니라].”—이사야 65:21-24.
영적인 관심사를 첫째로 두라고 여호와의 예언자들로부터 권고를 받은 후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회복된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이 건축하고 심은 것에서 번영을 누렸으며, 그들의 재산은 침입자에 의하여서도 경제적인 재난에 의하여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자녀들은 전쟁과 범죄와 초기의 사망에 희생되지 않았다. 그리하여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여호와의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그 후 그들은 다시 불순종하였고 국가적으로 타락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렇게 되는 것을 허락하셨는가?
아직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이 통치할 때가 아니었다. 즉 사도 ‘베드로’가 기술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설립할 때가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소규모적 성취 혹은 모형적 성취에 불과하였다.—베드로 후 3:13.
하나님께서 과거에 하신 일들은 땅이 낙원 상태가 될 것을 보증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메시야 왕국 하에서의 실체는 어떠한가?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였을 때, 그러한 좋은 일들을 해 주셨다. 그는 오늘날 그의 약속을 듣고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더 크고 영구적인 규모로 그러한 일들을 하실 것이다. 왜냐 하면 땅을 낙원이 되게 하고 영속할 참으로 새로운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자기 옆에서 죽어가는 행악자에게 이 낙원에 대하여 말씀하셨는데, 그 행악자는 그 낙원에서 부활될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떤 범죄 때문에 정당하게 처형되었지만, 장차 올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해 믿음을 표현하였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낙원에서 생명을 얻을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누가 23:39-43.
또한 하나님의 다른 약속들 중 얼마를 유의하여 보라. 그분은 이미 그중 많은 예언을 기원전 6세기에 모형적으로 혹은 소규모적으로 성취시키시어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과 위로를 주셨다.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무성하게 피여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이사야 35:1, 2, 6.
이러한 약속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돌아왔을 때에 소규모적으로 성취되었다. 그들의 땅은 전적으로 황폐되어 인간이나 가축이 없이 단지 들짐승들만 칠십년 동안 그 땅에 서식하였다. 그 땅의 대부분은 황야와 같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참 숭배로 돌아온 것을 기뻐하시고 물이 솟게 하셨다. 오래지 않아 그 땅은 꽃같이 피고 풍부한 소출을 내기 시작하였다.
여호와께서는 왕국 통치하에 그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영구적인 축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 축복은 귀환한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신 축복과 같다.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호세아 2:18.
만일 ‘이스라엘’이 충실을 유지하였다면 그들의 평화는 지속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 반역하였다. 그리스도의 천적 통치하에서는 그러한 반역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왜냐 하면, 그는 인류를 위한 자신의 속죄 희생을 기초로, 순종하는 인류를 점차 완전하게 하실 것이며, 땅에서 이기심과 탐욕을 일소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그의 왕국 통치가 가져올 평화의 기초와, 세계 지도자들이 수립하려는 평화의 기초 사이에 있는 커다란 차이이다.
지금, 우리는 성서 원칙을 적응함으로써 부분적으로 나쁜 습성을 극복할 수 있고 또 제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희생의 가치를 온전히 적용시킬 때에 순종하는 자들은 모든 기능을 온전히 제어하여 영적, 정신적, 신체적 고침을 얻을 것이며, 모든 불완전성을 완전히 극복할 것이다.—로마 7:18-25 비교.
하나님께서는 영구적인 평화와 건강과 안전을 성서 마지막 책에서 이렇게 보증하셨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현재의 낡은 제도의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니라].”—계시 21:3-5.
약속하신 분은 진리의 하나님
그렇다. 이러한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 그러한 말은 권력과 명성의 지위를 추구하는 인간들의 단순한 정치적 공약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이러한 일들을 오래 전부터 준비하시고 우리를 교훈하시기 위하여 여러 세기 전에 기록되게 하셨다. (디모데 후 3:16, 17) 앞에서 우리는 그분이 이미 그의 약속을 소규모적으로 그리고 임시적으로 성취시키셨음을 살펴 보았다. 그분의 다른 많은 약속들은 이미 성취되었으며, 이러한 것들은 그의 말씀의 신빙성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된다. 그중 몇 가지를 유의하여 보라.
하나님께서 여러 세기 전에 홍수로 땅을 깨끗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대로 홍수가 있었다. (창세 6:17; 7:11-24) 그분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겠다고 400여년 전에 약속하셨는데 그 일이 제 때에 일어났다. (창세 15:13, 14; 50:25; 출애굽 12:37-42) 그가 ‘고레스’라는 ‘바사’인으로 하여금 ‘바벨론’을 전복하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게 할 것이라고 거의 이백년 전에 미리 약속하였는데, 그대로 성취되었다.—이사야 45:1, 2; 역대 하 36:22, 23; 에스라 1:1-4.
그뿐 아니라, 메시야에 관한 수백 가지 예언은 약속된 구출자이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정확히 성취되었다. 그에 관한 예언은, 그의 출생지, 출생의 방법, 메시야로서의 그의 출현의 시기, 그가 당할 배반, 죽음, 부활 등 너무나 많아서 여기에 다 언급할 수가 없다.—미가 5:2; 이사야 7:14; 다니엘 9:25, 26; 시 41:9; 이사야 53:12; 시 16:10.
그러므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이치적인 결론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모두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자기들의 생애의 끝에 이르러, 이기적인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약속을 성취시키는 분으로 하나님을 높인 충실한 사람들의 증언을 무시할 수 없다. 일례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약속의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일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에 아는바라.”—여호수아 23:14.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약속한 것은 오직 성서 뿐이다. 진정한 평화와 범죄로부터의 자유, 건강, 안전, 풍요 및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어디에 또 있는가? 이러한 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들이 아닌가? 이러한 것은 당신이 충분히 조사해 볼 가치가 있는 독특한 약속들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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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스라엘’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마련인 안식년은 영적 복지와 교육을 촉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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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18년 동안 허리가 굽었던 여인을 즉석에서 고치심으로 왕국 통치 중에 놀랍게 병 고치는 일을 행하실 것을 예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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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나인’의 과부의 죽은 아들을 생명으로 돌아오게 하심으로 그의 왕국 통치하에서 있을 부활을 보증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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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는 그의 백성이 순종하였을 때에 대풍년을 주심으로 그리스도의 왕국 통치시에 식량을 풍부하게 공급하실 것을 암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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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자기 옆에서 죽어간 행악자에게 그가 부활되어 낙원이 된 땅에서 생명을 얻을 기회를 가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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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가 되기 거의 20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라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벨론’을 전복하고 ‘이스라엘’인들을 해방시키게 하시겠다고 예언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