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나님께서 왜 복수하실 것인가?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 1서 4:8.
1. 이 주제가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수라고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읍니까? 사랑의 하나님이 복수하신다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주께서 나타내시는 사랑의 특성을 고려해 보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의 사랑과 복수의 관계를 더욱 명백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2.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최상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우리가 감사해야 할 하나님의 사랑의 마련 중 얼마를 열기해 보십시오. (시 136:1-6)
2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것이 가장 우월한 것, 최상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읍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성서는 땅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려 줍니다. (시 115:16) 그리고 그것은 얼마나 놀라운 선물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 땅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준비해 주셨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공중의 적절한 곳에 두심으로 태양으로부터 적당한 양의 열과 빛을 받게 하셨으며, 다양한 색깔을 가진 아름다운 꽃들과 함께 부드러운 초록 ‘카아핏’을 깔아 놓으셨읍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써 이 땅에 동물과 새 그리고 물고기를 풍부히 번성케 하셨으며, 넘치는 곡물과 기타 식품을 마련해 주셨읍니다.—시 104:1, 13-15.
3.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창조하시는 데 있어서 어떻게 사랑을 나타내셨읍니까?
3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만드신 것들에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만드신 방법에도 나타나 있읍니다. 그분은 창조물을 즐기도록 우리를 만드셨읍니다. 시편 필자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잘도 표현하였읍니다. “여호와여, ···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하심이라.” (시 139:1, 14) 관대함과 사랑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위에 있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두 눈을 주셨읍니다. 음악이나 인간의 목소리와 같은 별개의 소리를 즐길 수 있도록 두 귀를 주셨읍니다. 그분은 식품의 향취와 꽃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코를 주셨읍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탁월한 것은 추리하고 기억하고 몸의 활동을 조정하는 인간 두뇌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몸에 풍부하게 재능을 넣어 주신 것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읍니다.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요한 1서 4:8.
구출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
4. ‘에덴’ 낙원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었읍니까?
4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아름다운 ‘에덴’ 낙원에 두셨읍니다. ‘아담’이 자기 주위에서 하나님의 풍부한 사랑의 증거를 발견하였을 때 그는 얼마나 즐거웠겠읍니까!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하와’를 지으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읍니다. ‘하와’에게 있어서, 자기를 사랑해 주고 인도해 줄 머리인 남편과 결합하게 된 그의 생애의 첫날은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는 함께 땅을 아름답게 가꾸고, 인구를 증가시키며, 사랑으로써 동물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행할 전망이 놓여 있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앞에 참으로 웅대한 장래가 있게 하셨읍니다!
5. (ㄱ) 우리의 첫 조상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 합당치 않은 자들이 되었읍니까? (ㄴ)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어떻게 그들의 후손에게 미치게 되었읍니까?
5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러한 장래는, 적어도 그들에게는 오지 않았읍니다. 하나의 반역적인 영물이 스스로 이기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마련으로부터 벗어나서 ‘사단’ 마귀가 되었읍니다. 이 마귀가 ‘하와’를 설복시켰고, ‘하와’를 통하여 ‘아담’으로 ‘그들 멋대로’ 행하게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창조주를 떠나 이기적인 길을 걸었읍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그들은 창조주의 사랑에 전혀 합당치 않은 자들임을 증명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들 고의적인 죄인들에게 정당하게 사형을 선고하셨읍니다. 그러나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자녀를 낳을 때까지 살아있게 하셨읍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인류가 우리의 첫 조상으로부터 죄와 죽음을 유전받기는 하였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희망의 기초를 마련해 주셨읍니다.—창세 3:16-23; 로마 8:20, 21.
6. ‘에덴’에서 있었던 어떠한 발표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며, 어떻게 그러하였읍니까?
6 어떻게 그렇게 하셨읍니까? 반역이 시작된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의 ‘씨’ 즉 하나의 후손을 일으키실 것을 알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자기의 충성스러운 하늘 조직으로부터 보내서 마귀와 ‘아담’ 그리고 ‘하와’로 인하여 손상된 모든 것을 고치게 하셨읍니다. 그러나 그 옛날 그 곳 ‘에덴’에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또한 ‘사단’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떠남으로써 ‘사단’의 후손의 일부가 된 모든 자들에게 복수하실 것을 선언하셨읍니다.—창세 3:15; 계시 12:9.
사랑과 복수의 하나님
7. 신명기 32:43의 내용과 일치하게 우리에게는 기뻐할 만한 어떠한 이유가 있읍니까?
7 이렇게 해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또한 복수의 하나님으로 선언하셨읍니다. 그러나 그분이 적들에게 복수를 행하시는 것은 옳은 일이었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길을 열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마련을 즐길 길을 열어 주실 것에 대하여 즐거워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무엇이라고 영감을 주셨는지 유의하십시오.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리로다.]”—신명 32:43.
8, 9. (ㄱ) 하나님의 목적은 사랑으로써 어떤 두 가지 일을 하시는 것입니까? (ㄴ) 사랑의 표현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놀라운 선물을 주셨읍니까?
8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랑의 하나님의 목적은 자기의 통치의 정당성을 입증하시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그들의 적들로부터 구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우리의 첫 조상으로부터 유전되어 우리 생명에 침투한 대적인 사망으로부터도 우리를 구출하실 것입니다. (로마 5:12)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그 일을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선물로 주심으로써 그렇게 하실 것을 성서는 알려 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한 1서 4:8-10; 고린도 전 15:25, 26.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 때문에 우리에게 오게 된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풀어주도록 자기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읍니다. 그렇습니다. 디모데 전서 2:6(신세)에 있는 성서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상응하는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의 양같은 추종자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읍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즉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 10:10.
10. (ㄱ)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왜 또한 “복수”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까? (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는 것이 왜 그렇게도 중요합니까?
10 그렇지만 성서는 반복해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또한 ‘복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악을 영원히 관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훔 1:2; 신명 32:35, 41)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썼던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라.]” (데살로니가 후 1:6-9)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수많은 종교로 혼란된 이 세상에서 성서의 말씀과 같이 ‘참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입니다!—사도 17:27.
사랑과 복수의 균형
11, 12. (ㄱ) 인간 역사 초기에 어떠한 상황이 발전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행동을 취하시지 않을 수 없었읍니까? (ㄴ) 하나님의 복수는 어떻게 그분의 사랑과 균형을 이루었읍니까?
11 그러나 다시 인간 역사의 시초로 돌아가 봅시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복수 사이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써 ‘아담’의 후손이 증가하는 것을 허락하셨읍니다. 그러나 고집센 인류는 그 사랑에 순응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므로 약 500년 후에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예언자 에녹을 보내서 악한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게 하셨읍니다. 그들이 불경건한 행위와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모독적인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유다 14, 15) 또 천년이 지나갔읍니다. 그 옛 세상의 부도덕과 폭력이 그 절정에 이르렀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더라.]”—창세 6:11, 12.
12 이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복수를 행하실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 있어서도 그분은 사랑의 특성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때 지상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전념하는 한 가족이 있었읍니다. 그것은 ‘노아’의 가족이었읍니다. 그를 성서에서는 ‘의의 전파자’라고 부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랑으로써 ‘노아’에게 ‘가족을 보존하도록’ 방주(方舟)를 짓게 하셨읍니다. 그 후에 세계적 홍수가 내려 ‘노아’의 악한 이웃들을 일소시켜 버렸읍니다. (베드로 후 2:5; 히브리 11:7) 온 땅은 파괴적인 폭력과 부도덕으로부터 깨끗해졌읍니다. 그렇게 해서 이 땅은 다시 인류 가족이 증가하기에 합당한 곳이 되었읍니다.—창세 6:9, 22; 7:21-23; 8:15-17.
13.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신 것은 사랑에 위배되는 행위였읍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유전된 죄의 경향은 그대로 남아 있었읍니다. 그리하여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들은 다시 악한 경향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읍니다. (시 51:5) 예를 들면 한 때 “여호와의 동산” 같았던 지역에 살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있읍니다. 성서에 의하면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읍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이었으며, 관능적인 욕구를 채우려고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이었읍니다. (창세 13:10, 13; 19:4-11)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도시들을 멸망시키시기로 결정하셨읍니다. 그렇게 해서 의로운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롯’은 그러한 악한 이웃들을 더는 견디지 않아도 되었읍니다. 창세기 18:25의 말씀과 같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는 “공의”를 행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롯’과 그의 두 딸을 구원하셨지만 전 지역을 더럽힌 ‘소돔’과 ‘고모라’ 위에는 불을 내려 멸망시키셨읍니다.—누가 17:29; 유다 7.
14, 15. (ㄱ) ‘가나안’인들은 과연 무죄하였읍니까? (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수를 행하신 것은 정당한 일이었읍니까?
14 여러 해 후에 여호와께서는 다시 자기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하여 “공의”를 행하셨읍니다. 어떻게? ‘약속의 땅’에서 ‘가나안’인들을 쫓아 내게 하심으로써입니다. (신명 18:9-12) ‘그것은 무죄한 ‘가나안’ 사람들에 대한 부당한 일이 아니었는가?’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무죄한 ‘가나안’인이라고요? 그들은 결코 무죄하지 않았읍니다. 이들 ‘가나안’ 사람들은 근친상간, 음란, 간통, 자녀 희생, 동성애, 수간 등을 행함으로 부정하기 짝이 없었읍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거짓 신들을 숭배할 때 그들의 자녀를 산 채로 불에 던져 넣어 제물로 삼았읍니다. 또한 성전에서 매춘 행위를 하는 남녀들이 있었읍니다.a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이러한 지시를 하셨읍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위 18:1-25.
15 또 다시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이들 행악자들을 쫓아내도록 명하셨읍니다. 그들의 불결한 생활 방식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위협이 되었읍니다. 그것은 성서의 표현대로 ‘여호와께 가증한 일’이었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수가 그들에게 임한 것은 정당한 일이었읍니다.—시 106:34-40; 신명 18:12.
1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과 참으심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16 한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대하셨읍니까?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나타내셨읍니다. ‘모세’는 그 점을 신명기 32:11과 12에서 이러한 아름다운 말로 묘사하였읍니다.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그러나 어찌된 일입니까! 때가 되자 다른 신들이 ‘이스라엘’의 숭배에 끼어 들었읍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백성의 적들에게 복수하시겠다고 선언하신 바 있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도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매우 참을성있게 대하셨읍니다. 900년간이나 그들의 고집센 행로를 견디셨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전체를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자비의 손길을 베푸셨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한다고 선언하셨읍니다. 그리고 이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에스겔 33:11.
17. (ㄱ)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어떠한 경고를 하셨읍니까? (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복수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조절되었읍니까?
17 하나님께서는 재삼 재사 그들의 우상 숭배, 부도덕, 그리고 그들이 무죄한 피를 흘리는 일의 결과에 대하여 자기의 백성에게 경고하셨읍니다. 그러나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복수를 행하시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예루살렘’과 그들의 성전을 파괴하게 하셨읍니다. 그리고 생존자들은 ‘바벨론’으로 끌려 갔읍니다. 그러나 70년 후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정복되게 하여 인식 깊은 ‘이스라엘’ 자손 남은 자들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와 거기에서 순결한 숭배를 회복하게 하셨읍니다.—열왕 하 24:3, 4; 역대 하 36:12-21; 에스라 1:1-3; 히브리 12:6.
사랑과 복수에 대한 예수의 말씀
18. (ㄱ) 하나님의 사랑과 (ㄴ) 하나님의 복수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8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복수라는 문제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한 가지는, 자기 아버지의 사랑에 대하여 따뜻하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류]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한 3:16) 그러나 그분은 하나님의 복수에 관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주저하셨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왜냐 하면 예수께서는 자기 아버지와 같이 ‘의를 사랑하고 불법을 미워’하신다고 성서가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특히 불법과 종교 지도자들의 유혈의 죄를 미워하셨읍니다. (히브리 1:9; 시 11:5, 7) 예수께서는 그 당시 ‘유대’ 교직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또는 그들에 관하여 말씀하실 때 결코 점잖은 말을 사용하시지 않았읍니다. 그분은 산상 수훈 가운데서 세번이나 그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부르셨읍니다. (마태 6:2, 5, 16, 새번역) 그분은 그들 교직자들에게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을 ‘뱀의 씨’와 연관시키셨읍니다. (요한 8:44; 창세 3:15) 그 후 죽임을 당하시기 3일 전에 예수께서는 그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다음과 같이 공개적으로 비난하셨읍니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게헨나’의 심판을 피하겠느냐?”—마태 23:13-33, 새번역.
19. (ㄱ) 예수의 태도와 경고의 소식이 예수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정당하게 행동하셨읍니까?
19 이것은 예수에게 사랑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들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임으로써 더 많은 유혈죄를 지을 것을 아시면서도 마태 복음 23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마태 23:37, 38; 사도 3:13-15) 37년 후에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그 성전을 멸망시켰읍니다. 이것은 반항적인 백성 1,100,000명이 죽게 된 재난이었읍니다. 그 때에 예수의 예언적인 말씀의 온전한 힘이 명백해졌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정당하게도 복수를 집행하셨던 것입니다!
20. 사랑과 복수와 관련하여 이사야 61:1, 2에서 어떠한 흥미있는 특징을 볼 수 있읍니까?
20 여러 세기 전에 고대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예언자들 중 하나인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복수]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라].”—이사야 61:1, 2.
21. (ㄱ) 예수께서 이사야 61:1, 2을 부분적으로만 인용하신 이유가 무엇인 것 같습니까? (ㄴ) 이사야 2:2-5의 내용과 관련하여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21 예수께서는 지상 봉사 시초에 이 예언을 낭독하시고 여호와의 수석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이 예언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시키셨읍니다. (누가 4:18-21)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그 말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의 신원 곧 복수의 날에 대하여는 언급하는 것을 중단하셨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아마도 하나님의 복수의 날을 주로 강조하는 일은 이사야 2장에 나오는 “말일” 즉 “그 날들의 마지막 부분”에 있을 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그 때에 도달하였읍니까?
[각주]
a 또한 ‘왙취 타워 협회’ 발행 Aid to Bible Understanding(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 76, 145, 287면 “Anath,” “Ashtoreth” “Canaan, Canaanite” 제하 참조.
[27면 네모]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찬송하라.”—시 104:24, 35, 난외주
[28면 네모]
하나님의 사랑의 가장 큰 선물
하나님께서는 고생하는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자기의 가장 귀중한 것, 자기의 가장 친밀한 반려자, 자기와 함께 창조 사업을 수행한 “우두머리 일군”, “날마다 그가 특히 좋아하시는 자”를 기꺼이 희생하시고자 하신 것이다. 그분은 자기의 하늘에 있는 맏아들을 이 땅으로 보내셔서 마귀와 그의 종졸들에게 갖은 모욕과 경멸 및 잔인한 취급을 당하게 하셨다. 시험하에서 그 아들은 완전한 인간으로서 심지어 죽임을 당하기까지 하는 무서운 시련하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옹호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더우기 그분은 그렇게 해서 죄로 고통받는 인류 가운데서 자기에게 믿음을 실천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 대속물로 주”셨다. (잠언 8:30, 신세; 마태 20:28)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의 양과 같은 추종자들 즉 “적은 무리”와 “다른 양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니라].”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일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되는 일로 인하여 이루어질 것이다. (누가 12:32; 요한 10:16, 28; 5:28, 29) 이것은 무력한 인류에 대한 과분하신 친절의 얼마나 놀라운 표현인가? 하나님의 이 사랑에 근거한 마련을 걷어차 버린다면 확실히 하나님의 보복의 진노를 당하기에 마땅한 자들일 것이다!
[29면 네모]
우리의 생명이 그것에 달려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교와 관련을 가진 환경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참 하나님을 숭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의 종교는 태어난 환경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의 생명 자체는 ‘하나님을 알고 죄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대속하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신 주 예수에 관한 좋은 소식에 순종하는 것’에 달려 있다. (데살로니가 후 1:8; 마가 10:45) 우리 주위에 있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임은 분명하다. 성서는 분명히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도 한 분”이시라고 알려 준다. (에베소 4:6, 새번역)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분열되어 수많은 종교적 신들을 숭배하고 있다. 부처가 있고, 신도 숭배자와 유교 신봉자들이 숭배하는 조상신들이 있고, ‘모슬렘’의 ‘알라’ 신이 있다. 또한 ‘힌두’의 삼신일체 신인 ‘부라마’, ‘비쉬누’, ‘시바’가 있고, 그리스도교국의 성부, 성자, “성신”의 삼위일체 신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심지어 유행 음악 가수나 ‘스포오츠’ 영웅 그리고 혁명 지도자들 같은 탁월한 인간들을 그들이 이미 죽었든지 아직 살아 있든지 그들을 숭배하기까지 한다.
[30면 네모]
‘가나안’에서의 고고학적 발견
“‘가나안’ 사람들은 그들의 신에 대한 종교 의식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하고, 신에게 드리는 제물로 장자를 죽였던 것이다. ‘가나안’ 땅은 온통 ‘소돔’과 ‘고모라’와 같았던 것 같다. ··· 이처럼 더럽고 잔인한 문명이 더 오랫동안 존재할 권리가 있었을까? ··· ‘가나안’ 성읍의 폐허를 발굴하는 고고학자들은, 하나님이 더 일찍 멸망시키지 않은 것을 이상히 생각한다.”—‘H. H. 할레이’ 저 「할레이 성서 핸드북」 161면.
[31면 네모]
여호와의 탁월한 자비의 특성
여호와께서는 이 반역적인 ‘이스라엘’을 엄히 징계하실 때에도 자비의 손길을 거두지 않으셨음을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애가 3: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