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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관습인가?깨어라!—1977 |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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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비성서적 종교에서 기원한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습은 사람이 죽을 때에 불멸의 영혼이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거짓된 믿음을 옹호한다. 또한 종종 볼 수 있는 과음과 무절제한 행동으로 인하여 ‘밤새움’에서 성서 원칙을 범하게 된다.—로마 13:13, 14; 베드로 전 4:3.
물론 위로하고 도움을 베풀기 위해서 유가족을 방문하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어떤 사람이 장례를 치루는 집을 방문했을 때나 다른 경우에 그렇게 할 것인가는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다. 그러나 장시간 애도하는 의식이나 ‘밤새움’하는 의식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교 관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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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이 중요한가?깨어라!—1977 |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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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옷차림이 중요한가?
성경에서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승인받는 입장은 옷으로 상징되어 있다. 환난을 생존할 “큰 무리”는 “흰옷 입은” 사람들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흘린 피를 믿기 때문에 지존자 앞에서 품위있고 깨끗하게 보인다는 것을 암시한다. (계시 7:9, 13, 14)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의 도래와 관련하여, 이러한 격려의 말이 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시 16:14, 15.
그러므로 하나님의 큰 날에 우리가 세상의 행동과 태도 및 방식에 물들지 않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성품을 옷입고 있으려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 더우기, 그러한 옷을 입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여호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봉사에 활동적일 것이다. (누가 12:35-40; 21:36; 베드로 후 3:14) 그리스도인이 임명된 처소에서 잠든 ‘레위’인 성전 경비원의 상태에 있게 된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극일 것이다! ‘유대’인 전설에 의하면, 그들은 매를 맞고 옷은 불태워짐으로써 수치를 당하였다.
성경에서 옷을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의 승인받는 입장이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상징하는 것으로 언급하기 때문에, 그분의 종들이 또한 문자적인 옷차림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 논리적인 결론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과 ‘하와’에게 동물 가죽으로 만든 옷을 주셨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 옷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히브리’어는 “긴 옷”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옷은 첫 인간들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데 충분한 크기였다.—창세 3:21.
여러 세기 후 지존자께서는 자기의 종들의 옷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셨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주어진 법규는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그 귀의 술에 더하”게 되어 있었다. (민수 15:38) 또한,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요 남자는 여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이라. 이같이 하는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자니라.”—신명 22:5.
특색있는 옷단의 술과 청색 끈은 ‘이스라엘’인들을 다른 사람들과 구별시켜 주었고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상기시켜 주었다. (민수 15:40) 이성이 입도록 고안된 옷을 입지 말라는 금지 규정은 자연스러운 성의 구별을 보존시켜 주었다. 남자들은 남자 같이 보이고 싶어하고, 여자들은 여자 같이 보이고 싶어하는 것이 통례이다. 의상과 관련한 이러한 내적 감각을 어기면 동성애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법은 속임수와 부도덕의 가능성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스라엘’인들은 이러한 의상 문제를 무시하거나 가볍게 다룰 수 없었다. 그 율법이 수여된지 여러 세기 후, 여호와의 예언자 ‘스바냐’는 하나님의 율법과 일치하지 않는 ‘애굽’인들과 ‘바벨론’인들의 옷을 의미하였을 “이방의 의복을 입”는 자들 모두에게 재난이 임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스바냐 1:8) 그 율법이 유효한 동안 ‘이스라엘’인들은 그 법규를 따라야 하였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명령 중 어느 것이라도 고의적으로 어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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