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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숙한 여자”가 충성스러운 사랑을 나타내다파수대—1978 | 6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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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을 사모하였다면 그도 그리로 돌아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 11:15 비교) 그러나 이 젊은 ‘모압’ 여인은 연로한 ‘나오미’에게만이 아니라 특히 여호와께 충실한 사랑을 나타냈읍니다. ‘룻’은 자기 희생적인 영과 믿음 가운데서 참 하나님을 섬길 결심을 나타냈읍니다. 이러한 대조적인 결정을 볼 때 우리도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지 않고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지도록 격려를 받게 됩니다.—히브리 10:38, 39.
‘베들레헴’이 떠들썩하다!
16. 왜 ‘베들레헴’의 여자들은 “이가 ‘나오미’냐?” 하고 계속 묻습니까?
16 결국 이 두 여자는 그들의 목적지인 ‘베들레헴’에 당도합니다. 그들이 오게 되자 전 성읍이 떠들썩해집니다. “이가 ‘나오미’냐?”라고 여인들은 계속 묻습니다. 여러 해 동안에 많이 변하였읍니다. 확실히 그 여자들은 한 때는 명랑하던 이 여자가 슬픔과 고통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고 있읍니다. 그 여자의 대답 자체가 마음의 고통을 지적해 줍니다!
17.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는 ‘나오미’의 말은 어떠한 의미입니까?
17 ‘나오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를 ‘나오미’[나의 기쁨]라 칭하지 말고 ‘마라’[괴로움]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남편과 두 아들을 가져]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룻 1:19-21) 오!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분명히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재난을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룻 1:13; 사무엘 상 3:18 비교.) 생산적인 태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간주되고 아이를 못낳는 것을 저주라고 생각하던 그 당시에는 살아 있는 후손이 없는 여자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그리고 이제 ‘나오미’에게 메시야의 혈통에 기여할 어떠한 희망이 있읍니까?
보잘 것 없는 이삭줍는 여인이 호의를 얻다
18. ‘룻’은 어떻게 이삭줍는 일을 하게 되며, 그는 “우연히” 누구의 밭에 이르게 됩니까?
18 ‘나오미’와 ‘룻’은 이른 봄인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읍니다. (룻 1:22) 부지런하고 기꺼이 섬기려고 하는 ‘룻’은 ‘나오미’의 허락을 받고 나가 곡식 밭에서 추수꾼들의 뒤를 따라 이삭을 줍기 시작합니다. ‘룻’은 이삭이 가난한 자와 고통하는 자, 외국인 거주자들, 아버지 없는 아이와 과부를 위한 여호와의 인자하신 마련임을 알고 있읍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부주의로 혹은 일부러 추수꾼들이 남겨 놓은 곡식은 그러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모으거나 이삭으로 주울 수 있읍니다. (레위 19:9, 10; 신명 24:19-21) ‘룻’에게는 이삭을 주울 권리가 있었지만 그 여인은 어느 밭에 가서 이삭 줍기를 겸손하게 요청하며 그렇게 할 허락을 받습니다. 그러나 ‘룻’이 “우연히 ···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게 된 것은 분명히 여호와의 손이 함께 하셨음을 알려 줍니다.—룻 2:3.
19, 20. (ㄱ) 보아스는 누구입니까? (ㄴ) 왜 ‘룻’은 결코 자기만 아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읍니까?
19 보십시오! ‘보아스’가 가까이 이릅니다. 그는 “유력한 자”로서 ‘살몬’과 ‘라합’ 사이의 아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보아스’는 ‘유다’인입니다. ‘보아스’는 자기 일꾼들로부터 깊은 존경을 받는 사려깊은 주인일 뿐만 아니라 참 하나님의 경건한 숭배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인사로써 그것을 알 수 있읍니다. 그는 추수꾼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인사하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대답합니다.—룻 2:1-4.
20 추수꾼들의 책임자인 젊은 사람으로부터 ‘보아스’는 ‘룻’이 ‘나오미’와 함께 최근에 ‘베들레헴’에 온 ‘모압’ 여자임을 알게 됩니다. ‘룻’은 허락을 받은 후 아침 서늘한 때부터 해가 높이 오를 때까지 뜨거운 것을 인내하면서 불평없이 꾸준히 이삭을 주웠읍니다. ‘룻’은 단지 곡식을 거두는 사람들의 초막에 불과한 집에서 잠시 쉬었을 뿐입니다. ‘룻’은 결코 자기만 아는 여자가 아닙니다!—룻 2:5-7.
21. ‘룻’에게는 ‘보아스’를 감동시킨 어떠한 점이 있으며,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이로부터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21 후에 ‘보아스’는 다른 밭에서 이삭을 줍지 말고 자기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고 권합니다. 그 소녀들은 아마도 그의 곡식을 거두는 사람들의 뒤를 따르면서 곡식단을 맸을 것입니다. ‘보아스’는 그 젊은이들에게 그 여자를 건드리지 말라고 말하며 그들이 떠다 둔 물을 원하는 대로 마시게 합니다. ‘룻’은 깊은 감사를 느껴 자기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면서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보아스’는 결코 늙은이의 일시적인 기분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그의 애정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고 그 ‘모압’ 여인이 자기 부모와 고국을 떠나 자기의 연로한 시어머니와 계속 함께 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룻’의 충성스러운 사랑과 겸손으로부터 감동을 받은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룻’이 인정한 바와 같이 ‘보아스’는 분명히 ‘룻’을 위로하였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을 하였읍니다.—룻 2:8-13; 시 91:2, 4.
22, 23. (ㄱ) ‘보아스’는 어떻게 ‘룻’을 관대하게 대합니까? (ㄴ) ‘룻’의 부지런함과 비이기적인 점은 어떠한 면으로 나타납니까?
22 추수꾼들의 식사 시간에 ‘보아스’는 ‘룻’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내 떡조각을 초[신 포도주]에 찍으라.” 뜨거운 날에 얼마나 구미를 돋구는 말입니까! ‘보아스’는 ‘룻’에게 볶은 곡식을 주며, ‘룻’은 실컷 먹고 얼마를 남깁니다.—룻 2:14, 「신 영어 성서」 비교.
23 이제 또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보아스’는 관대한 영으로 그의 사람들에게 ‘룻’으로 하여금 “곡식단 사이에서” 줍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심지어 그들에게 “줌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룻’이 그것을 줍게 하라고 지시합니다. 저녁이 되었는데도 ‘룻’은 자기가 주운 것을 ‘떠는 데’ 바쁩니다. 땅에다 놓고 막대기 혹은 도리깨로 치면 보리가 줄기와 이삭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자, 그 날 ‘룻’이 거둔 보리는 한말이 넘습니다! ‘룻’은 이것을 ‘베들레헴’ 집으로 가지고 갑니다. ‘룻’은 비 이기적으로 그 날 일찌기 식사 때 남긴 음식도 가지고 가서 자기의 시장한 시어머니에게 줍니다.—룻 2:14-18.
24. (ㄱ) 왜 사람들이 ‘룻’을 “현숙한 여자”라고 생각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ㄴ) 그러므로 왜 ‘룻’은 경건한 여자에 대한 훌륭한 본입니까?
24 또 다시 ‘룻’은 ‘나오미’에 대한 충성스러운 사랑을 나타냅니다. 그 젊은이의 여호와께 대한 사랑, 그의 근면성과 겸손은 이에 보탬이 되며 사람들이 그를 “현숙한 여자”로 보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룻 3:11) 분명히 ‘룻’은 “게을리 얻은 양식”을 먹지 아니하며 자기가 열심히 일하였기 때문에 그는 궁핍한 사람에게 줄 것이 있게 됩니다. (잠언 31:27, 31; 에베소 4:28) 그리고 과부가 된 자기의 연로한 시어머니에 대한 책임을 떠맡음으로써 그 ‘모압’ 여인은 주는 데서 얻는 행복을 알고 있음에 틀림없읍니다. (사도 20:35; 디모데 전 5:3-8) ‘룻’은 참으로 경건한 여자의 훌륭한 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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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온전한 상”을 주시다파수대—1978 | 6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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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온전한 상”을 주시다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룻 2:12.
1-3. (ㄱ) ‘나오미’와 ‘룻’의 대화는 사랑을 가진 가족의 대화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ㄴ) ‘룻’이 ‘나오미’에게 그 날의 이삭주운 일에 관하여 말하였을 때 어떠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누구의 인도가 있음이 명백합니까?
‘여호와께서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연로한 ‘보아스’는 ‘모압’ 여자 ‘룻’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이 훌륭한 젊은 여자가 복을 받기를 진정으로 원하였읍니다. (룻 2:12) 그러나 그러한 희망이 실현될 것입니까? 그렇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까? 살펴봅시다.
2 사랑이 있는 가정이라면 연로한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활동에 관심을 가집니다. 모두가 생각을 이야기하고 그 날의 활동에 관해 말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나오미’와 ‘룻’이 저녁 시간에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는 ‘베들레헴’의 초라한 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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