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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압’—왕위에 부적당한 ‘유다’ 지파 사람파수대—1979 |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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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이유로 ‘엘리압’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전쟁을 구경하러 왔도다.” 이 말은 ‘엘리압’이 그의 동생이 무엇인가 흥미진진한 것을 구경하려고 맡은 일에서 도망하기를 원했다고 느꼈음을 알려 준다.
이러한 그릇된 억측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여 ‘다윗’은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말 한마디 뿐이 아니니이까?” 하고 대답하였다. 사실상 ‘다윗’은 “무슨 근거로 그렇게 비난하십니까? 제가 실제로 무슨 짓을 했다는 말씀입니까? 저는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 보기 위해 질문할 자격도 없단 말씀입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 문제는 끝났다. ‘다윗’은 더 알아 보고 마침내 여호와께 대한 깊은 믿음을 나타냈으며, ‘골리앗’에 대한 승리를 거두었다.—사무엘 상 17:29, 난외주, 36-51.
앞서 언급한 사건은 ‘엘리압’이 왕위의 선택에서 최적임자가 아니었던 이유를 얼마나 강력하게 입증해 주는가! 아무런 실제적 증거도 없이, 그는 성급하게 그의 동생 ‘다윗’에게 그릇된 동기를 가졌다고 누명을 씌웠다. 그는 여호와께 대한 온전한 믿음이 부족하여,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모욕에 대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는 ‘블레셋’ 사람의 모욕으로부터 여호와의 이름을 깨끗케 하는 일의 지극히 중대함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몇마리의 양을 더 염려한 것같이 보인다. 의심할 여지없이, 믿음과 용기, 균형잡힌 판단에 있어서 이러한 결함을 보인 사람은 왕위를 위한 여호와의 선택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을 검사하시는 분이신 여호와께서는 ‘이새’의 장자 대신 막내아들 ‘다윗’을 선택하심에 있어서 결코 실수하지 않으셨던 것이다.—사무엘 상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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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파수대—1979 |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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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위로를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살아가노라면 어느 때인가 위로와 격려를 절실히 필요로 하게 마련이다. 이것은 인생 가운데 슬픔을 초래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까닭이다.
부모들은 열심히 일해서 자녀들을 잘 부양하려고 노력할지 모른다. 그런데 아들과 딸들이 커가면서 반항적이 되고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근심을 부모에게 안겨다 주는 일이 있을지 모른다.
직장내에서, 오해를 받거나 불공평의 대상이 되는 수가 있을지 모른다. 정직성과 근면에도 불구하고, 그의 양심이 허락지 않기 때문에 정치적인 일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승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무능한 사람들이 그의 하는 일을 지시하는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 숱한 골칫거리들을 견디기 힘들어 그는 직장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지 모른다.
활동적이던 성인이 몹쓸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불구가 되어 쓰러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더는 그는 전에 그에게 크나큰 행복을 주던 일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심한 고통을 강한 마약으로 덜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중에 친한 벗이나 친족의 사망으로 인한 가슴 아픈 슬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우리는 아마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독 속에서 실의에 차 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경우에,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를 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어려움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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