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올바른 인식을 나타내는가?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잠언 4:5, 8.
1, 2. (ㄱ)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올바로 인식해야 할 어떤 점들이 있읍니까? (ㄴ) 올바로 “인식하다”라는 말의 뜻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나타납니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올바로 인식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읍니다. 우리는 부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부모는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분이며, 우리의 양육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바친 분입니다. 우리는 부모의 노고를 올바로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참다운 벗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올바로 인식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읍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운 것들, 우리가 하는 일, 받은 선물 등에 대하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하여도 올바른 인식 곧 고마움을 나타냅니까? 흔히 선물을 받을 때, 받는 사람은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면서 자기가 그 가치를 올바로 인식한다는 뜻을 말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사람이 참으로 그 가치를 올바로 인식합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는 선물이 다른 것이었더라면, 혹은 이런 선물이라면 안주어도 좋은데 하고 생각하지나 않습니까? 그는 그것으로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러면 도대체 “올바른 인식”이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2 올바로 “인식하다”라는 말은 “존중하다, 높이 평가하다, 따뜻하게 인정하다”를 의미합니다. 당신 자신이 존중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당신이 높이 평가하고 따뜻하게 인정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나타냅니까? 참으로 올바른 인식이 있다면, 당신의 말이나 행동에 그것이 나타날 것입니다.
가족 관계
3. 아이는 보통 부모에게 강한 애착을 느끼고 있지만 사실상 부모에 대한 인식 부족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읍니까?
3 매우 어린 아이에게는 사실상 올바른 인식감이 없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매우 강한 본능적 애착을 느끼고 있읍니다. 위험이 있으면, 보호를 받기 위해 어디로 달려 갈 것인가를 그들은 압니다. 예를 들어, 어린애가 어머니 가까이에서 뛰어 놀다가 갑자기 낯선 사람이 들어 오면 그 아이는 놀랄 것입니다. 그 아이는 달려 가서 어머니를 붙잡고 어머니의 치맛자락에 얼굴을 파묻고는 안전감을 가집니다. 만일 어머니가 과거에 그 아이에게 인자하게 대하였다면 아이는 여기서 안전함을 느낍니다.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데 있어서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그 아이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는 본능적으로 자신에 대해 염려를 합니다. 만일 아이가 어머니에 대하여 그리고 어머니의 지도에 대하여 인식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망을 받을 때 그의 반응에서 쉽게 나타납니다.—잠언 12:1.
4. (ㄱ) 때가 되면, 무엇이 부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더욱 높게 해 줄 것입니까? (ㄴ) 그러한 올바른 인식이 자란다면, 그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4 하지만, 어른이 되면 아이 적과는 문제를 전연 다르게 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린도 전 13:11) 올바른 인식을 갖기 위해서는 지식이 있어야 하며, 그 지식이 마음에 이르러야 합니다. 사람이 어른으로 성장함에 따라 지식을 얻게 되고 경험을 통하여 지식이 마음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제 그는 어렸을 적에 부모가 자기에게 베풀어 준 사랑을 올바로 인식하는, 즉 그 가치를 이해하는 정도에 도달하게 됩니다. 이제 그 사람이 자기 아이를 기를 입장이 되어, 징계의 문제를 당하게 되고, 아이가 아플 때에 그를 간호하기 위해 잠을 설치고, 아이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기 위해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자녀를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는 데 필요한 참을성과 인자한 관심을 몸소 배우게 됩니다. (에베소 6:4 신세) 이러한 경험은 그 자신과 그의 아내로 하여금 자신들이 어렸을 때를 회상해 보도록 할 것입니다. 아마 그들은 평생에 처음으로 부모들이 자기를 위해 바친 노고를 온전히 인식할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부모가 한 일을 높이 평가하고, 또 매우 따뜻하게 인정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올바른 인식이 자랄 때에는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일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여러 차례 나타낼 수 있읍니다.—디모데 전 5:4.
5. 어린 자녀들까지도 부모에 대해 배양해야 할 태도에 대해 성서는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5 사람이 어른이 되기 전에는 부모의 노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온전한 정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성경은 어린 자녀들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신명 5:16) 당신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그분들을 존중하는 것,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6. (ㄱ) 자녀들이 부모에 대해 올바른 인식이 심히 부족하게 행동하는 어떠한 예를 당신은 보았읍니까? (ㄴ) 어떠한 요인 때문에 가정에 그러한 상태가 형성될 수 있으며, 그러나 그것을 예방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6 불행하게도 많은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부모에게 놀랄 만큼 그리고 꾸준히 올바른 인식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디모데 후 3:1, 2; 신명 27:16) 기본적인 문제는 아마 부모들 자신이 자녀들에게 올바른 인식을 갖지 않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마 그들이 그 자녀들을 갖고 싶어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그 자녀들을 시편 127:3에 표현되어 있는 바,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하는 식으로 보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건전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아마 부모들이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으며, 그들과 함께 어울려 주지 않고, 그들의 여러 가지 질문에 대답해 주려고 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다른 경우에는, 자녀들 자신이 나쁜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부모의 인자한 감독에 대해 순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의 건전한 충고를 열심히 적용한다면, 그러한 불유쾌한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올바른 인식이 있다고 단순히 말하는 것으로는 그것이 증명되지 않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의 태도와 행동은 그것을 증명해 줍니까?
7. (ㄱ) 아버지가 징계를 할 의향이 있는 것 혹은 없는 것은 자녀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떠함을 나타내는 것입니까? (ㄴ) 그러한 징계는 어떻게 실시합니까?
7 그 질문에 대답을 하는데 있어서, 징계를 주는 일과 받는 점에 대해 그 가정 내에서 어떠한 태도를 나타내는가를 고려해야 합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아버지는 자녀들이 필요한 징계를 받도록 할 것입니다. (잠언 13:24) 잠언 4장 1절에서는 우리에게 징계를 올바로 인식하도록 이렇게 권고합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징계, 신세]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훈계 곧 징계는 반드시 고통을 통한 훈련 곧 책망의 형태로 나타나는 징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전에 의하면 “징계”라는 단어의 첫째 의미는, “제자 혹은 배우는 자에게 합당한 대우, 신체적이건 정신적, 도덕적이건, 지도, 훈련, 교육에 의해 기능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징계를 한다는 말을 읽을 때에, 단순히 자녀에게 호령을 하고 나서 시킨대로 하지 않을 때에 매질을 하는 것만 연상해서는 안됩니다. 그 말은 사실상 아버지가 참으로 자녀를 보살피고,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의 신체적, 정신적, 도덕적 발전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한 아버지는 자녀가 참 하나님에 대하여 그리고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의 행동 방식에 대하여 알도록 돕고자 합니다. 그는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살핌에 대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성취시키시는 점에 대하여 확신을 갖기를 원합니다. (창세 18:19; 신명 11:18, 19) 그러한 아버지는 참을성 있게 자녀들이 사랑, 즐거움, 평화, 오래 참음, 친절, 착함, 믿음, 온유, 자제 등의 경건한 특성을 배양하도록 도울 것입니다. (갈라디아 5:22, 23, 신세) 그러므로, 책망이 필요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징계, 신세]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는 성서의 말씀을 읽을 때에, 우리는 자녀에게 참을성 있게 정신적 및 도덕적 교육을 실시하는 아버지를 연상해야 합니다.
8. 자녀는 부모의 징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그 이유는?
8 부모를 공경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을 공경하는 아들 딸들은 그러한 징계에 반항하거나 그것을 비웃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아비의 훈계[징계, 신세]를 업신여기는 자는 미련한 자요 경계를 받는 자는 슬기를 얻을 자니라.” (잠언 15:5) 그들은 잠언 4:13에 기록된 말을 심중히 받아 들일 것입니다. “훈계[징계, 신세]를 굳게 잡아 놓치지 말고 지키라. 이것이 네 생명이니라.”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9. “지혜를 얻”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린 사람들은 자기가 그것을 올바로 인식함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9 영감받은 「잠언」은 계속 권고합니다. “지혜를 얻으며 명철을 얻으라. 내 입의 말을 잊지 말며 어기지 말라. 지혜를 버리지 말라. 그가 너를 보호하리라. 그를 사랑하라. 그가 너를 지키리라.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 무릇 너의 얻은 것을 가져 명철을 얻을찌니라.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리라.” (잠언 4:5-8) 어린 사람이 아버지의 교훈을 들으며 징계를 받아들임에 따라 그는 지혜를 얻을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가 말씀해 주신 것을 자기 생활에 실제 적용하는 방법을 배울 것입니다. 그는 교훈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린 사람이 그 성경 말씀의 요지를 참으로 터득하고 “지혜가 제일”임을 깨닫는다면, 그는 부모의 말씀을 기꺼이 들을 것이며, 부모의 인생 경험으로부터 유익을 받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한 자녀는 부모가 주는 지혜를 올바로 인식 곧 “높이 평가”할 것이며, 특히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와 일치할 때엔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10. 경건한 지혜는 부부관계에 어떤 유익을 줍니까?
10 경건한 지혜가 부모의 사고 방식을 지도한다면 부모는 자녀를 다루는 일에서 성공을 거두는 것은 물론, 부부로서의 상호 관계도 건전해지고 강화될 것입니다. 아내는 올바른 인식이 없는 남편을 위해 일하는 데서 오는 욕구불만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남편은 아내의 충실한 후원에 대해 확신을 가질 것입니다. 부부가 서로 올바른 인식을 기르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하나님의 지혜의 책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잠언 18:22) 또한 ‘아내는 남편을 깊이 존경’해야 합니다.—에베소 5:33, 신세.
11. 남편에게 올바른 인식을 갖도록 요구하는 대신, 아내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더 낫습니까?
11 부부가 서로 배우자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나타내는 것은 마땅하지만, 올바른 인식의 표현은 그것을 요구당해서가 아니라 마음에 감동하여 표현하게 될 때에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읍니까? 여자로서 신체적으로 매력있게 되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지만, 다른 점들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잠언 31:30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남편이 믿는 자가 아닐지라도, 그리스도인 아내의 ‘깊은 존경심과 정결한 행위’를 통하여 그 남편을 설득시킨 경우도 흔히 있읍니다. (베드로 전 3:1, 2, 신세) 자기 남편의 따뜻한 인정을 얻는 아내는 “현숙한 여인”, 자기 일에 부지런한 아내입니다. 올바로 “인식하다”라는 말에 “높이 평가하다”라는 뜻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치 아니하겠으며 그런 자는 살아 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 하느니라.” (잠언 31:10-12) 자기 아내가 “좋은 아내”라면, 잠언 31:28에 언급된 바와 같이 그는 ‘아내를 칭찬’할 것입니다.
12. 어떤 일들이 아내와 자녀들로 하여금 가정의 머리를 존경하도록 할 것입니까?
12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 남편은 자기가 훌륭한 성품을 나타낼 때에 아내로부터 사랑의 존경을 받게 됩니다. 만일 그가 다른 식구들에게 거칠고 사려깊지 않다면, 식구들이 그의 지위는 존경할지 모르나 그를 개인으로서 높이 평가하는 것 곧 올바른 인식을 나타내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반면에, 그가 자기의 머리인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머리 직분을 행사한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면 식구들이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그에게 호응하기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고린도 전 11:3; 마태 11:28-30) 그가 집 밖에서 사람들을 상대하는 데 시간을 관대하게 사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자기의 가족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족과 함께 건설적인 대화를 하는 데 매일 얼마의 시간을 바치는 남자는, 단순히 가정에 돈을 가져온 다음 신문에 머리를 파묻어 버리거나 ‘텔레비젼’ 수상기에 주의를 기울여 버리는 남자보다는 확실히 존경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대하여 아내가 존경할지는 모르나, 그가 기꺼이, 정기적으로 시간을 내어 아내와 함께 성서 연구를 하는 것 그것이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을 강화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내시는 인식
13. (ㄱ) 선을 행하려는 간절한 노력을 가족은 올바로 인식하지 않을지라도 누가 그것을 유의합니까? (ㄴ) 이에 대하여 ‘다윗’은 어떻게 확신을 나타내었읍니까?
13 때때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사랑의 친절을 나타내려고 간절히 노력을 해도 올바른 인식이 없는 반응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동을 보고 올바로 인식해 주는 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분은 여호와입니다. ‘이새’의 아들 ‘다윗’은 이 점을 알았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사울’이 그의 생애를 험난하게 만들었읍니다. ‘사울’ 왕은 ‘다윗’의 장인이면서도 ‘다윗’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하였으며, 결국에는 ‘다윗’의 아내 ‘미갈’을 다른 남자에게 결혼시키고 ‘다윗’을 여러 차례 죽이려 하였읍니다. 그만큼 혹독한 경험을 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읍니까? 그러나 ‘다윗’은 번번히 왕에 대해 사랑의 친절을 가지고 행동하였읍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 왕으로부터 올바른 인식이 있는 태도를 기대하지 않았지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라고 하였읍니다. (사무엘 상 26:2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종들의 친절이 보답되지 않고 지나쳐 버리지 않도록 하십니다.—잠언 25:21, 22.
14. 여호와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모든 인류에게 사랑에 찬 관심을 나타내셨읍니까?
14 여호와께서는 인류에게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점은 인류가 즐길 풍부한 마련을 해주신 점에서 볼 수 있읍니다. 참 하나님을 숭배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사도 ‘바울’과 ‘바나바’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사도 14:17) 그리고 ‘솔로몬’ 왕은 영감을 받아 이렇게 썼읍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줄을 또한 알았도다.” (전도 3:10-13) 하나님께서 인류 세상을 사랑하시고, 인간이 이 땅을 즐기기를 원하시며, 그들이 서로 올바로 인식하고 또 창조주인 그분을 사랑하고 올바로 인식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15. 지상의 모든 피조물 중에서, 하나님께서 사랑의 관심을 가지시는 대상은 인간뿐입니까?
15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에 찬 관심은 인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참새 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 10:29-31) 이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하는 새에게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으며, ‘노아’ 홍수를 통하여 보존하셨읍니다.
16.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특별히 소중히 여기심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16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특별히 소중히 여기십니다. 짐승을 지으실 때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지만, 인간을 만들 준비를 하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1:26) 최초의 인간 조상이 범죄하였는데도 하나님은 인류에 대한 사랑이 식어지지 않았읍니다. 인자하시게도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창조주께 인식을 가지고 호응하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마련하셨읍니다. 예수께서 설명하신 바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 3:16.
17. 여호와를 섬기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전망은 왜 유쾌한 전망입니까?
17 여호와를 섬기면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것은 실로 즐거운 전망입니다. 하나님은 올바른 인식이 없는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봉사가 불완전성 때문에 지장을 받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안을 주십니다. 우리를 격려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감동시켜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편지하게 하셨읍니다.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히브리 6:10)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진정한 믿음을 나타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의 상급이 매우 클 것이다’고 말씀하셨읍니다. (창세 15:1, 신세) 그리고 여호와의 규례에 관하여 시편 필자는 기록하기를, “이를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고 하였읍니다. (시 19:11) 과연, 여호와께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을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상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감탄스럽게 인식깊은 태도를 가지고 계심을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줍니까? 따라서 우리도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호응합니까?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중요시 함
18. 여호와와의 관계를 가지는 점에 있어서 우리 모두는 어떠한 입장에 처해 있읍니까?
18 여호와와 승인받은 관계를 가진다는 것은 우리 인간으로서 저절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그런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말한 ‘다윗’ 왕의 입장과 같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시 51:5) 우리 중엔 예외가 없읍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로마 3:23; 또한 요한 1서 1:8, 10 참조.)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승인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을 준비하셨읍니다.
19, 20. 무슨 유일한 수단에 의하여야만 우리는 여호와와의 관계 안에 들어 갈 수 있으며, 왜 그분을 섬기는 것은 웅대한 특권입니까?
19 잠간 멈추어 인간과 하나님을 비교해 본다면 그 마련이 우리의 심금을 울립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해 본 사람이면, 몇백 ‘미터’ 상공에서도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으며, 집과 자동차는 장난감 같이 보인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니, 여호와께서 그 드높은 위치에서 이 땅을 내려다 보실 때 인간이 얼마나 작고 사소하게 보이겠읍니까? (이사야 40:15) 시편 필자가 다음과 같이 쓴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시 8:3, 4.
20 그런데도, 이 우주의 지존하신 통치자, 높고 높으신 창조주께서 인간에게 그분과 관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독생자를 지상에 보내시어 그의 생명을 속죄제로 바치게 하셨읍니다.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렇게 설명하셨읍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한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 3:16; 14:6) 죽어서 부활되신 다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읍니다. “너희가 ···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사도 1:8) 이러한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웅대한 특권임을 인식하고 그들은 지시받은 대로 하였읍니다.
21. 작년에,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중요시함을 어떻게 나타내었읍니까?
21 그 결과 이 땅의 방방곡곡에 사는 사람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읍니다. 작년에 207개 나라에서 사람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 증인들로부터 그러한 도움을 받았읍니다. 일부 사람들은 들은 것을 마음깊이 받아 들였읍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이전 행로를 회개하고 돌아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생명을 사용할 필요성을 느꼈읍니다. 그들은 인류를 죄와 사망의 속박에서 대속하기 위한 하나님의 감탄스런 마련을 올바로 인식한 후, 기쁘게 자신을 버리고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해 헌신의 상징으로 침례를 받았읍니다. (마태 16:24; 28:19, 20) 이러한 중요한 단계를 취한 사람들은 소수가 아니었읍니다. 181개 나라에서 사람들이 작년에 침례를 받았읍니다. 일년 동안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실시하는 침례를 받기 위해 자신을 나타낸 사람들은 총 297,872명이나 되었읍니다. 그들 모두는 성서를 연구한 사람들이며, 성서의 가르침을 알고, 자기 믿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일을 주저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로마 10:9, 10, 신세) 그들은 하나님과의 좋은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침례받을 자격을 얻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였읍니다. 당신도 그러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고 있읍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들 앞에, 현재와 장래에 웅대한 축복이 놓여 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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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참으로 사랑하는 부모는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징계를 받도록 할 것이다. 단순히 책망만이 아니라, 정신적, 도덕적 발전을 촉진하는 개인적 교육을 베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