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혜를 잊은 왕파수대—1981 | 2월
-
-
그의 사촌의 아버지인 ‘여호야다’가 그에게 베푼 친절까지도 망각하였다. ‘요아스’는 ‘스가랴’를 성전 뜰에서 돌로쳐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죽는 순간, ‘스가랴’는 이렇게 외쳤다.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신원하여 주옵소서.”—역대 하 24:21, 22.
여러 세기 후에 예수께서는 분명히 이 사건을 참조하시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음을 당한 ‘사가랴’ 피까지 하리라.”—누가 11:49-51.
후에 기원 제 일세기에 ‘유대’인의 불충실한 세대에 이 말이 성취되었던 것처럼 ‘요아스’에게도 같은 형벌이 임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감사할줄 모르는 왕에게서 그의 축복과 보호를 거두셨다. ‘하사엘’ 휘하의 소수의 ‘아람’(시리아) 군대가 성공적으로 ‘유다’를 침공했고, ‘요아스’에게 강제로 성전에 있는 보물을 바치게 했다. ‘아람’ 군대가 철수하자 ‘요아스’는 몹시 앓게 되었고, 결국 그의 심복 두명에게 암살을 당하였다.—열왕 하 12:17-21; 역대 하 24:23-27.
만일 ‘요아스’가 여호와의 감사할 줄 아는 종으로 머물러서 계속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받았더라면 얼마나 다른 생애를 누렸겠는가! 우리의 생애 역시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 조건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나타내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요아스’의 경우에서 입증된 바와 같이 배은 망덕한 정신은 단지 파멸을 초래할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에 예리한 인식을 유지하도록 힘써야 한다.
-
-
강간의 비극을 피하는 일파수대—1981 | 2월
-
-
강간의 비극을 피하는 일
사람들은 경험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특히 강간을 직면하게 될 때 자신이 희생물이 되느니보다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이러한 목적을 염두에 두고 아래에 두 가지 실제 경험을 기술한다.
전원 마을에 살고 있는 대가족의 한 성원으로 매력적인 십대의 한 소녀가 있었다. 그러나 이 소녀는 가족과의 교제로 만족하지 않고 그 지방에 사는 다른 소녀들을 혼자서 찾아가는 습관이 있었다.
그들을 방문하는 이 소녀의 정확한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분명히 이 소녀는 단순히 새로운 여자 친구들과 사귀는 데 관심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곳의 한 청년이 이 소녀를 유의해 보았다. 이 소녀가 그 청년과 일찌기 잘 아는 사이가 되었는지, 그 청년의 관심을 일으킬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 그 청년은 이 소녀와 강제로 성적 관계를 가졌다.
명백히 이 강간은 사전에 계획되지 않았지만, 또 다른 한 소녀의 강간은 그렇지 않았다. 한 젊은이가 그의 이복 누이에 대해 강렬한 욕정을 발전시켰다. 어느날 그는 병이 난 것처럼 가장을 하고, 아버지에게 그 누이를 자기 집으로 보내서 자기를 위해 얼마의 음식을 만들어 주도록 요청을 하였다. 이제 단 둘이만 있게 되자 그는 누이를 붙잡고, 그 누이의 간곡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힘으로 굴복시켜 강간을 했다.
독자 중 많은 사람은 이전에, 이 강간 사건에 대해 읽어 본 일이 있을 것이다. 이 소녀들은 ‘야곱’의 딸 ‘디나’와 ‘다윗’의 딸 ‘다말’이었다. 이 사건들은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창세 34:1-7; 사무엘 하 13:1-14.
급속히 증가하는 범죄
강간은 오늘날 심히 보편화되었다. 주된 이유는 명백한 것같다. 성과 폭력이 ‘텔레비젼’과 영화 ‘스크린’에서, ‘라디오’, 신문, 잡지들과 벽보 등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도비(都鄙)를 막론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