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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를 본 예언적 수수께끼파수대—197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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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에 묶여 ‘바벨론’으로 끌려 간 후 갇혀 있다가 죽었다.—열왕 하 25:2-7; 예레미야 52:6-11.
이 예언적인 수수께끼의 성취를 단순한 역사로만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 수수께끼와 관련된 또 다른 특징이 나오는데 그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 될 수 있는 내용이다.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또 백향목 꼭대기에서 높은 가지를 취하여 심으리라. 내가 그 높은 새 가지 끝에서 연한 가지를 꺾어 높고 빼어난 산에 심으리니 그 가지가 무성하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백향목을 이룰 것이[라.]”—에스겔 17:22, 23.
이것은 ‘다윗’ 왕가의 후사인 메시야 즉 그리스도 예수께서 왕으로 통치하실 때를 가리킨 것이다. 이분은 세계적인 통치권을 행사하실 분으로서 높은 백향목과 같이 되실 분이다. 시편 72:7, 8은 그분의 통치에 관하여 예언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라.]”
우리는 지금도 자기 제자가 되라는 다음과 같은 초대를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의 통치를 선택할 수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 11:28, 29) 당신은 그러한 초대에 응하였는가? 그렇게 하는 것만이 재난을 피하는 유일한 길이며 고대의 ‘시드기야’와 같이 되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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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사람들을 신뢰해야 하는가?파수대—1977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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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른 사람들을 신뢰해야 하는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는 것은 참으로 사랑의 표현이다. 성서에서는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다고 알려 준다. (고린도 전 13:7) 그렇다고 사랑이 속기 쉽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형제들에 대한 사랑은, 지나치게 의심을 품어 그들을 최악의 상태로 단정짓는 일이 없도록 막아 준다는 것이다. 그렇다, 그와 정반대라는 명백한 증거가 있지 않는 한,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신뢰하도록 우리를 움직인다. 동료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방법으로든 우리를 실망시킬 때라도, 우리는 그들의 동기가 나쁘다고 성급히 추측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하나님께서도 때때로 자기의 종들을 불신하시지 않는가? ‘데만’ 사람 ‘엘리바스’가 창조주께 불신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 것을 정말 볼 수 있는데, 그는, “하나님은 그 종이라도 오히려 믿지 아니하시며, 그 사자라도 미련하다 하시나니”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욥 4:18) ‘엘리바스’는 자신의 진술이 “영”으로부터 나왔음을 자인하였다. (욥 4:15) 여호와께서 나중에 ‘엘리바스’와 그의 친구들을 거짓을 말한 것에 대해 책망하신 사실은 바로 이 “영”이 악하였고 악귀적이었음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엘리바스’는 다만 악귀의 영감받은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있었을 뿐이다.—욥 42:7.
실제로, 사랑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지성있는 피조물들을 신뢰하시는 면에서 으뜸가는 본이 되신다. (요한 1서 4:8) 그분은 분명히 자기의 영적 아들들에게 그들의 의무 수행에 있어서 상당한 자유를 주시는 것 같다. 그분은 때때로 특정한 임무를 다루는 데 대한 그들의 견해를 발표하도록 허락하시며 또 그것에 따라 처리하도록 승인하시기도 한다. 이러한 한 가지 예가 열왕기 상 22:20-22에 있는 기록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그래서 이 영 즉 천사는 ‘아합’의 선지자들 위에 그의 능력을 행사하여 그들의 마음에 있는 바, 진리가 아니라 그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 또한 ‘아합’이 그들에게서 듣고 싶어하는 것을 말하게 하였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독생자에게 신뢰를 나타내신 경우이다. 그분은 자기의 장자에게 영적, 물질적 창조에 있어 자기와 함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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