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베드로 전 5:5.
1.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특성을 발전시키라는 격려를 받고 있읍니까? 이유는?
교만하고 고고하고 허황하고 이기적이고 젠체하는 사람들을 당신은 알고 있읍니까? 대부분은 그러한 사람들을 알고 있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겸손하고 겸비하고 온유하고 소박하고 겸허한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사실상, 겸손과 겸비의 특성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기르도록 격려를 받고 있는 특성들입니다. 한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크냐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진 것을 아시고,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읍니다. 그리고 나서 교만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설명하시면서, 그들이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을 그분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은 그분 자신과 그의 아버지 여호와를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고 지적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제자들이 겸손할 것을 격려하셨읍니다. (마가 9:33-37) 여러 해 후에 ‘베드로’는,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말한 다음에, 그 이유를 설명하기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말하였읍니다. (베드로 전 5:5) 그러므로,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겸손한 특성을 좋아하시고, 그러한 사람들에게 은혜 곧 과분한 친절을 베푸십니다.
2. 왜 열왕기 하 제 5장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까?
2 우리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므로 겸손이라는 문제를 깊이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성서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므로, 그 안에는 우리에게 겸손에 대한 것을 가르쳐 주는 내용도 들어 있읍니까? (로마 15:4) 이 점에 있어서 고려해 볼 만한 내용이 열왕기 하 제 5장에 들어 있읍니다. 거기에는 옛날에 겸손을 나타냈던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 들어 있읍니다. 그 내용을 읽고 분석해 보면, 우리 각자가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도록 노력하는 점에 있어서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나아만’이 겸손을 배우다
3. ‘나아만’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읍니까?
3 기원전 10세기에,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아람’(‘시리아’) 나라에 ‘나아만’이라는 군대 장관이 있었읍니다. 그는 ‘아람’ 군대를 지휘하여 승리를 거두었던 사람입니다. 그 당시 ‘나아만’ 자신은 몰랐지만, 그를 통하여 ‘아람’ 나라에 구원을 가져다 주신 분은 여호와였읍니다.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 저는 큰 용사[더라].” (열왕 하 5:1) ‘나아만’은 그러한 지위와 공적이 있었기 때문에 틀림없이 교만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에 걸렸읍니다. ‘이스라엘’에서라면 그러한 병 때문에 군대 장관의 지위에서 물러나야 했었지만 ‘아람’에서는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얼마 후에, 그것이 그를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겸손하게 하였고 그에게 유익을 가져다 주었읍니다.—레위 13:46.
4. 어떻게 하여 ‘아람’ 왕은 ‘엘리사’에 관해 알게 되었읍니까?
4 ‘아람’의 약탈자들이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이스라엘’ 소녀를 잡아온 일이 있었는데, 그 소녀는 ‘나아만’의 아내의 여종이 되었읍니다. 이 소녀(성서에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음)는 ‘엘리사’라는 여호와의 예언자에 관하여 그리고 그 예언자가 수행한 기적들에 대해 알고 있었읍니다. 그는 ‘엘리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었으며, 자기의 믿음을 증거하였읍니다. 한번은 자기의 여주인인 ‘나아만’의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이스라엘’ 소녀의 증언이 얼마 후에 ‘아람’ 왕의 귀에 들어갔읍니다.—열왕 하 5:2-4.
5. 어떻게 하여 ‘나아만’은 ‘엘리사’와 접촉하게 되었읍니까?
5 ‘벤하닷’ 2세였음에 틀림없는 ‘아랍’ 왕은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에게 친서를 써서 그의 군대 장관 ‘나아만’으로 하여금 약 160‘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직접 가지고 가게 하였읍니다. 그는 ‘나아만’과 함께 값진 선물을 보냈읍니다. ‘여호람’이 편지를 받아 읽어보니 내용은 이러하였읍니다.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 주소서.” ‘여호람’은 편지를 받고 당황하였으며, ‘아람’ 왕이 자기에게 “시비”를 걸려고 하는가 하여 두려워하였읍니다. 참 하나님의 예언자 ‘엘리사’가 이 소식을 듣고 ‘여호람’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그 사람[‘나아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이제, 결국 ‘나아만’은 어린 ‘이스라엘’ 소녀가 그를 고쳐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던 그 사람의 주의를 끌게 되었읍니다!—열왕 하 5:5-8.
6. (ㄱ) ‘나아만’이 ‘엘리사’의 집에 도착하였을 때 어떤 일이 있었읍니까? (ㄴ) ‘엘리사’는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았으며, 무엇에 관심이 있었읍니까?
6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라].” 그러한 고귀한 사람이 왔는데 ‘엘리사’는 어떻게 대하였읍니까? 그는 이 유명한 군대 장관을 맞아 특별히 소란을 피웠읍니까? 기록을 보면 이러합니다.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게 깨끗하리라.” ‘엘리사’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은총을 받으려고 아첨하려 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계속 여호와의 은총을 받고 여호와의 뜻이 성취되도록 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었읍니다.—열왕 하 5:9, 10.
7. ‘나아만’은 ‘엘리사’의 지시를 받고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7 ‘나아만’은 자기의 문둥병을 고치기가 그렇게 쉽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였읍니까? 아니었읍니다. 기록은 계속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라].”—열왕 하 5:11, 12.
8. ‘나아만’의 교만은 그의 종들이 그로 하여금 생각하게 도운 어떤 점을 보지 못하게 하였읍니까?
8 ‘나아만’이 교만 때문에 고침을 받지 못할 것같이 보였읍니다. 그는 자기가 냉대를 받은 것이나 치료 방법이 간단한 것을 보고 좋아하지 않았읍니다. 그는 실제 치료 그 자체보다는 치료 활동에 수반되는 허례허식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같습니다. 교만 때문에 하나님의 예언자의 지시에 순응하지 않을듯 하였읍니다. 그러나 ‘나아만’의 종들이 그를 도와 문제를 올바로 보도록 해 주었읍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열왕 하 5:13) 그들은 올바른 견해를 가졌었읍니다. 그들은 주된 일이 ‘나아만’의 병을 고치는 것임을 인식하였읍니다. 그들이 주인에게 한 말은 효과를 보았읍니다.
9. ‘나아만’이 ‘엘리사’의 지시를 따랐을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났읍니까?
9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라].” 이제, 그는 겸손을 나타내기 시작하였읍니다. 겸손으로 자기 허리를 동이고 권고받은 절차를 행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는 ‘요단’ 강으로 가서 물속에 몸을 담갔읍니다. 한번, 두번, 이렇게 여러 번 담갔으나 병은 고쳐지지 않았읍니다. 마지막으로 일곱번째 잠그자 어떤 결과가 나타났읍니까?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 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그는 고침을 받았읍니다!—열왕 하 5:14.
10. (ㄱ) 고침을 받자 ‘나아만’은 어떻게 하였읍니까? (ㄴ) ‘엘리사’는 왜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하였읍니까?
10 이 사건은 ‘나아만’을 어느 정도로 겸손하게 만들었읍니까? 이제 그는 자기가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함이 없이 깨끗해진 상태를 자랑하면서 고향으로 돌아갔읍니까? 기록을 보면, 그는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참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돌아왔읍니다. 그 길은 40‘킬로미터’ 이상이나 되는 거리였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나타났읍니다.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실로 크나큰 신앙 고백이었읍니다! 그는 감사하여 ‘엘리사’에게 예물을 바쳤읍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로부터 이득을 얻는 데 관심이 없으므로 “나의 섬기는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받지 아니하리라”고 말하였읍니다. ‘나아만’이 강권함에도 불구하고 ‘엘리사’는 계속하여 선물을 거절하였읍니다. 그는 병을 고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인정하였으며 그는 여호와로부터 받은 직책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고 하지 않았읍니다.—열왕 하 5:15, 16.
11, 12. 이제 ‘나아만’은 무엇에 대한 염려를 나타냈읍니까? 어떤 방법으로 나타냈읍니까?
11 결국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면 청컨대 노새 두 바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든지 다른 제든지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나아만’은 겸손하게 ‘엘리사’의 하나님을 숭배하고자 하는 의향을 나타냈읍니다. 그는 ‘아람’ 왕을 섬기기 위해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지만 ‘이스라엘’ 흙 위에서 숭배를 드리고자 하였읍니다.—열왕 하 5:17.
12 ‘나아만’은 크게 겸손하여졌읍니다. 것치레하는 것이나 자기를 나타내는 데 관심이 있지 않고 이제 자신이 참 하나님이라고 인정한 분 곧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데 관심이 있었읍니다. 그는 계속하여 ‘열리사’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아람’ 왕이 숭배하던 거짓 신]의 당에 들어가 거기서 숭배하며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사유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아만’은 더 이상 이 ‘림몬’ 우상을 숭배하지 않을 것이며, 그가 몸을 굽히는 것은 단지 왕이 절할 때에 편리하게 하기 위한 기계적인 것에 불과할 것입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이 진실함을 믿고 “평안히 가라”고 말하였읍니다.—열왕 하 5:18, 19.
13. ‘나아만’이 “겸손으로 허리를 동”였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얻었읍니까?
13 비교적 짧은 기간에 ‘나아만’이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는 방법을 배우고, 그 결과 여호와의 숭배자가 되었으며,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은 사실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닙니까? 그러나 바로 같은 시기에 자기 중심적이 되고 고고해진 사람이 있었읍니다. 그 사람은 누구였읍니까?
탐욕에 이끌린 ‘게하시’
14, 15. ‘게하시’는 그의 진정한 관심이 무엇인가를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14 ‘엘리사’에게는 ‘게하시’라는 사환이 있었읍니다. 그는 분명히 ‘나아만’과 ‘엘리사’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에 함께 있었을 것입니다. ‘게하시’의 생각은 ‘엘리사’의 생각과 달랐읍니다. 그는, 아마 혼잣말로, 이렇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 가지고 온 것을 그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저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취하리라.” ‘게하시’는 물질적 이득에, 여호와의 영의 일로부터 이득을 얻는데 관심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의 생각에는 영적인 문제가 전적으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읍니다.—열왕 하 5:20.
15 ‘나아만’은 자기 병거에서 내려 ‘게하시’를 맞으면서, “평안이냐?” 하고 물었읍니다. ‘게하시’는 “평안이니이다” 하고 대답하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하였읍니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생도 중에 두 소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 왔으니 청컨대 당신은 저희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게하시’는 자기의 악한 수작을 위해 자기 주인 ‘엘리사’와 예언자들의 생도들을 팔았읍니다.—열왕 하 5:21, 22.
16. ‘게하시’가 ‘엘리사’에게 돌아왔을 때 어떤 일이 있었읍니까?
16 ‘나아만’은 앞서 ‘엘리사’에게 나타냈던 바와 같이 지금도 관대한 정신을 나타내어,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고 말하였읍니다. ‘나아만’이 ‘게하시’를 강권하므로 이 탐욕적인 사람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다가 자기 집에 두었읍니다. 그리고 ‘게하시’는 빈손으로 ‘엘리사’에게 돌아갔읍니다.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고 ‘엘리사’는 물었읍니다. ‘게하시’는 ‘나아만’에게 한 거짓말을 은폐하고 사실을 감추기 위하여,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대답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게하시’가 어떤 일을 하였는가를 아셨으며, ‘엘리사’에게 그 전모를 밝혀 주셨읍니다. 그리하여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열왕 하 5:23-26.
17. (ㄱ) ‘엘리사’가 정당하게 화를 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게하시’는 탐욕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하였읍니까?
17 ‘게하시’가 얼마나 무서워 떨었겠는지 당신은 상상할 수 있읍니까? 그의 주인이 자기가 한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또한 ‘엘리사’가 느꼈던 의로운 분노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 준 것이 여호와의 관심사를 위해 일한 것이며, 이 기적에 대해 물질적 사례를 받는 것을 거절하였읍니다. 그런데 이제 그 일에 직접 관여하지도 않은 자기의 종이 가서 탐욕적으로 거짓말을 하여 물건을 받았읍니다. ‘엘리사’는 분명히 여호와의 후원을 받아 ‘게하시’에게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고 있읍니다.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문둥병이 발하여 눈 같이 되었더라.”—열왕 하 5:27.
본받아야 할 속성과 피해야 할 속성
18. 열왕기 하 제 5장을 검토해 보면 무엇을 알게 됩니까?
18 우리가 지금까지 고려한 열왕기 하 5장을 다시 검토해 보면, 각 사람의 뛰어난 성격과 특징을 유의하게 됩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차이를 검토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19. (ㄱ) 어린 ‘이스라엘’ 소녀에게는 무슨 칭찬할 만한 특성이 있었읍니까? (ㄴ) 우리는 그러한 특성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19 작은 ‘이스라엘’ 소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에서 잡혀갔지만 이 때문에 여호와께 대한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기적을 나타내실 충실한 종을 계속 사용하실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읍니다. ‘엘리사’는, 후에 예수께서 지적하신 바와 같이, ‘이스라엘’에 있는 문둥병자를 고친 일이 없었읍니다. (누가 4:27) 그러나 이 작은 소녀는 참으로 믿음이 있었읍니다. 그 소녀의 생각에는 조금도 의심이 없었읍니다. 그는, ‘나아만’이 가서 간청하면 여호와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굳게 믿었읍니다. 비록 여종에 불과하였지만, 그는 여호와께 대한 믿음을 증거할 만한 담대함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는 자기의 말이 납득되고, 하찮은 어린 생각으로 인정받지 않고 그대로 실천하게 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확신있게 말하였을 것입니다. 이 비천하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하나님의 종이 믿음에 있어서 매우 탁월한 본을 보인 바와 같이, 우리는 두려움 없이 진리를 말하여 마음이 정직한 모든 사람들이 유익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우리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어떤 사람에게 이야기할 만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여 여호와와 그분의 목적을 알리는 것을 꺼려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여호와께 대해 그리고 우리를 지도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해 온전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시 56:11.
20. 우리는 어떻게 ‘엘리사’를 본받을 수 있읍니까?
20 그리고 ‘엘리사’가 있읍니다. 성서는 기적을 행한 이 여호와의 종에 대해 많이 알려 주고 있읍니다. 그는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에까지도 여호와에 의해 사용되었읍니다. (열왕 하 4:32-37) 그러나 그는 자기가 높임을 받거나 부유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사람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목적에 대해 인식이 자라가도록 돕기를 원하였읍니다. 그의 관심은 자기의 이름을 내는 데 있지 않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는 데 있었읍니다. 우리도 ‘엘리사’를 본받아 기본적으로 여호와께 관심을 가지며, 그분에 대한 사랑을 첫째로 두고, 사람들이 그분을 불러 구원을 얻도록 도와야 합니다.—마태 22:37, 38; 로마 10:13.
21, 22. ‘나아만’이 자신을 낮추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였읍니까?
21 ‘나아만’은 ‘엘리사’를 만나기 전에 “용사”였지만,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는 것을 배웠읍니다.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며 하나님의 종들로부터 특별한 존경이나 관심을 받을 만한 중요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가 ‘요단’ 강에서 일곱번째 나오자 그의 피부가 완전히 깨끗해진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얼마나 즐거워하였겠읍니까! 그는 자신을 낮추어, 사환을 통하여 받은 ‘엘리사’의 권고를 따른 것을 실로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22 그러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와 같이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원수 나라에서 붙잡혀 온 작은 여종의 말을 들었을 뿐 아니라 자기 신들을 떠나야 하였읍니다. 그는 아마 그 신들의 미움을 받을 것까지도 생각하면서 원수 나라에 가서 낯선 하나님의 예언자에게 자기를 위해 도움을 달라고 간청하였읍니다. ‘나아만’이 겸손하게 되는 것은 문둥병을 고친 것보다 더욱 가치 있는 결과를 가져 왔읍니다. 그것은 무엇이었읍니까? 그것은 그로 하여금 여호와의 숭배자 곧 참 하나님의 승인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겸손으로 옷입은 데 대한 실로 훌륭한 보상이었읍니다. ‘나아만’과 같이 우리도 겸손으로 옷입는다면, 그리고 하나님께서 겸손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영적으로 커다란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다.—베드로 전 5:5.
23. ‘게하시’의 행위를 살펴보면 우리는 어떻게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까?
23 성서 이 장에 나온 인물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또 다른 사람은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인물입니다. ‘게하시’는 상당한 기간 ‘엘리사’와 함께 봉사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사용하는 것을 많이 본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엘리사’와 함께 봉사하는 얼마나 훌륭한 특권을 가진 사람이었읍니까! 그러나 그는 재물을 탐하게 되었읍니다. 그는 ‘나아만’이 바치는 모든 은과 옷을 자기의 주인이 거절하는 것을 보자 탐욕에 눈이 어두어졌읍니다. 욕심이 잉태하여 그로 죄를 짓게 하였읍니다. (야고보 1:14, 15) 그는 ‘나아만’이 자기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는 물질을 약간 얻어 내기 위하여 모의를 꾸미고 거짓말을 꾸며댔읍니다. 그는 심지어 자기 주인에게까지 거짓말을 하였읍니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엘리사’를 임명하신 여호와께 거짓말하는 것과 같았읍니다. 그 결과로 그는 문둥병에 걸렸으니 얼마나 무서운 재앙이었읍니까! 그의 탐욕은 그로 건강을 잃게 하였으며, ‘엘리사’와 함께 봉사하는 특권을 상실하게 하였읍니다. 탐욕적이고 자기를 우상화하는 이 해로운 행로의 본으로부터 우리는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봉사로부터 개인적 이득을 보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며, 반드시 피해야 할 행동임을 배우게 됩니다.—요한 12:4-6 비교.
오늘날을 위한 예언적 모형
24. ‘엘리사’와 ‘나아만’은 각각 누구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읍니까?
24 ‘엘리사’는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종이었읍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특정한 일을 하도록 여호와로부터 특별히 임명받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하게 될 144,000명의 남은 자들, 곧 그리스도의 신부의 지상에 있는 남은 자들의 상징 곧 예언적 모형으로 사용될 수 있읍니다. (계시 14:1-3) 전체 인류는 ‘나아만’과 매우 비슷한 입장에 있읍니다. 문둥병에 걸려 있지는 않으나 죄라고 하는, 죽음을 가져오는 재앙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그러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부의 성원으로 아직 지상에 잇는 남은 자들과 그들에게 연합한 자들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읍니다.—로마 5:12; 마태 24:9.
25. ‘나아만’과 같은 “큰 무리”는 어떤 도움을 받았읍니까?
25 그러나, ‘나아만’의 아내를 섬기던 어린 ‘이스라엘’ 소녀가 증거한 바와 같이, 오늘날 행해지는 왕국 증거를 통하여, 이러한 사람들 중 많은 수는 영적으로 말하여, 그들의 병든 상태를 치료받을 수 있는 올바른 길로 인도를 받고 있읍니다. 그들은 기름부음받은 ‘엘리사’ 반열과 접촉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영적으로 회복되기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얻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를 배웠읍니다. ‘나아만’의 경우에서와 같이 이 사람들의 경우에도, 믿음과 겸손이 요구되었읍니다. 그들은 격려를 받고, 순종함으로써 깨끗해져서 기쁘게도 하나님 앞에 가납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읍니다. 그들은 이제 “큰 무리”에 속하게 되어 의로운 새 질서에서, 깨끗해진 지구상에 영원히 살 것을 바라고 있읍니다. (계시 7:9) 이들 “큰 무리”는, 참 하나님 여호와의 증인들을 떠나서 다른 곳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영적 치료가, 예수의 가르침과 일치하게, 무료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마태 10:1, 8.
26.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여 개인적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어떻게 취급됩니까?
26 ‘엘리사’ 반열은 죄의 재앙을 벗어나 영적 회복을 얻도록 도움을 베풀 때에 “큰 무리”로부터 금품을 뜯어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엘리사’가 ‘나아만’으로부터 금전이나 물질이나 간에 선물을 완전히 거절한 바와 같이, 영적으로 회복되도록 개개인을 도와 준 데 대하여 보수를 받기를 거절합니다. 그들은 무료로 자기 시간을 바쳐,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도와 줍니다. 그리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회중과 연합한 어떤 사람이 “큰 무리”를 이용하여 물질적 이득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러한 사람들은 탐욕적이고 자신을 우상화하는 자로 폭로됩니다. 그러한 자들은, ‘엘리사’가 탐욕적인 ‘게하시’를 취급한 바와 같이 조직으로부터 제거됩니다. 이것은, “간음하는 자나 ··· 탐람하는 자나 ···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는 법칙에 일치합니다.—고린도 전 6:9, 10.
27, 28. 오늘날 사람들은 “큰 무리”의 일원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27 “큰 무리”의 구성원이 되어 하나님의 기름부음받은 종들과 연합하게 된 자들도 역시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야 합니다. 「공동 번역」, 베드로 전서 5:5엔 이렇게 표현되어 있읍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의 옷[앞치마, 현 영어 성서]을 입고 서로 섬기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총을 주십니다.” 앞치마는 섬기는 일, 다른 사람의 이익을 돌보는 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겸손의 앞치마를 입고 섬기’는 것은 겸허하고 겸손하고, 남을 섬기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관련이 있읍니다.
28 당신은 기꺼이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십니까? 당신은 구원을 위한 여호와의 길을 기꺼이 받아들입니까? 이 이십 세기에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겸손하고, 겸비한 사람들의 예를 볼 수 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조직입니다. 다음 기사를 계속 읽고 그들이 구원을 위한 여호와의 길을 어떻게 따랐는가를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437면 삽화]
‘아람’ 군대 장관 ‘나아만’은 겸손을 나타냈기 때문에 기적으로 문둥병의 고침을 받았다
[440면 삽화]
‘게하시’는 탐욕 때문에 여호와의 영의 작용과 ‘나아만’의 관대함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려고 하였다. 그것은 ‘게하시’로 하여금 그의 건강과 ‘엘리사’와 함께 봉사하는 특권을 잃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