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의 길을 버리는 일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스가랴 1:3.
1. 여호와께서는 지성적 피조물로부터 어떤 종류의 순종을 바라십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도 자기를 섬기도록 강요하신 일이 없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성적인 피조물들의 자진적인 순종, 자기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위해 행한 일들에 대한 감사에 근거한 순종을 바라십니다. (신명 30:11-16; 요한 1서 4:8-10; 5:2, 3) ‘모세’가 ‘모압’ 사막 평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명 30:19, 20.
2. 사람들이 자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복종할 때에 천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2 사람이 창조되기 오래 전부터 수많은 천사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즐거움을 맛보았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욥 38:4-7; 다니엘 7:10; 히브리 12:22) 그들의 감정은 사도 ‘요한’이 환상 중에 보았던 스물 네 장로들이 표현한 감정과 같습니다. “우리 주[여호와]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말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시 4:11) 오로지 하나님께 순종하는 길만이 올바른 길이며 영속적인 축복을 받을 길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에, 충실한 천사들은 인간이 독립의 길을 버리고 자진적으로 창조주께 복종하는 것을 볼 때에 기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15:10.
3.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불충실한 ‘이스라엘’이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내셨읍니까?
3 천사들의 즐거움은 그 문제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느낌과 완전히 합치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불순종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들의 악한 길을 버리라고 여러 차례 호소하셨읍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이사야 55:6, 7)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리.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에스겔 33: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말라기 3:7.
4. 불의한 행위를 버릴 수 있는 기회는 고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되었읍니까?
4 나쁜 행위를 버림으로써 하나님의 복수의 집행을 피할 수 있는 기회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읍니다.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리라].” (예레미야 18:7, 8) 마찬가지로 사도 ‘베드로’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여호와]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라.”—베드로 후 3:9.
독선적인 사람들의 태도
5. 사람들은 흔히 범죄를 회개한 사람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5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들은 독립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을 보고 기뻐하는 점에 있어서 여호와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을 본받지 않는 예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 예수의 전도 봉사 기간이나 그의 선구자인 침례자 ‘요한’ 시대에, ‘유대’교의 독선적인 지도자들 사이에는 자비롭지 않은 태도가 만연해 있었읍니다. 세금 징수원들이나 죄인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던 사람들 즉 창녀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죄를 회개하고 침례자 ‘요한’에게서 침례를 받았을 때에 종교 지도자들은 기뻐하지 않았으며, ‘요한’을 믿으려고 하지도 않았읍니다. (마태 21:32; 누가 3:12; 7:29, 30) 후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비천한 세금 징수원들과 죄인들에게 영적 도움을 주셨을 때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불평을 하였읍니다.—누가 5:27-31.
6.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견해를 어떻게 시정해 주셨읍니까?
6 한 때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읍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그들의 불평에 대한 대답으로 예수께서는 세 개의 비유를 말씀하셨읍니다. 비유들은 모두 잃었던 것을 되찾고 또 되찾은 것에 대해 기뻐하는 내용이었읍니다. (누가 15:1-10) 이들 중 마지막 비유는 세 주인공 즉 아버지와 두 아들을 중심으로 한 내용이었읍니다. 아버지는 여호와 하나님을 대표하였고, 맏아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의미하였고, 둘째 아들은 죄인들과 세금 징수원들을 상징하였읍니다. 죄인들과 세금 징수원들, ‘바리새’인들 및 서기관들은 모두 ‘유대’인으로서 형제들이었으며, 하나님과는 언약 관계에 있었읍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독선적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포함하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를 받아들임으로써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분으로 돌아와야 하였읍니다. (사도 2:38; 로마 3:9-12과 비교.) 그러므로 예수의 이 비유는 실제 상황을 나타낸 것이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보여준 것이었읍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누가 복음 15장 11절부터 32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을 읽어봅시다.
7. 예수의 비유 중의 둘째 아들은 어떻게 하였으며, 그 결과 어떤 처지를 당하였읍니까?
7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산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그가 저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 데 저가 돼지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8. (ㄱ) 둘째 아들은 정신을 차렸을 때에 어떤 결심을 하였읍니까? (ㄴ) 그의 아버지는 그를 어떻게 받아들였읍니까?
8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
9. 자기 동생을 환영하는 것을 보고 맏아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읍니까?
9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듣고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저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못된 길에 빠진 사람들의 상태
10.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떤 점에서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과 같습니까?
10 오늘날 상당 수의 사람들이 그 둘째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집을 나간 것과 같은 길을 갔읍니다.a 어떤 사람들은 벗들과 친척들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욕설과 박해를 받지 않으려고 참 숭배를 버렸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적 부도덕, 도둑질 및 술취하는 일 등 하나님께서 단죄하시는 바로 그런 일들을 하고 싶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길을 갔읍니다. (고린도 전 6:9, 10) 또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 쾌락을 추구하는 일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아가버린다고, 또는 세상에서 남의 앞에 서는 일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나머지 성서 연구를 중지해버렸읍니다. 기타 어떠한 이유들이 있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주저하는 것은, 자기들에겐 창조주를 충실히 섬기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들이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1, 12. 못된 길에 빠진 사람들은 어떤 상태를 당합니까?
11 그러한 사람들은 모두 영적으로 몹시 굶주려 있으며, 먼 나라에 가 있는 것과 같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읍니다.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사단’의 세상에 속해 있으며, ‘사단’에게 예속되어 있읍니다. (요한 1서 5:19) 예수의 지상 봉사 기간에 돼지(‘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불결한 동물) 치는 일이 ‘유대’인들에게 보람없는 일이었듯이, 창조주의 봉사에 비하면 그들이 ‘사단’과 그의 세상에 예속되는 것은 보람없는 일입니다. 간음, 음행, 동성애, 도둑질 등등 타락한 생활을 택한 사람들은 영적으로 파탄되고 타락한 상태에 있읍니다.
12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합을 중지한 사람들 중에 타락한 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많은 것을 상실하였읍니다. 그들에게는 영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생활이 실의의 연속인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 앞서려는 욕망 때문에 사업을 부정직하게 운영한 예도 드물지 않습니다. (잠언 28:20과 비교) 그들은 흔히 세상에서 좋은 지위를 유지하려고 시간과 정력을 많이 바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은 필요한 인도와 징계를 받지 못하는 예도 많습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결국 자녀들이 자기들 멋대로 행하고 생활을 망치기 때문에 고통을 당하였읍니다. 참 숭배를 고려치 않고 물질적인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들의 경험은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말에 잘 표현되어 있읍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 전 6:9, 10.
여호와께로 돌아옴
13. 방탕한 아들의 입장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13 그러나 이 방탕한 아들의 입장에 처해있는 사람들은 이 비참한 입장에 머물러 있을 필요가 없읍니다. 이 방탕한 아들과 같이 그들은 자기 아버지의 집으로 그리고 그 봉사로 되돌아 가도록 노력을 기울일 수 있읍니다. 이 일 가운데는, 진정한 회개, 자신의 독립적인 행로를 버리는 일,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 등이 포함됩니다.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용서가 아니라 불리한 심판을 당하였던 자들에 대한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이 여기에 합치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우리[가] 범죄[하였고] 패역[하였도다].”—애가 3:40-42.
14. 여호와께 돌아가는 점에 관하여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입니까?
14 여호와의 봉사를 중단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되돌아오는 일이 대단히 어렵게 보일 것입니다. 수치스럽기도 하고 자기들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여호와를 충실히 섬긴 사람들을 만나기를 꺼려합니다. 떨어져나간 사람들은 아마 오랫 동안 여호와께 기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 자신이 행한 일을 볼 때 자기들은 생명을 얻기에 합당치 않고 도무지 하나님의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두려움은 합당한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의 비유로 볼 때에, 그리고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범죄를 용서해 주신 여러 가지 역사적 예들을 볼 때에, 여호와의 자비가 온 마음으로 그분께 돌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미친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15. ‘므낫세’의 예는 여호와께서 널리 용서해 주신다는 점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15 그러한 예로 ‘유다’ 왕 ‘므낫세’가 있읍니다. 그의 죄악상에 대한 성경 기록은 이러합니다.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단들을 쌓고 또 그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격발하였으며, ‘므낫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유다’로 범하게 한 그 죄 외에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가에서 저 가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열왕 하 21:5, 6, 16) 마침내 ‘므낫세’는 자기가 ‘바벨론’에 사로잡혀 오게 되었음을 알게 되자 회개하여 여호와께 계속 기도하였읍니다. ‘므낫세’의 이전 행실이 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는 “그 간구를 들으시사 저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거하게 하시”었읍니다. (역대 하 33:11-13) ‘므낫세’처럼 악하게 행동한 사람은 거의 없읍니다. 그러나 회개하였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의 자비를 받았읍니다.
16.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심각한 악행을 저질렀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십니까?
16 여러 세기 후에, 희랍 ‘고린도’ 회중에 속한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어느 그리스도인은 자기 아버지의 아내와 성적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읍니다. 근친 간음을 행한 이 사람은 전체 회중의 복지에 위험이 되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사람을 추방하라고 지시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5:1, 7-13) 그러나 이 사람이 회중에서 영원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읍니다. 그 사람이 회개한 후에 그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었읍니다. “그 사람은 이미 여러분 대다수에 의하여 상당한 벌을 받았으니 이제는 여러분도 그를 용서하고 위로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가 너무 심한 슬픔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보이기를 권합니다.” (고린도 후 2:6-8, 새번역) 그릇된 행동을 한 후 회개한 그 사람은 하늘에서 생명을 얻을 희망을 가진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 신분을 계속 유지하였읍니다.
17. 누구든지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과 같은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왜 부당합니까?
17 ‘므낫세’ 왕의 예와 ‘고린도’ 회중에 속했었던 익명의 그리스도인의 예로 볼 때에 악행을 저질렀다하여 여호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신분을 다시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자동적으로 말소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읍니다. 심각한 죄를 지은 사람도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으며, 그가 성실하게 회개한다면 용서를 비는 그의 기도는 응답될 것입니다. (이사야 1:15-19과 비교) 여호와께서 그처럼 용서를 하신다면, 그분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예수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과 같은 자비없는 태도를 나타내려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를 악용하지 말라
18, 19. 하나님의 자비가 으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왜 위험합니까?
18 물론, 이 말은 하나님의 자비를 으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계속 멋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악에 깊숙이 빠져 회개의 가능성이 없었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읍니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찌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내치라.” (예레미야 15:1) 회개치 않는 나라에 대해 자비를 베풀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심판을 집행하실 때에 ‘바벨론’ 사람들로 하여금 ‘유다’와 ‘예루살렘’을 황폐시키도록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애가 1:3-5) 이 재난 동안에는 하나님께서도 도와 달라는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으셨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언자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던 것입니다.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 우리를 군축하시며 살륙하사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셨나이다. 주께서 구름으로 스스로 가리우사 기도로 상달치 못하게 하[셨나이다].”—애가 3:43, 44.
19 여호와 하나님께 스스로 불충실함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대단히 위험한 처지에 있읍니다. 죽임을 당할 처지입니다. 만일 그가 회개치 않는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의 불리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글을 받았읍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 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찐저.”—히브리 10:26-31.
20. 왜 아무도 죄의 길에 박혀버릴 이유가 없읍니까?
20 그러나 누구든지 회개할 가능성이 없을만큼 나쁜 길에 박혀 있을 이유는 없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강제로 자기를 섬기도록 하시지 않는 것과 같이, 어느 누구도 그의 대적 ‘사단’ 마귀의 편에 머물러 있도록 그에게 강제를 쓰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는 개개인이 예수의 대속 희생을 기초로 하여 용서를 간구할 수 있게 해 놓으셨읍니다. 누구든지 이 마련을 이용하지 않고, 창조주의 표준이 아니라 자기의 표준에 따라 계속 행하는 자들은 고의적인 행악자입니다. 그들은 자기 행동으로 예수의 희생의 은혜를 자기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배척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범죄는 그러한 것을 반대하는 것이므로 속죄의 가치를 지닌 희생은 더 이상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의 범죄의 대가 곧 하나님의 원수의 집행에 있어서 완전한 멸망을 받지 않을 수 없읍니다.
21.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들에게 어떤 축복들이 임하게 됩니까?
21 그러나 그때가 오기까지는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버린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를 자기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되돌아올 것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따뜻하게 호소하십니다. 그 초대에 응하게 되면 영속적인 축복들을 받게 됩니다. 즉 세상과 세상 신인 ‘사단’ 마귀로부터의 해방, 영적 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과의 즐거운 교제, 행복, 만족,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봉사 가운데서 즐기는 목적있는 생활 등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면, 지상에서는, 여호와의 종들이 사랑을 보일 것이며, 하늘에서는, 천사들이 즐거워할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못된 길에 빠졌다면, 주저하지 말고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청하였던 초대 곧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신 여호와의 초대에 응하십시오.—말라기 3:7.
[각주]
a 여기서는 원칙만 적용시킨 것이다. 예수의 비유의 예언적 의미에 대해서는 「파수대」 1965년 11월 1일 410면부터 415면까지와 1965년 11월 15일호 425면부터 437면까지를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