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고를 청종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1. 여호와께서 인류와 관계하신 일을 보면 어떻게 인간 생명을 높이 평가하신 점이 잘 나타나 있읍니까?
여호와께서 인류와 관계하신 일을 보면 언제나 인간 생명을 높이 평가하심이 나타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급하게 분리한 심판을 내리시지 않고 자비롭게도 사람들과 나라들이 행동을 변경할 기회를 주셨읍니다. (예레미야 18:6-10) 특히 이 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다루신 점에 잘 나타나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 차례 예언자들을 일으키시어 불충실한 그 나라가 그의 나쁜 길을 버리도록 권고하셨읍니다.—이사야 55:6, 7; 에스겔 33:10, 11.
2, 3. ‘에스겔’은 파숫군으로서 어떻게 자기를 피흘린 죄를 짓게 할 수 있었으며, 그러나 왜 그래도 경고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죽음은 정당할 것입니까?
2 그러한 예언자로 ‘에스겔’이 있읍니다. 그는 기원전 613년에 ‘바벨론’에서 예언을 시작하였읍니다. ‘에스겔’의 입장은 위험이 닥칠 때에 백성들에게 경고할 책임이 있는 파숫군의 입장과 같았읍니다. 파숫군들이 경고를 하지 않으면 그 책임으로 자신의 생명을 상실하였읍니다. 설사 ‘에스겔’이 파숫군으로서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불법적인 행동은 죽음을 당하여 마땅하였으며, 그러므로 그들의 죽음이 부당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에스겔’에게는 경고를 하지 않은 죄가 있을 것입니다. (에스겔 33:1-6) 이 점을 ‘에스겔’에게 납득시키기 위하여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3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에스겔 33:7-9.
4, 5. 하나님의 심판 때에 생명을 보전하는 것은 무엇에 달려 있읍니까?
4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나오는 하나님의 경고에 응하는 사람들은 자기 과거의 잘못 때문에 형벌을 받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읍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에스겔 33:11) 물론 의로운 사람들이 자기의 충실한 길을 떠난다면 그들은 불리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죽느냐 계속 사느냐는 심판 집행시 그 사람의 입장에 달려 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5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찌라. 그의 본래 범한 모든 죄가 기억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정녕 살리라. 이는 법과 의를 행하였음이니라.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의에서 떠나 죄악을 지으면 그가 그 가운데서 죽을 것이오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법과 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에스겔 33:14-16, 18, 19.
6. ‘에스겔’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호와의 자비로운 배려에 대해 무엇이라고 주장하였읍니까?
6 여호와 하나님께서 충분히 경고를 주도록 하시는 것은 실로 자비로운 배려입니다. 그러나 ‘에스겔’ 시대에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감사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있었읍니다. 그들은 “주[여호와]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사고 방식과 길을 공평하게 조정해야 할 자들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읍니다.—에스겔 33:17, 20.
7. 여호와의 길에 따라 행하기를 거절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왜 ‘에스겔’에게 책임이 없었읍니까?
7 ‘에스겔’을 통한 하나님의 경고를 청종치 않고 하나님의 길이 공평치 않다고 주장한 자들은 재난을 자초하였읍니다. 18개월 동안의 강렬한 포위 공격 끝에 반역적인 ‘예루살렘’ 도시가 멸망되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였읍니다. 이에 대해 ‘에스겔’에게는 책임이 없었읍니다. 그는 재난에 직면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피는 그들 자신의 머리에 있었읍니다.
8. ‘에스겔’은 충실하였기 때문에 무엇을 당하지 않았으며, 무슨 확증을 얻었읍니까?
8 ‘에스겔’은 파숫군으로서 충실하게 행하였기 때문에 불리한 심판을 받지 않았읍니다. 그는 계속 생명을 유지하였으며, ‘예루살렘’에 관한 예언적 경고가 정확하였다는 확증을 얻었읍니다. 그는 이렇게 보고하였읍니다.
9, 및 각주. ‘예루살렘’ 멸망의 목격자가 언제 ‘에스겔’이 예언한 내용의 정확성을 확증하였읍니까?
9 “우리가 사로잡힌지 십 이년a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느니라.]”—에스겔 33:21.
10. 여호와께서는 목격자의 보고에 대비하여 ‘에스겔’을 어떻게 준비시키셨읍니까?
10 일반적인 ‘유대’인들 곧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상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미리 ‘에스겔’을 그 일에 대비시키셨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도망자가 거의 당도하여 보고할 것을 알고 계셨읍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 사람이 도착하기 전 저녁에 ‘예루살렘’이 이미 멸망되고 ‘유다’ 땅에 살아 남은 사람들이 약간 있다고 하는 견지에서 ‘에스겔’에게 지시하셨읍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알려줍니다.
11, 및 각주. (ㄱ) ‘에스겔’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목격자가 도착하기 전에 말없이 잠잠하였읍니까? (ㄴ) ‘유다’ 땅의 생존자들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으며,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였읍니까?
11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날 저녁에[‘유대’인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시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b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피 있는 고기를 먹으며 너희 우상들에게 눈을 들며 피를 흘리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너희가 칼을 믿어 가증한 일을 행하며 각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니 그 땅이 너희의 기업이 될까보냐? 하[라.]”—에스겔 33:22-26.
12. ‘유다’ 땅의 생존자들은 왜 자기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 땅을 소유할 것이었읍니까?
12 ‘예루살렘’이 당한 심판은 실로 합당하였읍니다. 전반적인 백성들이 경고를 청종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유다’ 땅에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들이 받은 엄한 징계를 인정하고 행동을 변경시키는 일이 없었읍니다. 그들은 지금도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피를 빼지 않은 고기를 먹었으며, 지금도 가증한 우상을 가지고 거짓 숭배를 계속 하였으며, 지금도 가증한 간음으로 이웃 사람들의 아내를 범하였읍니다. 그들이 그들의 조상인 족장 ‘아브라함’—여호와로부터 그 땅을 약속 받은 자—에 비해 수가 많다는 것이 여호와께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읍니다. (창세 12:1-7) 그들이 자기의 악행을 회개하고 돌아서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 땅을 소유할 자격이 없었읍니다. (예레미야 42:1-44:25) 여호와께서는 단순한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였읍니다.
13, 14. 여호와께서는 ‘유다’ 땅과 거기에 살아남은 사람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선언하셨읍니까?
13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그 땅에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땅은 사람이나 가축이 전연 없이 완전히 황폐될 것입니다. 그곳에는 귀신이 나오기 때문에 두려워서 거기를 지나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땅은 70년이란 기간을 황폐한 채로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지키지 않은 모든 안식년을 보충하는 안식의 기간을 누릴 것입니다. (역대 하 36:17-23; 또한 다니엘 9:1, 2; 예레미야 9:11; 26:9; 32:43; 33:10-12; 34:22 비교.)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4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황무지에 있는 자는 칼에 엎드러뜨리고 들에 있는 자는 들짐승에게 붙여 먹게 하고 산성과 굴에 있는 자는 온역에 죽게 하리라. 내가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고 그 권능의 교만을 그치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산들이 황무하여 지나갈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그 땅으로 황무지와 놀라움이 되게 하면 그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에스겔 33:27-29.
15, 16. ‘에스겔’의 동료 포로들은 그의 예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15 경고를 주도록 하신 여호와의 크신 사랑과 자비를 감사하지 않은 자들은 그들 살아남은 자들 만이 아니었읍니다. 사로 잡혀온 ‘에스겔’의 동료들도 그의 예언을 심중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읍니다. 그들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 대해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16 “네 민족이 담 곁에서와 집 문에서 너를 의논하며 각각 그 형제로 더불어 말하여 이르기를 자, 가서 여호와께로부터 무슨 말씀이 나오는가 들어보자 하고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그들이 너를 음악을 잘하며 고운 음성으로 사랑의 노래를 하는 자 같이 여겼나니 네 말을 듣고도 준행치 아니하거니와 그 말이 응하리니 응할 때에는 그들이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리라.”—에스겔 33:30-33.
17. ‘예루살렘’이 멸망되었다는 소식은 믿지 않았던 포로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17 그 ‘유대’인 포로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이 멸망되었음을 확증하는 소식이 들렸을 때에 크게 놀랐읍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무시무시한 충격에 대해 전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읍니다. 그들은 또한 ‘에스겔’이 참으로 여호와의 참 예언자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마음깊이 새겨야 할 교훈
18, 19. 어떤 면에서 우리 시대는 ‘에스겔’ 시대와 유사합니까?
18 오늘날 우리는 ‘에스겔’ 시대와 대단히 유사한 시대에 살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 교회의 교인들은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고대의 불충실한 ‘이스라엘’과 같이 행동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공언하는 사람들 간에서 디모데 후서 3:1-5에 사도 ‘바울’이 묘사한 상태를 그대로 볼 수 있읍니다. 그 내용은 이러합니다.
19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라.]”
20. 오늘날 누가 ‘에스겔’과 같은 일을 하고 있읍니까?
20 당신은 이러한 상태를 오늘날 보고 있읍니까? 예언된 상태가 현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을 지적해 주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심중한 위험에 처하였음을 나타내 주고 있읍니다. 이 기간은 경건치 못한 현 제도의 종말을 가져올 “큰 환난”으로 그 절정에 이를 것이 예언되어 있읍니다. (마태 24:20-22; 계시 7:1-3, 14) 고대의 ‘에스겔’이 경고를 할 파숫군으로 일으킴을 받은 바와 같이 오늘날도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리스도교국과 나머지 피흘린 죄를 지은 이 사물의 제도가 당할 재난에 관해 경고를 발하고 있읍니다. 당신은 그 경고에 어떻게 응하고 있읍니까? 당신은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적 습관과 그 조직으로부터 분리해 나왔읍니까? 당신은 불의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종말을 당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살아남게 하실 수 있는 그러한 방법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합니까?
21. 왜 그리스도교국은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까?
21 변치않는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충실한 ‘예루살렘’을 남겨두지 않으신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국과 거기에 속한 사람들도 남겨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땅처럼 이 낡은 세상적 사물의 제도에서 그리스도교국이 점유한 장소는 완전히 황폐되고 그 안에 아무런 종교 제도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적 사물의 제도의 세속적 요소들은 그리스도교국과 기타 거짓 종교 제도가 없어지고 공백 상태가 되는 것을 볼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전세계적으로 오랫 동안 선포하였기 때문에 그 세속적인 요소들은 “그들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고 여러 차례 언급된 바와 같이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22.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에스겔’의 믿지 않던 동료 포로들과 같이 행동하고 있읍니까?
22 사실이 그러니만큼 당신은 ‘에스겔’의 동료 포로들과 같은 사람들 가운데 끼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원한 담 그늘 아래서, 자기 집 문간에서 또는 다른 곳에서 사람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집집을 방문하는 그들의 활동의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교국에 연합되어 있는 사람들 까지도, 이들 증인들에 대해 칭찬의 말을 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여호와의 증인들의 거대한 공개 집회에 나오기도 하며, 자기들과 함께 가정 성서 연구를 마련하기도 하고, 자기 이웃이나 친척을 초대하여 같이 연구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소식의 말투나 그 소식의 솔직함을 좋아하고 그것을 경청합니다.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 결정을 하지 않으며, 여호와에 대해 그분의 헌신한 종으로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성경에 근거한 소식을 듣기만 좋아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철저한 비종교인 처럼 보이지 않고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는 것 뿐입니다.
23. 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을 하나님의 참된 대변자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23 그들은 아마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거짓 예언자들”이라는 그리스도교국의 부르짖음을 싫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들이 주권자인 주 여호와의 참된 대변자임을 온전히 확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그들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그들은 이기적인 욕망을 중지해야 하고 부당한 이득을 추구하는 일을 중지해야 할것입니다.
24, 25. 다가 오는 그리스도교국의 멸망을 생각할 때에, 왜 우유부단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합니까?
24 우리는 이러한 우유부단하고 무반응한 자들과 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너무 늦기 전에 지금,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의 확실한 예언자 집단이 있음을 인정하고, 성서의 소식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2:13)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이 선포한 내용이 이루어질 때까지 우유부단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한 선지자가 자기 가운데 있었던 줄을 알” 것입니다. (에스겔 33:33) 그러나 그러한 뒤늦은 인식은 그들에게 구원을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마음과 행동이 변경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25 여호와께서 우리 세대 내에 참된 “예언자”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일으키셨음을 끝까지 의심하고 망설인다고 하여 무슨 유익이 있읍니까? 신속히 다가 오고 있는 “큰 환난” 동안에 그러한 행동은 아무에게도 하나님의 은총과 보호를 주지 못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행로가 지혜롭고 믿음이 있는 것이 되려면, 성서를 손에 들고 여호와의 참된 파숫군의 경고를 청종하고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의 예언적 파숫군이 그리스도교국이 멸망을 당한다는 보고를 받을 때에 우리는 충실한 파숫군과 함께 생명을 보존할 것입니다.
[각주]
a ‘시리아’교본 외에 여덟 개의 ‘히브리’어 사본과 몇 가지 희랍어 「70인역」 사본에는 “십 이년”이 아니고 “십 일년”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도망한 자가 기원전 607년 12월 후반기(‘티벳’월 5일), 즉 ‘예루살렘’이 ‘바벨론’ 사람들의 손에 함락된지 6개월 후에 도착하였음을 의미한다. (열왕 하 25:2-4) 만일 달은 봄부터 봄까지 계산하는 달력을 기준으로 하고, 해는 가을부터 가을까지 계산하는 달력을 기준하였다면, “십 이년” ‘티벳’월 5일은 역시 기원전 607년 12월 후반부가 될 것이다.
b ‘에스겔’이 잠잠한 것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었다. ‘에스겔’은 멸망될 ‘예루살렘’에 대해 예언하는 면에 있어서만 말을 안했던 것이다. ‘에스겔’이 잠잠한 것은 ‘에스겔’이 영감에 의해 ‘예루살렘’의 포위 공격이 시작되었음을 통고 받았을 때에 시작하였으며, 인간 목격자에 의해 그 도시의 멸망이 확인되었을 때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