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을 강화함
“나로서는, 나의 성실함으로 걷겠나이다.”—시 26:11, 신세.
1. “성실”이란 단어에 내포된 몇 가지 사상은 어떤 것들입니까?
“나는 나 자신의 성실함으로 걸어왔나이다”라고 고대 ‘이스라엘’ 나라의 왕 ‘다윗’은 말하였읍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인생 행로에 대하여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읍니까? 당신의 행로도 도덕적으로 건전하고, 정직하고, 퇴폐적인 행동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성실”이란 단어 가운데는 그러한 사상이 내포되어 있읍니다. ‘다윗’은 성실에 대해 말하였을 때에 틀림없이 그러한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우리도 성실에 대하여 생각할 때면 그러한 성품들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야 할 것입니다.
2. (ㄱ) ‘다윗’이 경건한 성품에 관하여 말하였음을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ㄴ) 우리는 양심적으로 여호와께 무엇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합니까?
2 ‘다윗’이 말한 이 성실은 하나의 경건한 성품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나 자신의 성실함으로 걸어왔나이다”라고 말하기 전에 그는 “오 여호와여, 나를 심판하소서” 하고 서두를 꺼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한 점에 관심을 가졌읍니다. 당신도 그러합니까? 당신은 양심적으로 여호와께 당신을 심판하시라고, 검사해 보시라고, 시험해 보시라고 요청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이 당신을 성실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실 것이라는 자신을 가지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읍니까? 그러한 입장이라면 실로 훌륭합니다.—시 26:1, 2, 신세.
성실의 필요성
3. (ㄱ) 이 성실이라는 성품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성실 문제에 관한 현 세상 상태를 묘사하십시오. (ㄷ)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기를 원하시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3 그러면 왜 이 성품이 필요합니까? 여호와의 승인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게 아주 간단합니다. 사도 ‘바울’이 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마지막 날의 특징을 이룰 것이라고 말한 성품들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라].” (디모데 후 3:1-5) 현 세상에는 성실에 반대되는 성품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도덕적으로 불건전하며, 부정직하며, 부패한 성품들을 열거한 다음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인 성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피하라고 말하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성실을 유지하고 자기에게 전적으로 충성하기를 원하십니다.
4. (ㄱ) 세속 직장에서 그리고 (ㄴ) 가정에서 성실성이 결핍한 예를 드십시오.
4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나쁜 성품이 가득한 세상에 살고 있읍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품을 항상 볼 수 있읍니다. 우리는 고용인들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흔히 듣습니다. “나는 아침에 늦잠을 잤는데 말야, 과장에게는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시간이 늦었다고 말했지” 하고 한 사람이 말합니다. 듣고 있던 사람이 “그렇게 말하면 거짓말이 아냐? 왜 사실 그대로 말하지 그랬어?” 하고 대답합니다. 늦잠 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안돼, 그렇게 말하면 안돼. 만일 과장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당장 파면당할거야. 피곤해서 오늘 아침 자명종이 울리는 것을 듣고도 좀 더 자기로 했지. 하지만 과장이 그런 것까지 알 필요는 없쟎아.” 이 사람은 성실한 사람입니까? 그는 정직합니까? 그가 일어나야 할 시간에 일어나서 제시간에 직장에 출근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겠읍니까? 그랬더라면 직업을 잃을가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지각했다고 변명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잠언 30:8; 14:5) 만일 부모가 자기에게 놀도록 허락하지 않고 정원에서 일하라고 한다면 집을 나가겠다고 위협하는 어느 십대 소년은 어떠합니까? 그것은 부당 취득, 부정직한 행동이 아닙니까? 그리고 자기 아들이 그의 위협적인 말을 행동으로 옮길까 두려워서 그에게 값진 선물을 사주겠다고 약속하는 부모는 어떠합니까? 그 부모들이 그 아들의 소원에 말려들어가는 것이, 그의 뜻대로 하게 하는 것이, 정직성, 성실성을 고취시키는 것이 됩니까? 그러한 이유로 선물을 준다면, 부모들이 사실상 그의 반역적인 행동에 대하여 보상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그에게 뇌물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 (잠언 17:23; 미가 3:11) 세속적인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성실성을 전혀 또는 거의 볼 수 없읍니다.
5. (ㄱ) 이 악한 제도의 어떤 분야에서 성실성이 결핍해 있읍니까? (ㄴ) 왜 성실을 지키는 문제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읍니까?
5 심지어 이 세상 정치 지도자들이나 정부까지도 거짓말을 하고 사기적인 행위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습니다. 상업계에서는, 사기적인 내용, 그릇된 내용, 심지어 사실이 아닌 것을 선전한다는 주장이 있읍니다. 그리고 설교할 때는 가끔 성서 내용을 말하고도 성서에 반대되는 생활을 하며, “하나님은 죽었다”, 예수의 처녀 탄생은 신화이다, 또는 「창세기」의 창조설은 동화이다 등등의 철학을 들고 나오는 종교지도자도 있읍니다. 이 악한 제도하에서는 지도자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성실성의 결핍 상태가 보편적입니다. (요한 8:44; 요한 1서 5:19)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악한 제도에 속하지는 않지만, 여호와께서 이 제도를 종말지으실 때까지는 그 안에 계속 살지 않으면 안됩니다. (요한 17:15, 16) 그러므로 성실을 지킨다는 이 문제에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성실성이 약화되는가, 강화되는가?
6. 세상 청소년들의 어떠한 태도가 어떤 어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염되었읍니까? 예를 드십시오.
6 어느 정도까지는 그리스도인 행로를 따르다가 ‘사단’의 제도에 말려들어가 자기의 성실을 약화시키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서글픈 일입니다. 반항적인 청소년들을 전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읍니다. 과거에는 청소년 범죄가 전혀 없던 지역에서도 볼 수 있읍니다. 그리고 이 반항적인 태도는 성서 진리를 알면서도 그러한 아이들과 교제하는 청소년들에게도 전염됩니다. 많은 세상 청소년들은 집을 뛰쳐나가는 것을 문제 해결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청소년들이 그러한 행동을 따르는 것이 현명합니까? 집을 뛰쳐나가는 것이 부모의 보호라는 여호와의 마련에 대해 감사를 나타내는 행동입니까? (에베소 6:1-3) 그것은 성실을 지키려는 열망을 나타내는 행동입니까? 어느 어린 소녀의 예가 있읍니다. 이제 갓 10대에 들어선 나이였는데, 그가 학과 시간을 가끔 빠진 사실이 부모에게 알려지자 집을 뛰쳐나갔읍니다. 그 소녀는 학교에서 당하는 문제들을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며, 그러기 때문에 집을 나가버렸읍니다. 어둠컴컴한 때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의 좋지 못한 거리에서 다른 사람에게 발견되었읍니다. 다행히도, 그 소녀를 발견하고 진상을 알아낸 사람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어서 그 소녀는 해를 당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 소녀는 부도덕한 사람의 유혹을 당할 수도 있었읍니다. 만일 그가 어떤 해를 당하였다 하더라도 여호와 앞에 핑계가 있었겠읍니까? 그 소녀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모범적 기도 곧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한 말씀과 일치하게 행동하였읍니까?—마태 6:13, 새번역.
7. (ㄱ) 어느 소년은 어떤 그릇된 행동을 따랐으며,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읍니까? (ㄴ) 그는 무슨 성경 원칙을 기억하지 않았읍니까?
7 또한 자기 반 친구의 부모가 집에 없기 때문에 그 친구의 집에서 ‘파티’를 갖게 되니 그날 오후 학교에 가지 말고 ‘파티’에 가자는 초대를 받은 어느 소년은 어떠합니까? 그 소년이 처음에는 그 제의에 반대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초대를 단호히 거절하여 성실을 고수하지 않고 거기서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물었읍니다. 그는 약해져서 ‘파티’에 가기로 결정하였읍니다. 이 소년이 당한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가 될 것입니다. ‘파티’가 진행되는 도중 경찰이 그 집을 수색하여 감추어둔 ‘마리화나’를 적발하였읍니다. 거기에 있던 청소년들이 다 검거되었으며, 이제는 그 소년의 이름이 경찰서 명단에 올라 있읍니다. 그는 그 집에 ‘마리화나’가 있었다는 것을 몰랐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잠언 13:20의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는 현명한 충고를 따르는 일에 소홀하였읍니다. 그는 이제 나쁜 기록을 가지게 되었으니 성실을 유지하려면 한층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자기의 이웃에서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그는 경찰의 의심을 받게 됩니다.
8. 어린 나이에 ‘데이트’를 말라는 충고를 듣지 않으면 무슨 결과에 이를 수 있읍니까?
8 그리고 현 시대 많은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데이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어린 십대 청소년들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의 조직의 충고, 그리스도인 회중에 임명된 종들의 충고, 심지어 자기 부모들의 충고까지도 무시하고, 어떤 청소년들은 어린 나이에 이성과 어울려 ‘로맨틱’한 문제에 말려들어갑니다. 육체적 욕망이 계속 자랍니다. 그들이 결혼할 나이가 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속에서 솟아나는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갈망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부도덕한 희롱을 시작하고 음행을 저지르기까지 합니다. 그들은 잠언 1:5에서 “지혜로운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라고 말한 대로 충고의 말을 잘 듣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지혜롭지 못함을 나타냅니다. 또한 그들은 같은 장 8절에 있는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는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이 됩니다. 그들은 자기 부모의 말을 듣지 않으며, 그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여호와의 아내와 같은 조직인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에 성실을 지키지 못하며, 하나님의 말씀에서 규정한 도덕적 한계 내에 머물지 못합니다.
9. (ㄱ) 사치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돈을 꾸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ㄴ) 그러한 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돈을 꾸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9 성인들도 때로는 성실한 행로를 따르는 일에 실패하는 수가 있읍니다. 로마서 13:8은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나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어느 형제가 이미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또 사고 싶은 물건을 사기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꾼 형제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그가 어떤 사치품을 사기 위하여 또 빚을 진다면 지혜로운 행동입니까? 그가 그러한 물건을 꼭 가져야만 합니까? 그가 ‘스테레오’나, ‘텔레비’ 또는 ‘피아노’를 사기 위하여 빚을 지는 것이 꼭 필요한 일입니까? 그러한 재정적 부담을 진다면, 그는 과연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한다고 한 성경적 사상을 고려하는 것입니까? (시 37:21) 그와 관련된 문제로, 그러한 사람에게 불필요한 사치품을 사도록 돈을 빌려 준다면 그에게 성실을 지키도록 도움을 주는 것입니까? 잠언 22:7에서는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빚을 져서 어떤 사람의 종이 되고자 합니까? 또는 돈을 빌려 주어 다른 사람이 우리의 종이 되는 것을 원합니까? 그러한 입장을 피하고 한 주인 곧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더 좋지 않습니까—누가 16:13.
10. (ㄱ) 여호와께서 지상에서 자기의 사업을 돌보도록 사용하시는 자들에 대해 그릇된 태도를 가지면 어떻게 성실성이 약화될 수 있읍니까? (ㄴ)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종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10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들을 비평함으로써 성실을 유지하는 일을 실패할 수 있읍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중을 감독하는 일을 맡은 사람들에 대해 인간적인 불완전한 점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때때로 연로자들이 지혜롭고 실용적이고 성서에 근거한 충고를 줄 때에, 상대방은 그 사람이 여러 해 전에 저지른 부족한 행동이나 실수를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속으로, 때로는 말로도 그러한 충고에 반항합니다. 현재는 그 연로자가 과거의 행동을 변경시켰고 새로운 성품을 입었는데도 그러한 태도를 나타내는 사람이 있읍니다. 히브리 13:17에는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나타내야 할 합당한 태도가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읍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11. (ㄱ) 자신의 성실성을 약화시킨 사람들에 관하여 무슨 질문을 할 만합니까? (ㄴ) 지금까지 우리는 성실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떠한 점들을 배웠읍니까?
11 위에서 말한 사람이 나타낸 그러한 태도를 가진다면 우리가 성실성을 강화한다고 말할 수 있겠읍니까? 아닙니다. 그와 정 반대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성실성을 약화시키고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의 성실성마저도 약화시킵니다. 그러한 사람이 박해를 당하거나 심한 반대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되겠읍니까? 굳세게 설 수 있겠읍니까? 그들이 그리스도인 형제들과 밀접히 하여 하나님께 충성을 지키겠읍니까? 우리는 어떠합니까? 그러한 사람들의 본을 고려하고 나서는 교훈을 받을 것입니까? 청소년들 여러분, 여러분은 어린 사람을 부모의 지시 아래 살도록 하신 하나님의 마련에 순응할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합니까? 나쁜 친구들을 멀리 할 필요성이나 학과 시간을 빼먹는 일을 피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까? 여호와의 말씀 가운데 있는 도덕에 관한 현명한 충고를 따르는 일의 중요성을 인식합니까? 그리고 어른들도, 우리는 불필요하게 빚을 지지 않도록 하는 것, 결국에 가서 여호와에 의해 “악인”으로 분류될 만큼 재정적 부담을 과도하게 지지 않는 것이 더 실제적임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형제들을 비평하지 않는 것, 여호와의 조직적 마련을 인식하는 것이 자신의 복지의 보호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합니까? 사실이지, 우리는 성실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강화하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잠언 11:3) 그러나 그 일을 어떻게 합니까?
자신을 강화하는 방법
12. 성실성에 관해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구해야 합니까?
12 이 기사의 서두에 언급된 바와 같이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자신의 성실성에 대하여 여호와의 심판을 구하였읍니다. 우리도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우리의 성실성을 강화하는 방법의 문제에 있어서 여호와의 견해를 터득하기 위하여 시편 26편을 검토하는 것이 좋습니다. 거기서 ‘다윗’은 여호와께 기도로 이 문제를 이야기하였읍니다.
13. 개인 연구는 성실성과 어떤 관계가 있읍니까?
13 3절에서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였나이다]” 하고 하나님께 말하였읍니다. 우리도 이렇게 하려면 여호와와 하나님의 진리를 잘 알 필요가 있읍니다. 그것은 우리가 성서를 공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강화하는 한가지 방법은 개인 연구입니다. 매일의 성서 읽기는 이 점에 있어서 좋은 습관입니다. 그리고 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조직에서 공급해 준 서적이 있어서 그러한 것들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읽을 것이 너무나 많아서 다 읽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 시간이 없기 때문에 협회의 출판물을 다 읽지 못합니까? 그렇지 않으면, 신문, 세상 잡지 및 소설을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기 때문에 그러합니까? 그러한 서적들은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의 길을 가도록 우리를 격려해 줍니까? 지금은 심지어 신문 잡지에 실린 선전문만도 부도덕한 생각이나 욕망을 일으키는 예가 있지 않습니까? 시간이 있다면 우리를 강화하고 영적으로 세워 주는 내용을 읽는 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더 좋겠읍니까? (고린도 전 15:58) 회중 집회 준비를 포함하여 개인 연구를 함으로써 우리는 여호와의 백성들의 모임에서 더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으며, 우리와 함께 참석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읍니다.
14. (ㄱ) 어떤 종류의 교제를 피해야 합니까? (ㄴ) 무엇이 나쁜 친구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예를 드십시오.
14 “허망한 사람과 같이 앉지 아니하였사오니 간사한 자와 동행치도 아니하리이다. 내가 행악자의 집회를 미워하오니 악한 자와 같이 앉지 아니하리이다” 하고 ‘다윗’은 4절과 5절에서 자신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다른 점을 지적하였읍니다. 그 점은 곧 나쁜 교제를 피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이 말한 종류의 사람에 대해 9절과 10절에서 더욱 말하고 있는데 그들은, “살인자”이며, “저희 손에 악특함이 있고 그 오른손에 뇌물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여호와께 충성하기 위하여는 그러한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 외에는 불필요하게 그러한 사람들과 접촉하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사실상 그러한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나쁜 교제를 피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 점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의 이야기를 고려해 보십시오. 수년 동안 ‘히피’ 생활을 하다가 수 개월 동안 성서를 연구한 어떤 사람이 이러한 경험을 말하였읍니다. “과거에 우리가 친절히 사귀던 사람들이 찾아오거나 편지를 합니다. 우리가 즉시 [왕국의] 좋은 소식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면 그들은 일반적으로 깜짝놀랍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것이 그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놀람이 불쾌함으로 변하여 그들은 우리 집을 급히 떠나버리고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상당한 관심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과 그의 왕국에 대하여 충실하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나쁜 동료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5. (ㄱ) 왜 집회 참석이 우리를 강화한다고 말할 수 있읍니까? (ㄴ) ‘아프리카’에서 집회에 늦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당하였읍니까?
15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갈망하는 자들과 함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은 ‘다윗’이 말한 바와 같이 자신을 강화하기 위한 또 하나의 단계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여호와여 내가 무죄함으로 손을 씻고 주의 단에 두루 다니며 ··· 여호와여 내가 주의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거하는 곳을 사랑하[나이다].” (6절과 8절) 우리도 여호와의 집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공급하는 곳을 여호와의 집으로 바라볼 수 있읍니다. 귀중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끼리 갖는 집회는 “사랑과 선행을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실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히브리 10:24) 우리는 좋은 교제를 통하여, 그리고 우리가 듣고 또 참여하는 훌륭한 영적 토론을 통하여, 북돋음을 받습니다. 집회의 ‘프로그램’에서 최대의 유익을 얻기 위해서 시간 내에 참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 점과 관련하여 ‘아프리카’에서 흥미있는 경험이 있었읍니다. 형제들이 집회를 시작한 직후에 두 부족 사이에 폭동이 발생하였읍니다. 시간에 늦게 집회에 가던 두 형제는 부락에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읍니다. 한 형제는 자기 집에까지 싸움이 미칠까 두려워서 자기 집을 보호할 생각으로 손에 창을 들고 문앞에 서 있었읍니다. 군인들이 그 형제 앞에 다가와서는 그도 싸움에 가담한 사람인줄 알고 놓아 주지 않았읍니다. 사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이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야; 여호와의 증인들은 전부 집회에 참석하여 성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거기에 있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또 다른 형제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납치되어 살해되었읍니다.
16. 우리는 어떠한 일로 인하여 집회 참석에 방해를 받아서는 안됩니까?
16 우리는 어떤 일들이 불필요하게 우리의 집회 참석을 방해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시간외 근무가 집회 참석에 방해가 된다면 그리고 시간외 근무 때문에 너무 피곤하여 집회 참석이 어렵게 된다면, 사치품을 구하기 위해 그러한 직업을 택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또한 그리스도인 집회가 있는 시간에 친척이 우리의 집을 방문하도록 약속하거나 친척의 집을 방문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를 강화하여 성실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기회를 우리는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히브리 10:25.
17. 무슨 일이 우리의 성실성을 보강합니까?
17 우리의 성실성을 보강하는 일은 하나님의 목적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에 참여함으써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함으로써, 행할 수 있읍니다. ‘다윗’은 7절에서 “감사의 소리를 들리고 주의 기이한 모든 일을 이르리이다” 하고 말하였읍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해야 합니다. 우리도 있는 기회를 다 이용하여, 여호와와 그의 목적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고 진리의 소식을 전파하며, 그런 다음에 더 많이 배우고자 관심가진 사람들을 또 찾아가서 가르치며,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만들고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마태 24:14; 28:19, 20.
18. (ㄱ) 우리는 무엇에 대하여 기도해야 하며, 얼마나 자주 할 것입니까? (ㄴ) 기도가 습관화된다면, 문제가 일어날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이며, 그 결과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18 자신을 강화하는 또 다른 점은 기도입니다. ‘다윗’은 이 점을 깊이 의식하고 있었읍니다. 사실 시편 26편 전체가 하나의 기도이지만 11절에서 그는 “나로서는 나의 성실함으로 걷겠나이다. 오, 나를 속량하시고 나에게 은혜를 보이소서” 하고 말하였읍니다. 우리 역시 성실함으로 걷겠다고 여호와께 약속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마련으로부터 유익을 받고 이에 대하여 여호와께 감사하고, 우리의 행동으로 감사를 나타냄으로써 올바른 인식을 나타내야 할 것입니다. 항상 여호와와 통신 연락을 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하나님께 이야기하여,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우리의 문제와 욕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우리 생활의 모든 부면에 대하여 하나님의 인도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기도가 습관화된다면, 성실을 유지하기가 한층 쉬워질 것입니다. 유혹을 받거나 그릇된 길에 부딪히게 되면 자동적으로 여호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잠언 2:7) 사실상,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나,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점에 대하여 여호와께 기도로 이야기하는 동안에 그 점에 관계된 성경 귀절이 머리에 떠올라 그 문제에 대한 여호와의 견해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은 경우가 종종 있을 것입니다.
19. 성실을 유지하는 문제를 요약할 때, 우리는 자신을 강화하기 위하여 어떠한 다섯 가지를 행해야 합니까?
19 간단히 요약해서, 성실을 유지하려고 자신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읍니까? 우리는 여호와께서 조직을 통하여 공급해 주신 성서와 성서 연구 보조 서적을 읽고 연구해야 합니다. 나쁜 교제를 피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뜻과 목적에 관심있는 사람들의 집회에 참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사는 악한 시대에 대하여 예언된 바 전파하고 가르치는 사업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그에게 의지하기 위하여 자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실을 지키면 어떠한 결과에 이르게 됩니까? 그 점을 다음 기사에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538면 삽화]
결혼 나이가 안된 십대 청소년들이 ‘로맨틱’한 일에 빠지는 것이 현명한가? 육체적 욕망 때문에 방종에 빠지게 될 수 있다
[540면 삽화]
만일 그리스도인이 성서 서적을 읽어서 자신을 강화시킬 만한 시간 여유가 없다면, 그것은 그가 ‘텔레비’를 보거나, 신문이나 이 세상 서적을 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바치기 때문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