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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얼룩을 지워 없애는 일파수대—1981 |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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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는 것, 그리고 죄를 저항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 점에 있어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며, 그 결과 우리는 일 개인으로서 진정한 변화를 하게 될 수 있다.—로마 12:2.
그러나 만일 우리가 죄로 흐르는 경향과 싸우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의 다음과 같은 부가적인 말이 우리에게 적용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리라.]”—히브리 10:26, 27.
결국, 불완전한 육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죄의 노예살이에서 풀려 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것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보다 더 훌륭한 전망도 갖게 된다. 그들은 죄가 옛일이 되어 버릴 새 질서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약속받고 있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의 창조물로부터 완전히 제거되어 있을 것이다. 그 때에 가서는,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11:9) 영감받은 시편 필자는 우리에게 “악인[즉, 고의적으로 죄짓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라고 약속한다. 그 반대로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될 것이다.—시 37:10, 11.
죄로 인한 나쁜 결과들—질병, 죽음 및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상태—은 모두 옛일이 될 것이다. (계시 21:3, 4) 그 대신 이 땅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완전히 성취 될 것이다.—마태 6:9, 10.
그렇다, 예수의 대속 희생 덕분에,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마침내 죄의 노예살이에서 풀려 나올 훌륭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시편 필자의 이러한 격려는 시기에 매우 적절한 말이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영히 거하리니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시 37:2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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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파수대—1981 |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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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정신의 평화, 오늘날의 거칠은 세상에서 누가 이것을 얻을 수 있는가? ‘테러’주의자들은 종종 동료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피난민들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전전한다. 핵 무기들은 풍부히 쌓여 전 인류를 파멸시킬 가능성 있는 파수병으로 세워져 있다. 물가고는 모아둔 돈을, 종종 평생 동안 모은 돈을 급속히 잠식해 들어 간다. 이 모든 일에 건강 문제와의 수많은 개인적인 “투쟁”,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오는 깊은 슬픔, 그리고 어디에 있는 사람에게나 흔한 수많은 걱정들이 추가된다. 그러므로 확실히 현대 사회에서 참다운 정신의 평화는 찾아 보기 어려운 일이 되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안전과 바라는 정신의 평화를 찾아 어디로 향하는가? 흔히들 돈과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것에 둔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참다운 정신의 평화를 가져다 주는가?
아마 그렇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소리없이—거의 감지할 수 없게—해가 바뀜에 따라 그 물질의 가치는 줄어들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한 부유한 사람이 값비싼 많은 의복을 갖고 있다고 하자. 그러나 의장에 갖춘 의복을 과도히 소중히 여기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네 날개 달린 곤충—특히 애벌레일 때—은 값비싼 의복을 쏠아 못쓰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 좀 벌레가 위협이 될 수 있으며, 적어도 어느 정도는 그 사람의 안전감과, 기대한 정신의 평화를 빼앗아 갈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좀의 피해를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옷은 닳아지거나 도둑이 훔쳐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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