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며 섬기라
1, 2. (ㄱ) 개인들과 나라들은 미래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읍니까? (ㄴ) 왜 일부 사람들은 자기들의 장래를 생각지 않으려고 합니까?
“기회 있을 때에 인생을 즐기라, 내일 일을 누가 알겠는가?” 하는 식의 사상을 인생의 기본 주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오늘날 흔히 만납니다. 그들의 말이나 행동에 그 점이 잘 나타나 있읍니다. 심지어 많은 나라들도 그러한 사상을 따르는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경제 학자 한 사람은 자기 나라 정부가 “우리 다음엔 대홍수” 식의 정책, 다시 말하면 미래는 아랑곳없이 오늘만을 위해 계획하고 돈을 사용하는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고 비난하였읍니다.
2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기성 체제”의 목표나 업적에 대해 심히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그와 대동소이할 미래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1972년에 어느 대학 교수는 “청년들이 자기 개인의 미래에 대하여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하면서 이렇게 부언하였읍니다. “젊은이들에게는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목표지향(目標指向)’이라는 것이 없으며, 그들은 흔히 마약과 항의 그리고 인생 형태 실험과 목표없는 계획이나 쾌락에 이르기까지 아무 것에나 자기들의 시간을 허송하는 것같다.” 그리고, 공해, 범죄, 기근, 전쟁 등에 관한 무서운 경고가 날로 높아가기 때문에 차라리 미래에 대해 생각을 안해버리는 사람들도 있읍니다.
3.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알기 때문에 현재만을 위하여 살자고 생각하게 됩니까?
3 설사 강대국들이 국제관계 개선에 놀라운 돌파구를 마련하여, 예언된 바와 같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는 의미깊은 선언이 확실한 것같이 보일지라도 많은 사람들은 ‘이 순간만을 위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5:3) 그들은 생명이 있는 동안에 생명으로부터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누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신뢰하는 과학이 죽음을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과학의 발견에 대해 논평하면서, 한 신문 기자는, ‘튀빙겐’의 교수 ‘프리드헬름 슈나이더’는 “사망이 생명의 개념에 필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물리적 현상이라는 [견해]를 아무 것도 지지하지 않”음을 확증하였다고 인정하였읍니다. 그리고 그 기자는, “각 세포에 세포 ‘호르몬’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다면 사람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 현재의 증거라고 말하였읍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단, 현재로서는 이 적절한 혼합 상태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없다!”고 부언하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불가피한 것같이 보이기 때문에 ‘오늘을 위해 살자!’고 생각합니다.
4. (ㄱ) 여호와의 증인들의 견해도 그러합니까? (ㄴ) 그러나 우리 각자는 무엇을 고려할 필요가 있읍니까?
4 그러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의 견해는 그것과 크게 다릅니다. 그들은 “내일 죽을터이니 먹고 마시자”는 식의 숙명론자들이 아닙니다. (고린도 전 15:32) 그들은 미래에 대해 열렬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미래를 기대하고 있읍니다. 사실상 그들의 전체 생활과 생각은 한정되고 제한된 생명이 아니라 영원을 중심으로 하고 있읍니다. 그러나 당신 자신도 그러합니까? 그것이 어떻게 그러할 수 있는가를 알기 위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목적에 관하여 “영원”을 고려해 봅시다.
영원성, 우리 숭배의 특징
5. 왜 영원성은 우리의 숭배에 기초가 됩니까?
5 하나님이 영원하시므로, 그리스도인 숭배가 영원성을 기초로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적절합니다. 인간으로서는 그것을 인식하기가 어렵겠지만, 하나님은 시작이 없으십니다. 산, 지구, 나아가서 전체 우주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들은 새로운 것, 최근에 생긴 것들입니까? 과학자들은 우주의 연대를 수십억년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니 그것의 창조주는 그보다 더 오래지 않겠읍니까? 합당하게도, 사도 ‘바울’은 여호와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분의 창조물에 나타나 있다고 하였읍니다.—로마 1:20.
6. 하나님의 미래에 관해 성서는 무엇을 알려 줍니까?
6 하나님의 영원성은 또한 미래에도 연장됩니다.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의 필자들은 하나님께서 결코 죽지 않으시며,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앞으로 영원까지 통치하실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시편」 필자는 선언하기를, “여호와께서는 영원[‘히브리’어, ‘오람’]무궁[‘히브리’어, ‘아드’]토록 왕”이시라고 하였읍니다. (시 10:16; 출애굽 15:18) 그리고 성서 마지막 책에 사도 ‘요한’은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들은 것을 기록하였는데, 그 음성은 주 여호와께 관하여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였읍니다. 여기서 필자 ‘요한’은 희랍어 문구의 복수형을 사용하였읍니다. 그것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시대들의 시대들까지”입니다. (계시 11:15; 디모데 전 1:17) 그러므로, ‘요한’은 미래에 관하여 우리의 창조주께서 틀림없이 “시대들의 시대들까지” 통치하실 것을 알았읍니다. (왕국 행간 번역) 이 사실은 현재와 미래에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7.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지상의 모든 생물이 영원히 존재합니까? 그러면 인간은 어떠합니까?
7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생물이 다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초목들, 심지어 오래 사는 나무들도 결국은 죽게 됩니다. (베드로 전 1:24) 그리고, 하나님께서 개개의 짐승들을 영원히 살도록 하셨다는 성서적 증거도 없읍니다. 그러나 인간은 달랐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에게 결코 죽지 않을 전망을 주셨읍니다. 그들은 순종하였다면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질 수 있었읍니다. (창세 2:17) 이 점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이 죄에 빠진 후에도 변경되지 않았읍니다. 오히려, 성서는 순종하는 인간을 지상에 영원히 살게 한다는 하나님의 목적이 반드시 실현될 것을 알려 주고 있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에 의해 성취될 것입니다. 그 왕국은 계시록 12:1-5에 묘사된 바와 같이 기원 1914년에 탄생하였읍니다. 그렇습니다. 그 이후로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의 나라’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하였읍니다.—계시 11:15.
왕국의 영원한 통치자들
8. 왜 성서에 하나님의 왕국이 강조되었읍니까?
8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능케 해 주는 이 왕국은 하늘의 정부입니다. 예수께서 수석 통치자가 되시며, 그분과 함께 하는 144,000명의 보조 통치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인류 가운데서 선택되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생명으로 불리움을 받았읍니다. (로마 8:16, 17; 누가 22:29; 계시 5:9, 10; 14:1) 이 왕국이 지극히 중요하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성서에 그것을 강조하신 점으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왕국은 예수의 가르침 가운데 첫째 가는 점이었읍니다. (마태 4:23) 그리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내용은 그 왕국에서 통치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을 위주로 한 것들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약속도 그러합니다.
9. ‘요한’은 요한 1서 2:25에 나오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말을 누구에 대하여 하였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읍니까?
9 예를 들면, 사도 ‘요한’은 요한 1서 2:25에 이렇게 썼읍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그는 지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의미하였읍니까, 하늘에서의 불멸하는 생명을 의미하였읍니까? ‘아담’ 시대로부터 하나님께서 목적하신 바는 이 땅에 영원한 생명을 받을 참 숭배자를 가득 채우는 것이었음을 ‘요한’은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나 ‘요한’의 말은 성령으로 기름 부음받아 하늘의 생명으로 불리움받은 자들에 대해 말한 것입니다. (요한 1서 2:20) 그러기 때문에 그는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하나님이]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요한 1서 3:2.
10. 제자들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할 것이라는 약속은 무슨 뜻입니까?
10 영원한 생명에 관한 비슷한 약속이 예수의 말씀에도 들어 있읍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 8:51; 6:51, 58; 11:25, 26; 12:25) 그리스도께서는 분명히 조금 후에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을 사도들과 기타 사람들이 결코 늙거나 죽지 않을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하늘의 생명을 받기 위하여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몇 개월 전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 자신도 죽어서 부활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읍니다. (마태 16:21; 17:22, 23; 요한 2:19-22) 기름부음받은 모든 추종자들도 그분의 왕국에서 불멸하는 통치자들이 되려면 죽어야 하였읍니다. (고린도 전 15:42-44, 49, 53; 디모데 후 4:18)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하여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할 것이었읍니까? 죽기까지 충성함으로써 계시록 2:10, 11에서 말한 둘째 사망을 당하지 않음으로써였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부활 후에 하늘에서 영원히 왕노릇하실 것이며,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종들 모두에게 유익을 줄 것입니다. (계시 22:5) 실로 큰 축복이 아닙니까!
11. 이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지상에서의 영원한 생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11 그러나 이 영원한 생명의 희망은 그 하늘 왕국에 들어갈 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왕국의 설립을 볼 시대 곧 그 시대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지상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을 분명히 약속하셨읍니다. 이 때는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때입니다 (마태 25:31-33) 그런데, 하늘의 생명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의 “형제”들은 아니지만, 그의 기름부음받은 “형제”들을 도와 주고 그들과 함께 섬긴 “양”들에 대해 예수께서는 무슨 보상을 약속하셨읍니까? 예수께서는 그 의로운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 이곳 지상에서의 생명에 들어가리라고 약속하셨읍니다. (마태 25:46) 지상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은 실로 감격스런 전망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낙원으로 만드실 계획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은 당신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읍니까? 당신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읍니까? 그것은 당신이 매일매일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줍니까? 직업에 대한 태도, 학교에서 과목을 선택하는 문제, 결혼하려는 계획 등에 영향을 줍니까? 간단히 말하여, 당신은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읍니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가 아님
12.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특권 받은 입장에 있읍니까?
12 우리가 죽지 않고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양” 가운데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충성하도록 자극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당신은 고대의 많은 충실한 하나님의 종들이 단지 어렴풋이 기대하였던 일들을 직접 체험할 입장에 있읍니다. ‘다윗’ 왕의 경우에는 어떠하였는가를 고려해 봅시다.
13. 시편 37:11, 29에 있는 ‘다윗’의 말은 분명히 무슨 의미였을 것입니까?
13 시편 37:11, 29에 ‘다윗’은 이렇게 썼읍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이 말은 자기 시대와 그후 시대에 약속의 땅에서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에 따르면 그 땅에 살던 악인들은 일소되어야 하였읍니다. (창세 15:18-21; 17:8; 신명 7:22; 여호수아 21:43-45) 이렇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나라를 이루었던 의로운 숭배자들은 대대로 그 땅 곧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지역에서 살 수 있었읍니다. (신명 30:20) 그러나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충성하여 그 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을 실행하지 않았읍니다. 사실상 하나님께서는 결국 ‘앗수로’인들과 ‘바벨론’ 사람들이 그 땅을 정복하고 일시적으로 그 땅에서 거민을 없애도록 버려두셨읍니다.
14. 시편 37:11, 29이 더 크고 웅대한 의미가 있음을 예수께서는 어떻게 알려 주셨읍니까?
14 또한 ‘다윗’이 시편 37편에 기술한 내용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점에 대한 어렴풋한 전망이었읍니다. ‘다윗’의 말이, 더 크고 광범한 의미로, 지상에 대한 왕국 통치에 대해 적용된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마태 5:5에 시편 37의 말씀을 인용하신 점으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성취가 모두 과거의 일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라고 미래에 적용시키셨읍니다. 그렇습니다. 하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될 온유한 자들은, 이 땅을 다스릴 것입니다. (계시 5:9, 10) 예수께서는 왕국이 땅을 영원히 의롭게 다스릴 것을 아셨읍니다. 그러므로 지상에는 “의인”이 살 것이며, 그들은 “영영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영감을 받아 여호와께서 자신의 땅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실현하신 때에 결국 어떻게 될 것인가를 묘사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윗’이 단지 어렴풋이 기대하였던 것을 즐길 수 있으며, ‘다윗’이 장차 부활함으로써만 참여할 수 있는 것을 그들은 직접 체험할 수 있읍니다. “양”으로서 주의 오른편으로 분류될 자들은 하늘로부터 영원히 통치를 받는 낙원인 땅에서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15. 여호와의 숭배에 관한 ‘미가’의 태도는 어떠하였으며, 그것이 우리에게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15 그러니, 우리의 생각과 계획과 희망을,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면서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집중시키는 것이 실로 적절합니다. ‘다윗’이나 ‘아브라함’, 그리고 ‘이사야’와 ‘미가’ 같은 예언자들이 현재 살아서 그러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기뻐하겠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기원전 537년에 포로 상태에서 되돌아 온 후에 ‘유대’인들 사이에 순결한 숭배가 회복될 것을 예언적으로 묘사하면서, ‘미가’는 자신이나 다른 참 숭배자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미가 4:1-5; 이사야 65:18) 그는 영원히 하나님을 숭배할 것을 확고하게 결심하였읍니다. 그 당시 ‘미가’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지 않았읍니다. 그때는 죽음이 인간에게 불가피한 것이었읍니다. 그러나 ‘미가’는 죽을 때까지 하나님을 섬길 계획이었으며, 새 질서에서 부활되면 중단되지 않은 것처럼 즉시 그 봉사를 계속할 계획이었읍니다. ‘미가’는 실로 훌륭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하물며, 중단되는 일이 없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할 전망을 가진 우리는 동일한 견해를 갖지 않아서 되겠읍니까?
일정한 날까지 섬기는 것이 아님
16. 제 1세기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봉사에 대하여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읍니까?
16 우리가 하늘에서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릴 전망을 가졌든지, 지적인 낙원에서 생명을 누릴 전망을 가졌든지, 우리의 목표가 일정한 날짜까지가 아니라 영원까지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기원 70년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을 본받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 세대 내에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신 “큰 환난” 때에 ‘유대’인 사물의 제도가 종말을 당할 것을 기대하였읍니다. (마태 24:3, 21, 22, 34)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에 특정한 날짜 혹은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만 섬기기로 결정하였읍니까?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들이 배우고 받아들인 내용, 예를 들어, ‘베드로’가 ‘고넬료’와 그의 가족에게 전파하였던 내용은 그들이 다가오는 어떤 날짜까지만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읍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여 생명에 이르는 길”을 열어 주셨읍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끝없는 생명을 말합니다.—사도 10:34-43; 11:18.
17. ‘유다’는 자기의 견해를 어떻게 나타내었읍니까?
17 따라서 기원 65년경, 즉 ‘로마’인들이 ‘예루살렘’에 1차 공격을 시도하기 1년쯤 전에 예수의 이부 동생 ‘유다’가 영감받은 편지를 쓸 때에도 어떤 한계를 이루는 날짜를 말하지 않았읍니다. 도리어 그는 이렇게 썼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며, 신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를 기다리시오.” (유다 20, 21) 그는 목표가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는 것이었음을 알았읍니다. ‘유대’ 제도에 대한 “환난”이 2년내에 오든지 3년 혹은 그 이후에 오든지 그들이 계속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에는 영향이 없었읍니다.
18. (ㄱ) 우리는 세월의 흐름 가운데 어디에 서 있읍니까? (ㄴ) 성서 연대는, 날짜를 지적하지 않으면서, 무엇을 알려 줍니까?
18 그리고 오늘날 성서 예언의 성취에 의하여 이 전체 악한 사물의 제도의 끝이 임박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정확한 성서 연대는 인간 존재 6,000년이 1970년대 중엽에 끝날 것을 알려 주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a 그러므로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그때 지상의 모든 악인을 일소할 우리 시대의 “큰 환난”의 돌발이 동시에 일어날 것인지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럴 수도 있읍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사단’의 악한 사물의 제도의 멸망이 정확히 언제 일어날 것인가를 예측조차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상의 어느 인간도 그 날짜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참고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마태 24:36.
19.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의 종들로 하여금 어떠한 견해를 갖도록 해줍니까?
19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이 정하신 때에 이 경건치 않은 제도의 종말을 가져오실 것을 확신합니다. “큰 환난”이 시작되면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날짜를 목표로 하고 섬기는 것처럼 날짜를 추측하는 대신, 예수께서 자기의 제자들이 이 시간에 수행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중요한 전도 활동에 집념할 수 있읍니다. (마가 13:10) 그러므로 “환난”이 언제 돌발하든 간에,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수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어떤 날짜에 고정시킬 것이 아니라 ‘유다’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한 바와 같이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며 섬길 것입니다.
당신의 행동과 결정에 영원한 숭배를 반영하라
20, 21. (ㄱ) 사람의 생활은 미래에 대한 그의 견해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ㄴ) 이것이 가질 만한 현명한 견해입니까?
20 하나님을 영원히 섬길 수 있다는 우리의 굳은 신념은 전도 활동 이외의 문제에도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매일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이 말을 하는 것은, 어떤 사람의 경우 말로는 자기가 지금까지 고려한 모든 점에 동의한다고 하면서도, 일상 생활에서는 그것이 아직도 자기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지 않음을 나타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마 현재만을 위하여 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읍니까!
21 참 숭배자들이 여호와의 영원한 목적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가 얼마나 신속히 지나가는가를 증명합니다. 그것을 상상한다면, 현재란, 길이가 수천 ‘킬로미터’ 되는 자막대기의 1‘센티미터’ 길이에 비할 수 있읍니다. 그 1‘센티미터’가 가장 중요한 것처럼, 자신의 전체 생애가 그것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것이 이치적입니까?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현재를 살아 가는 사람, 그것이 자신의 영원한 복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에 따라 일을 평가하고 살피는 사람이 훨씬 더 균형잡히고 지혜롭지 않겠읍니까!
22, 23. (ㄱ)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결혼에 관해 무엇을 이해하도록 도움을 줍니까? (ㄴ)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며 섬기는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은 세상과는 반대로 결혼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집니까?
22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한 가지 예로 결혼에 관한 것을 들 수 있읍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마련이며, 그것은 여러 가지 축복이 따릅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람에게는 그것도 문제와 어려움이 있읍니다. (고린도 전 7:28) 이 점을 이해한 사도 ‘바울’은 정욕으로 끊임없이 교란을 받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독신 생활을 하라고 권고하였읍니다. 그러한 독신자들은 결혼 생활로 인하여 “마음에 헛갈림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독신 생활의 장점은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특히 가치 있다고 말하였읍니다.—고린도 전 7:29-38, 새번역.
23 하나님을 영원히 섬길 가능성에 대해 믿음이 없는 많은 젊은이들은, ‘자제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성생활을 즐기고 싶고 결혼하고 싶다면 결혼하라. 내일 어떻게 될지 누가 아는가?’ 하는 식의 태도를 취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면서 섬기는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서두르지 않습니다. 그는 “젊은이의 한창 시절”이 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기가 결혼하는 것이 좋겠는지의 여부를 결정합니다. 그 동안에 그는 독신 생활의 장점을 즐길 수 있읍니다. 즉 “딴 생각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게” 됩니다. (고린도 전 7:35, 공동 번역) 얼마 후에 그가 결혼하기로 결정한다면 그는 거기에 수반되는 책임을 더 잘 처리하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며 섬기는 일은 “현재”만을 위하여 살아가지 않도록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상 생활의 결정을 내리는 데 반영된다는 것을 유의하십시오.
24. “영원성”은 재물에 대한 우리의 견해에 어떻게 영향을 줍니까?
24 영원히 섬긴다는 신념은 또한 돈과 소유물에 관한 자신의 견해에도 영향을 줍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것에 대해 ‘벌 수 있을 때 벌라’는 식의 태도를 갖고 있읍니다. 그리고 광고 선전은 항상 지금 새로운 것을 사도록 강조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떻게 행동합니까? 당신의 견해는 어떠합니까? 당신이 이러한 물질적인 것에 유혹을 받을 때에 영원성이 개입됩니까?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왜냐 하면, 돈과 물질적 소유물을 사랑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한 다음, 성서는 영원한 생명을 생각하라고 권고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6:6-12) 그러므로 돈이나 재물을 더 많이 벌라는 유혹을 직접, 간접으로 받을 때에 이렇게 자문해보십시오. ‘앞으로 천년 후에, 내가 지금 두 가지 직업을 가지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신형 자동차나 ‘보트’를 사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인가?’ 또는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새 질서에 들어가서 백만년이 지난 다음에 과거를 회고하면서, 그리스도인 집회에 빠지지 않기 위해 직장에서 초과 근무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을 잘못했다고 생각할 것인가?’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과 생각에 영원성이 영향을 주어야 합니다.
25. 여러 가지 시련을 인내할 때에 영원에 대한 올바른 견해는 무슨 가치가 있읍니까?
25 이 동일한 견해—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면서 섬기는 것—는 그리스도인들이 즐거움으로 인내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반대, 질병, 노쇠 등은 인내하기 어려운 시험이 될 수 있지만, 영원에 비한다면 이 인내는 순간적인 것입니다. 사도가 피력한 바와 같이, 우리는 장차 영원을 가질 수 있읍니다. “겉 사람은 후패 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 후 4:16-18; 마태 19:29.
26.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미래에 대한 어떠한 견해를 가져야 합니까?
26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매일 우리 하나님이 영원하심과 우리가 그분을 영원한 장래를 생각하면서 섬겨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분의 영원한 진리에 대한 지식을 넓혀 주고, 성령을 주심으로써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종들에게 영원히 돕는 자로 주시겠다고 약속되어 있읍니다. (요한 2서 2; 요한 14:16, 17) 그렇게 하면 우리의 봉사는 현재만을, 제한되어 있는 일생 동안 만을 위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원히 그분을 섬기어 “대대로 영원 무궁”토록 그분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에베소 3:20, 21.
[각주]
a 「성서 이해를 위한 보조서」 322-348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