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하라파수대—1977 | 6월 1일
-
-
21. 기원전 536년에 참 숭배자들은 무엇을 재건하는 일을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로서 받아 들였읍니까?
21 당신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성서에 나오는 다른 예를 고려해 봅시다. ‘바벨론’의 포로 상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기원전 536년 음력으로 둘째달(4-5월)에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 스스로가 ‘바벨론’에서 풀려난 것도 아니며 성전 재건도 그들이 생각해 낸 일이 아니었읍니다. 그렇게 하신 분은 여호와이셨읍니다. (에스라 1:1, 5) 그러한 건축 계획을 소홀히 취급할 수 있었겠읍니까? 다음과 같은 기록을 읽어 봅시다.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 [보고 있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사랑의 친절]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더라].”—에스라 3:10, 11.
22. 우리 자신의 경험에서도 그와 유사한 어떤 일들을 볼 수 있으며 그로 인하여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게 됩니까? (에스라 3:1; 시 149:1)
22 그러면 오늘날은 어떠합니까? 당신의 회중이 이전에는 어떤 장소를 빌려서 집회를 보았는데 이제는 왕국회관을 건축하였을지 모릅니다. 혹은 최근에 당신의 회중이 왕국회관을 확장하였거나 새로 단장하였을지 모릅니다. 혹은 집회 참석수가 증가되고 새로운 관심자 가족들이 회관에 나오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혹은 회중의 많은 형제 자매들이 격려를 받아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에 참여하였을지 모릅니다. 그러한 일들에서 당신은 여호와의 손길을 의식하며 여호와께서 도움을 베푸시고 그의 영과 축복을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당신은 그러한 성취가 여호와의 풍성한 사랑의 친절임을 깨닫고 있읍니까? 당신은 그로 인하여 즐거움을 느낍니까?
23.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시는 것과 관련하여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읍니까? 그러나 그 문제와 관련하여 어떤 부면을 더 살펴볼 필요가 있읍니까?
23 확실히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읍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창조의 마련 가운데 거하는 모든 인간에게 유익이 되는 자신의 선포된 목적과 관련해서 사랑의 친절을 나타내셨읍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개인적으로 사랑의 친절을 나타내셨읍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일부로서 그러한 사랑의 친절을 경험해 왔읍니다. 그러나 사실상 당신은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함을 나타내겠읍니까? 이러한 점들을 다음 기사에서 살펴 봅시다.
-
-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파수대—1977 | 6월 1일
-
-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1, 2. (ㄱ) 우리의 생명은 얼마나 가치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다윗’은 시편 63:3에서 생명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어떠한 의미에서 그러합니까? (욥 14:1, 2; 야고보 4:14)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이겠읍니까? 생명이 없다면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으며 그것을 즐길 수도 없읍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시편 필자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주의 인자[사랑의 친절, 신세]가 생명보다 [낫나이다].”라고 읊은 것은 참으로 흥미있는 일입니다.—시 63:3.
2 ‘다윗’은 여호와의 은총을 상실하기보다 차라리 생명을 잃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장래에 ‘다윗’이 소유하고 즐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읍니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동정심을 보이시고 그를 충실하게 지원해 주신 여러 가지 예를 기억하고 있었읍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을 증거해 주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는 그러한 사랑의 친절이 인간으로 잠시 누리는 현재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읍니다. (역대 상 29:14, 15)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오늘 살아 있다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현재의 생명보다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 즉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랑이 더 가치있지 않겠습니까?
3. ‘다윗’은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였으며, 우리 각자는 어떻게 자문해 보는 것이 적절합니까?
3 그러나 ‘다윗’은 단지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의 가치를 깨닫는 것으로 그쳤읍니까? 아닙니다. 그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는지 유의하십시오. “주의 인자[사랑의 친절, 신세]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리이다].” (시 63:3, 4)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에 깊은 감사를 느꼈기 때문에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에게 감사를 나타내었읍니다. 앞 기사에서 토론한 바와 같이 우리 각자에게는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 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생활은 그러합니까? 하루나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갔는데도 그동안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대화에서 그분을 언급하지도 않은 경우가 있었읍니까? 아니면 여호와에 관하여 자주 이야기하고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하신 일 때문에 자연히 그분을 찬양하게 됩니까? 당신은 시편 107:21, 22이 알려주는 정신 태도를 매일 반영하고 있읍니까?
4. 이 점과 관련하여 왜 우리는 좋은 소식을 선포해야 합니까?
4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분명히 그분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를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사도 14:1-3; 20:24) 좋은 소식은 듣는 사람의 생명을 구출해 줄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좋은 소식이 널리 전파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로마 10:9-15.
5. (ㄱ) 왜 우리의 증거가 부정적이 될 수 있읍니까? (ㄴ) 그러나 왜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5 참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서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이 거짓 교리와 성서의 가르침을 왜곡시킨 내용들임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의식 중에 부정적인 면을 주로 증거하게 될 수 있읍니다. 주로 성서가 가르치지 않는 것—성서가 삼위일체나 불타는 지옥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 인간은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지구가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증거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 14:28; 에스겔 18:4; 전도 9:5, 10; 1:4) 우리의 증거를 듣는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시정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가 오류를 지적해 줌으로써 그들이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분별하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증거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6. 왜 우리의 공개적 선포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점들이 포함되어야 합니까?
6 우리의 “공개적 선포”에는 여호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적극적인 점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3:15, 신세; 시 107:21, 22 비교) 예를 들어 우리는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강조할 수 있읍니다. ‘그분만이 지존자’이심을 알려 줄 수 있읍니다. (시 83:18) 그분과 그분의 아들을 올바로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의미함을 설명해 줄 수 있읍니다. (요한 17:3) 또한 사람들을 이끄는 그분의 훌륭한 성품들 즉 자비, 탁월한 지혜, 명철, 관대함, 충실함, 사랑의 친절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신명 32:4; 야고보 1:17; 시 84:11.
7.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을 강조할 수 있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읍니까?
7 우리 각자는 이러한 긍정적인 부면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자신의 “공개적 선포”를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정기적으로 가족 연구를 사회하거나 다른 사람과 성서 연구를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을 강조할 수 있읍니까? 어떤 성서적인 사건이나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토론할 때 우리는 간단히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사실이 거기에 나타나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읍니다. 혹은 토론되고 있는 점은 여호와에 관하여 어떤 점을 이해하도록 연구생에게 도움이 되는지 물어 볼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연구생은 여호와에게 더 가까와지고, 하나님은 그에게 더 실제적이고 친숙한 분이 될 것이며 이러한 훌륭한 하나님에 관하여 더 배우고 그분을 찬양하도록 자극을 받을 것입니다.—시 147:1, 11.
우리의 대화에서 감사함을 나타냄
8. 다른 어떤 때에도 우리는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읍니까?
8 여호와와 그분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일은 비단 사람들에게 성서 진리를 가르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