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에게 어떠한 종류의 교육이 필요한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잠언 22:6.
1, 2. (ㄱ) 많은 부모는 자녀 양육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읍니까? (ㄴ) 성서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읍니까?
부모들이여, 여러분은 오늘날 자녀를 양육하기가 어려움을 느낍니까? 여러분은 자녀들이 이 위험한 때에 악에 물들지 않도록 어떻게 교육시켜야 할지 몰라 항상 초조합니까? 많은 부모는 그러합니다. 성서가 이렇게 알려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잠언 22:6) 그러나 오늘날 수백만명의 청소년들이 범죄의 길에 빠지고 있읍니다.
2 1966년에 미국 상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의 10내지 17세의 연령층에 속한 2천 9백만의 자녀 중 2백 5십만명 즉 약 열한명 중 한명꼴은 전과가 있읍니다! 그 때 이후로 상태는 훨씬 더 악화되었읍니다. 1970년 2월 2일자 「로스앤젤레스 헤럴드 익재미너」지는 이렇게 보도하였읍니다. “남부 ‘캘리포니아’에서의 청소년 범죄는, 경찰에 잡히는 청소년 범죄자가 성인 범죄자를 머지않아 능가할 비율로 상승하고 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전체 인구의 단지 적은 일부에 속하는데도 그러하다. 유치장은 이미 초만원이며 정지 신호가 보이지 않는다.” ‘뉴질랜드’에서는 경찰국장의 보고에 의하면 청소년 범죄 건수가 1966년에서 1970년까지 두 배로 증가하였다!
3. 청소년 범죄와 관련하여 어떠한 경향이 현저합니까?
3 청소년 범죄 건수가 급증하고 있을 뿐 아니라 범죄의 성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으며 더 어린 범죄자가 늘어가고 있읍니다. 최근에 ‘메릴랜드’ 주의 ‘볼티모어’에서 10세와 그 이하의 아동들 526명이 체포되었읍니다. 그 가운데 169명은 절도죄로, 22명은 강도죄로 체포되었으며, 살인, 자동차 절도, 마약법 위반으로 체포된 아동도 있었읍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퍼스’에서는 자동차 도난의 80‘퍼센트’가 십대의 소행입니다! 그곳의 한 경찰관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13세 어린이가 자동차를 훔쳐 몰고 가는 것은 이제 예사가 되었읍니다.”
4, 5. (ㄱ) 오늘날 널리 퍼져있는 부도덕의 비참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ㄴ) 이러한 상태는 우리가 어느 기간에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까?
4 청소년들 사이의 성적 부도덕 또한 만연되어 있읍니다. ‘뉴욕’ 시의 16세된 한 소녀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 반 학생 중 절반 가량이 [임신을 막기 위하여] 피임약을 사용하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대학교에 가면 사먹을 예정으로 있어요.” (「뉴욕 타임즈」지 1971년 9월 24일호) 부도덕의 비극적인 결과로 성병과 사생아 출산이 유행하고 있읍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1960년보다 1970년에 임질에 걸린 십대의 수가 거의 열배였읍니다. 현재는 고등 학생 다섯명 중 한명꼴이 졸업하기 전에 성병에 걸리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읍니다. 일부 학교에서는 재적생 총수의 절반이 졸업 전에 성병에 걸릴 것으로 추산하고 있읍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총 43,100명의 십대 소녀가 1970년에 임신하였으며, 이 수자에는 임신으로 인하여 결혼한 사람의 수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샌프런시스코 익재미너」지 1971년 6월 20일호.
5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의 한 의료 상담소장은 십대 임신이 증가하여 “비극적 유행”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15세 이하의 소녀들간의 임신 건수는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큰 파문을 던지고 있읍니다.” (「뉴 포트 뉴스 데일리 프레스」지 1970년 12월 13일자) ‘필라델피아’ 「이브닝 불러틴」지는 “미혼모의 상당수는 11세 내지 12세의 국민 학교 소녀들이다” 하고 보도하였읍니다. 현 상황으로 볼 때 우리가 성서에서 예언한 위험한 “마지막 날”에 살고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오늘날은 참으로 부모에 대한 불순종을 위시하여 극도의 불법으로 특징을 이루고 있는 시대입니다. (디모데 후 3:1-5, 새번역)
6. (ㄱ) 만연된 청소년 범죄는 자녀들이 받는 교육에 대하여 무엇을 시사합니까? (ㄴ) 많은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대하여 당혹하는 주원인은 무엇입니까?
6 허다한 젊은이들이 그릇된 길에 빠지고 있으므로 자녀들이 받는 교육에 어딘가 잘못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자녀들이 ‘마땅히 행할 길로’ 교육을 받고 있지 못합니다. (점언 22:6) 그러면 자녀에게는 어떠한 종류의 교육이 필요합니까? 이 문제에 대하여 당혹하는 부모가 많습니다. “많은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의 말과 행동으로 볼 때 그들이 거의 암중모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뉴욕 타임즈」지의 저명한 편집자 한 사람은 지적하였읍니다. “이전의 품행 기준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고 그는 말하였읍니다. (「뉴욕 타임즈 매거진」 1972년 1월 16일호) 자녀 교육 분야의 세상 권위자들의 의견이 구구한 것, 이것이 바로 부모들이 이 문제에 당혹하는 주원인입니다.
7. (ㄱ) 자녀 교육 분야의 세상 조언자들의 기록들은 일반적으로 어떤 점에서 공통적입니까? (ㄴ) 예레미야 8:9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오늘날 대부분의 자녀들이 받는 교육에 어떠한 잘못이 있읍니까?
7 이러한 조언자들의 의견들이 서로 크게 다르지만 그들의 저술한 내용을 조사해 보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그들이 일반적으로 교육 지침으로서의 성서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읍니까? 최근의 사태 진전은 해답이 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범죄가 크게 증가한 것은 “이전의 품행 기준”(흔히 성서에 기초한 기준)이 배척된 최근의 일이 아닙니까? 이것은 청소년들에게 성서의 가르침에 근거한 교육과 인도가 필요함을 시사하지 않습니까?—예레미야 8:9.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쳐야 할 이유
8. (ㄱ) 자녀들의 뛰어난 한가지 특성은 무엇입니까? (ㄴ) 부모가 자녀들의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8 자녀들이 부모에게서 인도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어린 자녀는 질문이 많습니다. 흔히 그들은 “이 아름다운 꽃은 누가 만들었어요?” “별은 왜 하늘에 있지요?” 하고 질문합니다. 혹은 “나는 어디에서 났어요? 나는 누가 만들었나요?” 하고 질문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자녀들에게 대답해 주는 일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어린이들이 배우는 것은 지속적인 인상을 주며 그들의 태도와 견해를 틀잡고 나아가서 장래의 생활에 영향을 줍니다.
9. (ㄱ) 오늘날의 청소년들은 인간의 기원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어떠한 가르침을 받고 있읍니까? (ㄴ) 어린이들이 배우는 진화론적 견해가 옳지 않음을 암시하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9 부모는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나 그런 것을 만든 분이 있는게 아니야. 모든 것이 저절로 있게 된 거지. 우연히 그렇게 된거야. 뭐든지 다 우연에 의해서 된 거란 말이야.” 이것이 바로 학교에서 오늘날 자녀들이 공통적으로 배우는 진화론적 견해입니다. 흔히들 이러한 견해는 “과학적”이며 만물을 창조한 분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고 “비과학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입니까? 오늘날의 일반적인 진화론적 견해는 참됩니까? 고려하여 보십시오. 진리를 가르쳐야만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이와 반면에 진화론 사상을 강조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성장한 오늘날의 수백만의 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비행을 보십시오!—시 14:1.
10. (ㄱ) 아이에게 창조주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 왜 자녀의 정신을 헷갈리게 합니까? (ㄴ) 자녀들에게는 자신들과 풀, 달, 별등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쳐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실제로, 어린이들은 천적 창조주가 없다고 가르침을 받으면 정신이 헷갈립니다. 예를 들면 자녀들은 남자들이 집을 짓고 여자들이 떡을 만드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것들은 만든 자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아름다운 꽃이나 반짝이는 별도 만든 자가 있지 않을까 하고 추리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자녀들에게 성서에 있는 이치적인 설명을 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히브리 3:4) 성서에서는 우리를 만든 자가 없다고 비이치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줄 너희는 알찌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자시요 [우리 자신들이 아니니라]”고 가르친다는 점을 그들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시 100:3, 신세) 자녀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시 104:14)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이]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에 대하여 알리는 바를 또한 자녀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시 8:3) 이러한 성경적 진리는 자녀의 추리 감각을 만족시킬 것이며 우리의 위대하신 창조주에 대한 존경심을 배양해 줄 것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가르침이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필수적입니다.—잠언 22:6.
11. 부모는 하나님에 대하여 자녀에게 가르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를 이용할 수 있읍니까?
11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식을 길러줄 기회를 현명하게 포착해야 합니다. 아마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는 기회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아름다운 천체를 만드시고 각각 궤도에 진입시키실 때 나타내신 여호와의 지혜와 능력을 인상깊게 가르칠 수 있읍니다. (시 19:1, 2) 다른 때에, 아마 아름다운 꽃이나 찬란한 일몰 광경, 다양한 식물과 동물 생활을 구경할 때에 부모는 어린 자녀에게 이러한 놀라운 것과 훌륭한 것들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께서 인류에게 보이신 사랑의 증거물들이라고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 14:17; 마태 5:45)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가르침은 참으로 “비과학적”이 아닙니까?
12.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의 놀라운 것들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는 것은 왜 비과학적이 아닙니까? (ㄴ) 자녀가 자기를 돌보아 주시는 전능하신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왜 유익합니까?
12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영감받은 성서 필자가 오래 전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고 논평한 말은 그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참됩니다. (로마 1:20) 사실, 근년의 참 과학은 우주와 살아있는 모든 생물체가 참으로 감탄스럽게 설계되었음을 증명하는 광범위한 지식을 밝혀냄으로 능력과 지능이 풍부한 창조주가 참으로 계신다는 증거를 제공해 주었읍니다. 자녀들이 그러한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자녀들을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참으로 힘을 얻게 됩니다! (베드로 전 5:7) 이러한 지식은 그들로 그들이 오늘날 세상의 공포와 의심과 불안을 지나치게 걱정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정신적으로 감정적으로 긴장하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이며 안전감과 신뢰감을 주게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폭력과 증오에 반발하지 않고 하나님과 같은 사랑을 가지고 모두를 대하고자 할 것입니다.—시 23:1-6; 55:22; 이사야 41:10.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할 이유
13. 자녀에게 그릇된 일을 하지 말라고 말로 이야기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음이 왜 분명합니까?
13 그러나 단순히 자녀에게 하나님이 계시다고 가르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린 자녀에게는 또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 조건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하여 보십시오. 현대의 많은 부모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부모는 거짓말하는 것이 나쁘다, 도둑질, 기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나쁘다고 자녀에게 말합니다. 또한 어머니들은 흔히 딸들에게 결혼전 성관계는 나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수백만명의 자녀들은 이러한 그릇된 일을 하며, 심지어 그들이 이러한 일을 하는 동안에도 그들이 이러한 행동이 잘못이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분명히 자녀에게 말로 이야기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14. 자녀들이 흔히 성인들이 베푸는 교훈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주된 이유는 자녀들이 사람들의 말이나 본에 자기들이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쉽게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인들이 흔히 잘못이며 자기들의 품행의 기준이 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또한 자녀들은 성인들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은 다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음행을 행하는 것을 보고 발각되지만 않으면 혹은 손해가 없는 한 이러한 일을 해도 상관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이것은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청소년들은 그들이 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이나 행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15. (ㄱ) 자녀들이 악행을 피해야 하는 데는 어떠한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읍니까? (ㄴ) 이러한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을 아는 것은 왜 악행에 대한 대비책이 됩니까?
15 그러므로 분명히 자녀는 단순히 부모나 다른 사람이 순종을 원하는 것 이상으로 순종해야 할 더 중요한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르칠 필요가 있으며,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음행이나 기타 그릇된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실은 누구의 명령인가를 가르쳐야 합니다. (잠언 6:16-19; 마가 10:17-19; 히브리 13:4)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오는 이러한 교훈은 자녀에게 악행의 심각성을 인상 깊게 할 것입니다. 자녀는 그것이 관련된 인간의 말이 아니라 창조주 자신의 말씀 곧 생명의 수여자이시며 고의적인 범법자의 생명을 영원히 제거할 능력을 가지고 계신 분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계시 21:8) 또한 자녀는 성서의 가르침과 같이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잠언 15:3) 그러므로 자녀는 자기가 악행을 하면 반드시 여호와께서 보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시 11:4; 히브리 4:13.
16.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어떻게 악행에 대한 강력한 저지력이 될 것입니까?
16 그러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강력히 배워감에 따라 악행에 대한 더욱 중요한 저지력이 자녀의 내부에서 자라갈 것입니다. 성서 연구를 통하여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위대하신 창조주이실 뿐아니라 참으로 인류를 사랑하시는 실존자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사랑의 표현으로 아들을 땅에 보내어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회복시킬 기초를 마련하셨고 새로운 사물의 제도하의 낙원에서 인류가 영원한 생명을 즐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한 3:16; 베드로 후 3:13) 또한 자녀는 성서 연구를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제도에서 하나님께서는 인류로부터 오늘날 흔한 아픔과 고통과 눈물은 물론, 병과 죽음까지도 제거하여 주실 것임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계시 21:3, 4) 그때에 모든 사람은 친절하고 평화를 사랑할 것입니다. 사실 동물들도 평화로울 것이며 어린 자녀는 동물과 놀아도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사야 11:6-9; 시 37:9-11, 29) 자녀가 여호와의 이러한 놀라운 마련에 대하여 알게 됨에 따라 하나님께 대한 그의 사랑은 매우 강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하늘에 계신 놀라우신 아버지를 불쾌하게 하는 어떠한 일도 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 대한 자녀의 사랑과 인식은 하나님께서 그릇되다고 말씀하시는 어떠한 일도 하지 않도록 강력히 저지해 줄 것입니다.
17. (ㄱ)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자녀의 장래 생활에 유익할 것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읍니까? (ㄴ) 어떠한 성서의 본이 어렸을 때의 교육이 유익함을 알려줍니까?
17 그러나 초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받는 것이 자녀의 장래 생활에 유익할 것임을 참으로 확신할 수 있읍니까? 그렇습니다. 왜냐 하면 성서 잠언에서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알려 주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잠언 22:6) ‘히브리’인 ‘요셉’의 어렸을 때를 고려하여 보십시오. 그의 아버지 ‘야곱’은 분명히 그가 어렸을 때에 그에게 여호와와 그의 율법에 대하여 가르쳤을 것입니다. 후에 ‘요셉’은 가족과 친구로부터 멀리 이국 땅 ‘애굽’에 있게 되었읍니다. 거기에서 그가 ‘보디발’이라는 부호의 집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에 이 사람의 아내가 미남인 ‘요셉’을 유혹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 여자는 몇 차례에 걸쳐 “나와 동침하자!”고 그에게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요셉’은 번번히 거절하면서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고 설명하였읍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붙잡고 억지로 동침하게 하려하였을 때에도 그는 뿌리치고 도망하였읍니다. ‘요셉’이 악행을 범하지 않도록 막아준 것은 어렸을 때에 깊이 새긴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심과 사랑이었읍니다.—창세 39:1-12.
18. (ㄱ)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어떻게 유익합니까? (ㄴ) 왜 오늘날 청소년들이 참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읍니까?
18 당신은 오늘날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의 이러한 교육이 필요함을 인정합니까? 어린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도덕적 요구 조건을 인상깊게 가르치면 자녀들은 확실히 정직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흔히 성경의 지시가 너무 엄격하고 실망을 준다고 배척하고 있읍니다. 예를 들면 미혼자들 사이의 성관계를 금하는 일에 대하여 한 사람은 최근에 「뉴욕 타임즈 매거진」에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확실히 인생에는 좌절감을 느끼게 하는 면이 많으므로 고의적으로 좌절감을 조장할 필요는 없다. ···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인도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우리 자신을 충족시키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는 것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를 그와 같이 배척한 결과로 성병과 사생아 출산 및 낙태가 홍수를 이루고 있으며 고통과 비탄과 불행을 수반하고 있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교훈이 필요하다는 것이 참으로 분명합니다!—예레미야 10:23.
징계의 필요성
19. (ㄱ) 자녀는 선천적으로 의를 행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읍니까?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ㄴ) 징계를 가하는 데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19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는 일이 효과를 거두려면 사랑에 근거한 징계가 또한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선천적으로 의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감받은 잠언이 말하는 바와 같습니다.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 내느니라.” (잠언 22:15) “징계”라는 말은 틀잡고 시정하는 교육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징계는 자녀가 교훈에 일치하게 행동하고자 하는 자극을 받도록 자주 교훈을 반복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나 징계는 그 이상을 포함합니다. 대부분의 부모가 잘 알듯이 자녀는 흔히 말로만은 시정이 되지 않습니다. (잠언 29:17, 19) 그러므로 징계하는 교육에는 또한 자녀를 시정할 목적으로 징벌 혹은 처벌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징계에는 때리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까?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옛말이 참됩니까?
20. 징계 교육의 형태로 신체적 벌을 주는 것에 대한 세상 권위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무엇입니까?
20 자녀 교육 분야의 세상 권위자들은 흔히 ‘아닙니다. 자녀를 때려서는 결코 안됩니다. 자녀의 선천적 경향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그러한 강력한 조치를 취하므로 자녀에게 좌절감을 주지 마십시오’ 하고 말합니다. 1972년 4월 5일자 「뉴욕 타임즈」지 사설에는 이러한 말이 있었읍니다. “‘매를 아끼면 자식을 망친다’는 말은 ‘낡은 미덕’을 스스로 추천하여 옹호하는 사람들이 계속 동의하는 비뚤어진 속담이다. 더 크고 더 강한 사람이 계획적으로 고통스러운 벌을 주면 힘이 승리한다는 믿음 이외에 어떠한 것도 가르칠 수 있는 이유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올바릅니까? 자녀의 그릇된 행실을 시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신체적 벌을 주는 것이 잘못입니까?
21. (ㄱ) 자녀의 고집센 행동을 시정하기 위하여 신체적 벌을 가하는 것에 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ㄴ) 그와 같이 징계하는 것이 하나님의 길임을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21 하나님은 인간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분보다 더 높은 권위자는 없읍니다. 그의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해 매우 분명합니다. 그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무덤]에서 구원하리라.” (잠언 23:13, 14) 자녀의 생명이 달려 있읍니다. 만일 자녀가 그릇된 길을 추구하도록 방임한다면 그는 결국 불행하게 될 것이고 마침내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고 죽음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서는 이렇게 알려줍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잠언 13:24) 때리는 일을 포함하여 자녀를 시정하기 위하여 필요한 무엇인가를 행하는 것이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히브리 12:5, 6, 신세 참조.
22. (ㄱ) 하나님의 본이 알려주듯이, 징계를 주는 데 대한 부모의 동기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ㄴ) 오늘날 청소년 범죄가 놀랍게 증가하는 주원인은 무엇입니까?
22 하나님께서는 왜 자기의 자녀에게 이렇게 하십니까?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느니라.]” (히브리 12:7-11) 자녀들은 그러한 징계를 받아야 유익합니다. 그것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것의 일부입니다. (잠언 22:6) 그러한 징계를 세상이 거절하는 것이 청소년 범죄가 놀랍게 증가하고 그 결과 부모에게 고통과 수치가 오는 주원인입니다.—잠언 29:15.
23. 자녀들은 징계를 받을 때나 받지 못할 때에 어떠한 반응을 나타냅니까?
23 일반의 견해와는 달리 자녀들은 부모가 자녀의 활동에 이치적인 지침을 세워주고 제재를 가함으로 진정한 관심을 보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자녀는 징계를 받을 때 불평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자기들의 복지에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는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할줄 알게 됩니다. 반면에 부모가 자녀에게 절실히 필요한 징계를 가하지 않으면 자녀는 아마 부모를 원망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유명한 잡지에서 나쁜 행실에 빠져 자신과 가족에게 수치를 가져온 십오세 소녀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였읍니다. 그 소녀는 자기의 행실을 슬퍼하면서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아빠, 아빠가 몇년 전에 내가 올바른 처신을 하도록 감독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어요. 내가 말을 듣지 않을 때에는 말로만 타이를 것이 아니라 나를 때려주었어야 했어요. 내가 학교에서 모범생이 되지 않을 때에 왜 나를 그렇게 되도록 만들지 않었어요? 아빠는 내가 너무 우둔하여 더 좋은 성적을 도저히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세요?”—1969년 7월호 「매콜」지 114면.
24. (ㄱ) 부모는 자녀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읍니까? (ㄴ) 이러한 사랑을 나타낼 때에 어떠한 결과가 있을 것입니까?
24 부모들이여,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절대 필요한 징계를 가함으로 자녀를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현명한 충고를 청종하십시오. 여러분의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를 가르치십시오. 그들에게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심을 길러 주십시오.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이 여러분의 자녀를 ‘마땅히 행할 길로 가르치고 있으며 자녀들이 그 길을 벗어나지 않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잠언 22:6) 이렇게 한다면 그들은 마침내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새로운 사물의 제도에서 끝없는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이것을 즐기도록 준비시켜준 데 대하여 여러분에게 참으로 감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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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창조물을 구경할 때 부모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녀에게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식을 길러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