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하나님께서는 얼마 동안이나 나를 잊고 계실 것인가?
심한 압제와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당신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완전히 잊어 버리셨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을 기뻐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억누르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아무런 도움도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다윗’은, 아마도 ‘사울’ 왕으로부터 박해를 당할 때 또는 후에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와 같이 생각하였던 것같다. 그 기간이 얼마였든지 간에, ‘다윗’은 매우 비천한 신분으로 있던 오랫동안 시련을 당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자기를 잊어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 13:1) ‘다윗’에게는 여호와께서 불쾌하게 여기시어 그분의 얼굴을 숨기시고 그를 위하여 개입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내가 나의 영혼에 경영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리이까?]”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은, 언제까지 그가 처해 있는 괴로운 환경을 자신의 힘으로 저항해 나아가도록 버려지며, 언제까지 슬픔 속에서 세월을 보내게 될 것인가 하는 탄식을 뜻한 것같다.
다음에, 이 시편 필자는 “내 원수가 나를 쳐서 자긍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 하고 질문한다. 여호와께 버림을 받은 것같이 생각된 그는 언제까지, 그의 원수가 지배할 것인지 궁금하게 생각한다. 그는 이 질문에 뒤이어 다음과 같이 호소한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저를 이기었다 할까 하오며, 내가 요동될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 (시 13:2-4) 그렇다, ‘다윗’은 지존자께 자기의 간구를 들어 주시고 도움을 주시어 자기의 영을 일으켜 주셔서 눈을 “밝게” 해 달라고 열심히 탄원하였다. 그는 자기를 살리셔서 그의 원수들이 실제로 승리를 했다거나 자기가 비틀거리다 쓰러져 다시는 회복되지 못함으로써 그들이 즐거워하는 일이 없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비록 ‘다윗’은 자기가 여호와께 버림을 당한 것처럼 생각했어도, 그의 믿음은 여전히 강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마지막 말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나를 후대하심이로다.” (시 13:5, 6) ‘다윗’은 곤경 속에서도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 즉 적극적인 동정심을 의뢰하였으며, 희망과 즐거움을 가지고 시련으로부터 건짐을 받을 것을 기대하였다. 그는 여호와께서 과거에 자기를 어떻게 후대하셨는가를 상기하고 계속 찬양을 바칠 것을 결심하였다.
‘다윗’처럼, 우리도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웅대한 일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탁월하신 사랑의 표시로 그분의 독생자를 주셨다. (요한 3:16) 우리가 지존하신 분을 알게 된 이후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분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사랑스럽게 돌봐 주시고 도와 주시는 것을 경험해 왔다. 우리는 창조주께서 자기의 종들을 전체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후대해 오신 것을 알고 있으므로, 그분께서 필요할 때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특별한 시험을 받을 때, 우리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는 영감받은 말씀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베드로 전 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