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1, 2. (ㄱ) 우리의 생명은 얼마나 가치있는 것입니까? 그러나 ‘다윗’은 시편 63:3에서 생명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였읍니까? (ㄴ) 어떠한 의미에서 그러합니까? (욥 14:1, 2; 야고보 4:14)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이겠읍니까? 생명이 없다면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이 없으며 그것을 즐길 수도 없읍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시편 필자 ‘다윗’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주의 인자[사랑의 친절, 신세]가 생명보다 [낫나이다].”라고 읊은 것은 참으로 흥미있는 일입니다.—시 63:3.
2 ‘다윗’은 여호와의 은총을 상실하기보다 차라리 생명을 잃는 것이 낫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장래에 ‘다윗’이 소유하고 즐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읍니다. 또한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동정심을 보이시고 그를 충실하게 지원해 주신 여러 가지 예를 기억하고 있었읍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을 증거해 주는 것이었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에게는 그러한 사랑의 친절이 인간으로 잠시 누리는 현재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었읍니다. (역대 상 29:14, 15) 당신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오늘 살아 있다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현재의 생명보다 당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 즉 그분의 충성스러운 사랑이 더 가치있지 않겠습니까?
3. ‘다윗’은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였으며, 우리 각자는 어떻게 자문해 보는 것이 적절합니까?
3 그러나 ‘다윗’은 단지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의 가치를 깨닫는 것으로 그쳤읍니까? 아닙니다. 그가 어떠한 반응을 나타냈는지 유의하십시오. “주의 인자[사랑의 친절, 신세]가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리이다].” (시 63:3, 4)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에 깊은 감사를 느꼈기 때문에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에게 감사를 나타내었읍니다. 앞 기사에서 토론한 바와 같이 우리 각자에게는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해야 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 생활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생활은 그러합니까? 하루나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 갔는데도 그동안 하나님을 생각하지도 않고 대화에서 그분을 언급하지도 않은 경우가 있었읍니까? 아니면 여호와에 관하여 자주 이야기하고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하신 일 때문에 자연히 그분을 찬양하게 됩니까? 당신은 시편 107:21, 22이 알려주는 정신 태도를 매일 반영하고 있읍니까?
4. 이 점과 관련하여 왜 우리는 좋은 소식을 선포해야 합니까?
4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은 분명히 그분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를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사도 14:1-3; 20:24) 좋은 소식은 듣는 사람의 생명을 구출해 줄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좋은 소식이 널리 전파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로마 10:9-15.
5. (ㄱ) 왜 우리의 증거가 부정적이 될 수 있읍니까? (ㄴ) 그러나 왜 어떤 경우에는 그러한 내용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5 참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성서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이 거짓 교리와 성서의 가르침을 왜곡시킨 내용들임을 잘 알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의식 중에 부정적인 면을 주로 증거하게 될 수 있읍니다. 주로 성서가 가르치지 않는 것—성서가 삼위일체나 불타는 지옥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 인간은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 지구가 불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등—을 증거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 14:28; 에스겔 18:4; 전도 9:5, 10; 1:4) 우리의 증거를 듣는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믿음을 시정하는 데 도움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우리가 오류를 지적해 줌으로써 그들이 참 종교와 거짓 종교를 분별하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증거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내용으로 일관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합니다.
6. 왜 우리의 공개적 선포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점들이 포함되어야 합니까?
6 우리의 “공개적 선포”에는 여호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적극적인 점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찬미의 제사”를 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 13:15, 신세; 시 107:21, 22 비교) 예를 들어 우리는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가를 강조할 수 있읍니다. ‘그분만이 지존자’이심을 알려 줄 수 있읍니다. (시 83:18) 그분과 그분의 아들을 올바로 아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의미함을 설명해 줄 수 있읍니다. (요한 17:3) 또한 사람들을 이끄는 그분의 훌륭한 성품들 즉 자비, 탁월한 지혜, 명철, 관대함, 충실함, 사랑의 친절 등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신명 32:4; 야고보 1:17; 시 84:11.
7.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을 강조할 수 있으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읍니까?
7 우리 각자는 이러한 긍정적인 부면을 더 강조하기 위하여 자신의 “공개적 선포”를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정기적으로 가족 연구를 사회하거나 다른 사람과 성서 연구를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을 강조할 수 있읍니까? 어떤 성서적인 사건이나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토론할 때 우리는 간단히 하나님과 관련된 어떤 사실이 거기에 나타나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읍니다. 혹은 토론되고 있는 점은 여호와에 관하여 어떤 점을 이해하도록 연구생에게 도움이 되는지 물어 볼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 그 연구생은 여호와에게 더 가까와지고, 하나님은 그에게 더 실제적이고 친숙한 분이 될 것이며 이러한 훌륭한 하나님에 관하여 더 배우고 그분을 찬양하도록 자극을 받을 것입니다.—시 147:1, 11.
우리의 대화에서 감사함을 나타냄
8. 다른 어떤 때에도 우리는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읍니까?
8 여호와와 그분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하는 일은 비단 사람들에게 성서 진리를 가르칠 때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일상 대화에서는 어떠합니까? 예수께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한다고 하셨읍니다. (마태 12:34)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을 올바로 인식한다면 일상 대화에서 그러한 점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기록한 시편 필자의 경우가 그러하였읍니다. “지존자여 ··· 여호와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사랑의 친절, 신세]을 나타내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시 92:1-3.
9. (ㄱ) 하나님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보통 어떻게 봅니까? (ㄴ) 그러한 견해는 우리의 태도와 어떻게 대조됩니까? (시 107:31, 32)
9 당신은 대부분의 사람들 심지어 하나님을 숭배한다고 하는 교인들마저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별로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특히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연관이 있음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유치하거나 귀찮은 일로 받아 들여집니다. 어떤 경우에는 실제로 하나님과 개인적인 관계가 없기 때문일 수도 있읍니다. 어쨌든 여호와와 그분의 목적에 관하여 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다음과 같이 자문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나는 세상의 영향을 받아서 내가 하나님과 관련되어 있으며 그분이 나의 생활과 생각의 일부임을 대화에서 나타내는 데 주저하게 되었는가?’ 여호와는 분명히 우리 생활의 일부이며 우리의 사상 가운데 들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정규적으로 그분의 축복과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그분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우리의 대화에서 그분을 언급하며 그분의 활동과 목적에 우리가 관심이 있음을 나타내야 합니다.
10. 어떠한 성서의 충고가 하나님에 관하여 정기적으로 말하도록 권고합니까?
10 물론 우리는 스스로 의로운 체한다는 인상을 주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일부러 경건한 체하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읍니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경건을 나타내는 위선적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정죄하셨읍니다. (마태 6:1-5) 그러나 성서는 여호와를 계속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러므로 마태 6:1-5의 권고에 유의하고 스스로 의로운 체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그분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태도로 확신있게 그분의 행적이나 사물의 처리 방식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 거기에는 그분이 우리를 대해 오신 방법이나 우리가 그분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점도 포함됩니다.
11. 시편 34:1의 사상과 일치하게 대화에 하나님을 포함시킬 수 있는 어떤 기회들이 있읍니까?
11 하루를 보내는 동안 가족, 그리스도인 벗 혹은 학교나 직장 동료, 이웃 사람들과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하여 이야기하게 될지 모릅니다. 아마 분위기가 진지하고 자연스럽게 하나님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도록 조성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해변이나 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여호와의 창조물을 즐긴 일에 관하여 이야기합니까? 하나님의 창조물의 아름다움과 그것이 주는 평온감에 대해 감사를 느낀다면 당신은 그 점에 관하여 이야기해 줄 수 있읍니다.
12. 참 숭배자가 아닌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하나님에 관하여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읍니까?
12 믿지 않는 자와 대화를 하는 경우에도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에 관하여 간단히 언급할 수 있읍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사물에서 얻는 즐거움을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 (사도 4:24; 14:15) 당신의 일반적인 대화에 하나님이 포함되는 것에 아무도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것은 항상 그분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자녀 교육에 성공한 것을 보고 자녀 교육 방법을 물어 올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당신은 자녀 교육에 관해 현명한 충고를 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대답에 간단히 포함시킬 수 있읍니다. (시 19:7) 어떤 직장 동료는 당신이 “즐거움”을 위해서 휴가를 온전히 사용하지 않고 그 일부를 그리스도인 대회에 참석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보고 질문할지 모릅니다. 그런 경우 당신은 창조주의 사랑의 친절과 뜻에 관하여 더 많이 배우는 즐거움을 성실하게 지적해 줄 수 있읍니다. (시 100:3-5) 우리는 그러한 간단한 몇 마디가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알 수 없읍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에 관하여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지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행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 있고 우리의 혀에 있기 때문입니다.—시 45:1.
13. (ㄱ) 우리가 동료 숭배자들과 대화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것이 왜 훨씬 더 자연스럽습니까? (ㄴ) 이렇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들어 보십시오.
13 우리가 믿지 않는 자와의 대화에서 구미에 맞고 정도에 지나치지 않는 범위에서 자주 하나님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래야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동료 그리스도인들과는 우리가 훨씬 더 가벼운 기분으로 우리의 활동, 계획, 느낌 등에 관하여 이야기할 수 있읍니다. 따라서 그러한 대화에서 우리는 시편 92:1-3에 지적된 것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활동에 대하여 이야기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왕국회관을 위해 어떤 작업이 진행중일지 모릅니다. 당신은 회중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 감사함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새로운 성서 연구 보조 서적을 받을 때 당신이 진심에서 그것을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의 증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점을 대화에서 언급하십시오. 그 책에 들어 있는 흥미있는 새로운 점들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어떠합니까? 이러한 점들을 독선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겸손하게 즐거운 기분으로 형제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 당신의 대화에서 흘러나온 여러 가지 영적인 것들을 통해 모든 사람이 격려를 받을 것입니다.
감사할 이유를 찾는 데 깨어 있음
14. 하나님의 선하심과 관련하여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까?
14 어떤 사람이 얼마의 쇳가루를 섞은 모래를 한 접시 주었다고 합시다. 그 쇳가루를 모래에서 골라 내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자석을 사용하면 쉽게 모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 대한 감사로 가득차 있는 마음은 마치 그러한 자석과 같습니다.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쇠보다 더 가치있고 금보다도 더 귀중한 그분의 친절과 관대함이 나타난 여러 가지 예들을 언제나 쉽게 찾아낼 수 있읍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려 주는 증거에 깨어 있다면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것이 더 쉽고 자연스러워질 것입니다.—잠언 3:3, 4, 13-18.
15. 우리가 여호와께 감사할 수 있는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에베소 5:20)
15 우리는 여호와의 창조물을 매일 보고 있읍니다. 그러한 창조물을 살펴보면 전체 인류를 위한 여호와의 친절한 마련을 알려 주는 것들로 가득차 있읍니다. 새끼 고양이 두 마리가 풀밭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들의 익살스러운 점 때문에 웃음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러한 것을 보면서 당신은 여호와를 기억하고 그분이 창조물에서 느끼실 즐거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까? 성서에서는 그분을 “행복하신 하나님”이라고 하였읍니다. (디모데 전 1:11, 신세) 그러므로 새끼 고양이, 수달 혹은 기타 동물들이 노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즐거움이나 그분의 ‘유모어’감에 관하여 생각해 볼 수 있읍니다. 신선한 사과를 먹거나 더운 여름에 맛있는 참외를 먹는 것은 어떻습니까? (시 145:8, 15-17) 아름다운 향기 하면 당신은 어떤 꽃이나 향긋한 풀 냄새 혹은 ‘클로우버’ 향기를 생각하십니까? 사려깊게도 이런 훌륭한 것들을 마련해 주시고 감각 기관을 주어 즐기게 하신 여호와께 감사드리는 것이 적절하지 않습니까?
16.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하여 깨어 있고 그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읍니까?
16 ‘뉴우요오크’주 북부에 사는 네살된 한 아이는 식사를 하다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엄마, 여호와가 얼굴을 앞에 있게 하셔서 먹을 수 있으니 참 좋지” 하고 말하였읍니다. 어린이다운 순진함에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그 아이는 사물을 으례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그 아이의 꾸밈없는 성실한 이야기를 통해 그 주위에 있는 모두가 여호와에 관해 생각해 보고 그분이 하신 일들에 대해 더 깊은 인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면서 경험하는 그분의 사랑의 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그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읍니다.
노래와 기도로 감사를 나타냄
17, 18 (ㄱ) ‘이스라엘’인들은 감사를 나타내는 데 노래를 어떻게 사용하였읍니까? (ㄴ) 마가 14:26은 예수와 사도들이 어떻게 했다고 알려 줍니까? (사도 16:25)
17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할 수 있는 또 다른 한 가지 방법은 노래로 감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노래는 오랫 동안 참 숭배의 한 가지 특징이 되어 왔읍니다. (출애굽 15:1-21; 시 1-150; 역대 하 29:27; 계시 15:3, 4) ‘예루살렘’ 성전에서 어떤 ‘레위’인들은 악기를 연주하였고 어떤 ‘레위’인들은 노래하였읍니다. 그 의미와 목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읍니다. 성서에 의하면 그들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였읍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여호와의 자비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역대 상 16:4, 41, 42; 9:33.
18 그 점과 관련하여 당신은 예수와 그의 사도들도 노래를 하였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그들도 노래하였으며 그것을 즐거워하였읍니다. 마가 14:26은 그들이 지상에서 함께 한 마지막 날 밤에 찬양의 노래를 하였다고 알려 줍니다. ‘유대’ 습관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유월절 식사 때 시편 113편에서 118편까지 노래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그분의 충실한 열 한 사도는 시편 118편을 노래하는 것으로 유월절 식사를 마쳤을지 모릅니다. 그 시편 118편을 보면 그 시작과 끝이 다음과 같은 말로 되어 있읍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사랑의 친절, 신세]이 영원함이로다.”
19. 회중적으로 부르는 노래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 합니까? (에베소 5:18, 19)
19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역시 노래로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를 나타낼 기회가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의 집회에서 성서 내용에 근거한 노래를 부를 때 당신은 그 시간을 여호와를 찬양하고 그분께 감사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 들입니까? 아니면 노래할 때 다른 것을 하고 있읍니까? 혹은 입술로는 가사를 말하면서도 생각은 다른 데 가 있읍니까? 이런 일이 있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노래를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를 나타내는 방법으로 생각한다면 참으로 훌륭한 일입니다.
20. (ㄱ) 하나님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하는 데 기도는 어떠한 역할을 합니까? (골로새 1:9-12) (ㄴ) 다니엘 6:10에 의하면 ‘다니엘’은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어떠한 훌륭한 본을 보였읍니까?
20 기도는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그분께 감사를 나타낼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당신은 아마 정규적으로 여호와께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일을 더 확대할 수 있읍니까? 그분에게 자신이나 가족, 회중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단지 요청만 하는 습관에 빠지기 쉽습니다. 당신이 부모라면 자녀가 당신에게 충고나 도움을 구할 때 분명히 즐거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녀가 당신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읍니까? “아버지, 저희들이 아버지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엄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또한 아버지는 인자하시기도 하세요 아버지는 저희들의 가장 훌륭한 벗이에요.” 그러한 성실한 표현을 들을 때 당신이 참으로 즐거움을 느낀다면, 우리가 기도에 감사와 찬양을 포함시킬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느끼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언자 ‘다니엘’은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 훌륭한 본을 보였읍니다. 성서는 ‘다니엘’이 기도로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말하고 있읍니다.—다니엘 6:10.
21. 우리의 기도로써 일반적인 것들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점들도 말할 수 있읍니까?
21 기도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선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당신은 어린 아이가 ‘아이스 크리임’이나 재미있는 뱃놀이, 방학 등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읍니까? 우리도 일반적으로만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대신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할 수 있지 않겠읍니까? 당신이 전파 활동에서 훌륭한 경험을 하였다면 그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감사함을 나타내십시오. 아마 당신이 선물을 받았다면 선물한 사람에게 감사를 표시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만물의 창조주에게 감사드리는 것은 어떠합니까? 어떤 중요한 문제에 관한 성서의 충고를 이해하게 되었읍니까? 기도로 당신은 감사를 나타낼 수 있읍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표하여 기도할 특권을 받았다면 모두가 느끼는 하나님의 축복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있읍니다.—시 42:8.
22. 결론적으로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에 대하여 감사함을 나타낼 수 있으며, 어떠한 정신 태도를 나타낼 수 있읍니까?
22 하나님의 승인받은 종인 우리에게 그분이 나타내신 여러 가지 사랑의 친절의 증거들이 있읍니다. 그러한 증거들에 깨어 있다면 우리는 항상 그러한 점들을 볼 수 있읍니다. (시 107:43) 그리고 우리 각자는 하나님에 관하여 말함으로써 감사함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언제,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읍니까? 전파하고 가르치는 활동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동료 그리스도인들이나 다른 사람들과 일반적인 대화를 나눌 때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노래와 기도를 통해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150편이 묘사한 것처럼 모든 피조물이 연합하여 여호와를 찬양할 때를 우리가 기다리고 있지만 바로 지금도 우리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시편 59:16, 17에서 ‘다윗’이 지적한 정신 태도를 반영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