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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다리가 필요한가?깨어라!—1974 |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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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위적인 도움은 매우 제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린 아이들이 다 성장할 때까지는 의지를 때때로 새로 만들어야 한다. 성인들일찌라도 종종 새로운 의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은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모든 수고는 단지 임시변통이며, 그와 함께 많은 문제들과 눈물겨운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진실한 해방이 있다. 성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절름발이를 실제로 고치셨음을 알려 준다. (누가 5:17-25) 이것은 장차 올 일 즉 “뜻이 ··· 이루어지[옵소서]”라는 주기도문을 반복할 때 당신이 기도해온 일을 전영한 것이다. (마태 6:9, 10) 성서 마지막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위안이 되는 약속을 알려준다. “[하나님께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 21:4) 이것은 인간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져오실 완전한 원상 복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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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에 대한 의학적 연구—옳은가, 그른가?깨어라!—1974 |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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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견해는 무엇인가?
태아에 대한 의학적 연구—옳은가, 그른가?
전세계 도처의 수술대 위에서는 조그마한 인간 몸들이 해부되고 있다. 그들의 심장은 아직도 힘차게 뛰고 있고 대부분의 기관들도 기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완전한 인간 태아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어머니 자궁으로부터 떼어낸 것들이다.
그러나 수술시 의사는 “태아가 아품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하여” 뇌와 신체 사이에 연결되어 있는 선을 교묘히 자른다. 그런 다음 그는 재빨리 아직도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조그마한 두뇌, 허파, 간, 및 신장 등을 떼어낸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는 그 작은 몸을 그대로 놔두고 인공적으로 수시간, 가능할 때는 수일간 살아있게 한다. 이러한 연구 과정은 합법적 낙태로 생긴 살아있는 태아를 이용할 수 있는 수개국에서 공통적으로 있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토록 생명에 대한 비정한 행동에 관한 글을 읽고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 의사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쉽게 얻을 수 없는 가치있는 의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태아가 “보통 행해지듯이 소각로에” 버려지기 전 어떤 유용한 지식을 얻으려 하지 않는 것이 비도덕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의학계의 권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 태아를 어린아이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한 조각의 조직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 조각의 조직”에 불과한가?
그러한 견해는 실제로 옳은가? 이 작은 신체가, 심지어 생물학적 견지에서도 “한 조각의 조직에 불과”한가? 생명의 수여자도 그것을 그렇게 보시는가? 성서의 견해는 우리를 자기 합리화하는 태도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실제 문제들의 성격을 명백하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성서는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견해가 출생 후가 아니라 출생 전에 시작됨을 알려 준다. 시편 필자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께서 ··· 나의 모태에서 나를 조직하셨나이다.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시 139:13-16; ‘리서’역 비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태를 하나의 개체로 보신 것이 분명하다. 「브리타니카 백과 사전」도 이에 동의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독특한 생물체로서의 각 개인의 생명의 역사는 [수태]와 더불어 시작된다.” 사실 인간 태아는 그 모체와 대단히 “독특”하기 때문에 방해하는 것이 없다면, 모체의 면역성 방어력은 태아를 이물질과 같이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특별한 영양아층(營養芽層) 세포가 나중엔 “태반”이 태아를 보호한다. ‘태아를 어머니 뱃속에 싸주’(신세)었다고 묘사한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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