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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사랑은 얼마나 진실한가?
    파수대—1980 | 1월
    • 보면 그가 예수의 이러한 말씀을 잘 기억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 전 4:8) 허다하다는 것은 많은 수가 아닌가? 사실 잠언 10:12에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고 하였다.

      가정 내에서도 날마다 용서해야 할 참으로 많은 기회들이 있다! 남편과 아내가 상호간에 관계에 있어서 또는 자녀들은 물론 부모들도 하찮은 작은 실수를 하며, 간혹 큰 잘못을 하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 다른 가족 성원들이 어떻게 응해야 하는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니! 왜 그런 짓을 했니?’라는 식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가? 아니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동정적인 애정으로 대하여 결과를 최소로 줄이거나 누그러지게 하는가? ‘잘 용서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야말로 행복한 결혼이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로 뭉쳐진 더 큰 영적 가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므로 회중을 이끌어 가는 사람이나 어떤 나라에서 인도하는 사람들도 때때로 기대에 어긋나게 행하거나 그릇 판단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은 그들의 감독을 받는 사람에게 진정한 시험이 된다.

      ‘잘 용서하는 두 사람의 결합이야말로 행복한 결혼이다’라고 말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의 행복도 영적 형제 자매들간에 서로 기꺼이 용서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서로 사랑함으로써 그분의 제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요한 13:34, 35) 그들의 사랑이 진실하게 되려면 그 사랑에 기꺼이 용서해 주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 “왕국 노래”에서 이렇게 알려 주는 바와 같다.

      “우리 서로 용서하면 심한 슬픔 없나니, 위로부터 온 이 성품 우리 서로 본받세. ·⁠·⁠· 참된 용서 미덕이니 우리 모두 기르세. 분노하고 미워함도 용서하면 없도다.”

      사실상, 진실한 사랑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혜와 공의까지도 우리가 용서하는 것을 권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용서는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일종의 주는 일인 용서함은 더 큰 행복을 가져오지 않겠는가? (마태 18:35; 사도 20:35) 공의 또한 우리가 용서할 것을 권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형제들에게 그릇된 동기를 나타내거나 그들을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무가치하다고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의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받고자 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동기를 나쁘게 혹은 가혹하게 판단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형제들에 대하여 용서해 주고자 할 것이다.—누가 6:31.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용서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은 현명한 일이며 공의로운 일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비이기적인 사랑에 찬 일이며 우리의 사랑이 진실한 것임을 증명해 준다.

  •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
    파수대—1980 | 1월
    •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고유한 이름(히브리어로 자음 “yhwh”로 표기되나 보통 용어로는 “Jehovah”라고 표기됨)이 원래 ‘신약’이라고 하는 책에도 들어 있었음을 알리는 증거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에 관한 한 학술지의 기사를 요약하면서 최근의 한 간행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교 전 희랍어 ‘구약’[사본]에는 흔히 생각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yhwh)이 키리오스[주]로 바뀌지 않았다. 대개 이 테트라그람(네 글자)은 아람어나 고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 훗날에 와서 이 테트라그람은 데오스[하나님]와 키리오스와 같은 대용어로 바뀌었다. ·⁠·⁠· 신약에서도 비슷한 형태를 취하였을 것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원래 신약에서는 구약을 인용하고 구약을 언급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그것은 대용어로 대치되었다.”—신약 개요 1977년 3월 호 30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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