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행복한 장래를 맞이할 수 있다
통용 기원 제1세기에 발생했던 두드러진 한 사건은, 우리가 성공적인 장래를 계획하고자 할 때, 어떻게 통상적인 지혜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당시 세계의 상당 부분은 ‘로마’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향이었던 ‘팔레스타인’은 거대한 ‘로마’ 제국 중 작은 일부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유대’인들은 커다란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 치하에서 반항적이었으며, 때때로 반역을 하였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자기들 편이라는 통상적인 지혜가 있었다.
제1세기 60년대에, ‘유대’인들은 ‘로마’의 멍에를 벗어버리기 위한 만만치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로마’ 군대가 그들을 치러와서 ‘예루살렘’ 도시를 거의 취할뻔 하였으나, 그 순간 퇴각해 버렸다. 반역자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미 그 도시가 멸망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따라서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인들의 퇴각을 그 도시에서 도망할 기회로 이용하였다. (마태 23:33-39; 누가 21:20-24) 그들이 떠난 뒤 오래지 않아서, ‘로마’인들은 되돌아 왔다.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시는 멸망되었으며, 그 주민은 살륙당하거나 종으로 팔려갔다. 예수의 경고를 지혜롭게 청종한 사람들만이 그 무시무시한 경험을 피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성서의 말씀이 참됨을 극적으로 증명해 준 것이었다. “지혜도 보호하는 것이 되고 돈도 보호하는 것이 되나 지식이 더욱 아름다움은 지혜는 지혜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함이니라.” (전도 7:12)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의 추종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지식을 주셨다. 그들은 그 지식에 따라 지혜롭게 행동하였으며, 그 “하나님의 지혜”는 돈, 세속 교육과 같은 것들이 전혀 무가치한 상황에서 그들을 구해 주었다.—고린도 전 1:21.
오늘날의 불확실한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당한 것과 같은 종말을 당하게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한다. 그들이 장래를 위해 세우는 모든 계획들은 그들 개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대격변으로 인해 무산되어 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제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종류의 지식—장래에 실제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이해와 가장 지혜로운 행로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러한 지식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가?
생각해낼 수 있는 온갖 제목들을 다루는 수많은 책들이 매년 발행된다. 하지만 이 모든 정보에도 불구하고 장래의 전망은 위협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른 모든 출판물과는 다른 한권의 책이 있다. 그 책은 ‘솔로몬’의 시대가 이르기도 전에 이미 저술되기 시작하였으며, 그 속에는 “찌르는 채찍”, 곧 잘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찔러 주는 것과 같은 ‘지혜의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전도 12:11)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을 즈음에는 이 책의 상당 부분이 이미 기록되었으며, 그분은 그 책 속의 교훈들을 자유 자재로 사용하시어 자신의 추종자들이 지혜롭게 행동하도록 도우셨다. 예수께서는 이 지혜의 말씀을 언급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태 4:4.
그 책은 말할 것도 없이 성서(聖書)이다. 그러나 성서는 오늘날 끊임없이 줄지어 발행되는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한 가지는 그 책이 전혀 다른 지식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사람이 어떻게 창조되었으며 왜 죽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리를 다른 어디에서 배울 수 있는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른 어떤 책에서 대답해 주는가? 즉 하나님께서는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인생에는 목적이 있는가? 성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종류의 다른 많은 질문들에 대해 진실한 답을 제시해 준다.
성서에서는 또한 일상 생활에 대한 현명하고 실용적인 교훈들을 알려 준다. 성서는 술취함, 성적 부도덕, 신체적인 더러움이 가져오는 나쁜 결과들에 대해 경고한다. 그 책은 사랑, 자제 및 비이기적인 태도에서 오는 유익한 결과를 강조한다. 행복한 가정 생활을 이루는 데 정말 효과적이며 가치있는 도움을 베풀어 주는, 결혼 생활에 대한 표준을 제시한다. 성서의 교훈을 따른다면, 우리는 보상을 가져다 주는 장래를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고린도 전 6:9-11; 13:4-8; 갈라디아 5:22-24; 에베소 5:21-6:4.
꼭 필요한 지식
그러나, 성서는 특히 우리에게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관해 알려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 여호와께서는 모든 지식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분에 관해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심지어 인간들이 창조와 우주에 관해서 배우는 것들까지도 하나님에 관해 무엇인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것이다! 성서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참으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이 그가 만드신 만물을 통하여 분명히 알려져 있다.’ (시 19:1; 로마 1:20, 새번역) 하나님을 고려에 넣지 않는 연구가와 과학자들은 그릇된 혹은 불완전한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여호와에 관해 배우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땅과 인류에 대한 목적을 가지고 계시다고 성서에서 알려 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인간이 무엇을 이룩하려고 하든지 간에,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국 헛수고를 하게 될 것이다.—시 127:1.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솔로몬’ 왕은 말했다. (잠언 1:7) 그러한 지식에 기초한 지혜는 인간이 장래를 위해 계획하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 그러나 또한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훌륭한 고문”이라고 밝혀 준다. (이사야 9:6, 신세)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무시하고서야 어떻게 장래를 위한 성공적인 계획을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성서에 보존되어 있는 그분의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청종해야 한다. (요한 6:68, 새번역) 더우기,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위대한 왕이시며, 모든 인류를 심판하실 분임을 인정해야 한다. (요한 5:22) 그리고 그분이 인류의 죄를 위해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심으로 보이신 위대한 사랑에 반응을 보여야 한다.—요한 3:16; 요한 1서 2:1, 2.
그렇다. 예수께서는 인류 역사상 중요한 인물이시며, 그분을 고려해 넣지 않고 세운 계획은 그 어느 것도 기대할 수 없는 계획이 되고 말 것이다. 이 점은 예언자 ‘다니엘’이 그분에 관해 말한 바를 고려할 때 특히 참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다니엘 2:44; 시 2:1, 9) 그러므로 조만간,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하나님의 왕국이 이 땅의 모든 왕국들을 대치할 것이다. 이런 일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현재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들—오염 문제, 핵 전쟁의 위협, 경제적 및 정치적 불안정—이 조만간 과거지사가 될 것이다. (계시 11:18) 그렇다. 왕국 통치 아래 있을 다가오는 지상 낙원에서 누리게 될 우리의 장래는 실로 행복할 수 있다.—누가 23:43.
이러한 지식은, 우리가 세계 통치자들이 위기들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균형 감각을 갖게 해준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문제가 하나 있다.
지혜를 두려워하지 말라
제1세기에 예수께서는 그때까지 아무도 가르치지 않은 방법으로 가르치셨다. 그분은 병든 자와 맹인과 절름발이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를 일으키셨을 때, 자신의 권위를 보이셨다. (마태 11:5, 6) 이러한 놀라운 기적들에 더하여,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활 방식에서 흠을 보이지 않으셨다. (히브리 7:26) 분명히 그러한 점들은 예수께서 오래 전에 약속된 메시야임을 증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분은 통상적인 지혜에 따라 전파하시지 않았으며, 그래서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그분을 배척하였다.
수년 후, 그리스도의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전파하였다. ‘바울’의 진실한 말을 듣고서, ‘아그립바’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네가 짧은 시간에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사도 26:28, 난외주) 분명히 그는 그 소식이 가지고 있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소식은 통상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았으며, 그의 생활 방식에 큰 변화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아그립바’는 평생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았다.
‘아그립바’ 왕이나 ‘유대’인들이 예수의 말씀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들이기보다는 통상적인 지혜를 따르는 것이 훨씬 더 쉽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전하신 소식에 분명한 반응을 보였던 ‘유대’인들만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살아남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지혜에 반응을 보임으로써만, 우리 인간들은 장래를 계획하는 데 있어서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제도가 지속되는 한 우리 역시 생활을 계획할 때에 상식을 따라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장래를 위해 세우는 모든 계획을 현 사물의 제도에 의지해서 세운다면, 결국 허사가 되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현 제도의 끝이 가깝기 때문이다. 성서를 주의 깊이 읽어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배우는 것이야말로 참 지혜의 길이다. 우리는 성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하여, 지금 우리에 대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성실하게 그 뜻을 수행한다면, 지혜롭게 행동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의 이부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 (야고보 3:13-17) 그러한 지혜는 참으로 ‘그 얻은 자의 생명을 보존’할 것이다! (전도 7:12) 그러한 지혜는 행복한 장래를 성공적으로 계획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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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혜”는 돈이 무가치하게 된 상황에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구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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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으로부터 온 지식에 기초한 지혜는 인간이 장래를 위해 계획하는 데 진정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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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를 주의 깊이 연구해 보면,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철장으로 열방을 깨뜨릴’ 것임을 알려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