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견해 1
자녀들에게 매를 사용해야 하는가?
당신은 버릇없이 구는 자녀들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시끄럽게 방해하는 것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당신은 그 때 이렇게 생각하였을지 모른다. “만일 저 애가 내 자녀라면 궁둥이를 호되게 때려 줄 텐데.” 반대로, 아마 당신은 어린 아이가 칭얼거리며 우는 데 화가 난 부모가 아이를 마구 때리는 것을 보았을지 모른다. 당신은 부모가 때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왜냐 하면 그것은 종종 무자비한 데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징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부모로서 해야 할 가장 어려운 결정 중 하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매를 사용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은 가정 폭력의 또 다른 일면인가? (3-18면을 보라)
소아 전문의들과 심리학자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은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매를 사용하는 일을 반대하였다. (1978년 3월 4일자) 「사이언스 뉴우스」지에서 ‘R. S. 웰쉬’ 박사는 이와같이 기술하였다. “가정과 학교에서 체형을 용인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매를 사용하는 일이 강자가 힘으로 다스릴 수 있으며, 격분한 폭력이 합당한 행위라는 나쁜 훈계를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부 권위자들은 다르게 생각한다. ‘노우드웨스턴’ 아동 지도 보호소장인 ‘소인느 토르마’의 말을 인용하여 한 신문은 이렇게 말하였다. “‘징계는 있어야 하며, 명령도 있어야 한다.’ 여기의 그의 말에는 ‘잘못한 일에 대하여 매를 사용하는 한’ 매를 사용하는 것”도 의미한다. 그리고 「징계를 단행하라」에서 ‘제임스 도브슨’ 박사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부모들이 폭력적으로 처신함으로써 자기 자녀들에게 적대감과 공격심을 자아내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 ··· 하지만, 자녀가 머리를 떨구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면 그것은 해 볼테면 해 보라 하고 부모에게 도전하는 것이다. 만일 아버지가 적절하게 (궁둥이를) 때려 준다면 자녀에게 가치있는 교훈을 한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교육 방법과 일치한 것이다.”
사실상, 하나님의 말씀은 자녀 징계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충고의 원천이다. 왜냐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셨으며, 성공과 실패를 본 무수한 가정을 보아 오셨기 때문이다.
사랑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교훈하신다. “여러분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그들을 여호와의 징계와 정신적 단속으로 양육하십시오.” (에베소 6:4, 신세) 징계—사람을 형성해 가는 교훈과 훈련은 사랑의 표현일 수 있다. “내 아들아 ··· 주[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느니라.] ···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 그것은 가정내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히브리 12:4-11.
그러나 사랑의 징계에는 부모가 매를 사용하는 것을 포함하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매를 사용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이며, 사랑과 일치한 방법으로 행해질 때 분명히 그럴 수 있다. 영감받은 성서 잠언의 다음 귀절을 고려해 보라.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22:15)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찌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 (23:13, 14)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13:24)
여기 “채찍”이라는 말은 신체적인 벌이 으례히 따르는 부모들로부터의 여러 가지 형태의 징계를 망라할 수 있다. 그들이 손이나 나무잣대로 하든지 아니면 어떤 다른 종류의 적절한 “채찍”으로 하든지 간에 부모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그들의 자녀를 사랑스럽게 때리는 권위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성서는 부모들이 폭력적인 노여움에 빠지지 않도록 강력한 충고를 해 줌으로써 과도한 징계를 피하게 도와 준다. (잠언 16:32; 25:28; 골로새 3:8) 만일 부모가 노를 제어하라는 이러한 충고를 무시하고 격분해서 자녀를 난폭하게 때린다면, 그것은 징계가 사랑의 표현이라고 말한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것이다. 성서는 결코 상처를 입히거나 심지어 어린 자녀가 불구가 될 정도의 심한 채찍질이나 구타를 승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녀를 학대하는 것이지 사랑하는 징계가 아니다.
현명한 부모라면 자녀를 시정하거나 벌을 주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때때로 엄한 말로도 충분하다. 어떤 경우는 불순종한 자녀를 일시 격리시켜 놓을 수 있다. 자녀가 어리기 때문에 어린 아이다운 부주의나 무책임으로 어떤 것을 엎지르거나 깨뜨렸을 경우에는 자녀가 그것을 치우거나 가능한 경우라면 다시 만들어 놓도록 하는 것이 흔히 효과적이다. 물론, 상황과 자녀에 따라 징계를 적응시키는 융통성이 중요하다. 한 자녀에게 적용되는 것이 다른 자녀에게는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성서가 알려 주는 바와 같이 매를 사용하는 일은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 가끔 주어지는 징계의 형태로서 가치가 있다. 대부분의 자녀들은 자라감에 따라서 재삼 재사 부모의 권위에 도전한다. 즉 부모들의 말씀이 “정말인지” 그리고 부모들이 존경할 만한지를 시험한다. 심지어 착한 자녀들도 “그런 말씀 마세요!”라거나 또는 “싫어요!” 하고 말할지 모른다. 한 의사는, 자녀들이 한계를 알고 있지만 부모의 반응이 어떠한가를 보려고 그 한계를 넘어 보는 것과 같다고 설명하였다. 자녀가 그 한계를 넘어서도 아무 일 없을 것인가? 누가 지배할 것인가?
특히 아주 어린 자녀들이 그러한 도전을 해 올 때면 반드시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한번의 매로 족할 수 있을 것이다. 자녀가 순종하도록 구타하는 것이 아니라 엄한 매로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울음이 가라앉았을 때, 부모는 사랑스럽게 그 자녀를 팔로 감싸 줄 수 있다. 그리고 부모는 조용한 어조로 혹은 부드럽게 안아 주면서 “나는 너를 몹시 사랑하기 때문에 네가 권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존경심이 결핍된 채 자라기를 원치 않는거야.” 하고 말해 줄 수 있다. 이러한 기회는 또한 마음에 감동되게 지도할 기회가 되는 것이다. 한 아버지는 앞서 인용한, 매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사이언스 뉴우스」지의 견해를 읽고는 그 잡지사에 이렇게 편지하였다.
‘우리 자녀들이 공공연히 불순종했을 때 아내와 나는 규칙을 어긴 이유를 지적하였읍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벌을 받을 필요를 알게 되었읍니다. 한번은 합의했던 수만큼 회초리로 때려 주자 (6살된) 나의 아들이 나의 무릎으로 기어들어와 꼭 부등켜 안고는 내게 입을 맞추며 “아빠 잘 배웠어요” 하고 말하였읍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지나치게 그리고 부당하게 응석을 받아 줌으로 초래되는 슬픈 결과를 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는 성서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잠언 13:24) 어린 시절에 부모들은 아이들이 권위를 인식하도록 도와 주고, 자유에 대한 합당한 한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은 참으로 사랑스런 일이다. 어린 자녀가 그러한 것을 필요로 할 때 가혹한 구타가 아니라 순간적으로 엄한 고통을 주는 것은 십대에 또는 그 이후에 그가 그러한 교훈을 받지 못해서 슬픔을 당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부모들이 현명하게 매를 사용하는 데는 진정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릇된 애정 때문에 매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동시에 매가 자녀를 학대하는 것이나 잔인하게 다루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주로부터의 충고와 뒤따르는 좋은 결과들은 이러한 노력이 보람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잠언 23:13, 14의 말씀과 같다.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찌라도 죽지 아니하리라.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 영혼을 음부에서 구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