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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가내 재봉을 해 보겠는가?깨어라!—1973 |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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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옷을 다리미질을 하거나 개어둘 때, 수선이 필요한 것은 따로 두라는 것이다. 또한, 만일 당신이 ‘수트’의 상의나 ‘코우트’같은 옷을 수선하거나 개조할 필요가 있음을 보게 되면, 그것을 간단히 ‘메모’지에 적어서 수선할 다른 것들과 함께 모아두라.
손으로 수선하는 것은 가족이 함께 모여, 아마 ‘텔레비전’을 볼 때라도 할 수 있다. 양말을 꿰맬 때에는, 양말 속에 전구를 집어 넣어서 당신이 꿰매는 동안 제 모양을 유지하도록 만들 수 있다. 어린 딸의 손을 빌리도록 하라. 그에게 단추를 다는 법과 실이 빠져나오지 않도록 매듭을 짓는 방법을 보여주라.
어떤 신형 재봉틀에는 수선을 하는 장치가 부착되어 있어서, 당신이 수선을 하면서 자유롭게 바늘 밑으로 재료를 움직여 찢어진 곳과 헤어진 곳을 꿰맬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장치가 없는 재봉틀이라 하더라도 한 손으로 노루발 손잡이를 살짝 들어올리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바늘 밑의 감을 전후로 움직여서 수선을 할 수 있다.
어떤 것은 한 곳이 먼저 해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침대 ‘쉬트’는 보통 가운데가 먼저 얇게 해진다. 당신이 만일 그것을 보게 된다면 그 ‘쉬트’의 중간을 세로 방향으로 찢으라. 그 다음에 튼튼한 바깥 가장자리를 함께 박으라. 그러면 ‘쉬트’의 가장 덜 달아진 부분이 가운데로 오게 될 것이다. 그 다음에 한때는 ‘쉬트’의 가운데 달아진 부분이었던 바깥 가장자리를 감치면 된다.
만일 당신의 남편이 좋아하는 양복 바지의 엉덩이 부분이 얇게 달아버렸다면, 당신은 비슷한 감을 약간 구하여, 바지 속으로 넣고 달아진 부분에다 붙여 박을 수 있을 것이다. 양복의 상의가 아마 수선한 부분을 덮어줄 것이며 따라서 그것이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많은 여자들은 집에서 바느질을 하고 자기 가족의 비슷한 필요를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칠 수 있는 조용하고, 덜 분주한 생활을 갈망한다. 심지어 성서도 현숙한 아내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손으로 솜뭉치를 들고 손가락으로 가락을 잡[는다.]” (잠언 31:13, 19) 그러므로 비록 지금은 아니라 할지라도 미래에 언젠가는 당신도 가내 재봉이 당신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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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가?깨어라!—1973 | 1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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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꺼이 일하고자 하는가?
빈둥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구걸이나 하는 거지들은 사회의 최하위 계층에 처해 있게 마련인데, 이는 주로 그들이 일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직업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 한 필자가 표현하였듯이, “일[그 자체]은 명예롭지 못한 위치로 추락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일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당신은 질문할런지 모른다. 실제적으로 이 점에 대하여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현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 특히 가속화된 대량 생산의 출현은 많은 노동자들을 ‘컴퓨터’에 의하여 조절되는 조업 과정의 수자나 통계표나 거의 다름없는 것이 되게 만들었다. 그들은 개인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자기를 거의 상실하였다. 개성이란 실제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자연히 이러한 상황은 일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생산 공정의 열(列) 한 귀퉁이에 서서 일하는 사람으로 자기의 일에서 개인적인 자부심을 갖게되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다. 자기의 일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란 동기는 온통 사라져버렸다. 개인적인 기술로 무엇인가 성취해 보고자하는 야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태하에서 혹시 일을 하고자 하는 분발력이 생긴다면 그것은 오로지 부양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할 필요성, 아니면 어떤 개인적 혹은 관능적 갈망을 충족시키고자하는 욕망으로부터 솟아나온 것일 뿐이다. 일을 위한 일이란 더는 존재하지 않고, 단지 받는 봉급을 위한 일이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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