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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인을 위하여 빛이 뿌려졌도다’
    파수대—1982 | 5월 15일
    • ‘의인을 위하여 빛이 뿌려졌도다’

      “의인을 위하여 빛을 뿌리고 마음이 정직한 자를 위하여 기쁨을 뿌렸도다.”—시 97:11.

      1. 의인이 악인과 구별되는 한 가지 점은 무엇입니까?

      의인이 악인과 구별되고, 여호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이 하나님의 대적 ‘사단’ 마귀의 노예가 된 자들과 구별되는 한 가지 점은 무엇입니까? 의문의 여지 없이 그것은 무엇보다도 의인 곧 여호와 하나님의 참된 종들이 빛을 누린다는 사실입니다. 참으로, 그들을 위하여 ‘빛이 뿌려진’ 것입니다. (시 97:11) 악인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합니다. 그렇습니다, “올바른 사람[의인, 개역 한글판]의 앞 길은 동틀 녘의 햇살 같아서 점점 밝아져 대낮처럼 환해지겠지만, 불의한 자[악인, 개역 한글판]들은 그 앞 길이 캄캄하여 넘어져도 무엇에 걸렸는지 알지 못한다.”—잠언 4:18, 19, 공동 번역.

      2. 의인의 길을 비추는 빛의 증가를 어떠한 예로 설명할 수 있읍니까?

      2 의인의 길을 비추는 빛은 점진적이라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것은 계속 ‘점점 더 밝아’집니다. 우리는 이 점을 동이 트기 전에 전원으로 나아가 도보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의 예로 설명할 수 있읍니다. 그는 멀리 있는 건물의 윤곽을 보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그것이 헛간인지 집인지 분간할 수가 없읍니다. 점차 날이 밝아오고 그가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그는 그것이 집이라는 것을 식별할 수 있게 됩니다. 잠시 후 그는 그것이 벽돌 집이 아닌 목조 건물이라는 것도 분간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다음에 그 집의 색깔과 다른 점들도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3. 어떠한 요소들이 빛이 증가하는 것과 관련이 있읍니까?

      3 하나님의 종들의 경험이 바로 그러하였읍니다. 시간상 멀리서, 그리고 논제에 대한 약간의 빛만으로 특정한 사물을 보았을 때 우리의 그 사물에 대한 견해는 종종 불완전하고, 심지어 부정확하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이전에 가졌던 견해의 영향을 다분히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점점 더 밝아지고 사건들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감에 따라,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점점 더 뚜렷해집니다. 여호와의 성령이 예언들 위에 빛을 비추고 그 예언들이 세상 사건들이나 하나님의 백성의 경험 속에서 성취됨에 따라, 예언들은 우리 앞에 밝혀지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고대로부터 자기 종들을 다루어 오신 방법이 바로 그러하지 않았읍니까? 참으로 그러하였읍니다!

      ‘아브라함’의 예

      4, 5.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목적을 어떻게 점차 밝혀 주셨읍니까?

      4 하나님께서 자기 벗이라고 부르신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고려해 보십시오. (이사야 41:8; 야고보 2:23) 여호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처음에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갖지 못하였읍니다. 우리는 이 점을 즉 ‘아브라함’의 이해가 점차 발전되었다는 점을 그의 생애에 발생한 여러 가지 일들에서 볼 수 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로 큰 나라를 이루시고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들 스스로를 축복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고향을 떠나라고 명하셨읍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세부점들을 다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기록에 의하면,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였지만 순종하였읍니다. (히브리 11:8) 더우기, 하나님께서 자기 씨에게 그 땅이 주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그 말씀이 과연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몰랐읍니다. 그는 자기 종 ‘엘리에셀’이 자기 집을 상속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표명하기까지 하였읍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말씀하시어 문제를 명백히 밝혀 주셨읍니다. (창세 12:1-3, 7; 15:2-4)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임신을 못하였기 때문에 그에게 자기 여종 ‘하갈’과 관계를 가지라고 청하였읍니다. 그리하여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었읍니다. 나중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후사는 ‘사라’를 통하여 나올 것이라고 설명하셨읍니다.—창세 17:15-17.

      5 이처럼, 우리는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직접 밝히신 모든 것이 참되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 목적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래도 그는 계속 믿음을 실천하였고 여호와를 기다렸으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보다 구체적인 계몽을 받았읍니다. 그와 비슷하게, 여호와께서 그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그 일이 어떻게 풀려나갈 것인지를 정확하게 몰랐읍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로부터 부활시키기까지 해서라도 ‘이삭’을 통하여 씨를 일으키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읍니다.—히브리 11:17-19.

      ‘다니엘’과 기타 예언자들

      6, 7. (ㄱ) 하나님께서는 오직 자기가 정한 때에만 일들을 밝혀 주신다는 점을 ‘다니엘’의 어떠한 말이 알려 줍니까? (ㄴ) 사도 ‘베드로’는 이 점과 일치하게 어떠한 증언을 합니까?

      6 여호와께서 직접적인 계시들로 은총을 베푸신 많은 예언자들 가운데에는 하나님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 ‘다니엘’이 있었읍니다. (다니엘 10:11, 19)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그 자신의 시대와 장래에 관한 특별한 소식을 많이 전달해 주셨읍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관련된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자기가 본 일부 환상들에 관하여 그는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그가 더 많은 지식을 청하였을 때 그는 이러한 말씀을 들었읍니다.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다니엘 12:8, 9)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들인 예언자들에게 많은 진리들을 계속 밝혀 주셨읍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것들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7 그러한 이유에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기술할 수 있었읍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그들 속에 있는 영이 그리스도께서]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그것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니라.]” 사실상, 천사들까지도 하나님의 목적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한 온전하고 완전한 이해를 갖고 있지 못하였읍니다.—베드로 전 1:10-12, 신세 참조.

      8. 침례자 ‘요한’의 질문은 그의 이해가 불완전하였음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8 그러한 예언자들 중 마지막 사람은 침례자 ‘요한’이었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에 앞서서 길을 예비하는 데 그를 사용하셨읍니다. (누가 1:16, 17, 76-79) ‘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를 식별시켜 준 징조를 받은 면에서 그리고 그분을 ‘이스라엘’에게 소개한 면에서 크게 은총을 받았읍니다. (요한 1:26-36) 그런데도, ‘요한’은 예수의 초림과 관련된 세부점들을 전부 명백하게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이 점은 ‘요한’이 감옥에 있는 동안 자기 제자들을 예수에게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질문한 사실에서 볼 수 있읍니다. ‘요한’의 질문은 믿음의 부족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인 확증을 바라는 욕망을 나타내는 것이었읍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신 일들을 지적하시어 대답하심으로 의문의 여지 없이 ‘요한’을 안심시키셨읍니다.—마태 11:2-6.

      예수와 그의 사도들

      9. 예수께서 자기 아버지의 목적에 대해 완전한 이해를 가지고 계시지 않았음을 무엇이 알려 줍니까?

      9 하나님께서는 종들에게 자신의 뜻을 정하신 때에만 밝혀 주십니다. 이것은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되었읍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동안 직접적인 지시를 받으셨읍니다. 그런데도 그분조차 현 사물의 제도의 종말이 언제 올 것인지를 모르셨읍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그분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시인하셨읍니다.—마태 24:36.

      10, 11. (ㄱ) 예수의 제자들은 왕국과 관련하여 어떠한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였읍니까? (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미래와 다른 문제들에 관해 알려 주신 것들을 왜 한정하셨읍니까?

      10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다루시는 데 잠언 4:18에 진술된 원칙과 일치하게 행동하셨읍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자기가 떠나갔다가 오랜 시일 후에 돌아와서 그들을 하늘의 자기 처소로 데려갈 것이라는 점등, 왕국에 관한 많은 것을 알려 주셨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메시야’ 왕국이 ‘예루살렘’에 회복되는 ‘다윗’ 왕국일 것이라는 견해를 버리지 못하였읍니다.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그들은 부활되신 예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고 질문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라고 말씀하시어 그들이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알려 주셨읍니다.—사도 1:6, 7.

      11 하나님의 목적의 특정 부면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때가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볼 때 명백합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요한 16:12)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이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에 알맞게 자신의 뜻에 대한 이해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요한 16:13) 그러나 예수의 말씀은 그들이 성령을 받는 날부터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되어 그 이후로는 더 이상의 이해를 얻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읍니까? 사실들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음을 알려 줍니다.

      이방인들이 받아들여짐

      12, 13. (ㄱ) 예수의 추종자들은 오순절에 어떠한 더욱 명백한 인식을 받았으며, 이것은 그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읍니까? (ㄴ) 예수께서 그들에게 모든 민족의 사람들로 제자를 삼으라는 사명을 주셨는데도 그들은 언제 비로소 그렇게 하기 시작하였으며, 왜 그 때서야 비로소 시작하였읍니까?

      12 기원 33년 오순절 날 제자들은 성령을 받았으며, 그로 말미암아 예수의 부활, 그분의 승천 및 하나님의 왕국의 의의에 관한 진리에 대해 훨씬 더 명백한 인식을 얻었읍니다. 이 지식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리고자 하는 열심을 그들에게 불어 넣어 주었읍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모든 민족의 사람들로 제자를 삼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처음에 그들은 전파 활동을 ‘유대’인들, 비‘유대’인 개종자들, 그 다음 얼마 후에, ‘사마리아’인들에게만 국한시켰읍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였읍니다. (마태 28:19, 20) 여호와께서 그러한 계몽을 억제하셨음에 틀림없읍니다. 왜냐하면 ‘다니엘’의 예언은 ‘메시야’가 70번째 주(週)의 나머지 기간 동안 ‘유대’인들과의 언약이 계속 효력을 지니게 하실 것이라고 말했었기 때문입니다.—다니엘 9:24-27.

      13 그 “주”가 기원 36년에 끝나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열국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개방하시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셨읍니다. ‘베드로’가 율법이 부정하다고 간주하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사고방식을 조정하는 데는 실로 도움이 필요하였읍니다. 그는 비몽사몽간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교훈을 받아야 하였읍니다. 그리하여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은 이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바꾸어야 하였읍니다. ‘베드로’는 이처럼 견해를 바꾸었으며, 하나님의 하늘 왕국에 이르는 길이 열렸음을 이방인들에게 선포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었읍니다.—사도 10:9-43.

      14.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여러 해 후에 ‘모세’의 율법의 요구 조건에 대한 어떠한 빛을 받았읍니까?

      14 그러나 13년 후에도 할례는 여전히 일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는 문제였읍니다. ‘바울’과 다른 제자들은 당시 그리스도인 회중의 통치체를 구성하고 있던 사도들 및 장로들에게 이 문제를 상정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갈 필요가 있었읍니다. 이 통치체는 ‘베드로’가 ‘고넬료’의 개종에 관한 ‘베드로’의 말과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 대한 ‘바울’의 전도 봉사와 관련하여 수행하신 능하신 일들에 관한 ‘바울’의 증언을 들었읍니다. 그 다음 그들은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이 이 문제에 관해 말하는 바를 고려하였읍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그들은 올바른 결론 즉 특정한 표준의 행실이 요구되지만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읍니다.—사도 15:1-16:5.

      15, 16. (ㄱ) ‘바울’의 어떠한 말이 진리의 계시가 점진적이라는 점을 그가 인식하였음을 나타내 줍니까? (ㄴ) 사도 ‘베드로’는 그와 비슷한 어떠한 증언을 하였읍니까?

      15 이 모임이 있은지 약 6년 후에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첫째 편지를 썼으며 그 당시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에 관해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러므로, 그 때까지도 사도 ‘바울’ 자신을 포함한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의해 모든 진리에 대한 완전한 지식을 갖도록 인도되지는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지식은 여전히 부분적인 것으로, 하나님께서 그 당시까지 그들에게 주신 이해 정도에 불과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당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였읍니다.—고린도 전 13:9, 10, 12.

      16 ‘바울’이 전술한 내용을 편지한지 약 9년 후, 즉 기원 64년 경에 ‘베드로’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이라고 편지하였읍니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증해 준 변형의 경험을 논한 후, 그는 계속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 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베드로 후 1:16-21) 그러므로 여전히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연구하여,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불과 같은 예언의 말씀에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였읍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고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상을 경험하게 될 때까지 줄곧 그렇게 해야 합니다.

      17. (ㄱ) 「계시록」이 주어짐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새로운 진리들을 알게 되었읍니까? (ㄴ) 그 책에 언제 더 많은 빛이 비추이게 되어 있었읍니까?

      17 ‘베드로’가 그의 두번째 편지를 쓴지 약 32년 후 즉 기원 33년의 오순절로부터 약 63년 후에 사도 ‘요한’은 「계시록」을 구성하는 일련의 환상들을 받아 기록하였읍니다. 이 환상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한 많은 진리들이 영으로 출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처음으로 밝혀졌읍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모든 열국으로부터 구속함을 받은 144,000명의 남녀들이 하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 후사들이 되어 ‘메시야’ 왕국의 1,000년기 중에 왕, 제사장 및 심판관들로서 다스릴 것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읍니다. (계시 7, 14 및 20장) 그러나 그 초기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완전한 지식을 갖지 못하였읍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의 연구생들은 「계시록」의 환상들이 ‘요한’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훈적이고 격려적이었지만, 현재 우리가 처해 있는 “주의 날”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가치가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계시 1:10) 그런 까닭에 계시록 5:1-14(새번역)은 봉인이 있어 그것이 떼어져야만 펼쳐질 수 있는 두루마리를 서술적으로 묘사합니다. 이것은 「계시록」의 예언들이 성취될 때에 각 봉인이 그 순서대로 떼어짐에 따라 지식과 이해가 점차적으로 펼쳐질 것임을 시사합니다.

      18.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고대에 그리고 1세기에 자기 종들에게 어떻게 진리를 밝혀 주셨읍니까?

      18 이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전 시대의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 및 통용 기원 1세기의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회중 모두와 관련하여, 누구나 예외 없이 불완전한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읍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목적의 점진적인 성취를 관찰하고 경험함에 따라 그들의 이해를 조정해 가면서 계속 발전해야 하였읍니다. 그들에게 있어 의인의 길은 참으로 ‘점점 더 빛나는 밝은 빛’과도 같았읍니다. (잠언 4:18) 빛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은 지식에 있어서 자라갔으며,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계속 밝혀주신 웅대한 진리를 보다 온전히 깨닫게 되었읍니다.

      19.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다니엘’에게 “마지막 때”의 지식과 이해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읍니까?

      19 그러나 마지막 때의 여호와의 종들은 어떠합니까? 한 천사는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했읍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빨리 왕래하며 [그 결과] 지식이 더하리라.” (다니엘 12:4) 10절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에 관하여 한층 더 말하였읍니다.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이러한 계몽은 한꺼번에 전부 있을 것입니까? ‘지혜있는 자’로 판명되려면, 하나님의 종들이 완전하고 상세한 지식과 이해를 갖고 있어서, 후에 어떤 가르침이나 기타의 문제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조정하거나 바꿀 필요가 없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이러한 질문들 및 기타의 점들이 계속되는 기사들에서 토론될 것입니다.

  • 현대의 빛의 증가
    파수대—1982 | 5월 15일
    • 현대의 빛의 증가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느니라.]”—잠언 4:18.

      1. 우리는 잠언 4:18의 성취에 관한 어떠한 증거를 이미 고려하였읍니까?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서 기록은 여호와의 종들의 길이 참으로 점점 더 빛나는 밝은 빛과 같았음을 알려 줍니다. (잠언 4:18) ‘마태’와 다른 복음서 필자들도 증언하였듯이, 예수와 그분의 사도들 시대에 ‘메시야’에 관한 예언들 중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그리고 오순절에 하나님의 영이 부어지고 이방인들에게 “좋은 소식”이 전해짐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인 계몽의 빛은 한층 더 밝아지게 되었읍니다.—사도 2:14-36; 10:34-43; 15:6-21.

      2. (ㄱ) 무엇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어두움의 기간이 내리 덮게 되었읍니까? (ㄴ) 추수 때의 분리하는 일에 주된 역할을 한 것은 무엇입니까?

      2 그러나 사도들이 죽은 이후로 어두움의 기간이 점차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을 삼켜 버렸읍니다. “흉악한 이리”들이 대신 들어선 것입니다. (사도 20:29, 30) 그것은 예수께서 하나의 비유에서 예언하신 그대로였읍니다. 그분은 하늘 왕국을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에 비하셨읍니다. 그 후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 [잡초]를 덧뿌리고 갔”읍니다. 그 결과, 잡초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전세계의 그 종교적 밭에서 두드러지게 번성하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되면 분리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지금 우리가 바로 그 추수 때에 처해 있읍니다. 왜냐하면 “추수 때는 사물의 제도의 종결”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밀” 반열인 참 그리스도인들이 모아졌읍니다. 멸망의 종말을 당하게 되어 있는 불법적인 “잡초”로부터 이 그리스도인들을 분리시켜 주는 주된 역할을 하는 것은 그들의 길에 비추인 빛의 끊임없는 증가라는 점을 사실들은 입증합니다.—마태 13:24-30, 36-43, 신세 참조.a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관한 빛

      3, 4. 초기의 ‘성경 연구생’들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에 관한 어떠한 사실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읍니까?

      3 1870년대 초에 일단의 정직하고 솔직한 마음을 가진 성서 연구생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편견없는 연구를 하기 시작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신조들이 아니라 영감받은 성경을 그들의 지침으로 삼았읍니다. 성서의 소식의 지혜, 이치적임, 일치 조화 및 힘이 그들의 마음 속에 비치어 들어갔읍니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만연해 있는 무신론 및 진화론적 가르침들과 반대되는—지성있는 창조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결과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에 의해 산출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창조의 광대함, 그 균형, 미, 질서, 조화, 다양성” 등은 그분이 위대한 설계자이심을 증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읍니다.b (로마 1:20) 또한 그들은 그분이 네가지 기본 속성 곧 기본적인 특성들, 다시 말해서 한없이 깊은 지혜, 무한한 능력, 완전한 공의 및 비길데 없는 사랑을 가지고 계시다는, 창조주의 성품에 대한 명확한 개념도 얻었읍니다.—신명 32:4; 시 62:11; 잠언 2:6, 7; 요한 1서 4:8.

      4 더 나아가, 그들은 하나님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고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점도 인식할 수 있게 되었읍니다. (시 83:18; 90:2) 그들은 그리스도교국의 주된 교리—삼위일체 교리—가 비이치적일 뿐 아니라 비성경적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읍니다. 성서 진리의 빛은 그들에게 하나님은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며,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그분 자신의 증언으로 아버지가 ‘자기보다 크’시다고 확증함)이고, 하나님의 성령은 삼위 중의 세번째 위(位)이기는커녕, ‘여러가지 결과를 산출하는 데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분의 힘’이라는 점 등을 알려 주었읍니다.c—마가 12:29, 신세; 요한 14:28; 사도 2:17, 18.

      5. 그처럼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성서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5 그들은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성서는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이며, 하나님의 속성들로 볼 때 창조주께서 인간을 위한 지침으로 하나님의 계시를 마련해 주실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이치적이라고 전파하였읍니다. 그들은 성서를 “문명과 자유의 횃불”이라고 묘사하였읍니다. 그것은 “가장 오래 존재해 온 책이며 30세기의 폭풍을 생존하였”읍니다. 더우기 “다른 책들은 모두 합쳐도 신음하는 피조물에게 성서가 가져다 준 기쁨, 평화 및 축복을 가져다 주지 못”하였읍니다.d 이들 진실한 연구생들은 성서 필자들의 비이기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생활에서 그들의 동기가 순수하였다는 명백한 증거를 보았읍니다. 요컨대, 그들은 ‘성서야 말로 악의 원인들에 대한 이치적이고 일치 조화된 진술서이고 그것은 해결책과 최종 결과를 알려 주며,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을 인도하고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왕국

      6. 이들 ‘성경 연구생’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어떠한 진리를 인식하게 되었읍니까?

      6 자신들을 ‘성경 연구생’들이라고 칭한 이들 진실한 사람들은 시초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기본 진리들을 명백하게 이해하였읍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이 되시기 전에도 존재하셨읍니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주셨읍니다. 그분은 영으로 부활되셨고 영으로 승천하셨으며 영으로 즉 하나님의 왕국의 보이지 않는 ‘메시야’ 왕으로 돌아오시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논제 즉 ‘그 이유와 방법 및 시기’는 참으로 중요합니다.—요한 3:16; 17:5; 디모데 전 2:5, 6, 신세 참조; 베드로 전 3:18.

      7. 점증하는 빛은 하나님의 왕국과 그 축복들에 관해 무엇을 밝혀 주었읍니까?

      7 점증하는 빛으로 말미암아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인류의 재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인 여호와의 왕국의 중요성을 명확히 알게 되었읍니다. 그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와 인간들 중에서 구속함을 받은 그분의 144,000명의 동료들로 구성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1,000년 동안 왕 및 제사장들로서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기초로 그 왕은 기념 무덤에 있는 구속받은 사람들을 모두 부활시키셔서 지상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전망을 갖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서는 구원받은 인류에 속한 사람들에게 두가지 전망을 제시합니다. 즉 그 한가지는 왕국 후사들로 된 “적은 무리”를 위한 천적인 전망이며 또 한가지는 지상 최대의 “환난”을 생존하는 사람들인 “큰 무리”와 기념 무덤에 있다가 지상 낙원에서의 생명을 즐기기 위해 나올 수백만의 사람들을 포함하는 예수의 “다른 양”을 위한 지상 생명입니다.—누가 12:32; 요한 5:28, 29; 10:16; 계시 7:9, 14; 14:1, 4; 20:6.

      8. 인간 영혼과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해 어떠한 이해를 얻게 되었읍니까?

      8 점증하는 빛은 또한 이들 솔직한 마음을 가진 성서 연구생들에게 인간 영혼의 본질과 죽은 자의 상태에 대한 그리스도교국의 가르침이 전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밝혀 주었읍니다. 그들은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 그는 ‘산 영혼이 된’ 것이며, 그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흙으로 돌아갔을 때 영혼으로서의 그가 죽어 그저 존재를 그치게 된 것뿐이라는 점을 명백히 알게 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자기가 애초에 취함을 받은 먼지로 되돌아 간 것입니다. 죽음의 상태에서는 의식도 없고 활동도 없읍니다. (창세 2:7, 신세; 3:19; 전도 9:5, 10) “죄의 삯은 사망”이지 영원한 고초가 아닙니다. 불타는 지옥과 고초를 당하는 연옥은 잘못 가르침받은 종교인들의 정신에나 존재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은 죽을 때 사실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부터 유익을 얻으려면 부활이 필요합니다.—로마 6:23.

      그리스도인의 의무

      9. 이들 계몽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함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였읍니까?

      9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성서가 참다운 거룩함에 대해 말하는 바도 진지하게 받아들였읍니다. 이것을 가식적인 경건이나 독실한 척하는 태도로 잘못 알아서는 안됩니다. 그들은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성서 원칙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히브리 13:4) 그들은 자기들 가운데 성서가 정죄하는 음행, 간음 및 동성애 등을 눈감아 주거나 묵인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고린도 전 6:9, 10) 마찬가지로 그들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침으로 온갖 범법 행위를 피해야 합니다. 또, 그들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그리스도인 법칙에 따라 생활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정직해야 합니다.—마태 22:21; 누가 6:31.

      10.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일찌기 그리스도인 사명에 대한 어떠한 진리를 인식하게 되었읍니까?

      10 이들 ‘성경 연구생’들의 주된 관심사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배양하는 것이었읍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에 대해 증거해야 할 필요성도 깨달았읍니다. 그들은 진리의 빛을 받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그 빛을 전해 줄 의무가 있음을 깨달았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어 훌륭한 그리스도인 행실과 입의 말로 빛을 비추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였읍니다. (마태 5:14-16) 사실상, 상당히 일찌기 “1,000명의 전파자를 구함”이라는 초대가 발해졌읍니다. 그것은 가족적인 의무가 없는 사람들로서, 인쇄된 지면을 통하여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자기 시간의 반 이상을 바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특별한 호소였읍니다.

      11. 각자는 그리스도인 봉사자가 되기 위해 어떠한 단계를 밟아야 하였으며, 교직자—평신도의 차별을 왜 배척하였읍니까?

      11 그리스도인 봉사자가 되기 위해 각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회개하고 전환하여 하나님과 인류의 구속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개개인은 하나님께 “성별”되어 그분의 뜻을 행하고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 3:19; 마태 28:19, 20) 그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봉사자들이므로 교직자—평신도의 차별을 배척하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그들은 각 회중의 필요를 돌보도록 자격있는 사람들을 “장로들” 및 “집사”들로 임명할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읍니다.—빌립보 1:1; 디모데 전 3:1-10, 12, 13.

      12. 이들은 조직에 관한 어떠한 진리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으며, 논리적으로 어떠한 일이 뒤따랐읍니까?

      12 빛이 계속 증가함에 따라,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과 인류의 유일한 희망인 그분의 왕국을 알리는 일의 중요성을 더욱 더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또한 우주에는 단 두가지 조직 밖에 없고 누구나 하나님의 조직과 ‘사단’의 조직 중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되며, 후자는 지상의 거대한 상업계, 거대한 정치계 및 거대한 종교계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읍니다. 충성스러운 영자들로 된 하나님의 하늘 조직을 지상에서 대표하는 것은 그분의 조직된 증인들입니다. (갈라디아 4:26; 고린도 후 4:4)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참여하지도, 나라들 사이의 폭력에 관여하지도 않습니다. 사실상 그들은 심지어 국가주의적인 훈련에도 참여하지 않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종들은 실제 무기를 사용하지 않지만 그분의 왕국을 지지하고 그것을 위하여 투쟁합니다.—마태 26:52; 요한 15:19; 18:36; 고린도 후 10:4; 야고보 1:27; 4:4.

      13. 어떠한 강력한 쟁점을 이해함으로 이들 ‘성경 연구생’들은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을 채택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토록 적합한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13 때가 되어 이들 여호와의 충실한 종들은 여호와의 이름의 입증이야말로 인류가 직면한 큰 쟁점이며, 이것은 심지어 인간 피조물의 구원보다도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읍니다. 이 점에 대해 뿌려진 찬란한 빛은 참으로 이전에 이해된 그 어떤 것보다도 더욱 밝은 빛을 발하였읍니다. 이 강력한 진리로 인해 참 그리스도교와 가짜 그리스도교 사이의 구별이 한층 더 뚜렷해졌읍니다. 일단 이 중대한 진리가 올바로 인식되자 오래지 않아 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명칭(‘성경 연구생’)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명확하게 구별시켜 줄 만큼 독특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한 가지로, 그들의 주된 사명과 인생의 목적은 그저 성서 연구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한 증인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 연구생’이라는 명칭은 성서를 연구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교리적인 오류에 가담한 수백만의 사람들로부터도 구별시켜 주지 못하였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의 계몽력을 통하여 그들은 자기들에게 적합하고 독특하게 적용되는 칭호가 이사야 43:10-12에 나와 있는 것 즉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읍니다. 1931년에 그들은 즐거이 이 명칭을 채택하였읍니다.

      예언과 비유에 관한 빛

      14. 점증하는 빛은 회복에 관한 예언들에 대해 어떠한 이해를 밝혀 주었읍니까?

      14 그 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그들의 고토로 돌아가는 것이 성서 예언의 성취라고 생각했었읍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읍니다. 그 아름답고 격려적인 회복에 관한 예언들이 일차로 성취된 것은 기원전 6세기로 소급하여 ‘유대’인들이 ‘바벨론’으로부터 되돌아 온 때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언들의 주요 성취는 우리 시대에 영적 ‘이스라엘’에게 있게 됩니다. 우리는 현대의 “하나님의 ‘이스라엘’”과 그들의 충실한 동료들이 속해 있는 영적 낙원에서 이 예언들이 성취되고 있다는 증거를 보고 있읍니다.—고린도 후 12:4; 갈라디아 6:16.

      15, 16. 예수의 비유 두 가지에 어떠한 빛이 비추어졌읍니까?

      15 결과적으로, 예수의 비유들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도 갖게 되었읍니다. 한 가지 특출한 예는 마태 복음 25:31-46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비유에 관한 것이었읍니다. 오래도록 이 비유는 그리스도의 1,000년 통치중에 성취될 것이라고 생각되었었읍니다. 그러나 그 후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것이 그 때에 적용될 수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되었읍니다. 여러 가지 이유들 가운데에는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중에 그분의 “형제들”은 지상에 없을 것이며 병들고 박해를 받아 홀로 곤경을 겪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라는 점이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늘에 좌정하신 예수께서 심판을 위해 열국을 모으시는 때인 지금 성취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은 그 성취를 이루는 주목할 만한 사실들로 입증되었읍니다.

      16 그와 비슷하게,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도 계몽의 빛이 비취게 되었읍니다. 부자는 전체 ‘유대’ 민족이 아니라 예수 당시의 위선적인, 부유한 종교 지도자들과 그에 상응하는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국의 교역자들을 상징한다는 것이 밝혀졌읍니다.—누가 16:19-31.

      17. 그들은 「계시록」에 관한 어떠한 주목할 만한 이해를 얻었읍니까?

      17 마찬가지로, 증가된 빛으로 인해 여호와의 종들은 「계시록」의 성취가 한 때 생각했던 것처럼, 사도 시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인 회중의 전체 기간에 걸친 것이 아니라 “주의 날”과 더불어 시작된다는 것 즉 1914년 이래 그 절정을 이룬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계시 1:10) 그들은 “주의 날”의 시작의 특징을 이룬 것은 ‘미가엘’(보좌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과 그의 천사들이 ‘사단’과 그의 천사들을 하늘에서 내어쫓은 하늘에서의 전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읍니다. (계시 12:1-12) 여호와의 백성은 그들의 왕국 사업이, 특히 계시록 2장, 3장, 6-11장에 예언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였읍니다.

      신권적 질서

      18.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신권적 질서에 대해 무엇을 알게 되었으며, 이것은 어떻게 실시되었읍니까?

      18 현대의 빛의 증가를 보여 주는 예들은 훨씬 더 많지만, 지면 관계상 한 가지만 더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것은 신권적인 법 즉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절차에 관한 것입니다. 19세기 말엽에 ‘성경 연구생’들이 자기들 회중을 다스린 방법은 민주적인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독재적인 교직 정체를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1938년에 그들은 이러한 민주적 마련이 성경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되었읍니다. 그것은 신권적인 질서와 일치하지 않았읍니다. 신권적인 질서란 인간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는 통치인 것입니다. (이사야 60:1, 17-19) 그래서 보다 최근에,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e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장로와 봉사의 종들로서 봉사할 남자들을 회중에 임명합니다. (사도 20:28) 이러한 사람들은 디모데 전서 3:1-13과 디도서 1:5-9에 나와 있는 성경적인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19. 온전하고 완전한 빛이 단번에 주어질 것으로 기대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참으로, 전술한 모든 사실은 여호와의 백성의 길은 점점 더 밝아지는 찬란한 빛과 같았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점을 입증합니다. (잠언 4:18) 그들이 “큰 ‘바벨론’” 즉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을 뒤덮고 있는 칠흙같은 암흑에서 나옴에 따라, 그들이 모든 사물을 즉각 참된 빛 안에서 보게 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었읍니다. (계시 17:5) 밝혀진 진리의 찬란함은 그들을 영적으로 눈멀게 하거나, 심지어 혼란한 결과를 일으키게까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칠흑같이 어두운 방에 있다가 밝은 햇빛 가운데로 나오는 사람에 비할 수 있읍니다. 그 사람의 눈이 갑작스럽게 눈을 부시게 하는 찬란한 햇빛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20. (ㄱ) 진리의 점진적인 빛이 망라하는 범위는 얼마나 넓었읍니까? (ㄴ) 고려해야 할 어떠한 질문이 남아있읍니까?

      20 그리고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진리의 점진적인 빛이 망라하는 범위는 넓습니다. 교리, 예언, 그리스도인의 행실과 그 사명, 예수의 비유의 의미, 올바른 회중 조직 등에 대한 이해가 연단되었읍니다. 이 모든 것은 이제 아주 명확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지 모릅니다. 참 그리스도인의 길이 언제나 똑바로 가지 않는 것 같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에 대해 어떠한 설명이 있읍니까?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는 독자의 주의를 이어지는 기사로 이끄는 바입니다.

      [각주]

      a 사단법인 ‘왙취 타워’ 성서 책자 협회 발행 「당신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소서」 84, 85면 참조.

      b 「성경 연구」(영문) 제1권 29-35면.

      c 「파수대 재판」(영문) 제1권 369-371면.

      d 「성경 연구」(영문) 제1권 38면.

      e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가 이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맡겨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영적 양식을 마련해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전술한 사실들은 이 “종”이 복합적인 사람을 말하며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과 연합해 있는 것을 증명한다.—마태 24:45-47, 신세.

      [19면 네모]

      현대의 여호와의 종들은 일찌기 다음과 같은 점을 이해하였다:

      여호와야말로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분의 독생자이시다.

      성령은 하나님의 활동력이다.

      영혼은 멸성이며 죽은 자의 희망은 부활에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144,000명의 공동 후사들을 두실 것이다. 한편, 순종하는 인류의 나머지 사람들은 지상 낙원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때가 되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도 인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악을 허락하신 것은 우주 주권에 대한 쟁점 때문이었다는 점.

      회복에 관한 예언들은 영적 ‘이스라엘’에게 적용된다는 점.

      「계시록」은 “주의 날”에 성취된다는 점.

      [17면 삽화]

      「파수대」를 통하여 밝혀진 여호와의 목적에 대한 이해는 여러 해에 걸쳐 명확해졌다

  • 점점 더 밝아지는 의인의 길
    파수대—1982 | 5월 15일
    • 점점 더 밝아지는 의인의 길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 는 돋는 해 아침 빛 같[으니라.]”—사무엘 하 23:3, 4.

      1. 사무엘 하 23:3, 4은 우리로 무엇을 기대하게 하며, 그것은 이루어졌읍니까?

      고대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종들의 길에 비추인 빛은 계속 증가해 왔읍니다. 지상의 사태 발전이 “세상 나라가 우리 주[여호와]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음을 알려 준, 그 중대한 해인 1914년 이후로는 더욱 그러했읍니다. (계시 11:15)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빛은 “구름없는 아침”의 햇빛처럼 비추어져 여호와의 종들이 밟아야 할 길을 한층 더 뚜렷하게 밝혀주었읍니다.—사무엘 하 23:3, 4.

      2. 우리는 견해상의 일시적인 조정을 어떻게 여길 수 있읍니까?

      2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길이 언제나 똑바로 나아간 것만은 아닌 것처럼 보였을지 모릅니다. 때때로 여호와의 보이는 조직이 제시한 설명들은 보기에 이전의 견해를 조정한 것같이 보였읍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항해계에서 “태킹”(바람 머리로 향하는 갈짓자 항해)이라고 알려진 것에 비할 수 있읍니다. 선원들은 돛을 이리 저리 움직임으로써 배가 전후 좌우로 가게 만들지만, 그러는 동안 내내 그들은 역풍에도 불구하고 행선지를 향해 전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종들의 바라보는 그 목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베드로 후 3:13.

      3. 여호와께서 그분의 증인들을 계속 축복하고 계시다는 어떠한 증거가 있읍니까?

      3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의 감독을 받는 증인들의 전세계적인 활동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계속 축복하고 계심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이 점을 그 열매들을 보고 알 수 있읍니다.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오늘날 단 한 백성 즉 ‘여호와의 증인’의 연합된 전세계적인 사회에서만 그러한 의의 열매를 국제적으로 볼 수 있읍니다.—마태 7:17.

      4, 5. 자신의 영감받은 말씀에 더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데 어떤 다른 도구를 사용해 오셨읍니까?

      4 우리가 지상 어느 곳에 살든지,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우리의 길에 빛이요 우리의 행실 및 믿음의 행로에 등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시 119:105) 그러나 모든 나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올바로 이해하고 그들의 생활에 적용하도록 돕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자들로 구성된 보이는 조직 즉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도 마련해 주셨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시는 이러한 통로를 통하지 않고서는, 성서를 아무리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따라 전진할 수 없을 것입니다.—사도 8:30-40, 비교.

      5 하나님의 통로에 관하여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이 자신의 모든 추종자들에게 제 때에 영적인 자양분을 마련해 줄 것이며, 이 “종”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맡기시겠다고 하셨읍니다. (마태 24:45-47, 신세) 또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11-16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정확한 지식에 있어서 일치점에 도달하고 온전한 영적 장성을 얻도록 돕기 위해 그리스도인 회중에 사도들 및 예언자들과 같은 영감받은 도구들 뿐 아니라, 복음 전도자들, 목자들 및 가르치는 자들도 필요하다고 하였는데 이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또한 고린도 전 1:10; 빌립보 1:9-11 참조.

      6. 어떠한 요소들 때문에 때때로 견해들을 재검토해 보는 것이 필요하였읍니까?

      6 ‘여호와의 증인’과 연합해 있는 이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은 참으로 여호와 하나님에 의해 그분의 백성을 인도하고 강화하고 감독하도록 사용되어 왔읍니다. 빛이 비취는 것이 점진적이고 인간의 불완전성 및 약함으로 인한 실수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 그리스도인들이 때때로 견해 및 가르침을 재검토해야 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연단되고 그들에게 유익이 되지 않았읍니까? 몇가지 예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대속과 여호와의 이름

      7. ‘성경 연구생’들이 대속의 가르침을 그토록 돋보이게 한 이유와 그 근거는 무엇이었읍니까?

      7 1878년에, 나중에 ‘왙취타워’ 협회의 초대 회장이 된, ‘찰스 T. 러셀’은 대속의 쟁점으로 인해 「아침의 전령」의 공동 편집자인 ‘N. H. 바버’와의 관계를 끊었읍니다. ‘바버’씨는 죄를 제거하는 힘이 있는 예수의 희생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였읍니다. 그 때 이후로 상당 기간 당시 자신들을 ‘성경 연구생’이라고 부른 이들 ‘여호와의 증인’들은 대속을 성서의 주된 가르침으로 고려하였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대속에 대한 믿음을 통한 구원이 하나님의 말씀에 강조되어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읍니다. (요한 3:16; 사도 4:12; 히브리 5:9; 계시 7:10) 예수의 대속 희생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던 일 및 ‘모세’의 율법 하의 제물에 의해 예언적으로 전영되었읍니다. 그것은 또한 예언자들에 의해 예언되기도 하였읍니다. 그래서 ‘성경 연구생’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하신 일을 크게 강조하였읍니다.—누가 24:25-27, 44.

      8. (ㄱ) 그 다음에 무엇이 더 큰 중요성을 띠고 있음이 밝혀졌읍니까? (ㄴ) 이로 인하여 어떠한 일이 있게 되었으며, 그 후 수십년 동안 어떠한 조정이 있게 되었읍니까?

      8 그러나, 성서는 우리 개인의 구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려 줍니다. 그것은 ‘사단’이 ‘에덴’에서 반역했을 때 의문을 불러 일으킨 여호와의 우주 주권과 관련된 큰 쟁점입니다. (창세 3:15; 고린도 전 15:24, 25; 계시 11:15; 12:10) 그것은 여호와의 이름의 입증을 요합니다. 참으로, 「창세기」로부터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서의 전체 주제는 ‘메시야’ 왕국입니다. 그것을 통하여 그 영광스러운 이름은 영원토록 입증되고 드높여질 것입니다! 우리는 성서에서 ‘그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게 되고야 말리라’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을 약 75회나 읽게 됩니다.a 때가 되어 그분의 증인들은 피조물들이 그분의 이름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기초로 여호와 하나님께 탄원할 수 있으며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로마 10:13, 신세 참조; 요엘 2:32; 스바냐 3:9) 그래서 수년 동안 여호와의 이름과 그 이름의 입증이 매우 두드러지게 되었기 때문에 ‘증인’을 비평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고 비난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껏해야 과도한 강조로 인한 문제에 불과하였읍니다. 최근 수십년간 「파수대」를 정기적으로 읽어 온 독자라면 잘 인식하듯이,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확실히 하나님의 목적의 성취에 있어서의 예수의 역할에 합당한 영예를 돌려 왔읍니다. 참으로 여호와의 예언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의 수석 대행자’이신 예수께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입니다.—히브리 2:10, 신세; 12:2; 계시 19:10.

      9. 과학적인 발전을 지배하는 어떠한 원칙이 여기에 적용된 것 같습니까?

      9 그러한 조정들은 과학적 진리의 발전을 지배한다고 일컬어진 하나의 원칙을 따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그 원칙은 이렇게 작용합니다. 먼저, 쉽사리 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명제가 정해집니다. 그것은 계몽 혹은 실질적인 적용을 위한 큰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 후 때가 되어 그것에 어떤 결함이나 약점이 있음이 밝혀집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에는 정 반대의 방향에서 명제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읍니다. 그 후, 그 쪽 역시 전체 진리를 대표하지 못한다는 점이 밝혀집니다. 그래서 양편에서 근거가 확실한 점들을 결합시키는 일이 있게 됩니다. 이 원칙이 잠언 4:18이 성취되어 온 방법에도 재삼재사 적용되어 왔읍니다.b

      행실과 전파 활동

      10, 11. 순서적으로 어떠한 두가지 입장이 강조되었으며, 그러나 그 최종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10 점진적인 이해의 또 다른 예를 고려해 보십시오. 약 40년 동안 ‘성경 연구생’들은 훌륭한 그리스도인 성품을 배양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읍니다. 그들은 그러한 배양을 “인격 개발”이라고 불렀읍니다. 그 점이 그토록 강력하게 강조된 이유는 그 점이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무시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목적에 관해 이야기함으로써 증거하는 일도 해야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소 부차적인 것이었읍니다. 나중에 하나님의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의 중요성과 그분의 이름 및 왕국을 위해 증거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읍니다. 그리하여 이제 그 점을 강조하였으며 그 결과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배양하는 일에는 주의를 보다 덜 기울이게 되었읍니다. 예수께서 다른 어떤 일보다도 증거하기 위해 오셨으므로 전파 사업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주장이 있게 되었읍니다. 두가지 입장 사이에 균형을 잡는 일이 필요하게 되었읍니다.—로마 10:10; 갈라디아 5:22, 23.

      11 오래지 않아, 적절하게도 그러한 균형을 잡게 되었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배양하는 일과 여호와를 위해 담대하고 충실하게 증거하는 일 두가지를 다 해야 할 필요가 있읍니다. 이 두가지 요구 조건은 다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느 한쪽 일을 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다른 한쪽을 경시할 수 없읍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하고 말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또 이렇게도 말하였읍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린도 전 9:16, 27.

      “위에 있는 권세들”에 대한 복종

      12, 13. (ㄱ) 로마서 13:1의 “더 높은 권력들”에 대해 처음에는 어떠한 견해를 취하였읍니까? (ㄴ) 이로 말미암아 어떠한 정 반대의 견해에 이르게 되었으며, 그렇지만 어떠한 뚜렷한 유익이 있었읍니까?

      12 로마서 13:1-7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게 된 일도 정확한 견해를 향한 “항해”의 또 다른 예가 됩니다. 초기의 ‘성경 연구생’들은 “더 높은 권력들” 즉 “위에 있는 권세들”이란 이 세상 정부의 통치자들을 말한다고 올바로 이해하였읍니다.—흠정역과 개역 한글판 비교.

      13 그러나 이러한 질문이 생겼읍니다. 즉 그러면, “더 높은 권력들”이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일 수 있는가? 한동안 하나님의 백성은 그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읍니다. 그리고 그 혼란스러웠던 수년간의 제2차 세계 대전 중, 이것은 적어도 그들로 ‘사람보다 통치자로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강화시켜 주었으며, 동시에 전세계에서 담대한 그리스도인 중립의 놀라운 기록을 세우게 해 주었읍니다. (사도 5:28, 29)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첫째가는 충성을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와 그분의 ‘메시야’ 왕 예수 그리스도께 바쳐야 한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읍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분들이 우리가 ‘공세와 국세를 바치고 존경해야’ 할 “위에 있는 권세들”이십니까?—로마 13:7.

      14. 세상의 정부 권세들에 대한 복종의 문제가 어떻게 최종적으로 참다운 빛 가운데 밝혀지게 되었읍니까?

      14 다행히도, 1962년에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상대적 복종의 원칙에 대한 이해를 얻도록 인도하셨읍니다. 헌신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통치자들을 “위에 있는 권세들”로 순종해야 하며, 이들을 자기들의 유익을 위해 일하는 “하나님의 사자” 즉 종임을 기꺼이 인정해야 함이 밝혀졌읍니다. (로마 13:4) 그러나, 이들 “권세들”이 하나님의 법을 범할 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당시까지만해도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서 13:1의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는 명령에 순종했었읍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태 복음 22:21에 기록된 예수의 이러한 말씀에 의해 제한을 받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그러므로, “가이사”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일들을 하도록 요구할 때 그들은 언제나 “‘가이사’의 것”보다 여호와의 법을 앞세워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국 내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것과는 반대됩니다. 소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가이사’가 하라고 명령할 때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에 대해서 별로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습니다. 한 애국자는 그 점을 이렇게까지 표현하였읍니다. “내 조국! ·⁠·⁠· 조국은 언제나 올바를찐저. 그러나 옳든 그르든 내 조국.” 그러나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일을 하라는 명령을 받을 때 그들은 예수의 사도들처럼 “우리는 사람보다 통치자로서 하나님께 순종해야 마땅합니다”라고 말합니다.—사도 5:29, 신세.

      누가 봉사자들 즉 ‘미니스터’들인가?

      15, 16. (ㄱ) 누가 하나님의 봉사자들인가에 대한 이해는 오래도록 어떠하였읍니까? (ㄴ) 어떠한 조정이 있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읍니까? (ㄷ) 그러나 이 조정에는 어떠한 결함들이 있었읍니까?

      15 점진적인 계몽의 한 가지 예를 더 들어 보면,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헌신한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다 봉사자 즉 ‘미니스터’들인가에 대한 질문이 있읍니다. 여러 해 동안, ‘여호와의 증인’들은 회개하고 전환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그리스도께서 밝혀주신 대로 여호와의 뜻을 행하기 위해 그분께 헌신하고 침례받은 사람들은 누구나 참으로 봉사자 즉 ‘미니스터’들이라는 견해를 가졌읍니다. 그러나 그 후 일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였읍니다. 정부 권세들이 종종 이러한 신분을 인정해 주지 않았읍니다. 또한 많은 언어에는 “미니스터”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으므로 그 단어가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었읍니다. 또한, 침례를 적절한 ‘미니스터’ 임명식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었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이 과연 “미니스터”라는 칭호를 회중 내의 직책에 임명된 사람들 즉 장로들과 “집사” 곧 봉사의 종들에게만 국한시키게 하는 확고한 이유들이었읍니까?

      16 사실상, 나라의 법은 대개 각 종교 조직에게 어떤 사람을 그 조직의 봉사자 즉 ‘미니스터’로 삼는 데 필요한 요구 조건들을 결정하는 권리를 부여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신분을 인정해 주지 않거나 그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많은 언어에 “미니스터”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는 점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실로 인하여 그러한 단어가 있는 언어들—영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것이 온당한 목적에 쓰인다면, 그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아서는 안됩니다.

      17, 18. 누가 참으로 “미니스터”라고 불리울 수 있으며, 그들은 자신의 “봉사의 직무”를 어떻게 여겨야 합니까?

      17 “미니스터”라는 말은 유용한 단어입니다. 그것은 특별한 유의 “종” 즉 숭고하고 특별한 봉사의 임명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이, 자기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대한 좋은 이해를 가지고 있음을 입증할 수 있고, 자신의 생활을 성서의 원칙과 일치하게 틀잡았고, 또한, 마태 복음 28:19, 20의 예수의 명령과 일치하게 헌신하고 침례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참으로 하나님의 봉사자들 중 한 사람입니다. 사실상, 이러한 사람이 신학교에 다녔지만 하나님의 목적을 모르고 자기의 생활을 하나님의 의로운 요구 조건과 일치하게 틀잡지 않은 사람들 중의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변호할 자격을 더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읍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나는 나의 봉사의 직무를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읍니다.—로마 11:13, 신세.

      18 “미니스터”라는 단어가 어떤 직함이 아니라 묘사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마태 20:28, 비교) 여호와 하나님의 종으로 침례받기 위한 단계들을 밟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개개인은 자신의 봉사의 직무 즉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거룩한 봉사”를 자기 인생의 첫째가는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그가 자기로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아무리 많은 시간을 봉사의 직무에 바칠 수 있다 하더라도, 자신을 봉사자라고 부르거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 하나님의 봉사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것은 부당할 것입니다.—로마 12:1, 신세; 디모데 후 4:5.

      19. (ㄱ) 그러한 이해의 발전으로 인한 결과로 어떠한 일이 있게 되었으며, 그러나 충성스러운 사람들은 어떠한 축복을 받았읍니까? (ㄴ) 영적 양식을 나누어 주는 여호와의 마련은 어떠한 것이며, 우리는 왜 반드시 그것을 택해야 합니까?

      19 물론, 말하자면, “태킹”과 관련된 이러한 이해의 발전은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과 연합한 사람들에게 종종 충성의 시험이 되었읍니다. 그러나, “좋은 소식”과 그것의 전체적 의미에 대한 보다 온전한 인식을 향한 발전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조직에 밀접히 머물러 온 사람들은 의문들 및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언제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명확해졌음을 경험해 왔읍니다. 그리고 빛이 점점 더 뚜렷이 비추임에 따라, 그 방법은 참으로 가슴을 뭉클케 하고 만족스러운 것임이 증명됩니다! ‘베드로’는 일부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실족하였을 때, 그 점을 이렇게 표현하였읍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요한 6:68)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전히 이러한 “말씀”을 가지고 계시며 오늘날 지상에서 사용하시는 유일한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의 조직을 통하여 그 말씀을 나누어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으로 묘사하신 “좋은 나무”와 같습니다. (마태 7:17) 이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택할 수 있는 길이란 오직 ‘사단’의 정치적 “짐승” 및 거짓 종교 세계 제국인 “큰 ‘바벨론’”과 연합하는 것뿐입니다. (계시 13:1; 17:5) 그리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헌신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베드로 후 2:22; 요한 14:6.

      20. (ㄱ)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 “돋는 ·⁠·⁠· 빛”에 대해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점증하는 빛의 길을 선택한 모든 사람들 앞에는 어떠한 행복한 장래가 놓여 있읍니까?

      20 참으로, ‘의인을 위하여 빛은 뿌려’졌읍니다. (시 97:11) 잠언 4:18의 “의인의 길”은 점점 더 밝게 비추이는 빛과 같다는 면도 성취되고 있읍니다. 때때로 얼마간 조정이 있게 되면, 그 결과로 언제나 상태가 개선됩니다. 연단은 헛된 적이 없읍니다. 지금 통치하고 계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백성이 즐기고 있는 계몽은 “돋는 해 아침 빛 같”습니다. (사무엘 하 23:3, 4; 마태 25:31) 여호와의 보이는 통신 대행 도구인 “충실하고 사려깊은 종”과 함께 충성스럽게 섬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참으로 은총을 받고 있읍니다! 그들은 현명한 선택을 하였읍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길은 귀중한 목표인, 여호와께서 창조하고 계시는 새질서에서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이사야 65:17, 18; 6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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