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라
“모든 일을 불평과 시비없이 하시오. 여러분은 흠잡힐 데 없는 순진한 사람이 되어 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아 세상에서 빛으로 나타나시오.”—빌립보 2:14-16, 새번역.
1-3. (ㄱ) 사랑하는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어떠한 반응을 보입니까? (ㄴ)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어떠한 “편지”가 왔으며, 그 안에 있는 충고를 적용할 때 어떠한 결과가 오게 됩니까?
만일 당신의 아버지가 먼 나라에 거주하고 있는데 그 아버지로부터 편지를 받았다면 당신의 반응은 어떠하겠읍니까? 당신은 그 편지를 개봉하지도 않을 것입니까? 혹은 단지 한 두줄만 읽고는 편지꽂이에 꽂아 놓고 말겠읍니까?
2 만일 당신이 참으로 아버지를 사랑한다면, 그러한 편지를 받을 때 깊은 인식을 나타낼 것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그 편지를 개봉할 것입니다. 예리한 관심을 가지고 한 마디 한 마디를 읽을 것입니다. 의심할 여지 없이 당신은 그 편지에 들어 있는 건전한 충고를 인식하고 적용할 것입니다. 사실, 그 편지를 즐거움으로 혹은 그 내용을 분명히 이해하기 위하여 여러 번 읽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3 만일 당신이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하였다면, 당신은 인간 부모로부터의 어떠한 편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소유하고 있읍니다. 당신의 천적 아버지로부터 66통의 “편지” 즉 하나님 자신의 거룩한 말씀인 성서를 받았읍니다. 그 충고를 적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은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가운데서 순진한 상태를 유지하였고 세상에서 영적인 빛이 되었읍니다. 당신이 그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든지 혹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지상의 새 질서에서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이든지, 당신이 ‘생명의 말씀을 계속 굳게 잡’는 것은 중요합니다.—빌립보 2:14-16, 새번역.
4. “생명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4 “생명의 말씀”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씨’에 대한 약속으로부터 시작된 생명의 희망에 관한 하나님의 소식입니다. (창세 3:15, 신세) 이것은 마침내 의가 승리할 것을 보증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성서가 기원 98년경에 완성될 때까지 약 4천년간 그 “말씀”을 더해 오셨읍니다. 그 때 이후로 “생명의 말씀”은 성경 전체로 구성되었읍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가능케 하심을 알려 줍니다. (요한 3:16) 하나님의 승인과 영원한 생명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성서에 따라 생활하며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고 있읍니다.
5.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것은 왜 커다란 가치가 있읍니까?
5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데는 커다란 가치가 있읍니다. 그것을 굳게 잡는 사람은 누구라도 여호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읍니다. 또한, 그 개인은 인생의 제반 문제를 더 잘 극복할 수 있읍니다. 더우기,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으면 그리스도인은 불리한 환경을 인내할 수 있읍니다. 이제 그것이 어떻게 사실인지 고찰하여 보십시다.
병을 견디는 일
6, 7. 병에 대하여 여호와의 종들은 어떠한 지식으로부터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읍니까?
6 병은 빈부를 가리지 않습니다. (전도 5:16, 17; 6:1, 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적 형제들이 때때로 아프다고 묘사하셨읍니다. (마태 25:39, 40) 그리고 ‘에바브로디도’, ‘디모데’, ‘드로비모’와 같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병에 걸렸었읍니다. (빌립보 2:25-30; 디모데 전 5:23; 디모데 후 4:20) 그러므로, 여호와의 현대 종들은 병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독특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얼마의 위안을 받을 수 있읍니다.
7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병을 제거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힘을 줍니다. (신명 7:15) 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의 신체적 회복은 좋은 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여 그를 고쳐 주셨읍니다. (열왕 하 20:1-11) 지상에 계실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신체적 병과 영적 병을 모두 고쳐 주셨읍니다. (마태 8:14-17; 이사야 53:4) 이러한 고침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마련하신 대속 희생이었읍니다. 대속 희생은 하나님의 영이 기원 29년에 ‘요단’ 강에서 예수 위에 임한 후 예수께서 따르신 행로의 절정을 이루었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의 통치하에서 순종하는 인류가 죄와 질병과 사망으로부터 영구적인 해방을 얻을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우리의] 모든 병을 고치시”는 분으로 여호와를 송축한 것은 참으로 적절한 일이었읍니다!—시 103:1-3.
8. 병에 걸린 그리스도인은 이제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8 한편, 병에 걸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읍니까?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서, 그는 여호와께 그의 병을 견딜 수 있는 강한 참을성과 이러한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성실을 유지할 수 있는 힘을 적절히 간구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사람은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시 41:1-3.
긴장감을 극복하는 일
9, 10. (ㄱ) 긴장감 가운데서 균형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것입니까? (ㄴ) ‘사울’ 왕의 감정은 어떻게 진정되었읍니까?
9 일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긴장감은 오늘날 주목할 만한 문제입니다. 생활에서 견디기 어려운, 신경을 건드리는 상황이 발전할 수 있읍니다. 때때로 긴장감은 매우 강하여 상당한 정신적 피로가 올 수 있읍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것은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10 커다란 감정적 긴장을 경험하는 사람을 진정시키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성서는 이에 대한 몇 가지 명백한 이해를 줍니다. 나쁜 영이 임하여 ‘이스라엘’의 ‘사울’ 왕을 두렵게 하였을 때, ‘다윗’은 그를 위하여 수금을 탔읍니다. 어떠한 결과가 있었읍니까? 성서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신은 그에게서 떠나더라.” (사무엘 상 16:14-23) 그렇습니다. 부드럽고 고요한 음악은 사람을 진정시킬 수 있으며 평화로운 감정을 조성할 수 있읍니다.
11. 긴장의 때에, 어디에서 가장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읍니까?
11 ‘다윗’ 자신도 긴장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읍니다. 의심을 품은 ‘사울’ 왕이 ‘다윗’을 창으로 찔러 죽이려고 시도한 것이 한번만이 아니었읍니다. (사무엘 상 18:6-11; 19:9, 10) ‘사울’은 또한 ‘다윗’을 불법자라고 선언하여 도망다니지 않을 수 없게 하였읍니다. 확실히 ‘다윗’은 그 때 그리고 그 후 여러 번 긴장감을 경험하였읍니다. 도움을 위하여 그는 기도로 여호와 하나님께 향하였읍니다. “주여 나는 괴롭고 외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곤난에서 끌어내소서” 하고 ‘다윗’은 여호와께 간구하였읍니다. (시 25:16, 17) 긴장의 때에 여호와께서 그의 종들을 도우실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읍니까? 참으로 기대할 수 있읍니다! ‘다윗’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읍니다. “여호와는 또 압제를 당하는 자의 산성이시요 환난 때의 산성이시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시 9:9, 10.
우울한 사람들을 위한 위안
12, 13. (ㄱ)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결코 정신적 우울감을 경험하지 않을 것입니까? (ㄴ) ‘바울’은 우울감으로 인도할 수 있었을 고난을 어떻게 인내할 수 있었읍니까? (고린도 후 12:7-10)
12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사람들은 또한 그들이 정신적 우울감을 경험한다면 성경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읍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여호와를 섬긴 다른 사람들이 때때로 우울했었다는 것에 유의할 것입니다. 확실히, ‘이삭’과 ‘리브가’는 그들의 아들 ‘에서’의 ‘헷’ 족속 아내 두 사람 때문에 우울감을 경험하였읍니다. 이러한 기록이 있읍니다.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의 근심이 되었더라.”—창세 26:34, 35.
13 분명히 우울감은 일부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혔읍니다. 왜냐 하면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동료 신자들에게 “마음이 약한 자들[우울한 자들, 신세]을 안위”하라고 충고하였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 전 5:14) ‘바울’ 자신은 우울감으로 인도할 수 있었을 고난을 당하였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이러한 환경을 극복하였읍니다. 사도는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느니라.]” (고린도 후 4:8, 9) 그렇습니다. ‘바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격려적인 본을 세웠읍니다.
14.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우울해진다면, 왜 우리는 ‘느헤미야’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까?
14 아마 당신은 개인적인 문제나 혹은 크게 염려되는 다른 문제 때문에 우울할지 모릅니다. 만일 그렇다면, ‘느헤미야’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예루살렘’과 그 성벽의 황폐된 상태로 인하여 우울감에 빠졌으며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우울한 모습을 보였읍니다. 그 ‘바사’ 통치자가 질문하였을 때, ‘느헤미야’는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였읍니다. 그 후 그는 재건 사업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갈 허락을 간청하였읍니다. 왕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이 요청을 허락하였읍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느헤미야’에 임하였읍니다. (느헤미야 2:1-8) 이와 동일하게 오늘날, 여호와의 백성은 문제들이나 기타 염려거리에 대한 도움과 인도를 그분께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다음에 그들이 여호와의 인도를 따른다면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15. ‘베드로’는 우울감의 때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암시하였읍니까?
15 정신적인 우울감의 때에,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 바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베드로 전 5:6, 7.
슬픔을 인내하는 일
16, 17. 성경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은 무엇의 원인이 될 수 있읍니까?
16 때때로 사람들은 슬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시편 필자는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다고 말하였읍니다. (시 116:3) 강렬한 슬픔의 두드러진 이유 한 가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사망입니다.
17 족장 ‘아브라함’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의 사망 때문에 울었읍니다. (창세 23:2) ‘다윗’은 ‘압살롬’의 사망에 대하여 깊이 슬퍼하여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사무엘 하 18:33) 완전한 인간 예수 그리스도도 “눈물을 흘리”셨읍니다. 그분은 친구 ‘나사로’의 죽음에 대하여 매우 슬퍼하셨읍니다.—요한 11:35.
18, 19. (ㄱ) 유가족이 슬픔을 인내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ㄴ) 그는 성서 기록으로부터 어떻게 위안을 받을 수 있읍니까?
18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것은 유가족이 슬픔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만일 어떤 사람이 죽은 사람과 누렸던 과거의 즐거움을 간절한 마음으로 계속 생각하면 슬픔은 증가될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앞날에 대하여 생각하는 편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성서는 수십억의 죽은 인류가 생명으로 일으켜질 것을 지적합니다. ‘바울’은 ‘의로운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다 같이 부활한다’는 희망을 가졌읍니다. (사도 24:15, 새번역) 물론, 누가 부활될 것인가를 결정하실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장차 지적 낙원에서 생명을 얻을 충실한 그리스도인은 같은 전망을 가지고 사망한 여호와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다시 만날 희망을 품을 수 있읍니다.—요한 5:28, 29.
19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유가족은 성서 기록으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읍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의 친 형제 ‘나사로’를 부활시키셨을 때 ‘마리아’와 ‘마르다’의 행복을 상상하여 보십시오. (요한 11:38-44)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이로’의 딸을 부활시키셨을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기억합니까? 기록을 보면 “그 부모가 놀라”고 즐거워하였읍니다. (누가 8:40-42, 49-56)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 질서의 주민들은 그들이 부활되는 사람들을 환영할 때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생각하여 보십시오! 그러한 생각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때 닥치는 슬픔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읍니다.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을 사별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로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갈 필요가 있읍니다. 왜냐 하면 그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고린도 후 1:3.
소심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
20, 21. (ㄱ) 소심한 사람들은 ‘모세’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ㄴ) ‘예레미야’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읍니까? (예레미야 1:5-8)
20 여호와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 가운데는 수줍음이나 소심 혹은 두려움과 같은 감정과 투쟁하여 온 사람들이 있읍니다. 일부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수줍어하여 내적인 믿음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하였읍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른 종들이 자기들의 문제와 다르지 않은 문제들을 성공적으로 극복하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21 예를 들면, 예언자 ‘모세’는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가졌었읍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를 ‘애굽’으로 돌려 보내어 ‘이스라엘’인들을 그곳 노예 생활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는 매우 난처해 하며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라.” 여호와께서는 ‘아론’을 그의 대변자로 삼아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셨읍니다. 그러나 ‘모세’는 포기하지 않았으며, 항상 다른 어떤 사람이 자기를 대변하게 하였읍니다. 후에, 그는 확신을 가지고 ‘이스라엘’인들 앞에서 직접 말하였읍니다.—출애굽 4:10-17; 신명 1:1-5.
22. 두려움에 대하여,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떠한 훌륭한 충고를 주었읍니까?
22 또한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충고를 고려하여 보십시오. ‘디모데’가 약간 두려워하였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읍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에게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디모데 후 1:7, 8.
23. 부끄러움이나 소심과 두려움은 어떻게 쫓아내 질 수 있읍니까?
23 그리스도인은 ‘모세’가 직면한 문제와 같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읍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께 열렬히 힘을 간구함으로써 부끄러움이나 소심과 두려움을 쫓아 버릴 수 있읍니다. (빌립보 4:6, 7, 13) 여호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두려움 없이 기도로 그분을 찾을 수 있으며 그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읍니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기술하였읍니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한 1서 4:17, 18.
부도덕한 행실을 피하는 일
24. (ㄱ)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어떻게 보호 역할을 할 수 있읍니까? (ㄴ) 성적 부도덕은 어떠한 결과로 인도할 수 있읍니까?
24 한편, 합당한 두려움이 있으며, 그러므로 성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며 그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시 19:9; 잠언 8:13) 그것은 병적인 두려움이 아니라, 여호와께 대한 경외와 그분을 불쾌하시게 하는 것에 대한 건전한 두려움이 포함됩니다. 이것은 나쁜 길을 따르지 않도록 보호하여 줍니다. 물론, 예를 들면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사람은 성경의 성적 부도덕을 단죄한다는 것을 알고 있읍니다. (신명 5:18; 고린도 전 6:9, 10) 그러나, 성서는 그러한 도덕적으로 부패한 행실이 또한 재난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지적합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자기의 이복 누이 ‘다말’을 범한 후, 그는 ‘다말’을 “심히 미워”하였읍니다. ‘암논’은 이제 자기에게 불유쾌한 사람인 ‘다말’을 집에서 나가게 하였읍니다. 아마 ‘다말’의 존재는 그로 하여금 불결함을 느끼게 하였을 것입니다.—사무엘 하 13:1-19.
25. 유혹을 받을 때 ‘요셉’의 행실을 기억하는 것이 왜 유익할 수 있읍니까?
25 이와 대조하여 볼 때, ‘야곱’의 아들 ‘요셉’은 참으로 훌륭한 본을 보였읍니다! ‘요셉’은 그의 주인 ‘보디발’의 아내의 반복적인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와 관계를 갖기를 완강히 거절하였읍니다. 그것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거짓 고발을 받고 투옥되었지만 ‘요셉’은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읍니다. (창세 39:7-23)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고 있는 사람의 생활에 성적 부도덕에 가담하게 하려는 유혹이 있을 때 ‘요셉’의 행실을 기억하는 것은 유익할 수 있읍니다.
“빛으로 나타나시오”
26-28. (ㄱ) 요약하면,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것이 어떠한 면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읍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계속 빛으로 나타날’ 수 있읍니까?
26 그러므로 확실히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66권으로 구성된 성서의 가치를 깊이 인식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읍니다. 우선, 성경의 충고를 적용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병과 긴장감을 극복할 수 있읍니다. 그들은 우울할 때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안을 발견합니다. 성서는 또한 그들이 슬픔을 인내하고 소심과 두려움을 성공적으로 극복하도록 도와 주며 부도덕한 행실을 피하도록 도와 줍니다.
27 더우기,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사람들은 이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세대” 즉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된 인류 세상의 비행에 관하여 “흠잡힐 데 없고 순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읍니다. 그러한 인류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빛으로 나타납’니다. (빌립보 2:14-16, 새번역) 그러한 영적 “빛”으로 섬기는 가장 큰 책임을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과 연합하여 지상 낙원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전망을 가지고 있는 “큰 무리”가 있읍니다.—계시 7:4-9.
28 여호와 하나님께 의뢰하면서, 모든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영적 빛을 비출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그들은 계속 합당한 원동력 혹은 영을 나타낼 것이며 그 영은 여호와 하나님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의 열매를 배양하고, 나타내고자 노력할 것이며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지금까지 여러 세기 동안 여호와를 섬겨 온 다른 사람들의 훌륭한 특성을 기억하는 것이 현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참으로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는 오늘날의 모든 경건한 사람들이 나타내는 영과 함께 계속 계실 것이 확실합니다. 당신도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영을 나타내고 있으며, “생명의 말씀”을 굳게 잡고 있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