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말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할 때
좋은 이름 또는 명성을 얻는 것은 중요하다. 고대의 한 잠언에서는 “많은 재물보다 명예[이름, 신세]를 택할 것”이라고 말한다. 현대에 있어서도, 좋은 이름은 중상모략으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을 가치있는 것으로 고려된다. 으례 사람들은 자기 이름이 심히 모독을 당하는 것, 특히 그것이 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경우, 그러한 오명에서 벗어나기를 원한다.
그러나 종종 남들이 하는 말이 비판적이고 듣기 거북할지라도, 중상하는 말이 아닌 경우가 있다. 당신이 불리한 입장에 놓일 경우,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것인가? 당신은 그러한 일에 염려해야 하는가?
성서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실제적으로 평가하도록 도와 준다. 성서는 이렇게 권고한다. “무릇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 염려컨데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들으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한 것을 네 마음이 아느니라.”—전도 7:21, 22.
이 성서의 훈계는 인간사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에게도 잘못은 있게 마련이다. 성서에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 준다.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전도 7:20) 모든 인간은 불완전하게 된 ‘아담’의 죄 많은 후손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가까운 친구가 화가 나서 또는 분이 가득하여 자기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불쾌한 말을 한다 할지라도 놀랄 까닭이 없다. 그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으려 무척 애를 쓸지라도, 불완전한 인간은 자기의 혀를 선하게 사용하려는 일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의 제자 ‘야고보’는 다음과 같이 시인하였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야고보 3:2.
인간의 불완전성은 엄연한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인품에 미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분명히 우리는 인간이 지어내는 모든 비평을 다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는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절친한 친구가 자기에 대하여 좋지 않은 평을 하는 것을 듣게 될 수 있다. 그러면, 그는 ‘그래! 그가 내게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와 절교를 하지. 그런 친구는 필요없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좋은 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말라’는 성서의 충고를 따르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이것은 사람들이 하는 말을 객관적으로 들을 줄 알게 만들어 준다. 솔직한 사람은 자기도 가끔 다른 사람에 대해 좋지 않은 점들을 악의없이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하는 말을 꼭 개인적 모욕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또한 소문으로 전해 들은 말은 흔히 신빙성이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따라야 할 훌륭한 원칙은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라.]” 하는 것이다. (디모데 전 5:19) 이 원칙에 일치하게 행하면, 어떤 사람이 우리에 대해 말하더라고 하는 소문을 사실로 성급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칭찬의 말에 지나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그들의 칭찬은 그 칭찬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과대평가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올무가 될 수 있다. 자만심이 지나치게 되면 그의 좋은 성품들이 뒤로 밀려나버릴 수 있다. 성서 잠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
한편,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근거있는 비평거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른다. 그런 경우에, 그는 장차 다른 사람들의 불평의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경의 충고와도 일치한다. “더 중요한 것을 확인하여 ··· 흠이 없고 남을 넘어지게 하지[마시오].”—빌립보 1:10, 신세.
심지어 말이 잘못 전해지는 경우일지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는 것이 현명한 처사임을 알게 될 것이다. 오전된 것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그런 말을 못하도록 억지로 막으려고만 하는 것은 더욱 광고를 하는 격이 되고 더 많은 사람들로 그것을 믿게 하는 결과가 되게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잘못 이야기되는 것을 다루는 점에서 훌륭한 본을 세우셨다. 그분을 가리켜 포도주를 즐기고 먹기를 탐하는 자라는 거짓 비난이 있었을 때, 그 말에 대하여 논쟁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단순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함을 얻느니라”고만 말씀하셨다. (마태 11:19) 그분은 그러한 말씀으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증거를 살펴보도록 하셨다. 그 증거 즉 행한 일은 그러한 비난이 거짓임을 분명히 밝혀 주었다.
훌륭한 행실을 나타내며, 다른 사람들을 사려깊고, 합당하게 대하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잠잠케 만든다. 진실한 관찰자들이라면 자기들의 말이 거짓임을 깨닫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행실을 유지하는 데 특히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성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격려한다.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지한 입을 막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베드로 전 2:15, 새번역.
사람을 헐뜯기 위한 의도로 욕하거나 잘못 말을 전하는 경우를 당하면, 그에 대하여 귀를 막는 것이 보통 최선책이다. 하나님의 충실한 종인 ‘다윗’은 그렇게 하여 훌륭한 결과를 얻었다. 그는 자기가 쓴 시 가운데서 이렇게 읊었다.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시 38:13, 14.
무엇이 ‘다윗’으로 하여금 비난을 받는 가운데서도 그렇게 처신할 수 있게 하였는가? 그는 자기 스스로는 흡족할 만큼 문제를 바로잡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는 자기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그는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하고 말하였다. (시 38:15) ‘다윗’의 본을 따르는 것이 유익하지 않겠는가? 틀림없이 유익할 것이다. 자기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려는 것보다 자기 하나님을 참을성있게 바라는 사람은 도덕적인 비행에 대한 무가치한 다툼에서 오는 좌절감이나 신경과민을 격지 않는다.
사실상, 일상 생활에서, 지혜는 남의 말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 준다. 우리가 ‘사람의 말을 들으려고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불필요한 잘못을 범하는 일이나 자만에 빠지는 일이 없게 해 준다. 동시에 근거있는 비평을 들을 때는 개선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훌륭한 행실을 유지함으로써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지한 말’은 잠잠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