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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음에는 훌륭한 보상이 있다파수대—1976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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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시어 ‘사단’이 이 충실한 사람에게 가져오도록 한 재난을 상쇄하셨다. 그리고 ‘욥’ 자신이 시인한 바에 의하면, ‘욥’은 그의 하나님을 온전히 영화롭게 하지 못하였지만 회개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풍부한 자비를 받았다. (욥 42:2-6) 성서는 이렇게 보고한다. “여호와께서 ···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라.]”—욥 42:10-12.
사람이 ‘욥’과 같이, 현 생애 중에 자기의 인내에 대한 완전한 상을 경험하지 못할지라도, 그는 여호와의 축복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의로운 상태 하에서의 생명으로 부활될 전망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하였을 때에 충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상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히브리 11:35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어떤 타협으로] 면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부활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참고 인내한 데 대한 상을 받는 것을 절대로 막을 수가 없다.
불유쾌함을 참을성있게 견디는 사람은, 모든 불리한 상황이 장차 역전될 것을 확신할 뿐 아니라 심지어 지금도 상을 받고 있다. 그는 선한 양심을 유지하며 자신이 창조주를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또한, 화나게 하는 일이 있을 때에 자신을 억제한다면 격렬한 다툼을 방지할 수 있다. 잠언 15:18에서 이렇게 말하는 바와 같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
그러나 심한 긴장감 아래서도 참을성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제자 ‘야고보’는 비슷한 질문을 한 다음에 대답을 제시하였다. 그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니라.]”—야고보 5:13.
여호와 하나님의 도움을 호소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짐을 그분께 맡’긴다. 이렇게 하는 결과에 대하여 시편 55:22은 이렇게 알려준다.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 기도와 아울러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다면 현 제도의 상태의 이유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된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변경될 수 없는 사물에 대하여 불필요한 흥분을 피할 수 있게 된다. 더우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통하여 우리가 그의 말씀으로부터 고려한 점을 우리의 정신에 돌아오게 하여 우리가 난관 하에서 참을성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영적 위안을 주신다. 상황이 절망적으로 보일 정도까지 문제가 증대되어도 여호와께서는 그의 영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돕도록 하실 수 있다. 우리가 그를 의존하는 한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가 영적 파멸을 경험하고 참고 인내할 때 얻는 상을 놓치도록 결코 허락지 않으실 것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법적인 세상에서 계속 참을성을 보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선한 양심을 보존하고 다툼을 그치게 하며 불리한 입장에서도 기쁨을 유지하며 우리가 변경할 수 없는 사물에 대해 부당하게 교란되어 우리의 건강을 해치는 일을 피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의로운 상태 하에서의 끝없는 생명의 놀라운 전망을 바라볼 수 있다. 실로, 참음에는 훌륭한 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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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질하는 배가 성공하지 못하리라파수대—1976 |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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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질하는 배가 성공하지 못하리라
● 여호와의 보호를 받을 때에 ‘예루살렘’ 거민들이 어떠한 안전을 누릴 것인가에 관해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썼다.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 곳은 마치 노질하는 배나 큰 배가 통행치 못할 넓은 하수나 강이 둘림 같을 것이라.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이사야 33:21, 22.
‘예루살렘’ 도시에는 침략을 막기 위한 방어 수단으로 큰 강이나 하수 혹은 호수가 없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도시를 보호하신 것은 마치 “하수나 강”의 효력 같았다. 노질하는 배로 상징된 강한 적군은 여호와의 보호의 상징적 물에서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이사야’ 시대에 있었던 이러한 보호의 탁월한 사례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려다 실패한 일이다. 하루밤에 여호와의 천사가 ‘앗수르’ 군인 185,000명을 멸하였다. ‘산헤립’은 자기 군대의 주요 부분을 상실하자, 할 수 없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였다.—열왕 하 19:35,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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