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기쁨을 성취할 것이다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기쁨, 신세]을 성취하리로다.”—이사야 53:10.
1. 무엇이 마음 아픔과 실망을 일으킬 수 있으며, 그러한 일은 어떤 결론을 가지게 합니까?
“아, 그것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정말 기쁘겠는데” 하고 당신은 말해 본 적이 있읍니까? 아마 틀림없이 그런 말을 많이 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아름다운 꿈이었을 수도 있읍니다. 그렇지 않으면 좀더 심각하고 가치있는 일 곧 필생의 야망과 간절한 희망으로서 너무 힘든 일이라 자신의 능력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그러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동경만 하는 그러한 일일 수도 있읍니다. 아마 당신은 창조주의 존재를 인정하기는 하면서도 그분이 너무나 멀리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당신 개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올바른 판단입니까? 그렇지 않고 당신에게 신선한 견해와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할 건전한 이유가 있읍니까?
2. 인생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떠한 노력이 있었읍니까?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2 인생의 제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실로 많이 있었읍니다. 개개인들이나 각종 단체들이나 간에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고 온갖 방법을 강구하였읍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 결과는 어떠하였읍니까? 성공의 비결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소수는 있읍니다. 그러나 어떠한 근거 위에서 그렇게 하였읍니까? 흔히 실제적으로 혹은 상징적으로 자신을 생활상의 불쾌한 일로부터 격리시켜 결과적으로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일도 있읍니다. 그것이 참 만족을 가져오리라고 당신은 생각합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들은 그러한 문제에 접하는 것을 싫어하며 그것이 자기 생활 방식을 방해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그것이 지혜롭고 좋은 태도라고 생각합니까?
3. 우리는 어디서 인간의 문제들과는 정 반대의 현상을 보게 되며, 그러므로 무엇을 알아보게 됩니까?
3 그와는 반대로 위로 하늘을 쳐다보거나 아래 땅을 내려다 보거나 우리는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만물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고 감탄합니다. 망원경으로 보든지 현미경으로 보든지, 아니면, 우리 육안으로 보든지, 모든 것이 능률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되어 있기 때문에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그것은 기쁨임과 동시에 성공입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위대하신 설계자와 창조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틀림없읍니다. [보이는 창조물의 책]은 그 정도를 우리에게 알려 주지만, 만족스러울만큼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다른 책, 곧 인류에게 영향을 주는 일들에 대해 만족스럽게 설명해 주고 또한 우리 개개인이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알려 주는 책, 그리하여 즐겁고 항구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 책이 있지 않은가 하고 의아하게 되고 알아보게 됩니다. 그것은 너무 욕심이 많은 것입니까?
4. 오늘날 일반적으로 성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태도에 대하여 누구에게 책임이 있읍니까?
4 여러 종교 조직에서 받들고 있는 어떤 책들은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바람직한 생활 방식을 알려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에 완전하고 만족할 만한 해답을 준다고 하고 또한 주고 있는 책은 단 하나 있을 뿐입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 책은 여러 책을 모은 책입니다. 그 책은 「성서」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 책을 잘 안다고 혹은 적어도 그 일부분을 잘 안다고 하면서 그 책은 기껏해야 일시적인 유익밖에 주지 못하며 정신적인 평화와 안정감을 줄 뿐이라고 말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이 그 성서를 사용하는 방법을 보고 실망하지도 마십시오. 그러한 교회들은 대부분 그 책을 형식적으로만 사용하고 있읍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로는 성서에 주의와 존경과 영예를 돌리는 정도가 점차 낮아지고 있읍니다. 이러한 태도는 성서의 가장 친한 벗이 되어야 할 그리스도교국의 교인들에게서 볼 수 있읍니다. 성서의 가장 친한 벗이라고 주장하는 성서 사전이나 성서 주석 등 여러 가지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책들이 점점 고등 비평의 쪽으로 기울고 성서 그 자체를 최종적 권위로 인정하기 보다는 인간의 논리나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대 추세입니다.
5. 어디서 우리는 전반적인 추세와 반대되는 어떤 태도를 볼 수 있으며, 어떠한 기대를 가지게 됩니까?
5 그러나 이러한 전반적인 추세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읍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그들의 태도와 행동으로 그리고 그들의 출판물을 통하여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강력히 증거하고 있읍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도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들은 또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유익’하며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준다고 한 ‘바울’의 말과 같이 그들도 말하며, 또한 그렇게 믿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실망하고 낙심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신이 그들과 함께 성서를 애호하고 이해할 건전한 이유를 고려해보도록 성실하게 권고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최대의 행복과 틀림없는 만족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요한 17:17; 디모데 후 3:16, 17; 또한 베드로 후 1:21 참조.
6. (ㄱ) 무슨 기초 위에 좋은 기대를 세울 수 있읍니까? (ㄴ) 이 말은 평탄한 행로를 의미합니까? 그리고 성공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6 먼저, 우리는 그의 말씀 가운데 설명된 창조주의 목적을 살펴보겠읍니다. 그것이 어떻게 실현되며, 왜 그것이 틀림없이 성취되며, 왜 그것을 합당하게 그분의 기쁨이라고 칭할 수 있는지를 보겠읍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마음과 정신 가운데 최선의 욕망과 목표를 세워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그러한 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인도와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소중한 희망은 현재의 우리 경험과는 달라 슬픔과 탄식으로 끝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앞으로는 당신의 행로가 용이하고 평탄할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은 마치 커다란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앉아서 “비용을 계산”한 다음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고자 하는 사람과 같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 햇 동안 고난을 당한 다음에,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말한 사람과 같을 것입니다. 인생에 대한 당신 자신의 목적을 창조주의 웅대한 목적에 온전히 일치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당신의 성공의 비결입니다.—누가 14:28; 고린도 후 4:16-18.
확고한 하나님의 목적
7. (ㄱ)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목적을 가지고 계셨읍니까? 사람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의 형상 대로 창조되었읍니까? (ㄴ)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받을 수 있으며, 우리는 무슨 조건을 달성하지 않으면 안됩니까?
7 여호와는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포함한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창조물을 단순히 시작만 시켜놓고 그것들 스스로 계속해 나가도록 내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그 창조물에 대하여 지속적인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사실은 ‘요한’이 환상 가운데서 하늘에 있는 창조물들로부터 들은 다음과 같은 말로 확증됩니다. “우리 주[여호와]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계시 4:11) 우리는 우연에 의해 창조된 것이 아니며, 더더군다나 맹목적이고 개성이 없는 진화 과정의 산물은 더욱 아닙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읍니다. (창세 1:27) 사람에게는 정신과 마음이 있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본능에 의해서 자동적으로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생각과 추리를 할 능력이 있으며, 계획을 세우고 결정을 내리며 자유 의사를 행사할 수 있고 강한 욕망과 동기를 세워 나갈 수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과 충성, 헌신과 성실 등의 훌륭한 성품을 나타낼 수 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또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가운데 밝혀 놓으신 것을 이해할 수 있고, 자신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시킴으로써 성취감과 만족감을 달성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단순히 성서를 피상적으로만 읽어서는 그러한 것을 이해할 수 없읍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이러한 것들이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웠고, “어린 아이들” 곧 ‘마음으로 깨닫’고자 하는 성실하고 겸손하고 어린애와 같은 욕망을 가진 자들에게는 밝혀졌읍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그 점을 격려하셨읍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 11:25; 13:11-15; 누가 11:9-13; 또한 고린도 전 1:21; 2:11-16.
8. (ㄱ) 주 기도문은 하나님의 목적을 어떻게 요약하였읍니까? (ㄴ) 그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며, 그것을 어떻게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읍니까?
8 사람과 사람의 거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간단히 요약할 수 있읍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모범적 기도문 가운데서 그 점을 요약하셨읍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왕국]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 6:9, 10) 이 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이 그의 왕국을 핵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을 알 수 있읍니다. 그 왕국은 사람과 사람의 거처에 관한 하나님의 뜻 곧 목적을 이룰 것이며, 그렇게 하여 그의 좋은 이름은 거룩하게 될 것입니다. 뜻이 성취되면 자연히 그리고 논리적으로 이름이 거룩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결국 영광스러운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비유를 들어 설명하기 위하여 가령 어떤 사람이 좋은 집을 짓고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고자 간절히 갈망한다고 합시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는 상당한 노력과 계획이 필요합니다. 만일 이 일에 성공한다면 그들은 좋은 이름을 얻게 되고 말할 수 없는 즐거움과 정신적인 평안을 얻게 됩니다. 그들은 그 일이 어떠한 희생과 대가를 지불하든지, 심지어는 그것을 위하여 어떠한 고난을 당하든지 그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러한 일을 결정한 것을 기쁘게 생각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훨씬 규모가 웅대하며 사람들의 계획이나 사업처럼 실패나 잘못이 있을 가능성이 없읍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수행할 지혜와 힘이 있는가를 보시기 위하여 미리 계획을 할 필요가 없읍니다. 하나님께서 결심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거침없이 완전히 수행됩니다.
9. 성서는 어떻게 하나님과 그의 목적과 또한 “수석 대행자”에 대한 믿음을 강화합니까?
9 또 다른 요소가 포함되어 있읍니다. 인간의 일에 있어서는 훌륭한 계획도 잘못되거나 실패할 수 있읍니다. 그것은 실수 때문이거나 대리자가 잘못 행동하기 때문인 수도 있읍니다. 대리자의 활동 여하에 일의 성패가 크게 달려 있읍니다. 그와는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철두철미 믿음직한 최고의 대리자를 사용하십니다. 이 사실과 전술한 사실들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보십시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그리고 하나님의 “수석 대행자”에 관하여 ‘바울’은 이렇게 썼읍니다.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 되었[느니라].”—이사야 40:28; 46:9, 10; 에베소 1:9-11; 히브리 2:10.
10. 이 결과 어떤 좋은 일이 이루어질 것입니까?
10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자기 왕국의 통치권을 그리스도 예수께 맡기셨읍니다. 그리스도는 ‘그 어깨에 정사를 메었’읍니다. 거기에 기꺼이 순응하는 자들은 그의 지휘 아래 모두가 함께 모일 것이며, 하나님과 그의 사랑하는 아들과 온전히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연합되고 행복한 가족을 형성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훌륭한 집을 주실 것이나 단지 수년 동안만 살도록 주시는 것이 아니고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계속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할 것입니다.—이사야 9:6; 전도 1:4; 계시 21:4.
11. 지금이 “지정된 때”가 끝난 때라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11 우리는 이것을 확신할 수 있읍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냐 하면, 기원 1914년에 “지정된 때”가 온전히 끝났으며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하늘 ‘시온’ 산 위에 왕으로 즉위시키셨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증거하는 사건으로 바로 그 해에 세계 지배 문제를 둘러싸고 열국이 크게 분노하였읍니다. 시편 2:1-6과 계시록 11:15-18에 예언된 그대로였읍니다. 그 후에 “좋은 소식을 ···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고 하는 소식이 성취되었읍니다. 그 이후의 모으는 일이 광범하게 진행되어 왔읍니다. 그 일은 ‘요한’의 환상 가운데서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 위에 서 있던 자들 곧 그리스도인 회중에게서 먼저 시작되었읍니다. 사실, 이들 남은 자를 모으는 일은 1914년이 되기 약 40년 전부터 예비적인 방법으로 시작되었읍니다. 그러나 특히 1935년 이후에는 하나님의 더 큰 가족이 모여들어 왔읍니다. 그들은 ‘요한’이 144,000의 인침을 받는 일 다음에 본 “큰 무리”로서 지상의 희망을 가진 자들입니다.—이사야 52:7, 8; 계시 7:4, 9; 14:1.
조성자와 구속자
12. ‘이사야’의 예언의 뒷 부분에서는 무슨 주제를 강조합니까?
12 당신은 그 행복한 가족의 한 성원이 될 수 있는 전망 외에도 그 모으는 사업에 참여하는 기쁨과 흥분을 즐길 수도 있읍니다. 이 일은 당신에게 커다란 만족을 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위로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이 일은 ‘이사야’ 예언서 뒷부분의 주제를 이루고 있읍니다. 거기서 우리는 왕국 사업에 관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여호와께서 자기의 백성의 조성자(造成者)이시고 구속자(救贖者)이심을 볼 수 있읍니다. 이사야 40:1부터 시작하여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종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읍니다.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그 예언은 계속하여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 ···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읍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수행하실 모으는 일과 위로하는 일에 관한 소식을 들어보십시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이사야 40:1, 2, 9-11.
13. (ㄱ) 어떻게 더욱 하나님의 종이 밝혀졌읍니까? (ㄴ)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도시에 대하여 어떠한 두가지 이름이 사용되었읍니까?
13 여호와께서는 계속 자기의 종을 밝히시고 격려하십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8-10) 하나님의 백성이나 그들의 수도를 칭할 때에 그들의 이름 두가지를 병행해서 사용한 점에 유의하십시오. 이사야 41:14, 27에 나오는 ‘야곱’과 ‘이스라엘’ 그리고 ‘시온’과 ‘예루살렘’이 그것입니다. (1) ‘야곱’의 이름은 ‘이스라엘’로 변경되었으며(창세 32:28), (2) 처음에 보좌가 놓이고 다음에 언약궤가 놓이게 된 ‘시온’의 이름은 전체 ‘예루살렘’ 도시를 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읍니다.—시 2:6; 이사야 8:18.
14. (ㄱ) 예언들이 흔히 일차적, 이차적 및 최종적 성취를 보는 것은 각각 언제입니까? (ㄴ) 어떻게 영적 성취를 이해할 수 있으며, 왜 이것은 중요합니까?
14 우리는 또한 여러 가지 예언들이 성취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기억해야 하겠읍니다. 먼저, 예언들은 그 당시에 문자적인 성취를 보았읍니다. 두번째로, 예수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에 또 성취를 보았읍니다. 그것은 예수의 기적의 탄생, 침례 ‘요한’의 활동 및 예수께서 자기의 전도 임명을 말씀하시면서 성귀를 인용하신 사실 등으로 보아 알 수 있읍니다. (이사야 7:14; 40:3; 61:1, 2; 마태 1:18-23; 3:1-3; 누가 4:17-21) 부가적으로, ‘바울’과 다른 사람들은 어떤 예언들이 참다운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인 회중 곧 영적 ‘이스라엘’에게 적용됨을 알려 줍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이삭’과 같이]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하였으며, 또한 “너희[그리스도인들]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였읍니다. (로마 9:8; 갈라디아 3:29) 현재와 가까운 장래에 이러한 예언들이 최종적이고 대규모적으로 성취될 때를 생각할 때에 이러한 영감받은 지침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만, 여호와와 그의 아들과 함께 일하리라는 여호와의 초대에 응할 수 있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대로 할 수 있읍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린도 전 15:58.
15.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을 충분히 나타내셨읍니까?
15 ‘이사야’ 예언의 이 뒷부분에서 여호와께서 어떻게 자신을 충분히 나타내시는지 보십시오. 인간이 출생하는 데 있어서도 새로운 생명을 주는 자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생명을 출발시키지만 그 새로운 생명을 위하여 몸을 마련하고 성장시키는 것은 어머니의 역할입니다. 임신 기간에 그 일을 합니다. 또한 출생 후에도 아이를 돌보고 먹이는 일을 주로 어머니가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분은 그의 종들을 처음에 창조하시기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기의 종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자신에게 일곱 가지 칭호를 사용하셨읍니다. “너를 창조하신 [자] ··· 너를 조성하신 자 ··· 네 하나님 ··· 네 구원자 ··· 너희의 구속자 ··· 거룩한 자 ··· 너희 왕” 등의 칭호입니다. 그는 또한 조성자로서의 자기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강조하셨읍니다.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이사야 43:1, 3, 14, 15; 44:2; 또한 이사야 44:21, 24 참조.
16. (ㄱ)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조성하시고 구속하셨읍니까? (ㄴ) 이 점에 관하여 ‘이사야’ 시대의 상태는 어떠하였읍니까?
16 이 일은 고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서 시작하였읍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로 시작하여 그들을 한 백성으로 조성하기 시작하셨으며, 그들이 애굽에 오래 머무는 동안 그들을 보존하셨읍니다. 그 기간은 그들이 ‘시내’ 산에서 한 나라로 탄생하기 전 임신 기간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나라가 탄생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율법 언약 가운데 체계화된 국가적인 율법을 주셨읍니다. 하나님은 또한 ‘바로’가 그들을 보낼 것을 거절하였을 때에 힘으로 그들을 구출하심으로써 구속자가 되셨읍니다. 사실상, ‘바로’는 그의 장자의 죽음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며 애굽은 홍해에서 그 군대를 잃었읍니다. (출애굽 4:23; 이사야 43:3) 7세기 후 ‘이사야’ 시대에는 새로운 입장이 조성되어 여호와의 칭호는 부가적인 의미를 띠게 되었읍니다. ‘이스라엘’ 왕국과 ‘유다’ 왕국은 둘다 우상 숭배와 불법에 빠져 심한 죄를 지었읍니다. ‘유다’는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으며, ‘바벨론’은 그들을 영구적으로 노예로 삼을 작정이었읍니다. 여호와께서는 인자하시게도 그 백성의 범죄를 씻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자신을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자라고 하셨읍니다. 그는 심지어 오래 전에 어떤 방법으로 누구를 통하여 이 일을 하실 것인가를 예언하셨읍니다. 또한 자기는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라고 하셨읍니다. (이사야 44:21-28) 때가 되어 ‘바벨론’에서 되돌아온 남은 자들이 이 웅대한 사업에 참여하였읍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지만, ‘스가랴’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충실한 종들이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도운 사실은 기쁜 일이었읍니다.—스가랴 4:9, 10.
17.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경우에 어떠한 비슷한 일이 있었읍니까?
17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의 경우에도 마찬가지 일이 있었읍니다. 침례 ‘요한’의 제자들로부터 시작하여 예수의 봉사 기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준비하고 조성하시어 “거룩한 나라” 영적 ‘이스라엘’로 만드셨읍니다. (베드로 전 2:9; 갈라디아 6:16) 그 나라가 탄생하기는, 그들이 새 언약 안으로 들어오고 성령을 받은 때 곧 기원 33년 오순절에야 있었읍니다.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들 초기 그리스도인 개종자들이 ‘이사야’가 언급한 “남은 자”의 계속적인 성취라고 하였읍니다. 그는 또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도록 비‘유대’인들이 들어 온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이사야」서를 인용하였읍니다.—로마 9:27-29; 11:5, 25, 26.
18. 여호와는 어떻게 하여 자기의 현 시대 백성에 대하여 조성자와 구속자가 되셨읍니까?
18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우리는 현재 이러한 예언의 최종적 성취에 수반되는 활동을 보고 있으며 또한 거기에 참여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읍니다. 현 시대의 “남은 자”는 그리스도인 회중 성원 중 남아 있는 자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조성자로서 1914년이 되기 여러 해 전에 이미 예비적으로 그들을 모으기 시작하셨읍니다. 그는 또한 그들의 구속자이시기도 하였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로 사신’ 것 뿐 아니라,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에 또 구출이 필요하였을 때에 그들을 구속 곧 다시 데려오셨읍니다. 그들은 “큰 ‘바벨론’”에 사로잡히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대부분 그리스도교국의 교회에서 나왔지만, 사람에 대한 두려움, 피조물 숭배 등 ‘바벨론’적인 흔적을 계속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불쾌함을 사서 책망을 받고 깨끗케 함을 받을 필요가 있었읍니다. 마음이 진실한 자들은 이 사실을 감사히 여겼고 더 큰 ‘고레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출을 받았을 때에 기쁘게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왕국 소식을 두려움없이 전파하였읍니다. 그들의 경험과 감정이 다음과 같이 잘 예언되었읍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찌어다.”—사도 20:28; 계시 17:5; 이사야 12:1-5.
19. (ㄱ) 이 결과 어떻게 확장을 보게 되었읍니까? (ㄴ) 우리는 어떤 점에서 기쁨과 성공을 볼 수 있읍니까?
19 이 사실은 온 땅에 알려지게 되었읍니다. 그 결과 영적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많은 사람들도 이 좋은 소식에 응하였읍니다. 남은 자와 “큰 무리” 할 것 없이 이들은 모두 구속을 받았으며, “한 목자 아래 한 무리”로 조성되었읍니다. 그 목자는 그리스도 예수이십니다. (요한 10:16) 이것은 여호와의 증인들의 행복한 경험입니다. 우리의 목전에서 창조주의 목적이 완전히 성공적으로 수행되는 것을 보고 있읍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커다란 기쁨이 되고 통치하는 왕 그리스도 예수 안에 모여지는 자들에게 기쁨과 위안이 됩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렇게 약속하신 그대로입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이사야 55:11.
20. 어떠한 문제가 우리의 관심을 이끕니까?
20 생에 대한 당신 자신의 목적을 창조주의 목적과 일치시켜서 마찬가지로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을 더 이상 고려하기 전에, 문제가 되는 ‘이사야’ 예언의 어떤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고난에 관한 것인데, 그러면서도 그것을 기쁨이라고 하였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