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들이 개척하는 중대한 회복 사업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라.]”—이사야 61:5, 6.
1. 오늘날 국가의 부처의 장들은 무엇을 위해 분투노력하고 있으며, 어떻게 느끼고 있읍니까?
국가의 부처의 장들[봉사자들이라는 뜻의 Ministers]은 제 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하여 필요해진 대대적인 재건 사업에 참여하였읍니다. 그들이 참여하여 회복된 것 중 많은 것은 1939-1945년의 훨씬 더 파멸적인 전쟁으로 다시 파괴되었읍니다. 또 다시 재건 사업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훨씬 더 웅대한 규모로 그 사업이 필요해졌읍니다. 오늘날 공직자들 즉 공복(公僕)들은 제반사가 절망 상태로 떨어지지 않도록 막기 위해 분투 노력하고 있읍니다. 여러 정부들의 부처들은 당혹하고 있읍니다.
2, 3. (ㄱ) 제 2차 세계 대전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더 중요한 회복 사업이 진행되어 왔읍니까? (ㄴ) 이사야 61:4-6에는 어떠한 묘사적인 말로 그것이 예언되었읍니까?
2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더욱 중요한 회복 사업이 종전 후 첫해인 1919년에 시작되었읍니다. 제 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대파괴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단호히 계속되었으며, 아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읍니다. 그것은 인간 정부의 여러 부처들이 가지지 못한 힘의 지지를 받는 영적인 회복 사업이었읍니다. 로마서 13:4에 근거해 볼 때, 이 세상의 위에 있는 권세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유익을 주는 하나님의 공적 봉사자로 일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 회복 사업을 개척한 사람들은 더 높은 하나님의 공복들이었읍니다. 그러한 봉사자들이 개척한 사업에 대해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예언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읍니다.
3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을 것이라.]”—이사야 61:4-6.
4. ‘이사야’의 예언은 어느 전환기에 성취될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 이것을 지적하셨읍니까?
4 제 1세기의 회복 사업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사야’의 그러한 예언이 언제 성취될 것인지를 알려 주셨읍니다. 그 예언이 성취될 때는 여러 세기의 역사를 지닌 한 나라가 붕괴되고 새롭고 더 나은 나라가 존재하게 될 때일 것입니다. 그 새로운 나라는 하나님의 영으로 출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그 나라는 영적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위에 인용한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될 때를 지적하셨읍니까? 그분은 이 예언이 포함된 말씀을 인용하고 그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심으로써 그렇게 하셨읍니다. 당시 예수께서는 기원 30년 유월절 얼마 후 자기의 고향 ‘나사렛’의 회당을 방문중이셨읍니다. 그분은 낭독하기 위하여 일어나셨읍니다. 그분은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펴서 현재 61장으로 구분된 곳을 찾아 적어도 현재의 1절과 2절 일부를 읽으셨읍니다. 그리고 나서 청중에게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셨읍니다.—누가 4:16-21, 공동번역.
5, 6. (ㄱ) 희랍어를 사용하여 역사가 ‘누가’는 예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의 예언을 어느 번역판에 따라 기록했읍니까? (ㄴ) 원 ‘히브리’어 본문에는 이사야 61:1-3이 어떻게 되어 있읍니까?
5 이 사건을 기록한 역사가 ‘누가’는 「칠십인역」으로 알려진 희랍어 번역판에 나와 있는 대로 ‘이사야’의 예언을 사용하여 예수의 인용문을 기록하였읍니다. 그러나 ‘팔레스티나’의 ‘유대’인으로서 예수께서 읽으신 것은 원 ‘히브리’어 본문이었을 것이 분명한데, ‘히브리’어 원문에는 이 예언이 어떻게 되어 있읍니까? 다음과 같이 되어 있읍니다.
6 “주 여호와의 신[영]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이사야 61:1-3.
7. 그 다음에 회복 사업에 대한 어떠한 말씀이 나옵니까?
7 다음에 회복 예언에 관한 이러한 말씀이 이어집니다.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라.]”—이사야 61:4.
8. 예언이 성취될 때에, 감정적으로 어떠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왜 긴급할 것입니까?
8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될 때에 “가난한 자”, “마음이 상한 자”, “포로된 자”, 그리고 “갇힌 자” 및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가 있을 것임에 유의합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긴급할 것입니다. 그 때는 이 일을 하기에 합당할 것입니다. 왜냐 하면 그 기간은 “여호와의 은혜의 해”라고 불리운 기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주 여호와의 신” 즉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도래하면서 그의 은혜 즉 선의의 해가 시작될 것입니다. 그 상징적 “해” 다음에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이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는 기름부음받은 자의 사업은 참으로 긴급한 사업이었읍니다.
9. 예수께서는 그의 ‘나사렛’ 청중에게 어떠한 변경을 발표하셨으며, 그들은 어떻게 자신들이 “좋은 소식”을 받아들일 “가난한 사람들”이 아님을 증명하였읍니까?
9 예수께서는 지상에서 직업을 바꾸셨읍니다. 30세까지 그분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 생활을 하셨읍니다. 그 곳 회당에서 예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의 의미심장한 말씀을 낭독하셨읍니다. 그분은 이사야 61:1, 2을 다 읽으시고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직업 변경을 ‘나사렛’ 청중에게 발표하셨읍니다. 다음에 그분은 성서 연설을 행함으로써 그 사실을 입증하셨읍니다. 그분의 고향 사람들은 목수 출신인 그분이 연설을 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의사가 되셨다는 말을 들었읍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이 그의 “고향”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병 고침을 행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고치’기를 원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성서 비유로써 그렇게 하시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셨읍니다. 그러자 그들은 화가 나서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읍니다. 그들은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기 자신들이 “좋은 소식”을 받아들일 “가난한 사람들”이 아님을 증명하였읍니다.—누가 4:21-30.
10. 예수께서는 언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셨읍니까?
10 예수께서는 고향에서 받은 그러한 대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으신 목적을 수행해 나아가셨읍니다. 기원 29년 가을에 그분은 ‘나사렛’을 떠나 ‘요단’ 강으로 가서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읍니다.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물 위로 올라 오신 직후, 침례자 ‘요한’은 성령이 비둘기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는 것을 보았읍니다. 동시에 그는 하늘에서 들리는 이러한 여호와의 음성을 들었읍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마태 3:13-17; 누가 3:21, 22; 요한 1:29-34) 그 동일한 영의 인도로 예수께서는 ‘유대’ 광야로 가셔서 40일간 계셨읍니다.
11. 왜 예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연설하실 때 아직도 기름부음의 영을 가지고 계셨읍니까?
11 예수께서 40일간 금식하시면서 아버지 여호와와 친교하신 후, ‘사단’ 마귀는 세 가지 방법으로 그를 유혹하였읍니다. 만일 예수께서 그 유혹에 굴복하셨다면, 그분은 기름부음의 영을 상실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유혹자를 물리치심으로 영적 기름부음을 유지하셨읍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연설하실 때도 그것을 가지고 계셨읍니다.—마태 4:1-13; 누가 4:1-21.
12. 기원전 537년 이래 ‘유대’인의 땅에서 발생한 일로 볼 때, 예수께서 기름부음 받으셨을 때 ‘유대’인들에 대해 어떠한 질문이 생깁니까?
12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으신 것은 기원 29년에 있었으며 그 때는 예수의 동족이 기원전 537년에 ‘바벨론’의 포로 생활에서 해방되어 황폐된 고향 ‘유다’도로 귀환한지 565년 후였읍니다. 그 때 그들은 그들이 재건한 성전이 위치한 ‘예루살렘’을 포함하여 그 땅의 ‘황폐한 성읍을 중수’하였읍니다. 그들은 이미 70년간 황폐되었던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켰’으며 그 땅을 낙원과 같은 곳으로 변모시켰읍니다. ‘유대’인들의 세 차례에 걸친 연례 절기에 ‘시온’ 즉 ‘예루살렘’은 수백만명의 숭배자들로 붐볐읍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기름부음을 받으셨을 때, 왜 마음 상한 ‘유대’인 즉 ‘이스라엘’인이 있었읍니까? 왜 “포로된 자”가 있었읍니까? 왜 “갇힌 자”가 있었읍니까? 왜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가 있었읍니까? 왜 “좋은 소식”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 비천한 자, 겸비한 자가 있었읍니까? 왜 기원 29년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읍니까?
“좋은 소식”, 해방 및 자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
13. ‘유대’인 “갇힌 자”들이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그들은 무엇에 속박되었읍니까?
13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상태에 들어왔기 때문이었읍니다. ‘사로잡힌 자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던’ ‘바벨론’ 제국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신원의 날”을 집행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이사야 14:17; 예레미야 50:15, 28; 51:6, 11, 36)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그 ‘유대’인 “갇힌 자”들은 실제로 형상을 깎아 만들어 숭배하는 우상 숭배에 속박되지 않았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큰 것, ‘유대’ 종교 제도에 속박되었읍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무가치하게 만드는 인간의 가르침과 전통을 따르는 제도였읍니다. 공적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종교 제도에서 탁월한 사람들이 되었읍니다.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빼앗아 감으로써 사람들이 진리에 눈멀게 하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였으며, 그들이 직접 접촉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웠읍니다.—누가 11:52.
14. 예수 당시에 ‘유대’인의 남은 자들이 왜 “‘시온’에서 슬퍼”할 이유가 있었읍니까?
14 더우기, 소경 인도자와 같은 ‘유대’교 지도자들은 민족적 파멸의 구덩이에 빠지게 하는 길로 눈먼 ‘유대’인들을 인도하였읍니다. 그들은 ‘시온’ 즉 ‘예루살렘’을 조종하여 진짜 ‘메시야’ 예수를 배척하게 했고, 마치 그분이 거짓 그리스도인 양 형주에 달려 죽게 하였읍니다. 그 종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을, 예언자들을 죽이는 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돌로 치는 자들이 되는 길로 인도하였읍니다. (마태 23:1-37) 그러므로, 그러한 민족 중 “가난한 사람”들이 “좋은 소식”을 들을 필요가 있었읍니까? “포로된 자”들은 자유의 선포를 들을 필요가 있었읍니까? 종교적 암흑의 감옥에서 석방될 필요가 있는 “갇힌 자”들이 있었읍니까? 여호와의 숭배의 중심지 ‘시온’ 즉 ‘예루살렘’이 종교적으로 참으로 황폐하여 거기서 진정한 슬픔이 있었읍니까? 참으로 그러했읍니다! 그리고 기름부음받으신 예수께서는 ‘유대’인 가운데 그러한 “슬퍼하는” 남은 자가 당시에 있다는 것을 아셨읍니다.
15. 침례자 ‘요한’은 어떠한 면에서 개척자의 역할을 하였으며, 예수께서는 어떻게 생명과 구원의 개척자가 되셨읍니까?
15 예수께서는 슬퍼하는 자들, “포로된 자”들, “갇힌 자”들, “가난한” 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셨읍니다. 그분은 병든 자를 고치고, 심지어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는 외에도, “천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함으로써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셨읍니다. (마태 4:17; 11:4-6) 그러나 ‘시온’에 대해 슬퍼하는 자들 앞에는 더 큰 위로와 해방이 있었읍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되시고 하나님께 자기의 속죄 희생의 가치를 바치기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심으로써 이 일이 있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처럼 자신에 대한 성서 예언을 성취시킴으로써 생명을 주는 그분의 봉사를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생명과 구원의 개척자 즉 ‘파이오니아’가 되셨읍니다. 침례자 ‘요한’은 여호와의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길을 예비하였으며, 따라서 ‘요한’도 개척자 즉 ‘파이오니아’라고 불리울 수 있었읍니다. (누가 1:76, 1950년판 「신세계역 그리스도인 희랍어 성경」) 그러나, 예수께서는 생명과 구원의 길을 개척하기 위하여 ‘요한’보다 많은 일을 하셨읍니다.
16. 「모팻역」 사도행전 3:15에 의하면,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무엇이라고 불렀읍니까?
16 예수께서 승천하신지 몇 주일 후에 사도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에게 담대하게 이렇게 말한 바와 같았읍니다. “여러분은 생명의 개척자[‘파이오니아’]를 죽였읍니다. 그러나, 우리[‘베드로’와 ‘요한’]가 증거할 수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셨읍니다.”—사도 3:15, 「모팻역」.
17. 사도행전 5:31에 의하면, 열 두 사도는 ‘예루살렘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를 무엇이라고 불렀읍니까?
17 후에, 당시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 및 서기관들로 구성된 ‘예루살렘’의 유혈죄를 지은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12사도는 이렇게 증언하였읍니다. “하나님이 그분을 우리의 개척자[희랍어: ‘아르케고스’, ‘파이오니아’]와 구세주로 세워 당신의 오른 편에 올리셔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읍니다.”—사도 5:31, 「모팻역」.
18, 19. 사도 ‘바울’은 히브리 2:10과 12:2에서 예수를 무엇이라고 불렀읍니까?
18 예수를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영적 아들들이 된 ‘히브리’인(‘유대’인) 남은 자들에게 편지할 때 ‘히브리’인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만물은 그분을 위하여 그리고 그분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많은 아들들이 영광에 이를 수 있도록 고난을 통해 완전해진 구원의 개척자[‘아르케고스’, ‘파이오니아’]가 되신다는 것은 적절한 일이었읍니다.”—히브리 2:10, 「개역 표준역」; 또한 「모팻역」 참조.
19 또한 이러한 말씀이 있읍니다.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아르케고스’, ‘파이오니아’]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그분은 자기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셨으며, 하나님의 보좌 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히브리 12:2, 개표; 모팻.
20. 어떻게 예수께서는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 및 완성자가 되셨읍니까?
20 이처럼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한 “파이오니아” 즉 “개척자”, 생명의 개척자, 구원의 개척자, 우리 믿음의 개척자라고 불리우셨읍니다. 그분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에 관한 수백 가지 성서 예언을 성취시키셨읍니다. 이렇게 하여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에 새롭고 필수적인 요소를 도입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 그리스도인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완성된 믿음의 개척자가 되셨읍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의 믿음의 개척자”라고 불리우는 것은 정확합니다. (히브리 12:2, 개표; 갈라디아 3:24, 25) 동시에, 여호와의 메시야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모세’의 율법에만 고착한 ‘유대’인들의 믿음은 완성되지 않은 채로 있었읍니다.
“의의 나무”
21. 예수께서 부활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그들을 위로하신 결과로, 그들은 영적 성장을 어느 정도로 경험하게 되어 있었읍니까?
21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세워주기 위하여 부활 후 40일간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읍니다. 그분은 기대되었던 메시야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셨읍니다. 부활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위로하신 사람들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읍니까? 이사야 61:1-3의 예언에 의하면, 기름부음받으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게 하실 것이었읍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영적 성장을 경험하여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고 불리우게 될 것입니다.
22. ‘이사야’의 예언에서, “화관”, “재”, “기름”, “옷”이란 말은 어떻게 이해되며, 그러한 표현들은 오순절 이후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적합하였읍니까?
22 예수의 사도나 제자들 중에 머리에 재를 쓰고 베옷을 입었는지는 언급이 없읍니다. 분명히, “화관”, “재”, “기름” 및 “옷”과 같은 예언적 표현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읍니다. 예수께서 부활되어 나타나셨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제자들의 감정은 참으로 정반대로 바뀌었읍니다. 그러나, 그 후 오순절날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께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용하여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읍니다. 부어지는 영의 현시로, 기적에 의한 불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머물렀읍니다. 이 현시는 일시적인 것이었으며, ‘이사야’의 예언에 지적된 “화관”이 아니었읍니다. 그것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는 결혼식 날의 제사장 신랑의 기쁨과 같은 하나님의 승인의 기쁨으로 관씌워졌읍니다. (이사야 61:10) 그것은 마치 위로가 되는 기름을 머리에 부어 그들의 희락을 느낄 정도가 되도록 심신을 상쾌하게 하는 것 같았읍니다. 근심은 사라지고,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찬송이 그들을 “찬송의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보이게 해 주었읍니다. 오순절날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사도 2:1-11.
23. (ㄱ)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 어떠한 사업을 개척하셨읍니까? (ㄴ) 제자들은 그분을 통해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무엇을 하도록 임명을 받았읍니까?
23 이 모든 일로부터, 우리는 오늘날 무엇을 관찰하게 됩니까? 이 사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기름부음받으신 것과 일치하게 자기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에 대해 회복 사업을 개척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분을 사용하여 침례받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으며, 따라서 성령을 받는 이들은 주권자이신 주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사람들이 되었읍니다. (고린도 후 1:21; 요한 1서 2:20, 27) 이제 그들도 역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난한 자”들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고, 포로들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시온’에 대해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위로하라는 임명을 받았읍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고 해방시켜 “여호와의 선의의 해”를 기뻐하게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게 하여 그의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통해 그들을 그분의 은총과 봉사로 회복시켰읍니다.
24. 오순절 이후로, 예수의 제자들의 영적 토지는 어떻게 낙원과 같이 단장되었으며, 누가 영광을 받으셨읍니까?
24 영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은 세상에서의 그들의 입장이 전혀 달라졌읍니다. 그들은 양분이 부족하여 축 쳐진 약한 식물과 달리, 여호와께서만이 심으실 수 있고 그리스도를 통해 자라게 할 수 있는 “의의 나무”와 같이 되었읍니다. 인간의 원래 “낙원”은 여러 가지 나무로 단장되었었읍니다. (창세 2:7-9) 그러나 오순절 이후로 여호와께서는 적들이 무너뜨리고 황폐시킨 자기의 헌신한 백성의 영적 토지에 “나무”를 심으셨읍니다. 그러한 비유적인 “나무”는 여호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높이 자란 강인하고, 확고부동한 그리스도인들이었읍니다. 그들을 심은 분으로서, 그분은 새로 설립된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그들의 존재로 인해 “영광”을 받으셨읍니다.
25. 오순절날 침례받은 사람들은 어떠한 의무 아래 있게 되었으며, 그들은 개척자 곧 ‘파이오니아’로서 어떠한 사업을 수행해야 하였읍니까?
25 오순절 날, 약 120명의 제자들로 된 원래의 회중 외에도, 다른 수천명이 회개하고, 메시야를 받아들이고 12사도에 의해 물침례를 받은 후 기름부음받은 자들이 되었읍니다. (사도 2:37-42) 이들도 또한 그리스도를 통해 여호와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의무 아래 있게 되었읍니다. 그들의 지도자 예수께서는 그들이 완성된 믿음과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개척하셨읍니다. 그들은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가 되었읍니다. (이사야 61:6)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그들은 이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려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길을 개척해야 합니다. (고린도 후 5:20)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회복 사업에 즐거이 참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