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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어떻게 더 오래 입을 수 있는가?깨어라!—1972 |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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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적으로 솔질하라. 주머니가 불룩하도록 무엇을 넣고 다니지 말라. 옷의 맵시도 망치거니와 주머니의 수명이 짧아진다.
덜 다릴수록 옷이 더 오래 간다. 옷을 바꿔 입는 것이 좋은 이유가 그것이다. 양복같은 것은 주의깊이 걸어 두어야 다시 다릴 필요가 없게 된다. ‘메리야스’ 같은 것은 늘어나는 성질이 있으므로 걸지 말고 단정하게 접어 두어야 한다.
철이 지난 옷은 깨끗한가 확인하고 보관해야 한다. 점이나 얼룩이 있으면 좀이나 모직물 쏠아먹는 벌레가 모일 것이다. 모직물은 좀약을 사용하여 보호해야 할 것이다. 옷을 먼지가 없는 옷장에 넣고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한다면 곰팡이나 사상균으로보터 보호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 옷을 잘 선택하고 적절히 간수한다면 더 오래 입을 수 있고 더 오래 모양이 좋을 것이다. 흔히 이렇게 하는 데 조금만 생각하고 시간과 노력을 조금만 들이면 된다. 그러나 그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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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영감—그것은 인간적 요소를 배제하였는가?깨어라!—1972 | 5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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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하나님의 영감—그것은 인간적 요소를 배제하였는가?
디모데 후 3:16은 이렇게 선언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된 것[이다].” (새번역) 하나님의 성령 즉 활동력이 이 영감의 수단 혹은 중개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설명하였다.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는 대로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하였다].” (베드로 후 1:21, 신세) ‘다윗’ 왕은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의 작용을 인정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여호와의 신[영]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사무엘 하 23:2.
그렇다면 이것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이 단순히 내용을 불러 주는 대로 받아 썼음을 의미하는가? 글씨를 쓰는 것 외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소식을 표현하는 데 아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는가? 그들이 영감받았다는 사실은 인간적인 따뜻함과 개성있는 표현을 완전히 배제하였음을 의미하는가?
성서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지식을 그대로 기록한 부분도 있다. 십계명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의 모든 다른 율법과 규례가 그 예이다. 이러한 율법과 관련하여 예언자 ‘모세’가 받은 교훈은 이러하다. “너는 이 말들을 기록하라.”—출애굽 34:27
마찬가지로 다른 예언자들은 때때로 그들이 전해야 할 특별한 소식을 받았다. 한 때 ‘예레미야’는 이러한 명령을 받았다. “너는 가서 ‘예루살렘’ 거민의 귀에 외쳐 말할찌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 소년의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그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느니라].” (예레미야 2:2, 3) 이러한 소식들이 후에 기록되어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가 되었다.
많은 경우에 천사들이 하나님의 소식을 전달하도록 사용되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역시 전하여 받는 소식을 그대로 받아 쓰면 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천사의 방문을 받은 사람의 반응에 대한 언급이 있다. ‘가브리엘’ 천사의 방문을 받은 ‘마리아’의 반응에 대하여 의사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찜인고 생각[하니라].” (누가 1:29) 이와 같이 ‘누가’는 자신의 말을 사용하여 ‘마리아’의 반응을 묘사하였다.
성서 필자들에게 보통 꿈이나 환상이나 황홀경을 통하여 지식이 계시되었다. 꿈은 분명히 잠자는 사람의 정신에 하나님의 소식이나 목적을 인상깊게 그려 주었을 것이다. 환상은 깨어 있는 사람의 정신에 하나님의 사상을 생생하게 아로새겨 주었다. 황홀경 가운데 환상을 받은 경우도 있다. 잠을 자는 것이 아니지만 그 사람은 주위에 누가 있는지 전연 모르는 황홀경 가운데 분명히 그 환상에 몰두하였을 것이다.
꿈이나 환상이나 황홀경을 통하여 지식이 계시된 경우에 필자는 그가 본 것을 의미깊은 말로 묘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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