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하도록 다른 사람을 격려함
1. (ㄱ) ‘바울’은 ‘히브리’인 형제들에게 무엇을 촉구하였읍니까? (ㄴ) 얼마나 자주 서로를 격려하는 것이 좋습니까?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의 ‘히브리’ 그리스도인 회중에게 강력한 편지를 쓴 것은 ‘예루살렘’이 기원 70년 ‘로마’인들에 의해 멸망되기 9년쯤 전이었읍니다. 우리는 이 앞 기사에서 ‘바울’이 그의 편지 1장과 2장에서 말한 내용을 고려하였읍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 제3장에서 ‘히브리’ 형제들에게 사도들과 대제사장 예수를 생각하라고 촉구하였읍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 처럼 충실하였읍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의 자유함과 희망에 대한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 가족이 될 가능성이 있읍니다. 그것은 인내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하며, “오늘”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안에 매일 서로를 권면하고 격려해야 합니다.—히브리 3:12, 13.
2. 히브리서 제4장에서 ‘바울’은 형제들을 어떻게 격려하였읍니까?
2 성경에는 훌륭한 충고의 말도 많이 있으며, 고려할 분들도 많이 있읍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러한 본을 몇 가지 상기시켰읍니다.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을 어떻게 미워하시어 애굽에서 나왔던 나이 많은 대부분의 ‘히브리’인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는지를 그는 말하였읍니다. 왜 못 들어가게 하셨읍니까? 믿음이 없어 불순종하였기 때문이었읍니다. 지금 우리는 그처럼 약속을 받을 자격이 없게 되어서는 안되겠읍니다. 우리는 좋은 소식을 받았으며, 만일 믿음을 실천한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 갈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과 같이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않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권면합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전해진 좋은 소식을 깊이 인식해야 하며,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활에서 힘을 발휘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합니다.—히브리 4:1-5, 11, 12.
3. ‘히브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환경이 올무가 될 수도 있었읍니까?
3 제1세기 ‘히브리’인 그리스도인들은, ‘랍비’의 전통적 종교를 실천하고 또 그것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율법 언약을 따르려고 하던 ‘유대’인들 가운데서 생활하였읍니다. 그리스인들은 소수였으며, 인기가 없었고 박해와 미움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미움과 박해를 면하기 위하여 ‘유대’교로 되돌아갈 생각은 할 수 없었으며, 회당에서 행해지는 사교적 행사에 이끌릴 수도 없었읍니다. 그들은 다시 ‘유대’교에 빠져 동물 희생을 바치지 않도록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율법을 성취하셨는가에 대해 건전한 지식을 갖고 또 그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읍니다. 그러한 ‘유대’교 의식들은 이미 하나님 보시기에 헛되고 무의미한 의식에 불과한 것이었읍니다.
4. ‘바울’이 ‘히브리’인들을 격려하기 위해 그의 편지에 포함시킨 교리들 가운데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4 그러한 상태 하에서,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당하고 있는 압력과 박해를 사도 ‘바울’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였겠읍니까? 그들에게 ‘유대’ 전통을 반박하는 강력한 논증을 제시하는 일을 전에 ‘바리새’인이었던 ‘바울’보다 더 잘 할 사람이 누구였겠읍니까? 그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모세’의 율법을 배웠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모세’의 율법을 그 규례와 희생과 더불어 성취하셨음과 이전의 마련들이 이제 훨씬 더 영광스러운 실체로 대치되었음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읍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놀랍고 찬란한 새 가르침들이 ‘유대’인 개종자들에게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풍부한 증거들과 더불어 제시되었기 때문에, 이치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확신을 못하거나 영적으로 세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는, 형제들에 대한 ‘바울’의 깊은 사랑과, 영적으로 크게 필요한 때에 실용적 방법으로 돕고자 하는 그의 불타는 열망을 나타내고 있읍니다.
낡은 것에 대한 새 것의 우월성
5. 그는 새로운 그리스도교 마련의 우월성을 어떻게 강조하였읍니까?
5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이 편지를 고려해 보면, ‘바울’이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위해 마련하신 새로운 마련의 우월성을 어떻게 강조하였는가 이해할 수 있읍니다. 이 새로운 사물의 제도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읍니다. 그분은 고대 ‘레위’ 제사장 시대의 대제사장들과는 달리 후계자가 필요치 않습니다. 그는 과거의 대제사장들이 했던 바와 같이 매일 자신의 죄를 위해 희생을 드리고 다음에 백성들의 죄를 위해 희생을 드릴 필요가 없읍니다. 그는 단번에 백성들의 죄를 위한 희생을 영구적으로 드릴 수 있었읍니다. 다음에 하나님의 오른 편에 앉으셨읍니다.—히브리 6:20; 7:11-28; 8:1; 9:6-28.
6. 왜 새 언약이 율법 언약보다 우월하였읍니까?
6 이제 율법 언약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이룩할 수 있는 새 언약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읍니다. 율법 언약은 사람들에게 죄를 생각나게 하여 그들이 자주 희생을 들여야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길을 열어줄 수는 없었읍니다. ‘바울’은 여호와께서 맺으신 새 언약에 관한 ‘예레미야’의 예언을 인용하였읍니다. “주[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그리고 그는 계속 이렇게 인용하였읍니다.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 하리라.”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느니라” 하고 ‘바울’은 논증하였읍니다. (히브리 10:16-18; 8:7-13; 예레미야 31:31-33) 그러므로 새로운 것이 여러 면으로 낡은 것보다 훨씬 우월합니다.
7. (ㄱ) ‘바울’은 믿음의 중요성을 어떻게 강조하였읍니까? (ㄴ) 예수의 본은 믿음과 인내의 관계를 어떻게 나타냈읍니까?
7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 11장에는 믿음이 절대 필요한 것으로 강조되었읍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히브리’인들은 자기들의 조상 곧 고대 충신자들을 잘 알고 있었읍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격려를 위한 수단으로서 ‘아브라함’과 다른 믿음의 사람들의 경험을 사용할 수 있었읍니다. 그들 독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많은 시험 하에서 강한 믿음을 유지해야 할 절대적인 필요성을 나타냈읍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12장에서 믿음의 주이며 믿음을 온전케 하신 이를 언급하면서 논리를 전개하였읍니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 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건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형주]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히브리 12:1-3) 그리스도의 충실한 인내는 우리가 따라야 할 본입니다. 그는 믿음으로, 죽음을 당한 다음의 일 곧 앞에 놓인 즐거움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거역하는 말과 고통을 참으셨읍니다. 우리도 믿음이 강하여 우리 앞에 놓인 새 질서를 그려볼 수 있다면, 인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본의 우월성과 그리스도교 마련에 대해 주의를 집중시킴으로써 ‘바울’은 거룩한 것들을 높이 인식하도록 동료 종들을 권면할 수 있었읍니다.
거룩한 것들을 인식하도록 격려함
8. 거룩함과 거룩한 것에 대한 인식은 어떻게 인내와 관계가 있읍니까?
8 그는 또한 거룩함과 깨끗함의 중요성을 보여 주고 그것을 함께 연관시켰읍니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거룩한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 신세]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그의 아버지가 생각을 변경할 것을]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히브리 12:14-17, 신세 참조) 그렇습니다. ‘에서’는 굶주림을 느끼는 약간의 압력하에서도 거룩한 것에 대한 인식을 고수하지 못하였읍니다. 그는 충실한 자들에게 올 즐거움을 그려 볼 만한 믿음이 없었읍니다. 그는 대단히 작은 시험을 인내하지 못하였읍니다. 이 “마지막 날”에는 식량 부족 현상이 있어 우리도 굶주림을 느낄 때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의 복된 위치를 포기할 만한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크든 작든 모든 시험을 통과하도록 도움을 주실 것입니다. (마태 4:1-11) 이 점에 있어서 예수는 위대한 본이 되십니다.
9.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이 영적인 것들과 인내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돕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는 무엇입니까?
9 듣는 것이 둔해진 사람들과 무활동으로 빠져들어간 사람들을 고치는 방법으로 ‘바울’은 이렇게 권고하였읍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 쑤록 더욱 그리하자.” (히브리 10:23-25) 이 말에서 우리는 영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집회에 참석하는 것과 집회에서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함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약해진 사람들이나 듣기에 둔해진 사람들을 동반해서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한다면 사랑과 선행이 새로와지게 혹은 격려받게 됩니다. 사실이지 하나님의 이 마련을 대신할 방법은 없읍니다.
10. (ㄱ) 왜 우리는 지금 서로 격려해야 합니까? (ㄴ) 무슨 성품이 우리로 우리 형제들을 격려하도록 움직입니까?
10 ‘바울’은 우리에게 서로 격려하라고, 그리고 그날이 가까움을 볼 쑤록 더욱 그리하라고 말하였읍니다. 역사상 이 단계 즉 ‘사단’의 다스림이 종말에 도달하였으므로 서로 격려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날의 참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초기 그리스도인들을 반대하고 박해하였던 ‘유대’ 종교 제도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는 유혹에 휩싸여 있으며, 다른 여러 가지 근원으로부터 박해와 증오의 압력을 받고 있읍니다. 우리는 큰 ‘바벨론’에서 나왔읍니다. 그것은 아직도 어떤 지역에서는 물질적으로 번영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우리는 그 악한 습관으로 되돌아가고자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그러한 것을 경고하였읍니다. (베드로 후 2:21, 22) 지금이야 말로 우리가 배운 거룩한 것들에 대한 인식을 높이 유지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존재하는 사랑 때문에 모두는 자기 형제 자매들이 인내하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계속 행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서로 권면하고 격려할 때입니다. 우리 각자는 사도 ‘바울’이 자기 형제들을 격려하고 돕기 위해 행한 일을 기억할 수 있읍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 준비하신 이 새롭고 더 나은 마련의 우월성을 강조하였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그의 종교 제도로 흘러 떠내려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11. 우리는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편지한 영적인 것들로부터 어떻게 유익을 받을 수 있읍니까?
11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말한 바와 같이, 우리 자신이 여호와께서 영원한 제사직을 통하여 준비하신 위대한 마련을 생각하고 새 언약의 유익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죄를 영원히 제거한 사실을 생각하는 것은 유익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에 대해 여러 번 들었을지 모르지만, 그러한 것은 범상한, 보통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절대적으로 우월한 것들입니다. 진리를 거듭 이야기하는 것은 격려가 됩니다. 우리에게는 이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헌신한 종으로서 즐기고 있는 영적 유익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들이 많이 있읍니다. 이 대단히 중요한 것들을 서로 상기시킨다면 우리는 서로 서서히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돕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유익한 것들
12. (ㄱ)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방법을 아는 것은 왜 현재 특별한 것입니까? (ㄴ) 현재 비교적 소수만이 알고 있는 다른 것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12 우리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로서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영적으로 유익한 것들 얼마는 무엇입니까? 대단히 많이 있읍니다. 우리는 생명을 얻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는 점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읍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을 인식하고 있읍니다. (로마 6:23) 지금도 ‘유대’교를 실천하면서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나 이교인으로서 그리스도와 생명의 희망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린도 전 1:18, 23) 또한 많은 거짓 이론과 철학을 섞었으며,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걷지 않고 있는 그리스도교국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 15:1-9 비교.) 그와는 대조적으로 여호와의 종들은 큰 ‘바벨론’의 전통으로부터 자유케 되었읍니다. (요한 8:31, 32) 우리는 연옥이나 지옥불에서 고통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가운데 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이 잠자고 있음을 알고 있읍니다. 우리는 놀라운 부활의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요한 5:28, 29; 데살로니가 전 4:13-18; 계시 20:4-13) 우리는 거짓된 삼위일체 교리로 혼란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미신으로부터 자유케 되었기 때문에, 부적, 형상, 우상 등에 의지하지 않고, 종교 의식으로 산 비탈이나 제단 모퉁이를 무릎을 꿇고 기어올라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국의 거짓 목자들로부터 영적 소외를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교국 교직자들로부터 압제를 당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전 10:14; 마태 9:36; 누가 22:25, 26; 고린도 후 1:24) 이러한 진리들은 비교적 소수만이 이해하고 있는 특별한 것들입니다.
13.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은 어떻게 악귀 신앙에 대하여 보호를 받습니까?
13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들의 정신과 이해를 열어서 점성술, 점술 등 여러 가지 악귀 신앙의 위험성을 인식하도록 하신 점과 그러한 것으로부터 보호해 주신 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신명 18:10-12; 고린도 전 10:21; 갈라디아 5:19, 20; 디모데 전 4:1; 계시 18:4, 23) 다른 사람들은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영매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읍니다.—민수 23:21, 23; 잠언 18:10.
14, 15. 세계 역사상 이 시기에, 하나님의 종들은 어떠한 유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읍니까?
14 세계 상태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읍니다. 사람들은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기절하고 있읍니다.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오로지 여호와의 그리스도인 증인들만이 미래에 대한 진정한 희망을 가지고 있읍니다.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랑에 찬 형제들을 가지고 있읍니다. 한 사람이 곤경에 처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도움을 베풉니다. 특히 큰 ‘바벨론’이 큰 폭력으로 멸망될 때에 이들 충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위로하고 도울 것이며, 여호와의 구원을 목격할 것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의 대열에 서므로써 그때 실로 많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누가 21:26; 데살로니가 전 5:12-15; 계시 17:15-18; 19:1.
15 우리는 악이 허락된 이유를 알고 있읍니다. 우리는 “마지막 날”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으며, 우리는 세상 정치와 혼란에 관여할 필요가 없읍니다. 참 그리스도교인들은 이 “마지막 날”의 파업, 폭동, 난동 및 불법 행위에 말려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에게 보호가 됩니다.—출애굽 9:15, 16; 욥 1:6-2:10; 요한 6:15; 17:16; 로마 13:1-9.
16.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에 따라 생활하기 때문에 개인에게 오는 유익에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16 여호와의 증인들은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유익이 있읍니다. 우리는 희망이 없는 이 낡은 사물의 제도의 사람들의 염려를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고난을 면하게 됩니다. 염려는 심장병의 주된 원인 중의 하나입니다. 도덕에 대한 여호와의 법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이 “마지막 날”에 대단히 급속히 번지고 있는 세상의 성병을 피하게 됩니다. 우리는 흡연 습관으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현재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암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우리는 술주정군이 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정신과 신체에 미치는 ‘알콜’ 중독의 악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도박의 손실로 인한 불행을 당하지 않습니다. 세상적 명절은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명절 기분”을 내기 위해 빚을 지게 하며, 그 다음 여러 달에 걸처 이러한 빚을 갚기 위해 고생을 하게 됩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온 진리의 지식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행복한 마음은 양약이라고 합니다.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 주는 데에도 행복감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면으로 유익이 많습니다.—빌립보 4:6, 7; 갈라디아 5:19-23; 잠언 4:20-22; 마태 5:3-12; 사도 20:35.
17. 하나님의 법을 지키기 때문에 그리스도인 가족에 어떠한 유익이 옵니까?
17 오늘날 세상의 많은 가족은 여호와의 법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에 파괴되었읍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가르침은 가족적 연합을 이룩하도록 우리를 도왔읍니다. 성경에 따라 부모로부터 그리스도인 활동에 대해 올바로 교육을 받은 자녀들은, 오늘날 대단히 만연되어 있고 또 대단히 많은 고통과 불행을 초래한 범죄와 마약 중독의 악영향으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에베소 6:1-4; 잠언 3:1, 2.
18. 그리스도인 교제가 세상적 교제보다 우월함을 성경으로 설명하십시오.
18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함께 연합하는 것과 우리 형제들과의 교제는 커다란 축복입니다. 영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은 진정으로 기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단히 해로운 육체의 일에 끼여들지 않습니다.—잠언 17:17; 갈라디아 5:22-26; 고린도 전 15:33.
19. (ㄱ) 당신은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 더 많은 이유들을 생각할 수 있읍니까? 그들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읍니까? (ㄴ) 우리는 어떻게 끝까지 인내할 수 있읍니까?
19 여호와의 마련이 그분의 종들에게 주는 축복을 이야기하자면 여러 시간 동안 계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와의 종들 외에 또 누가 기원 1914년에 하늘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통치를 시작한 이후 하나님의 왕국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할 수 있읍니까? (시 2:4-6; 110:1, 4; 다니엘 2:44; 7:13, 14; 마태 11:25-27; 13:44; 계시 11:15-17; 19:11-21) 그 왕국 통치 하에서 여호와께서 지구를 사람이 영원히 살게 될 낙원을 만드실 것을 그들 외에 또 누가 이해합니까? (계시 21:1-5; 시 37:9-11, 29; 전도 1:4; 이사야 65:17-23; 에스겔 34:25-27; 누가 23:42, 43)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신 모든 면을 계속 생각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로마 8:28) 세움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것은 여호와의 좋은 것에 대한 이러한 인식과 그분의 많은 축복에 대한 이러한 생각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우리가 이야기할 것들입니다. (사도 14:21, 22; 고린도 전 14:3) 우리의 영적 정신을 유지하도록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이것입니다. 설사 시험을 당하더라도 우리도 인내하도록 돕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많은 마련을 해 주셨읍니다. (야고보 1:12) 우리는 개인적으로, 회중적으로 우리의 믿음을 강화하였기 때문에, 이 “마지막 날”의 시험과 악 영향을 저항하고 좋은 소식을 선포하는 일에 참여할 때에, 끝까지 인내할 수 있는 훌륭한 위치에 있읍니다. 따라서 우리의 결심도 사도 ‘바울’이 표현한 바와 동일해야 하겠읍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브리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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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회에서 해설함으로써 서로 인내하도록 격려하고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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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하는 내용은 참으로 영적 유익을 가져오는 문제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