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민족이 빙자하여 행하려고 선택하는 그 이름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미가 4:5.
1. 한 나라의 백성이 종교적으로는 분열되어 있을지라도 무슨 연합시키는 신을 우상화하며 숭배합니까?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구인 국제 연합에는 현재 132개 회원국이 가입되어 있읍니다. 거기에 가입하지 않은 다른 나라들도 있읍니다. 각 나라는 자기 백성을 한 정부 아래 연합시키는 이념을 가지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는 그 이념의 이름으로 행하거나 걸어갑니다. 다시 말하면, 그 공동 이념의 신봉자 즉 추종자로서 행합니다. 얼마 안가서 사람들은 그 이념을 우상화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든 개인적인 관심사보다 우월하게 생각하고 숭상하는 신이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종교적으로는 분열되었을지라도 그 국가적인 이념을 연합시키는 신으로 숭배하게 됩니다.
2. 무신론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수 많은 사람들은 왜 실상은 자가 모순됩니까?
2 수많은 사람들은 무신론자라고, 아무 신에게도 속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가 모순되게도 국가적인 신을 숭배합니다. 미국 혁명(1775-1783) 이후 우리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읍니다. 또는 신 혹은 여신이 국민 통치 곧 민주주의라는 것일 수도 있읍니다. 혹은 그것은 민주주의의 심한 원수인 국제 공산주의 일 수도 있읍니다. 사람들은 광적인 종교열 같은 열정을 가지고 그러한 정치적 주의 주장에 고착합니다. 뿐만 아니라, 각 나라는 “국가 주권”이라고 하는 것을, 그것이 마치 범하거나 상실해서는 절대 안될 신이나 되는 것처럼,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호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강력한 군대를 우상화하며, 그 군대는 다른 나라와 관계를 가질 때 강력한 뒷받침이 됩니다. 현대의 “북방 왕”은 오래 전에, “세력의 신을 공경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읍니다.—다니엘 11:38.
3. 미가 4:5은 사람들이 행하는 상태를 어떻게 올바로 말하였으며, 그리고 시편 96:5은 그러한 인기있는 신들을 어떻게 올바로 평가하였읍니까?
3 고대의 영감받은 한 필자는 현대의 나라들에 대하여,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리라고 정확하게 말하였읍니다. (미가 4:5) 이러한 각 신들은 그의 지역에서는 대단히 인기있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 그 진상을 알고 일반 대중과 동조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사람은 중죄인으로 취급됩니다. 그 범인에게 대단히 분개하여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우상 숭배적인 “신들”은 무슨 가치가 있는가? 그들은 모든 나라 사람들을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 세상 상태를 보면, 이러한 질문에 대해 아주 분명한 대답을 얻게 됩니다. 특히, 세상 사건과 상태의 불변하는 조류를 볼 때에 더욱 그러합니다.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라고 인기있는 신들에 대해 올바로 평가한 고대 필자의 말에 우리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시 96:5.
4. 오늘날 개개인들은 어떤 두 가지 행로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되며, 오늘날 누가 안전을 가져오는 선택을 하고 있읍니까?
4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인기있는 신들의 가치에 관하여 정신을 차릴 중요한 때입니다. 그들을 현재의 혼란 속에 몰아 넣은 그 “신들”은 그들을 거기서 이끌어낼 능력이 없으며, 그들을 이끌어 내달라고 그 신들에게 의존할 수도 없읍니다. 만일 “만민”이 정신을 차리지 않는다면, 적어도 개개인들은 정신을 차려야 할 것입니다. 급속하게 진전되고 있는 세계 사건의 소용돌이가 그들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전에 그렇게 해야 할것입니다. 우리가 이 재난의 와중에서 안전한 곳으로 이끌려 나오는 것은 올바른 하나님을 선택하고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어떤 인기있는 신의 이름으로 계속 가든지, 아니면 다른 방향 곧 이방 사람들의 모든 인기있는 신들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기를 선택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생명과 행복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이 후자의 행로 곧 올바른 행로를 선택할 수 있읍니다. 근년에 전세계 수십만의 사람들은 세계적 사건들의 의미에 대해 깨우침을 받아 행복한 선택을 하게되었읍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선택을 하고자 한다면 아직도 늦지는 않습니다.
5. 그들이 이 담대한 행로를 택한 것은 진실성 하나만으로 한 것입니까? 왜 그것은 옳은 행로입니까?
5 그것은 담대한 행로입니까?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한 담대한 행로를 택하려면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 그러한 행로를 취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진실성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읍니다. 그러나 이 행로를 택하는 데 나타난 그들의 진실성 자체가 그것을 올바른 행로로 만듭니까? 아닙니다! 따라서, 진실성 만으로 이 담대한 행로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 곧 정확한 지식에 근거하여 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헛된 신들’의 인도보다 더 믿을 만한 인도를 받아서 그렇게 합니다. 이 행로가 옳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의 예언 곧 거짓이 아니고 진리임이 밝혀진 예언에 나타나 있다는 사실로 증명됩니다. 이 예언의 모든 부면들은 참됩니다. 왜냐 하면, 거짓말을 하시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거짓말을 했다고 비난할 수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사천년 이상을 인류와 관계하신 후에도 그분에 대하여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고 기록할 수 있었읍니다. (히브리 6:18; 디도 1:2) 이분이 바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겠다고 오늘날 선택하는 하나님입니다.
6. 이 예언은 어느 지역에서 유래하였으며, 그 예언자는 언제 이 예언을 하였읍니까?
6 그러므로 우리 시대의 놀라운 사건을 정확히 밝힌 그 예언은 신비한 곳에서 연유한 것이 아닙니다. 이곳은 역사적인 장소로서,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며, ‘뉴스’에도 자주 오르내리는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 예언을 말한 사람은 ‘미가’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을 ‘유다’ 지파 땅의 ‘모라셋’[모레셋] 사람이라고 소개하였읍니다. 그곳은 ‘예루살렘’ 서남방 약 35‘킬로미터’되는 곳에 있읍니다. 그는 세명의 역사적 왕들 곧 “‘유다’ 열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통치 때에 살았었읍니다. (미가 1:1) 그러므로 ‘미가’는 기원전 8세기 사람이며, 그러므로 그의 예언은 기원전 716년 이전에 끝났을 것입니다.
7. ‘미가’에 관한 어떠한 사실이 그의 예언에 확신을 강화해 주며, 그 후의 어느 예언자가 이 사실을 언급하였읍니까?
7 그러나 ‘미가’가 참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참 예언자였다는 확신을 강화해 주는 것은, 그가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것 만이 아니라, 그가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그 소식을 담대하게 발표한 점에 있읍니다. 그 시대에는 왕들이 사실상의 절대권을, 곧 백성들의 생사에 관한 권력까지도 가지고 있었읍니다. (잠언 16:14) 그후 ‘예루살렘’에서 예언자 ‘예레미야’가 ‘유대’ 지도자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았을 때에 이 예언자 ‘미가’의 입장이 언급되었읍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비애국적이고 선동적으로 보이는 ‘예레미야’의 말에 화를 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레미야’ 자신의 기록을 읽어 봅시다.
8. 예레미야 26:16-19은 ‘미가’의 담대한 예언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였읍니까?
8 “방백들과 모든 백성이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고 우리에게 말하였으니 죽음이 부당하니라. 때에 그 땅 장로 중 몇 사람이 일어나 백성의 온 회중에 말하여 가로되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가 ‘유다’ 모든 백성에게 예언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시온’은 밭 같이 경작함을 당하며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며 이 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들 같이 되리라 하였으나 ‘유다’ 왕 ‘히스기야’와 모든 ‘유다’가 그를 죽였느냐? ‘히스기야’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선고한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가 이같이 하면 우리 생명을 스스로 크게 해하는 일이니라.”—예레미야 26:16-19.
9. (ㄱ) ‘미가’는 참 예언자로서의 기본 조건 세 가지에 어떻게 부합되었읍니까? (ㄴ) ‘미가’의 이름의 뜻은 무엇이며, 이사야 26:4은 그 도전적인 질문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무엇이라고 하였읍니까?
9 ‘미가’는 의심할 여지없이 참 하나님의 참 예언자임이 증명되었으며, 기본적인 세가지 요구 조건에 부합되었읍니다. 그 조건이란 이렇습니다. (1) 그는 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읍니다. (2) 그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졌읍니다. (3) 그의 예언들은 정직한 사람들을 한분이신 참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읍니다. (신명 13:1-5; 18:20-22) 추호도 의심할 여지가 없이 ‘미가’는 자기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였읍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우리 모두에게 그의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이 숭배하고 있는 ‘헛된 신들’과 비교해 보도록 도전이 됩니다. 그의 ‘히브리’ 이름 ‘미가’는 “누가 ‘야’와 같은가?”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도전적인 질문에 대해 우리가 취할 올바른 태도를, ‘미가’와 동시대에 살았던 예언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읍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이사야 26:4, 난외주 12:2.
역사의 전환점
10. (ㄱ) ‘미가’의 이름에 나타난 질문에 대해 우리는 사실에 입각하여 무엇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읍니까? (ㄴ) 우리가 이렇게 대답한 데 대해 무슨 질문이 생기며,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지침이 되는 것으로 ‘미가’는 역사상 무슨 전환점을 말하였읍니까?
10 만일 우리가 ‘미가’의 이름에 나타난 도전적인 질문에 대답을 하고자 한다면, 사실의 증거에 의해 “‘야’ 여호와와 같은 자는 없다”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이 그러하므로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에 대해 올바로 행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애에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애에 있어서도 그러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언자 ‘미가’가 예언한 사실과 일치한 변화일 것입니다. 그는 그의 예언에서 인간 역사상의 전환점을 지적하였읍니다. 이 말은, ‘유다’ 땅 ‘베들레헴’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부락에서 약속된 메시야 곧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나시리라는 ‘미가’의 예언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가 5:2) 이 예언이 성취된 시기를 그리스도교국에서는 “그리스도교 기원” 원년으로 사용하고 있읍니다. 그리스도교국은 그리스도의 탄생의 정확한 날을 모르면서도 그렇게 하고 있읍니다. (마태 2:1-6; 누가 2:4-17) 그 일은 거의 이천년전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인간 역사상의 전환점이란 우리 세대 내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언자 ‘미가’는 이것을 지적하였읍니다!
11. ‘미가’는 무엇을 언급하면서 이 영광스런 예언을 소개하였으며, 그리고 왜 우리는 그것이 우리 세대에 성취되는 것을 보려고 해야 합니까?
11 ‘미가’는 이 변화 시기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하였읍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있읍니까? 우리는 역사상 바로 그 시기에 살고 있으므로 그 일들을 틀림없이 보고 있어야 합니다. ‘미가’는 오늘날 우리가 볼 일을 예언적으로 묘사할 때에 자기 나라 역사의 전환점을 예언하면서 그 점을 소개하였읍니다. 이 예언은 ‘미가’가 죽은 후 다음 세기에 성취되었으므로 그는 자기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읍니다. 그러므로 그는 국가적인 재난을 피하였읍니다. 그러나 그의 나라에 임한 이 재난은 현대 우리 세대에도 유사하게 발생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그 점을 고려할 가치가 있읍니다. 그러므로 ‘미가’가 기록한 내용을 읽어 보고, 현 이십 세기에 성취되고 있는 영광스런 예언을 얼마나 잘 소개하고 있는지 보도록 합시다.
12. 미가 3:9-4:1에서 이 예언자는 어떠한 악한 종교적 상태를 묘사하였으며, “여호와의 전의 산”에 대해 어떠한 변화를 예언하였읍니까?
12 “‘야곱’ 족속의 두령과 ‘이스라엘’ 족속의 치리자 곧 공의를 미워하고 정직한 것을 굽게 하는 자들아 청컨대 이 말을 들을찌어다. ‘시온’을 피로, ‘예루살렘’을 죄악으로 건축하는도다. 그 두령은 뇌물을 위하여 재판하며 그 제사장은 삯을 위하여 교훈하며 그 선지자는 돈을 위하여 점치면서 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미가 3:9부터 4:1.
13. 그 전환적인 사건들은 고대 역사상 언제 발생하였읍니까?
13 「미가」에서 발췌한 이 인용문은 한 나라 역사상 심한 변화 같이 보입니까? 이 예언의 웅대한 절정 부분이 반드시 성취되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읍니다. 이 예언의 서두가 틀림없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역사가 그 점을 밝혀줍니다. 기원전 607년, 현재 달력으로 10월 초엽, 시적(詩的)으로 “시온”이라고 불리웠던 그 중동 지방의 도시는 갈아 엎어버린 밭 같이 되었읍니다. 그렇습니다. 그 나라의 수도 ‘예루살렘’은 쓰레기더미처럼 되었읍니다.
14. (ㄱ) 그 때에 “여호와의 전의 산”은 어떻게 보이기 시작하였읍니까? (ㄴ) 사법상, 종교상 어떠한 행동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일이 발생될 것을 원하셨읍니까?
14 그리고 ‘솔로몬’이 건축한 여호와의 숭배의 전이 장엄하고 아름답게 서 있던 750‘미터’ 높이의 산은 어떠하였읍니까? 그 신성한 산은 “수풀의 높은 곳”같이 보이기 시작하였읍니다. 그것은 숲이 울창한 산처럼 황폐하였읍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 불명예가 되었읍니까? 그런 것처럼 보였읍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될 것을 원하셨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미가’에게 영감을 주시어 그러한 종교적 재난을 최초로 예언하게 하셨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만한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읍니다. 특히 ‘예루살렘’이 불의로 가득찼었으며, 부당한 피흘림으로 더러워졌었기 때문입니다. 두령들은 뇌물을 받아서 공의에 눈이 멀고, 성전 제사장들은 고정된 대가를 받고 종교적 교훈을 베풀고, 거짓 예언자들은 어리석은 백성에게서 돈을 뜯어내기 위해 악귀적인 점을 칠 때에, 그러한 도시에 대해 어떤 것을 기대하겠읍니까? 그러면서도 종교적 위선자들은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성전에 계시어 그들에게 재앙이 미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실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미가’의 예언이 그렇게 충격적이기는 하였지만 그대로 성취된 것은 당연하였읍니다.
15. (ㄱ) 여호와께서는 예언된 국가적 재난을 가져오시기 위해 무엇을 사용하셨으며, 언제 그렇게 하셨읍니까? (ㄴ) ‘예루살렘’에 있던 정치적, 종교적인 것들은 어떻게 되었으며, 신으로서의 여호와의 권위는 어떻게 되었읍니까?
15 종교는 위선을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미가’가 자주 예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위선자들은 여호와께 그릇된 기대를 가졌다가 실망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는 기원전 607년에 무엇을 사용하여 국가적 재난을 가져오셨읍니까? ‘느브갓네살’ 왕이 인도하는 ‘바벨론’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렇게 하셨읍니다. ‘예루살렘’을 약 18개월 동안 포위한 끝에 ‘바벨론’ 군대는 그 도시로 처들어가 그 도시와 성전을 약탈하고, 비참한 생존자들을 사로잡아갔으며, 그 거룩한 도시를 불살랐읍니다. ‘다윗’ 왕가의 왕들이 앉았던, “여호와의 보좌”라고 불리우던 왕좌는 사라졌으며, 성전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인 “지성소”에 놓여 있던 여호와의 “언약궤”도 사라졌읍니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에서 463년간 다스려온 ‘다윗’ 왕국은 망하였읍니다. 또한 여호와의 성전에서 행해지던 대규모적인 여호와의 숭배도 중단되었읍니다. 이교국 내에서 신으로서의 여호와의 권위도 추락되었읍니다. 세상 나라들 보기에 여호와의 숭배는 그 가치가 완전 폭락하였읍니다. 그의 거룩한 이름은 모독을 당한 것 같이 보였읍니다.
16. 보고 있던 이교 국가들은 여호와의 숭배가 ‘예루살렘’에 다시 소생할 것에 대해 어떻게 믿게 되었으며, 왜 그랬읍니까?
16 여호와의 숭배가 다시 소생할 것인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많은 이교도들의 머리에는 틀림없이 그러한 질문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미가’와 ‘이사야’와 ‘예레미야’와 기타 여호와의 예언자들의 예언들을 알고 믿었더라면 그 대답이 긍정적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이교인들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의 숭배를 멸시하였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였읍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 70년이 되도록, 그 거룩한 도시에 여호와의 숭배가 회복되지 않았읍니다. ‘예루살렘’은 쓰레기 더미 그대로였으며, ‘시온’은 쟁기로 갈아놓은 듯한 밭 모양 그대로였읍니다. 성전이 서 있던 산은 숲속의 황폐된 언덕이 되었읍니다. 거기에서는 성전 악기의 음악과 노래가 아니라, 거칠고 곡조도 없는 새들과 야수들의 부르짖음만이 울려 나왔읍니다. 그것을 보고 있던 주변의 이교도들에게는, 여호와의 백성이 대부분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으니 여호와의 숭배가 말살되어 버렸다고 믿을 만한 이유가 있는 것 같이 보였읍니다.
17. ‘바벨론’은 어떤 변화를 당하였으며, 어떻게 다른 계통의 족속이 세계 강국을 장악하게 되었읍니까?
17 그러나 참 하나님의 숭배가 말살될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호와의 숭배가 극도로 쇠퇴된 것을 보고 만족을 느꼈던 사람들은 사건의 전환이 임박하였음을 인식하지 못하였읍니다. 놀라운 방법으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났읍니다. ‘예루살렘’이 사람도 가축도 없이 황폐된지 68년이 끝날 때에 성서 역사상 세째 세계 강국은 무너졌읍니다.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는 하나님 여호와의 예언자들이 예언한 그대로 ‘바벨론’ 제국은 무너졌읍니다. ‘바벨론’은 무서운 군대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허락하에 ‘예루살렘’에 있던 여호와의 성전을 파괴하였었읍니다. 그러나 살아계시고 참되신 유일하신 하나님께 대한 그 모독적이고 거만한 행동에 대해 벌받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었읍니다. ‘셈’ 계통의 통치자에 의한 세계 강국은 끝났읍니다. 일대 변화가 일어나 ‘아리안’족 곧 ‘야벳’ 족속의 통치자에 의한 세계 강국이 시작되어 우리 시대에 까지 계속되고 있읍니다. ‘바사’의 정복자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의 왕이 되었으며, 성서 역사상 네째 세계 강국의 왕이 되었읍니다. 이제 ‘바벨론’의 종교는 추락되었읍니다. 그의 주신(主神), ‘므로닥’ 곧 ‘말둑’은 수치를 당하였읍니다.
18. (ㄱ) ‘바벨론’의 신과 그 땅에 관한 ‘예레미야’의 무슨 예언이 그때 성취되기 시작하였읍니까? (ㄴ) ‘바벨론’의 황폐는 그 나라가 ‘예루살렘’에 가한 황폐와 비교하면 어떻게 다릅니까?
18 예언자 ‘예레미야’의 말이 성취될 때가 왔읍니다. “너희는 열방 중에 광고하라. 공포하라. 기를 세우라. 숨김이 없이 공포하여 이르라. ‘바벨론’이 함락되고 ‘벨’[주]이 수치를 당하며 ‘므로닥’이 [놀란다 하라.] ··· 이는 한 나라가 북방에서 나와서 그를 쳐서 그 땅으로 황폐케 하여 그중에 거하는 자가 없게 함이라.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하여 가느니라.” (예레미야 50:2, 3) 이 예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읍니다. 현재 ‘이라크’ 영토 내에 있는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바벨론’이 어디 있는가하고 질문해 볼 만합니다. 그 나라는 황폐된 폐허에 불과하며, 그 나라가 고대 ‘예루살렘’에 가하였던 동일한 운명을 당하였읍니다. ‘예루살렘’의 황폐는 단지 70년만 계속되었지만 그 나라의 황폐는 천년 이상 여러 세기 동안 계속해 왔읍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으로 높아지다
19. ‘바사’가 ‘바벨론’을 정복한 후 어느 신이 높아졌으며, 이 신은 자기의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 누구를 사용하셨읍니까?
19 기원전 539년에 ‘바벨론’이 갑자기 낮아지자 어느 신이 높아져서 국제적인 중요성을 띄게 되었읍니까? 승리를 거둔 ‘바사’인들의 민족신이었읍니까? ‘바벨론’에 사로잡혔던 자들의 신인 여호와였읍니까? ‘미가’의 예언과, 하나님의 영감받은 다른 사람들의 예언들은 여호와께서 높아질 것을 시사하였읍니다. 여호와께서 높아졌으며, 그분의 예언들은 오류가 없음이 증명되었읍니다. ‘미가’는 영감을 받아 이렇게 말하였읍니다.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미가 4:1)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그 도전적인 예언을 일차적 곧 모형적으로 성취하시기 위해 승리한 ‘바사’의 주신(主神)을 숭배하던 ‘고레스’ 대왕을 도구로 사용하셨읍니다. 여호와는 월등히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에 거짓 신 숭배자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게 하도록 하셨읍니다.
20. ‘바사’의 정복자에 관한 무슨 예언의 성취로 이 일이 일어났으며,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읍니까?
20 어떻게 그 일을 하였읍니까? 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그는 나의 목자라.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네 기초가 세움이 되리라 하는 자”라고 하셨읍니다. (이사야 44:27, 28) ‘고레스’ 왕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완전히 수행하였읍니다. 그 일이 ‘바사’의 민족 신이 기뻐하는 일과는 상반되었는데도 그러하였읍니다. 기원전 537년 ‘예루살렘’과 그 성전이 황폐된 제 70년에, 여호와께서는 ‘고레스’의 정신을 감동시켜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하라는 명령을 내리도록 하셨읍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고레스’는 ‘바벨론’에 잡혀 있는 사람들 중 이 성전 사업을 자원하는 사람들은 ‘바벨론’에서 해방되어 “여호와의 전의 산”으로 돌아갈 것을 명하였읍니다. (역대 하 36:20-23; 에스라 1:1-4) ‘예루살렘’이 황폐된 제 칠십년 말경, 성전 사업을 자원한 충실한 남은 자들이 ‘유다’ 땅으로 다시 돌아와 그 황폐가 끝나게 되었읍니다. 이듬해(기원전 536년) 봄 ‘예루살렘’의 두번째 성전 기초가 놓였읍니다.—에스라 3:8-12.
21. 여호와의 두번째 성전은 무엇에도 불구하고, 언제 완성되었읍니까?
21 이 일은 여호와의 숭배를 반대하던 이교도들이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의 반대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었읍니다. 그러므로, 이들 적대적인 이교도들의 적극적인 반대가 여러 햇동안 있었으나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두번째 성전이 기원전 515년 겨울, 곧 음력으로 ‘아달’월 3일에 충실한 남은 자들에 의해 완성되었읍니다.—에스라 6:15.
22. 다시 돌아온 남은 자들에게와 이교 나라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전의 산”은 어떻게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섰읍니까?
22 돌아온 남은 자들은 이 일에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 여호와의 숭배를 자기네 생활상의 다른 모든 일보다 높여야 하였으며, 자기 조상들이 불충실하게 받아들였던 거짓 신들의 숭배를 없애야 하였읍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으로 대표된 여호와의 숭배는 이교도들이 자기네 악귀 신들에게 부여하였던 높다란 위치보다 더욱 높이 올랐읍니다. 많은 경우 이교 신들은 언덕이나 산꼭대기 같이 천연적으로 높은 곳에서 숭배되었던 것입니다. 상징적으로 말하여, 여호와의 숭배의 전의 산은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섰으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났읍니다. 여호와의 숭배에 대한 존경심은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읍니다. 하나님의 선민에게서만이 아니라 이교국에 속한 많은 사람들에게서도 그러하였읍니다. 그러한 많은 사람들은 참 하나님을 숭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었읍니다. 그리스도의 사도 시대의 ‘유대’교 개종자들같이, 전도자 ‘빌립’의 도움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던 “에디오피아”의 왕궁 내시와 같이 그러하였읍니다.—사도 2:5-10; 8:26-39; 요한 12:20, 21.
23. (ㄱ) 나라들과 백성들에게서 나온 개개인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행하기 시작하였읍니까? (ㄴ) 그것은 그 예언의 어떤 성취였으며, 메시야가 오신 후로는 이름으로 행하는 점에 관해 어떤 질문이 생깁니까?
23 여러 나라와 백성에서 나온 그 사람들은 자기들의 이전 신들의 이름으로 행하는 대신, 숭배가 가장 높이 올라간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행하였읍니다. 그것은 참으로 ‘미가’의 예언의 성취였읍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부분적인 성취, 소규모적이고 모형적인 성취였읍니다. 온전하고 완전한 성취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의 메시야를 지상에 보내시기 전 그 당시에는 이루어지지 않았읍니다. ‘미가’의 영광스런 예언의 최종적이고 절정에 이르는 성취는 현 이십 세기에 이루어지게 되었읍니다. 그 일은 어떻게 일어나고 있읍니까? 그것은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교국이 최대로 성장하여 교인 수가 전세계에 9억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기 때문입니까? 그리고 이것은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읍니까? 메시야 곧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로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가 아니라 메시야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 아닙니까?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미가’의 예언의 성취입니까? 이러한 점들을 여기서 검토 해볼 필요가 있읍니다.